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계 정당
최근 수정 시각:
| ||||
민주당계 정당 | ||||
주요 정당 | ||||
과거 | 초기 | |||
군정기 | ||||
제6공화국 | ||||
현존 원내정당 | 더불어민주당 (2015~) | |||
장면 내각 (1960~1961) 국민의 정부(김대중) (1998~2003) 참여정부(노무현) (2003~2008) 문재인 정부 (2017~2022) | ||||
이념 | ||||
과거 | ||||
현재 | ||||
의석 | ||||
현재 | 172석[8] / 295석 (58.3%) |
1. 개요2. 역사
2.1. 보수정당과의 연관성2.2. 8.15 광복 이후 ~ 제2공화국
3. 소속 정치인2.2.1. 고려민주당2.2.2. 조선민족당2.2.3. 한국민주당2.2.4. 대한국민당2.2.5. 민주국민당2.2.6. 민주당(1955년)2.2.7. 통일당2.2.8. 신민당(1960년)
2.3. 5.16 군사정변 이후 ~ 제4공화국2.3.1. 민정당2.3.2. 자유민주당(1963년)2.3.3. 민주당(1963년)2.3.4. 국민의당(1963년)2.3.5. 민중당2.3.6. 신한당2.3.7. 신민당(1967년)2.3.8. 국민당(1971년)2.3.9. 민주통일당
2.4. 제5공화국 ~ 노태우 정부2.4.1. 민주한국당(관제)2.4.2. 민권당(관제)2.4.3. 신한민주당2.4.4. 민중민주당2.4.5. 통일민주당2.4.6. 평화민주당2.4.7. 한겨레민주당2.4.8. 민주당(1990년), 통칭 꼬마민주당2.4.9. 신민주연합당2.4.10. 민주당(1991년)2.4.11. 신정치개혁당2.4.12. 새한국당
2.5. 문민정부2.6. 국민의 정부 ~ 참여정부2.7. 이명박 정부 ~ 박근혜 정부2.7.1. 민주당(2008년)2.7.2. 국민참여당2.7.3. 시민통합당2.7.4. 민주통합당2.7.5. 민주당(2013년)2.7.6. 새정치민주연합2.7.7. 민주당(2014년)2.7.8. 국민회의(2016년)2.7.9. 국민의당(2016년)
2.8. 문재인 정부2.9. 현재3.1. 대통령3.2. 부통령3.3. 내각제 총리3.4. 국회의원
4. 역대 선거결과5. 전당대회6. 진보정당과의 관계7. 관련 문서8. 둘러보기3.4.1. 13대 국회3.4.2. 14대 국회3.4.3. 15대 국회3.4.4. 16대 국회3.4.5. 17대 국회3.4.6. 18대 국회3.4.7. 19대 국회3.4.8. 20대 국회3.4.9. 21대 국회
3.5. 광역자치단체장3.5.1. 서울특별시장3.5.2. 부산광역시장3.5.3. 인천광역시장3.5.4. 광주광역시장3.5.5. 대전광역시장3.5.6. 울산광역시장3.5.7. 세종특별자치시장3.5.8. 경기도지사3.5.9. 강원도지사3.5.10. 충청북도지사3.5.11. 충청남도지사3.5.12. 전라북도지사3.5.13. 전라남도지사3.5.14. 경상북도지사3.5.15. 경상남도지사3.5.16. 제주특별자치도지사
3.6. 당대표1. 개요[편집]
민주당계 정당은 한국의 정당 계열 중의 하나로 지난 60여 년간 이어져 왔다. 다만 이건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한 부분이 크고 사실상 현대 민주당계 정당의 직접적 전신으로는 1987년 김대중이 김영삼과 결별하면서 창당한 평화민주당, 김대중이 민주당을 탈당한 후 최초의 여야간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끈 새정치국민회의의 계보를 꼽는다. 주류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도 계보상 과거 민주당계 정당들과 이어져 있다.[9]
한국의 정당 특성상, 사분오열과 이합집산이 자주 반복되어 왔는데, 민주당계 정당은 다른 정당계열의 여집합들이 모인 정당이어서 특히 더 심했던 편이다. 굳이 특징을 잡아보면 야당이었던 기간이 훨씬 길고, 대체로 정당 이름에 민주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10] 한국의 현대사에서 민주라는 명칭이 붙은 정당의 역사는 아래에 기술한다. 또한 민주라는 명칭은 들어가지만, 실질적으로 민주당계와 관련이 없는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 민주자유당, 민주국민당[11], 민주노동당[12], 자유민주연합[13] 등은 제외한다. 더불어 역사적 의미가 옅은 군소정당들은 제외하고 원내정당이거나 특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위주로 서술한다.
