Saturday, August 19, 2023

알라딘: [전자책] 팔꿈치 사회 강수돌 2013

알라딘: [전자책] 팔꿈치 사회


[eBook] 팔꿈치 사회 
강수돌 (지은이)갈라파고스2013



종이책의
미리보기
입니다.



































책소개
끊임없는 경쟁으로 얼룩진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대안적 보고서. 한국사회의 체제를 규정하고 강제하는 ‘경쟁’의 다층적 의미를 사회학적 담론에 편입시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 경쟁의 기원과 그것이 갖는 기능과 부작용, 경쟁에 내재된 현대인들의 이데올로기와 무의식을 정치 경제 사회 권력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탐문하고 있다.

강수돌 교수는 한국사회가 경쟁이 끊임없이 내면화되고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팔꿈치 사회, 승자독식 사회, 일중독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진단한다. 경쟁의 문제가 자본주의 경제의 맥락 속에서 한국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들과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속속들이 밝혀내면서 관계적 존재로 다시 서려는 소통과 연대를 통해 ‘함께, 당당히’ 나서 이 거칠고 험악한 이 경쟁 시스템의 벽을 허물어내자고 제안한다.

이 책은 우리 시대를 냉혹하게 지배하는 ‘경쟁’의 문제를 직시함으로써 그 굴레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지만 구체적인 실천과 대안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다.



목차


프롤로그: 우리는 언제쯤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1. 삶과 일, 가정에 대한 작은 에세이: ‘빨리빨리’ 문화와 ‘오래오래’ 노동의 뿌리
2. 경쟁 압박은 어떻게 내면화하나?
3. 경쟁에 대한 오해와 진실
4. 경쟁교육의 허와 실: 학교가 가르치지 않은 열 가지
5. 돈벌이 경쟁과 제도화된 무책임
6. 무엇을 위한 구조조정인가?: 경쟁력 중심 vs. 삶의 질 중심 구조조정
7. 덫에 걸린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윤 동기와 생존 경쟁이 만든 거품의 붕괴
8.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앙드레 고르와 이반 일리치에서 배우기
9. 아들아, 너랑 살아서 참 기쁘구나!: 경쟁이 아닌 사랑이 인생살이의 핵심이다

에필로그: 호혜의 경제를 위하여



책속에서


P. 42 “진리를 위한 경쟁이 아닌 타자를 누르기 위한 생존경쟁, 즉 세계시장을 둘러싼 상품경쟁은 어떤 상품이 승리하는가와 무관하게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지배를 존속시키는 조건이 된다. 내가 시장경쟁에 참여하는 순간, 그 승패와 무관하게 경쟁의 희생자가 된다. 나아가 그것을 넘어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시켜주게 된다. ... 더보기
P. 57 “이처럼 지금의 경쟁은 상생의 경쟁이 아니라 공멸의 경쟁이다. 이런 불공정 경쟁이나 과당경쟁을 통제한답시고 국가가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었지만 자본의 독과점이나 부정부패, 정경유착, 내부거래, 순환출자, 부당하청, 과당경쟁을 막는 데는 실패했다. 오히려 적정 경쟁이 아니라 경쟁의 세계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심지어 사람의... 더보기
P. 122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오늘날 냉혹한 경쟁이 이뤄지는 경제세계에서 한편으로는 위협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말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진정성이 없음을, 아니, 본연의 사회적 정당성조차 상실하고 있음을 자주 보여준다. 이것도 결국 무한 경쟁과 무한 이윤을 추구... 더보기
P. 143 “2009년에 77일간 파업 및 점거 투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쌍용차 노동자들은 ‘해고는 죽음이다. 같이 살자’는 구호를 외쳤다. ‘무급휴직자 복직’과 같은 합의 같지 않은 합의마저도 헌신짝 내버려지듯 무시되었다. 그 사이에 이래저래 상처 받아 죽은 이들이 무려 23명이나 된다. 제주 강정마을의 아름다운 구럼비 해안은 미국의 동아시... 더보기
P. 149~150 “문제는 죽어간 노동자만이 아니다. ‘아직’ 잘리지 않거나 ‘아직’ 살아 있는 노동자들은 과연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혹시라도 일중독에 빠져 몸은 살아 있되 정신은 죽은 거나 다름없는 ‘좀비’가 아닌가? 나아가 그 노동자들이 만든 휴대폰과 컴퓨터, 자동차를 별 생각 없이 잘 쓰는 소비자들은 어떠한가? 혹시라도 ‘돈이면 안 될 게 ...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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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강수돌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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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1985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1994년 독일 브레멘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부터 2021년까지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고려대 명예교수. 경영학 분야는 물론, 경제, 정치, 사회, 노동, 심리, 교육, 생태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인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좌우명 아래 공부한 것을 ‘나부터’ 실천하고자 한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생태 화장실을 사용하며 세 아이를 키웠다. 교수로 재직할 때 5년 동안 마을 이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쓴... 더보기