1.1. 현 상황[편집]
1.2. 당색[편집]
민주당을 상징하는 색은 세 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 복귀를 선언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면서 고른 초록색[15],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서 주로 사용한 노란색[16], 2013년 민주당으로 개명한 후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사용하는 파란색[17]이 있다.
2015년, 국민의당은 당시 새누리당의 빨강과 더민주의 파랑이라는 스펙트럼의 중간인 초록색을 선택했다.[18] 주황색을 사용했을 때도 있었는데, 대통합민주신당이 그 예다. 2018년, 국민의당의 분열로 생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중 민주당 계열인 민주평화당은 초록색을 골랐고, 후신인 민생당까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의 색깔인 파란색과 민생당이 사용 중인 초록색, 두 색깔이 쓰이고 있다. 다만 민생당이 원외정당이 됨에 따라 원내 민주당계 정당의 색깔은 더불어민주당의 파란색만 남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 시조격으로 여기는 1955년 민주당은 짙은 남색을 당색으로 사용하였고, 깨어있는시민연대당도 남색 계통을 쓰고 있다.
2015년, 국민의당은 당시 새누리당의 빨강과 더민주의 파랑이라는 스펙트럼의 중간인 초록색을 선택했다.[18] 주황색을 사용했을 때도 있었는데, 대통합민주신당이 그 예다. 2018년, 국민의당의 분열로 생긴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중 민주당 계열인 민주평화당은 초록색을 골랐고, 후신인 민생당까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현재는 더불어민주당의 색깔인 파란색과 민생당이 사용 중인 초록색, 두 색깔이 쓰이고 있다. 다만 민생당이 원외정당이 됨에 따라 원내 민주당계 정당의 색깔은 더불어민주당의 파란색만 남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더불어민주당에서 시조격으로 여기는 1955년 민주당은 짙은 남색을 당색으로 사용하였고, 깨어있는시민연대당도 남색 계통을 쓰고 있다.
1.3. 정당 기호[편집]
국회 원내 의석수 순으로 선거 정당기호 순서를 정한 공직선거법이 제정된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민주당계 정당이 전국 단위 공직선거에서 받은 기호는 2번 또는 3번이었다. 민주당계 정당이 배출한 3명의 대통령 중에 두 대통령(김대중, 노무현)이 기호 2번으로 당선된 바 있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탁현민의 연출하에 김대중의 번호, 노무현의 번호라는 유세 CF를 제작하기도 했다. 기호 1번은 보수정당들이 주로 받았는데 이는 1997년까지 당시 여당이었던 보수정당이 자연스럽게 다수당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던[19] 선거법의 영향이 크다. 제13대 대통령 선거와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평화민주당이 기호 3번을 받았고 이후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은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열린 모든 전국 단위 선거 때 기호 2번을 달았다.
그러다 2004년 이후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기호 1번을 받게 되는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원내 1당이 되면서 기호 1번을 받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기호 1번을 받은 후 모든 선거에서 모조리 참패하는 흑역사를 만들었고(...) 이 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과 통합민주당도 제17대 대통령 선거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유산인 기호 1번을 받아 선거에 임했지만 역대급 참패를 당하고 1번 자리를 다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넘겨주고 만다. 이후 시행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제18대 대통령 선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이 기호 2번을 달고 선거에 임했다.