최근작 :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부디 제발>,<[큰글씨책] 자본과 국가 권력을 넘어 교육자치의 새 길을 찾다> … 총 11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 책 소개

진리를 위한 경쟁이 아닌 타자를 누르기 위한 생존경쟁, 즉 세계시장을 둘러싼 상품경쟁은 어떤 상품이 승리하는가와 무관하게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지배를 존속시키는 조건이 된다. 내가 시장경쟁에 참여하는 순간, 그 승패와 무관하게 경쟁의 희생자가 된다. 나아가 그것을 넘어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시켜주게 된다. 바로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자본주의 경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경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과 사회에 대한 대안적 보고서
살림의 경제학자 강수돌 교수, 경쟁을 넘어선 행복사회의 청사진을 그리다
이 책은 한국사회의 체제를 규정하고 강제하는 ‘경쟁’의 다층적 의미를 사회학적 담론에 편입시켜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으며, 우리 사회 경쟁의 기원과 그것이 갖는 기능과 부작용, 경쟁에 내재된 현대인들의 이데올로기와 무의식을 정치 경제 사회 권력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탐문하고 있다. 아울러 경쟁에 대한 이해와 실천 속에서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질병들의 근본적 치유의 길을 모색하게 해준다.

「1. 삶과 일, 가정에 대한 작은 에세이: ‘빨리빨리’ 문화와 ‘오래오래’ 노동의 뿌리」에서는 한국사회는 어떻게 일중독 사회가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추적한다. 이런 일중독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 저자는 사유와 노동, 인간과 자연, 경제와 사회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2. 경쟁 압박은 어떻게 내면화하나?」에서 저자는 먼저 치열한 경쟁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팔꿈치 사회’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본이 강제하는 생존경쟁을 마치 자신의 삶의 논리인 것처럼 굳게 받아들이는데, 저자는 이를 ‘경쟁의 내면화’라 한다. 「3. 경쟁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서 저자는 우리가 애써 외면한 경쟁의 불편한 진실들을 날카롭게 직시하고 있다. 아울러 모든 개인은 처음부터 ‘공동체적 개인’일 수밖에 없으며, 서로 소통하고 단결하면 ‘공동체의 희망’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4. 경쟁교육의 허와 실: 학교가 가르치지 않은 열 가지」에서는 먼저 학교는 즐거운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첨예한 경쟁의 공간, 시험의 공포만 난무하는 암울한 공간이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 장에서 특히 이 땅의 학부모들에게 간곡히 당부한다. 아이들을 메마른 생계의 길로 몰아넣기보다 꿈을 길로 이끌라고 그것만이 팔꿈치 사회를 넘어서는 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5. 돈벌이 경쟁과 제도화된 무책임」에서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CSR)을 거론하지만 적대적 생존경쟁은 ‘제도화된 무책임’을 부르고 만다는 점을 지적한다. 「6. 무엇을 위한 구조조정인가?: 경쟁력 중심 vs. 삶의 질 중심 구조조정」에서는 삶의 질 중심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과 분열의 노동현실을 극복하자고 제안한다. 「7. 덫에 걸린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윤 동기와 생존경쟁이 만든 거품의 붕괴」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전 지국적 경쟁 시스템, 자유무역협정이 전 세계 민중의 삶을 얼마나 파탄 지경으로 몰고 갔는지를 이야기하면서 이를 넘어서기 위한 전망으로 민중무역협정 등을 제시한다. 「8.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앙드레 고르와 이반 일리치에서 배우기」에서는 이미 선구적으로 현재의 경쟁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고 대안적 가치를 가꾼 사상적 선배들에 대한 고찰이다. 「9. 아들아, 너랑 살아서 참 기쁘구나!: 경쟁이 아닌 사랑이 인생살이의 핵심이다」는 저자가 아들에게 보내는 진솔한 편지로, 저자 자신의 자녀교육에 대한 실천의 면모를 엿보게 해준다.

■ 책 내용

누가 보아도 반칙이 틀림없지만 팔꿈치로 치는 사람이 절묘하게 자기감정을 숨긴 채 마치 달리기 자세를 크게 하는 듯하면서 경쟁자인 옆 사람을 밀쳐낸다면 마치 규칙을 준수하며 달리는 것처럼 보이리라. 그리고 이런 사람이 일등자리를 차지하기는 매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등’에게 박수를 보낸다. 칭찬을 하고 상을 주고 돈과 권력까지 안겨주는 경우도 흔하다. 그런 식으로 ‘팔꿈치 사회’에서 절묘한 반칙은 교묘히 ‘세탁’되고 만다.「본문」중에서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우리가 애써 외면한 경쟁의 불편한 진실, 그 맨얼굴을 직시한다
강수돌 교수는 ‘팔꿈치 사회(Ellenbogengesellschaft)’라는 용어를 통해 경쟁사회의 극단적 모습을 설명한다. 원래 이 말은 독일어에서 왔는데, 독일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바 있다. 누가 보아도 반칙이 틀림없지만 옆 사람을 팔꿈치로 치며 앞만 보고 달려가는 ‘팔꿈치 사회’는 어느 사회보다도 치열한 경쟁의 굴레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한국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말이다. 저자는 팔꿈치 사회 속에서 경쟁과 분열의 패러다임 안에서 오로지 더 높은 사다리 오르기 게임에 열중하는 이유를 ‘경쟁의 내면화’로 진단한다. 경쟁의 내면화는 자본이 강제하는 생존경쟁을 마치 자신의 삶의 논리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것이다. 경쟁이야말로 인간과 사회 발전의 효과적 방법이라는 지배자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며 경쟁을 합리화하게 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을 ‘강자와 동일시’하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하고, 자기소외와 자기배반이 일어난다.

강수돌 교수는 더 나아가 우리 애써 외면해왔던 경쟁의 불편한 진실들을 낱낱이 들추어낸다. ‘경쟁은 필연이 아니라 자본의 필요로 만들어졌다’, ‘경쟁에서는 누구도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없다’, ‘경쟁사회에서 나의 행복은 남의 불행을 전제로 한다’는 점들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생존경쟁 시스템은 끊임없이 비인간화를 초래한다. 극소수의 존중 받을 사람과 대다수의 무시해도 좋을 사람으로 가른다. 극소수의 존중 받는 이들은 많은 경우 우월감에 젖어 살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타자를 멸시하기 쉽다. 반면 대부분의 존중 받지 못하는 이들은 열등감에 젖어 살면서 자기비하, 자신감과 자존감의 결여, 소극성, 피동성, 나아가 우울증까지 동반할 수 있다. 이런 경쟁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직시하는 건 편치 않지만 우리 사회의 수많은 폐단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일이다.

경쟁은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많은 폐단들은 경쟁체제의 파생물들이다
한국사회는 상당히 치열한 경쟁사회다. 특히 입시경쟁은 경쟁사회의 폐단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학입시가 앞으로 인생을 결정한다고 생각하기에 온 나라가 입시에 혈안이 되어 있고, 특히 학부모의 불안감은 갈수록 가중된다. 학생들은 자신의 행복과 미래를 위해 공부한다고 하지만 정작 행복하지 않다. 입시의 중압감을 못 이겨 성적이 우수한 학생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이다. 학교는 배움의 기쁨이 아니라 시험의 공포가 지배하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학생들 사이의 폭력이나 왕따 현상도 결국 이러한 측면과 무관하지 않다. 강수돌 교수는 이 땅의 학부모들에게 생계에 갇힌 경쟁교육보다 꿈을 찾는 상생의 교육이 아이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준다는 점을, 그를 위해 두려움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간곡히 당부한다.