그러나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1당 자리를 탈환하면서 기호 1번을 달 수 있는 권한이 다시 민주당계 정당으로 돌아왔고 제19대 대통령 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더불어민주당이 기호 1번을 배정받았다. 민주당보다 의석수가 적은 민생당은 기호 3번을 받았다. 그리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절반을 가뿐히 뛰어넘는 압승을 거두면서 2024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치러지는 모든 선거에서[20] 더불어민주당이 기호 1번을 달 수 있게 됐다.
그러다 2004년 이후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기호 1번을 받게 되는데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원내 1당이 되면서 기호 1번을 받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기호 1번을 받은 후 모든 선거에서 모조리 참패하는 흑역사를 만들었고(...) 이 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과 통합민주당도 제17대 대통령 선거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유산인 기호 1번을 받아 선거에 임했지만 역대급 참패를 당하고 1번 자리를 다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에 넘겨주고 만다. 이후 시행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제18대 대통령 선거,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이 기호 2번을 달고 선거에 임했다.
그러나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원내 1당 자리를 탈환하면서 기호 1번을 달 수 있는 권한이 다시 민주당계 정당으로 돌아왔고 제19대 대통령 선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더불어민주당이 기호 1번을 배정받았다. 민주당보다 의석수가 적은 민생당은 기호 3번을 받았다. 그리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절반을 가뿐히 뛰어넘는 압승을 거두면서 2024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치러지는 모든 선거에서[20] 더불어민주당이 기호 1번을 달 수 있게 됐다.
2. 역사[편집]
1945년 원세훈을 중심으로 민주당계 정당의 시초인 고려민주당이 창당되었고, 이후 고려민주당은 조헌영과 이원혁 등 신간회 경성지회계를 포함한 이인 계파와 김병로 계파, 공산주의자에서 전향한 김약수와 유진희 등이 합류해 창당된 조선민족당에 흡수되었다. 그 후 조선민족당은 백남훈, 허정, 김도연, 윤보선, 윤치영, 장덕수를 중심으로 창당된 한국국민당과 합당하였고, 그 결과 광복 직후 최대 민주당계 정당이었던 한국민주당이 김성수와 송진우를 중심으로 창당되었다. 그 후 한국민주당은 민주국민당을 거쳐 1955년 신익희를 중심으로 오늘날의 민주당계 정당들이 스스로 뿌리라고 부르는 민주당을 창당하였다.[21] 민주당은 4.19 혁명 이후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장면을 내각 총리로 하는 제2공화국을 창출했다. 그러나, 윤보선의 구파와 장면의 신파로 분열된 이후에는 온갖 분열과 이합집산을 거쳐 신민당으로 통합되었다. 신민당은 12.12 군사반란 이후 출범한 제5공화국 정권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가, 1985년 신한민주당으로 다시 부활했다. 이후 또 다시 분열을 거쳐 현 민주당계의 실질적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1998년에 김대중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평적이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룩하였다. 2000년에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으로 재창당하였고, 2002년에는 노무현이 16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정권 재창출을 이루어냈다. 이후 민주당계 정당은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열되었으나, 여러 번의 이합집산 끝에 2008년에 통합민주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합쳐졌다.
이후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는 등의 이합집산 끝에,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민주당 계열이 뭉치는 듯 했지만 2015년 재보궐선거의 참패 이후 20대 총선을 기점으로 한 당내 분열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양당으로 재구성되었다. 2016년 10월, 나라를 뒤집어 놓은 초유의 비선실세 국정 농단이 밝혀지며 그해 12월, 국회 탄핵안 가결까지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지고, 결국 2017년 3월 10일, 헌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그 결과 궐위상태의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2017년 5월, 19대 대선이 치러졌고 결국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참여정부 이후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잡기에 이른다. 2017년 연말, 민주당계 정당의 한 축이었던 국민의당은 다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재분열한다. 바른미래당은 중도보수 정당으로도 분류되며 당의 내분으로 인해 친유계의 탈당과 신당 창당으로 이어지고, 친안계 또한 이탈 후 신당을 창당하며, 잔류파는 호남권 정당들과 합당을 추진했다. 한편, 민주평화당도 당의 내분으로 인해 구 동교동계를 주축으로 한 대안신당이 창당되었다. 이후 2020년 연초 들어선 합당여론은 바미당, 민평당, 신당을 묶어 민생당으로의 창당을 이끌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내에도 민주당이 중도층만 겨냥한다는 일부 여론이 있었고, 그 여론으로 인해 열린민주당이 창당하였다. 중간에 비례 정당인 미래한국당에 대항하기 위해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정당이 창당되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한다. 그래서 현재 민주당 계열의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민생당의 체제로 갖추어졌다.
이후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는 등의 이합집산 끝에,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민주당 계열이 뭉치는 듯 했지만 2015년 재보궐선거의 참패 이후 20대 총선을 기점으로 한 당내 분열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양당으로 재구성되었다. 2016년 10월, 나라를 뒤집어 놓은 초유의 비선실세 국정 농단이 밝혀지며 그해 12월, 국회 탄핵안 가결까지 혼란스러운 정국이 이어지고, 결국 2017년 3월 10일, 헌재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그 결과 궐위상태의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2017년 5월, 19대 대선이 치러졌고 결국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참여정부 이후 민주당계 정당의 대표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10년 만에 정권을 잡기에 이른다. 2017년 연말, 민주당계 정당의 한 축이었던 국민의당은 다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으로 재분열한다. 바른미래당은 중도보수 정당으로도 분류되며 당의 내분으로 인해 친유계의 탈당과 신당 창당으로 이어지고, 친안계 또한 이탈 후 신당을 창당하며, 잔류파는 호남권 정당들과 합당을 추진했다. 한편, 민주평화당도 당의 내분으로 인해 구 동교동계를 주축으로 한 대안신당이 창당되었다. 이후 2020년 연초 들어선 합당여론은 바미당, 민평당, 신당을 묶어 민생당으로의 창당을 이끌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내에도 민주당이 중도층만 겨냥한다는 일부 여론이 있었고, 그 여론으로 인해 열린민주당이 창당하였다. 중간에 비례 정당인 미래한국당에 대항하기 위해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정당이 창당되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계열에 속하는 것으로 한다. 그래서 현재 민주당 계열의 정당은 더불어민주당, 민생당의 체제로 갖추어졌다.
2.1. 보수정당과의 연관성[편집]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은 대한민국의 보수 정당 만큼이나 보수라고 보기도, 진보라고 보기도 어려운 애매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언론에선 보수 정당이 보수 우파를 자처하기에 좌파, 진보 진영으로 뭉뚱그려 말하는 경향이 있다. 굳이 정체성을 따지자면 민주당계란 이름에서 보이듯 민주화를 이끌던 계열의 정권 정도가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 한민당 시절엔 도리어 강경 보수 계열로 평가 받기도 했으나, 이후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반정부, 민주화 투쟁을 벌이면서 민주/중도적인 방향으로 이동하였다.[22] 그리고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는 YS를 필두로 하는 통일민주당 계열은 3당 합당으로 지금의 보수정당의 뿌리가 되었고[23], 남은 민주화 세력은 DJ를 필두로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를 거치며 각계의 재야 인사와 개혁적 인사들이 다수 합류하였다.[24] 이로 인해 좀 더 진보적인 색채를 띠게 되어 오늘날에는 다양한 스탠스가 뒤섞인 세력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25]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이후로는 친노계가 진보적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진보적 색채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26] 문재인 대통령 또한 당 대표 시절에 재야 인물들을 대거 영입함에 따라서 당은 진보적인 인물부터 당 내의 중도보수 인사들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현재도 송영길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이 이러한 기조를 계승하고 있다. 사실상 중도개혁 성향의 빅 텐트인 셈이다.