이런 입시경쟁에 버금가게 취업경쟁도 심각한 문제점을 양산해왔다. 한국사회는 1997년 IMF사태 이후 구조조정이 만연하면서 일자리가 불안정해기 시작했다. 갈수록 실업률이 증대하고 비정규직의 비중도 커져 사람들은 더욱 경쟁을 내면화하고 일중독증에 빠지게 되었다. 최근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도 경쟁력 중심의 구조조정의 폐단에서 비롯되었다. 저자는 삶의 질 중심의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과 분열의 노동현실을 극복하자고 제안한다.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전략, 사회적 자원의 민주적 재분배 등을 골자로 한다.

한국사회의 경쟁구조는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전제로 지탱되고 있다. 철벽 같은 사회경제 시스템이 문제의 핵심이지만, 이는 동시에 그 시스템에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적응하고 동조하는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개인의 각성은 물론이거니와 이웃과 함께 사회를 바꾸어야 남을 짓밟아야 하는 ‘팔꿈치 사회’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한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경쟁인가?
경쟁은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시켜줄 뿐이다
세계시장을 둘러싼 상품경쟁은 어떤 상품이 승리하는가와 무관하게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지배를 존속시키는 조건이 된다. 시장경쟁에 참여하는 순간, 그 승패와 무관하게 경쟁의 희생자가 된다. 나아가 그것을 넘어 (우리 모두를 지배하는)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시켜주게 된다. 바로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자본주의 경쟁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의 문제는 자본의 이해관계와 긴밀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강수돌 교수는 요즘 많이 이야기되는 사회적 책임도 무한 경쟁과 무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원리 때문에 나온 부산물이라 한다. 돈벌이 경쟁 시스템 속에서 기업들이 아무리 사회적 책임을 수행한다고 선전해도, 마침내 ‘제도화된 무책임’을 부르고 만다는 것이다. 돈벌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됨으로써 다른 삶을 수단화, 도구화하고 심지어는 파괴, 착취, 억압한다. 사회책임경영이 아니라 사회적 무책임 경영이 판을 치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해안 기름유출 사태, 쌍용자동차 사태, 삼성전자 백혈병 사례를 통해 기업의 무책임한 행태를 비판한다.

경쟁 시스템은 일국적 차원을 넘어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과도 깊게 연결된다. 저자는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생존경쟁이 만든 거품의 붕괴로,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하며 살벌한 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 자체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의 온갖 자유무역협정은 자본 간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온 세상 사람들을 더욱 경쟁과 분열로 몰고가면서 전체를 효과적으로 지배하려는 자본의 전략이다. 특히 자유무역협정은 선진국이며 개방도상국이며 할 것 없이 전 세계의 민초들을 피폐한 삶으로 이끌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이에 대한 민초들의 저항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수돌 교수는 이런 민초들의 저항과 더불어 2006년 볼리비아, 쿠바, 베네수엘라가 체결한 민중무역 협정에 주목한다. 이 민중무역은 국가주의에 갇혀 있는 등의 한계가 있지만 제국주의적 불평등 무역이나 초국적 자본에 의한 수탈에 맞서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팔꿈치 사회, 일중독 사회, 승자독식 사회를 넘어서
사다리 질서가 아닌 원탁형 질서를 통해 협동의 대안사회를 만들어내자
저자는 경쟁이 발전의 밑거름이라고 믿었던 바를 되짚어야 한다고 한다. 생존경쟁은 단기적으로는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적대적 경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너도 죽고 나도 죽는’ 공멸의 경쟁이라는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학교에서는 물론, 가정과 직장, 그리고 온 사회로 확장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경쟁과 분열이 아닌 연대와 협동의 새로운 원리가 우리 삶을 새롭게 짜는 근본원리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새로운 원리를 바탕으로 풀뿌리 민초들의 입장에서 사회경제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대학이나 기업이 소수의 기득권 집단을 중심으로 피라미드처럼 수직 계열화된 현실, 다시 말해 ‘사다리 질서’가 아닌 모두가 오손도순 둘러앉아 나누는 ‘원탁형 질서’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은 힘센 상부의 소수가 약한 하부의 대다수를 차별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타파하고, 상부상조하는 호혜의 살림살이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원래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는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며, 서로 돕고 나누는 가운데 온갖 역경도 이겨내며 같이 살아온 것이 인류의 생존방식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 단초로서 ‘오래된 미래’인 북미 원주민, 호주나 남태평양의 원주민들, 히말라야 산맥 주변의 라다크 마을과 같은 전통 공동체 마을, 두레와 품앗이 같은 우애와 호혜의 전통이 있던 우리의 전통마을들을 들고 있다. 오늘날도 스페인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이나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마을은행) 같은, 협력적이고 연대적인 경제방식이야말로 평화와 평등, 자유와 정의를 달성하는 건강한 방식임을 증명하고 있다.