사실 대중적인 표현과 달리 학술적으로 표현할 때나 스스로 칭할 때나 '진보'나 '좌파'라는 지칭은 거의 나오지 않고 "민주개혁" 또는 "중도개혁"이라는 표현이 주로 쓰인다. 굳이 나누면 보수 양당제하 진보 좌파로, 진보 정당들이 장기 집권하기도 하는 유럽 정치 기준으로 보면 중도주의(자유주의), 혹은 중도주의~중도좌파(사회자유주의) 정도로 평가 받기도 한다.[27] 참고로 참여정부의 주축이었던 열린우리당 당시 내세운 이념 역시 사회자유주의였다. 반면 같은 시기의 새천년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보통 참여정부 시기의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을 다룰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당원 각각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었기에 당의 노선을 분명하게 가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기에 민주당 계열은 온건 보수와 온건 진보 세력이 각각 계파를 이뤄 한솥밥을 먹는 구도라 해석할 수 있다.[28] 일례로, 박근혜 정부 당시의 민주당 계열도 참여정부 때와 유사하게 당시 민주당계의 양대 축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온건 진보와 온건 보수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본다.[29] 현재 민주당계의 주류정당인 더불어민주당만 봐도 19대 대선을 거치며 더 당 내부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져서 중도 보수까지 아우르게 되었지만 당의 주축은 이전의 민주당계 정당보다 더 진보화하였다.
과거 한민당 시절엔 도리어 강경 보수 계열로 평가 받기도 했으나, 이후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을 거치며 반정부, 민주화 투쟁을 벌이면서 민주/중도적인 방향으로 이동하였다.[22] 그리고 1987년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에는 YS를 필두로 하는 통일민주당 계열은 3당 합당으로 지금의 보수정당의 뿌리가 되었고[23], 남은 민주화 세력은 DJ를 필두로 평화민주당, 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를 거치며 각계의 재야 인사와 개혁적 인사들이 다수 합류하였다.[24] 이로 인해 좀 더 진보적인 색채를 띠게 되어 오늘날에는 다양한 스탠스가 뒤섞인 세력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25]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이후로는 친노계가 진보적 인사들을 대거 영입하면서 진보적 색채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26] 문재인 대통령 또한 당 대표 시절에 재야 인물들을 대거 영입함에 따라서 당은 진보적인 인물부터 당 내의 중도보수 인사들까지 아우르게 되었다. 현재도 송영길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이 이러한 기조를 계승하고 있다. 사실상 중도개혁 성향의 빅 텐트인 셈이다.
사실 대중적인 표현과 달리 학술적으로 표현할 때나 스스로 칭할 때나 '진보'나 '좌파'라는 지칭은 거의 나오지 않고 "민주개혁" 또는 "중도개혁"이라는 표현이 주로 쓰인다. 굳이 나누면 보수 양당제하 진보 좌파로, 진보 정당들이 장기 집권하기도 하는 유럽 정치 기준으로 보면 중도주의(자유주의), 혹은 중도주의~중도좌파(사회자유주의) 정도로 평가 받기도 한다.[27] 참고로 참여정부의 주축이었던 열린우리당 당시 내세운 이념 역시 사회자유주의였다. 반면 같은 시기의 새천년민주당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보통 참여정부 시기의 민주당계 정당의 이념을 다룰 때는 주의해야 할 점이 당원 각각의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었기에 당의 노선을 분명하게 가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도 그런 기조를 유지하기에 민주당 계열은 온건 보수와 온건 진보 세력이 각각 계파를 이뤄 한솥밥을 먹는 구도라 해석할 수 있다.[28] 일례로, 박근혜 정부 당시의 민주당 계열도 참여정부 때와 유사하게 당시 민주당계의 양대 축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각각 온건 진보와 온건 보수가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본다.[29] 현재 민주당계의 주류정당인 더불어민주당만 봐도 19대 대선을 거치며 더 당 내부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져서 중도 보수까지 아우르게 되었지만 당의 주축은 이전의 민주당계 정당보다 더 진보화하였다.