강수돌 교수는 먼저 이런 운동의 출발점은 우리 각자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많은 한계가 있기에 뜻을 같이하는 각양각색의 풀뿌리 모임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런 모임들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토론하고 실험함으로써 경쟁체제를 넘어선 대안사회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를 불행으로 이끄는 이 경쟁사회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제대로 바라보고, 무엇을 제대로 실천해야 하는가를 제시해준다. 우리 사회의 병폐인 ‘경쟁’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나침반 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치유해줄 수 있는 길을 찾는 데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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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경쟁으로 살아야 하는 슬픈 한국의 중산층
빨간무 2013-04-2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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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되새기고 나누자. 우리의 연대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
무한의삶 2014-02-2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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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이 될 수 없는 을에게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 주인에게 폭언을 퍼붓는 녹취파일이 공개되어 공분을 사고 있다.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입에 담긴 힘든 욕을 하고, 차라리 망해버리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

혹시 그 직원이 성격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 아닌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남양유업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에 놀라 부랴부랴 홈체이지에 공식 사과문을 게시했지만,

불매운동의 불길이 당분간 쉽게 잡히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오래된 일', '문제 직원의 사직', '직원 재교육' 등의 표현이

오히려 분노한 소비자를 더욱 자극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최근 잇달아 불거진 대기업 임원의 항공사 여승무원 폭행, 기업체 사장의 호텔 직원

폭행 등이 단순히 병리적 개인의 비정상적 행동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넓게 보면 '경제 민주화'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각 경제주체 간의 불합리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비민주적 경제체제가 야기한 상실된 인간성의 회복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게 핵심이다!!

(우리의 대통령은 그 걸 알랑가 몰라~ )



지난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가 여야를 막론하고 승리로 가는 보험증권으로 작용했던 이유도

87년도에 시민의 힘으로 정치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자부심을 느낄 새도 없이

대다수 시민의 삶이 나아진 것이 없다는 시민 일반의 절망감 때문 아니었을까?



단순하게 말하자면 남양유업의 그 직원, 대기업의 그 임원, 중견업체의 그 사장도 체제가 만든

피해자 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갑'으로 군림하던 그들은 또 누군가에게 절망하고 있는 '을'이었을테니 말이다.

한때는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알았고 예의바르기만 했고,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부모에게는 효자이고, 그들의 자식들에게는 너그러운 아버지일테니 말이다.



이렇듯 갈수록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며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사회를 강수돌은

<팔꿈치 사회>라 칭한다.

팔꿈치 사회는 효자이고, 너그러운 아버지들이 자신의 그 선한 근본적 심성을 버리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다.

그리고 그 팔꿈치 사회를 이끌어 가는 동력은 끝나지 않을 경쟁.

그러나 그 경쟁의 승자는 오직 하나.

바로 자본과 권력이고 그 피해자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 99%의 국민들.



생각해보라.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애비에미도 몰라보는 행동' 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 자가 누구이겠는가?



강수돌은 진단한다.

강자 동일시와 경쟁의 내면화가 커지면 커질 수록 우리는 자신의 참된 내면과

점점 멀어지게 된다고.

그리고 제시한다.

경쟁의 원리를 냉철하게 보자고.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진행한 남양유업 대리점 김대형씨와의 인터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신입이 들어오면 이 친구 참 착하다는 생각을 하는데..시간이 지나면 이름만 달랐지,

같은 친구, 같은 애들이랑 애기하고 있단 느낌..."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갑'이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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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thes 2013-05-0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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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중독의 사회를 넘어 함께, 당당히!





가끔, 아주 가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추하지 않게, 개나 돼지와 다르게 사는 것일까, 생각해 보곤 한다. 물론 그렇다고 개와 돼지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우리가 개, 돼지와 같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표현상의 문제로 항상 개와 돼지에겐 미안하게 생각한다.



저자는 내가 무척 존경하는 분이다. 아주 예전, 인터뷰를 위해 만난 적도 있다. 당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멍청한 머리로 인해 기억이 나질 않지만, 적어도 그때의 느낌은 남아있다. 여느 그렇고 그런, 한심한 교수와는 다른 분이라는 점. 강수돌 교수는 삶으로, 행동으로, 자신의 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매우 힘이 센 분이다.



그가 책을 펴낼 때마다 가능하면 챙겨두고 읽으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전부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글은 간결하고, 거짓이 없으며, 무엇보다 이해하기 쉽기에, 나에겐 고마운 글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책, 그런 글, 사실 찾기 그리 쉽지 않다.



‘팔꿈치 사회’는 독일에서 맨 처음 사용된 표현이라 한다. 팔꿈치로 옆 사람을 누르고 앞으로 나가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경쟁사회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렇다면 당연히 지금 우리의 모습은 자타가 공인하는 팔꿈치 사회다. 아예 그 팔꿈치에 날카로운 창이나 칼을 덧붙인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니까.



우리는 경쟁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태어나자마자, 사물을 인식하고 아주 초보적이나마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치열한 레이스에 돌입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아이들은 무한경쟁의 도가니에 빨려 들어가 제일 행복하고 아름다워야 할 젊음의 시절을 고통과 좌절, 분노의 시간으로 보낸다. 도대체 언제 주어질지도 모르는, 그리고 사실 그 가능성이 점점 더 희박해져가고 있는, ‘개인의 안정’을 위해, 젊음을 빼앗긴다.



나이가 들어서도 달라질 것은 없다. 또 다시 경쟁, 또 경쟁. 그러다 낙오되면, 철저히 밑바닥으로 떨어져, 다시 일어서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게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연대와 공감보다는, 이기주의와 온갖 속임수가 우대 받고 칭송 받는 시대. 사기꾼의 시대, 협잡의 시대, 불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밑바탕에는 경쟁이라는 룰이 자리 잡고 있다.



강수돌 교수는 사실, 경쟁이라는 단어조차 협동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한다. 경쟁(Competition)이란 말의 어원을 보면, 라틴어로 ‘함께 추구하는 것’이란 뜻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함께 추구하는 것, 그것은 결코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직접 행동하고 있는 경쟁과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리는 본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잔인하고 무의미하고 결국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는 경쟁에 인생 전체를 갖다 바치며, 기계의 부속처럼 살아가고 있을까. 그것에 대한 정답은 명확하다. 자신의 몸집을 끝없이 불리기 위해 자본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자의반 타의반 끌려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는 별 의미가 없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고, 버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경쟁의 과정이나 결과는 결국 궁극적으로 인간이 없는 사회를 만든다고 경고한다. 인간이 없는 사회, 즉 우리 모두가 사라진 사회에서, 과연 승자는 누구인가. 극소수의 기득권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모품으로 버려지는 모습. 이것이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의 경쟁이다.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연대의 본능, 협동의 본능을 느낄 수 있다. 원래 우리 인간은 서로 도우며 연대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경쟁이라는 비정상적 시스템 속에서 인간이 살아온 것은 인류 역사 속에서 고작 몇 백 년이 채 되지 않는다. 때문에 경쟁은 결코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어느 사이엔가, 이미 우리에게 내면화 되어 있는 ‘경쟁’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과연 이것이 불멸의 존재인지, 아니면 우리들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그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본디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연대의 힘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미미한 존재는 물론, 전 세계 모든 국가들에서 이미 경제적 성장의 한계는 뚜렷하다. 애초 무한성장이란 것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누군가 경제적 이익을 얻으면, 당연히 누군가는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손해를 보는 대상이, 피해를 입는 대상이 저개발 국가인지, 아니면 자연 그 자체,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인지, 그것만 다를 뿐이다. 잘난 경제학자들이 떠드는 것 중 그나마 유효한 것 하나는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것, 그것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어마어마한 전염병으로 이미 수 십 년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다. 그 대신 이익을 얻은 것은 그들에 비해 극소수에 불과한 몇몇 이익집단, 기업가 그리고 자본의 주인들일 뿐이다. IMF 이후 대한민국 사회가 송두리째 바뀌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세월호와 같은 끔찍한 범죄가 여전히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 바로 그 이유에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치명적인 병균이 자리 잡고 있다.