2.2. 8.15 광복 이후 ~ 제2공화국[편집]
2.2.1. 고려민주당[편집]
1945년 8월 18일에 결성된 최초의 민주당계 정당.
2.2.2. 조선민족당[편집]
1945년 8월 28일에 결성된 민주당계 정당.
2.2.3. 한국민주당[편집]
1945년 9월 16일에 결성된 광복 직후 미군정기의 최대 민주당계 정당. 약칭은 한민당. 이들은 광복 후 초기에 민중들로부터 지지기반이 약했다. 지주, 자본가, 친일반민족행위자들 위주의 정당이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도 참여했지만 주요 인물들이 일제 말기 친일경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민중들로부터 지지 기반이 약했고 지금도 거의 흑역사 취급을 당하고 있다.
김영삼·김대중의 초기 정치 뒷배가 한민당 출신 인사였고 그에 따라 지금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가끔씩 친일 논란이 일어나는 인물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이 보기에도 "엄청 보수적이라 말이 안 통한다"[30]라는 평을 할 정도로 보수정치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김영삼·김대중의 초기 정치 뒷배가 한민당 출신 인사였고 그에 따라 지금 현재 여야를 막론하고 가끔씩 친일 논란이 일어나는 인물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이 보기에도 "엄청 보수적이라 말이 안 통한다"[30]라는 평을 할 정도로 보수정치의 대명사로 인식되었다.
2.2.4. 대한국민당[편집]
대한국민당(1948년)은 1949년 민주국민당 합당에 참여한 정당이다.
2.2.5. 민주국민당[편집]
한국민주당과 대한국민당(1948년)[31]이 합당하여 생긴 정당. 당명은 한국민주당에서 ‘민주’, 대한국민당(1948년)에서 ‘국민’을 따서 만들어졌다.
2.2.6. 민주당(1955년)[편집]
민주당계 정당의 뿌리이자 제2공화국의 집권 여당. 오늘날의 민주당계 정당들은 이 정당을 시조격으로 여긴다. 문재인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던 2015년에 국민과 함께 민주 60년이라는 슬로건으로 민주당 60년을 기념하면서, 그 이전의 민주당계 정당들을 족보에서 파내버렸다(...).
1955년 자유당의 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계기로 민주국민당에 자유당 탈당파[32], 흥사단 등의 범 야권 세력이 모여 호헌동지회를 결성한 뒤, 9월 18일 창당하였다.
그러나, 한민당-민주국민당 출신 구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계 등 신파의 내부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1956년 대선 후보 선출 전 곽상훈의 중개로, 대통령 후보에 신익희, 부통령 후보에 장면을 내세워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안타깝게도 신익희 당시 후보는 선거 직전 사망했지만, 장면 당시 후보는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무너진 이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어[33]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장면을 국무총리로 하는 제2공화국을 창출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독재정권 타도에 목표를 두고 뭉쳐버린 탓에, 내부 분열로 혼란이 컸었다. 윤보선의 구파와 장면 신파의 갈등이 심했고, 결국 구파는 신민당으로 분당했다. 이후 남아있던 신파마저 다시 노장파와 소장파로 분열되었고, 5.16 군사정변 직후 군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김영삼이 구파의 대표적 인물, 김대중이 신파의 대표적 인물로 성장했으며, 이들의 당내 대립·협력 구도는 1987년까지 지속되었다.
1955년 자유당의 사사오입 개헌 사건을 계기로 민주국민당에 자유당 탈당파[32], 흥사단 등의 범 야권 세력이 모여 호헌동지회를 결성한 뒤, 9월 18일 창당하였다.