무책임이 당연한 사회, 몰상식, 몰염치한 사회에서 애초 세월호의 진상을 밝히라는 호소는 허무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월호 비극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권력을 누리며, 오히려 유가족들을 탄압하고 모욕하고 있지 않은가.



이 모든 참혹한 현실 속에는 무한경쟁, 경쟁사회라는 비정상적 시스템이 근원적으로 깔려 있다. 이를 깨부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영원히 세월호를 바다 속에서 꺼내지 못할 지도 모른다. 저자는 말한다. 더 이상 피라미드형의 사다리 질서가 아닌, 모두가 둘러앉아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밥을 먹는 ‘원탁형 질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말이다.



서북청년단 재건을 외치는, 전혀 청년으로 보이지 않는 집단들의 광기와 무지를 보며, 이러한 기형적 뒤틀림의 근원 속에 과연 무엇이 존재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나만 살면 된다는 이기심과, 그것이 변태적으로 진화하여 지금의 경쟁 논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거기에 자본이라는 악마가 다시 붙고, 추악한 욕망이 붙고, 권력이 사적으로 이용하고…



체념하고 싶은 세상이다. 배우 김부선 씨는 자신의 정당한 권리 행사와 투쟁에 대한 정부와 언론의 어이없는 행태를 보며, ‘대한민국, 졌다 졌어’라고 한탄했다. 나도 GG를 누르고 싶다. 이미 나라임을, 공동체임을 포기한 모습이니까. 하지만 아직은 누를 수 없다. 이 지긋지긋하고 애틋한 희망을 놓을 수는 없다. 여전히 난 모두가 둘러앉아 함께 밥을 나눠 먹는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 밥 한 번 먹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책, 함께 나눠야 할 책이다. 세상도 어서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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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틀키드 2014-10-0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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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을 말한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전작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 되는가를 보완하여 재발간 책이다. 기존 저자의 책을 읽어왔던 독자들에게는 반복되는 내용일 수 있지만 반복적이더라도 저자의 가치관을 확인시켜주기위해 저자의 삶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만큼 설득력있는 소재는 없을 것이다. 태어나서 부터 죽을때까지 경쟁을 강요받게 되버린 원인으로 저자는 세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확산을 지적하고 있다. 세계화가 대두되던 90년대 초반부터 세계화의 위험성에대해 주목한 저자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것에 박수를 보내지만 경고가 현실이 되버린 점은 서글픈 현실이다. 사회양극화와 각종 사회갈등을 말하면서도 어떠한 진보적 접근마저 터부시되온 한국사회에 생태주의도 하나의 대안으로 잡리잡을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주는 책이다. 교육,노동,환경 문제와 관련하여 저자가 추구하는 연대와 상생의 정신이 우리사회가 겪는 정신적 고통의 해결이 될 수 있을것이다. 그러나 우석훈의 경우처럼 계량적 연구가 뒷받침 되지 않은점은 취지에는 동의하더라도 실현가능성에서는 아쉬움을 남겨준다. 경쟁에 낙오한 사람들에게는 위안을 삶의 터전에서경쟁중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좌표를 제시해주는 값진 책이다. 마이클 포터의 식어가는 인기만큼이나 가치가 발견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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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on 2013-08-0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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