그러나, 한민당-민주국민당 출신 구파와 자유당 탈당파, 흥사단계 등 신파의 내부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1956년 대선 후보 선출 전 곽상훈의 중개로, 대통령 후보에 신익희, 부통령 후보에 장면을 내세워 제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다. 안타깝게도 신익희 당시 후보는 선거 직전 사망했지만, 장면 당시 후보는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제1공화국이 무너진 이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어[33] 윤보선을 대통령으로 장면을 국무총리로 하는 제2공화국을 창출하며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독재정권 타도에 목표를 두고 뭉쳐버린 탓에, 내부 분열로 혼란이 컸었다. 윤보선의 구파와 장면 신파의 갈등이 심했고, 결국 구파는 신민당으로 분당했다. 이후 남아있던 신파마저 다시 노장파와 소장파로 분열되었고, 5.16 군사정변 직후 군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김영삼이 구파의 대표적 인물, 김대중이 신파의 대표적 인물로 성장했으며, 이들의 당내 대립·협력 구도는 1987년까지 지속되었다.
2.2.7. 통일당[편집]
2.2.8. 신민당(1960년)[편집]
민주당에서 윤보선 계열의 구파가 탈당하여 창당한 정당이다. 당초 민주당은 독재정권 종식이라는 목표 아래에 뭉쳤으나, 막상 승리가 확실시되자, 오늘날처럼 계파 간의 갈등 양상은 점점 커져갔다.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내각책임제하에서 실권을 가진 총리를 자기 계파 출신으로 선출하기 위해서는 의석수에서 앞서야 했으므로 공천 과정에서부터 계파간의 싸움이 치열했다. 구파의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실권을 가진 총리가 신파의 장면이 되면서, 신파는 내각 구성에서 구파를 소외시켰다. 이에 1960년 8월 31일 구파는 ‘구파동지회’라는 이름으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여 신파와의 결별을 고했다.
이후, 구파는 1960년 12월 14일 '신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창당했다. 창당 후 반년간 제1야당의 위치에 있었으나 별다른 정치활동을 벌이지도 못하고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해체되었다. 분열을 상징하는 정당이자, 제2공화국이 단명으로 끝난 데 많은 책임이 있는 정당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후, 구파는 1960년 12월 14일 '신민당'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창당했다. 창당 후 반년간 제1야당의 위치에 있었으나 별다른 정치활동을 벌이지도 못하고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해체되었다. 분열을 상징하는 정당이자, 제2공화국이 단명으로 끝난 데 많은 책임이 있는 정당으로 평가되고 있다.
2.3. 5.16 군사정변 이후 ~ 제4공화국[편집]
2.3.1. 민정당[편집]
2.3.2. 자유민주당(1963년)[편집]
2.3.3. 민주당(1963년)[편집]
자세한 내용은 민주당(1963년)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군정이 끝난 뒤 민정 체제로 이양되자 잔존한 민주당의 파벌(신파)이 다시 뭉친 이른바 재건민주당이다.
2.3.4. 국민의당(1963년)[편집]
2.3.5. 민중당[편집]
2.3.6. 신한당[편집]
윤보선이 민중당을 탈당하여 1966년에 창당한 정당이다.
2.3.7. 신민당(1967년)[편집]
2.3.8. 국민당(1971년)[편집]
2.3.9. 민주통일당[편집]
2.4. 제5공화국 ~ 노태우 정부[편집]
2.4.1. 민주한국당(관제)[편집]
2.4.2. 민권당(관제)[편집]
2.4.3. 신한민주당[편집]
약칭 신민당. 1985년 1월 말 정치활동 금지가 풀리면서 창당된 범 민주정당.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기반으로 김영삼계와 김대중계 및 과거 보수야당계열 인사들이 1985년 1월 창당하였다. 창당 한달 만에 치뤄진 12대 총선에서 정권의 호구였던 2중대 민한당, 3소대 한국국민당을 제치고 단숨에 제1야당으로 급부상하였다.
이후 민주화를 외치면서 제5공화국 정권과 투쟁하였으나, 이민우 구상의 후폭풍으로 당주류였던 김영삼계와 김대중계가 대거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면서 급격히 추락하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고 곧바로 정당등록이 취소돼서 사라졌다.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은 신한민주당 항목 참조.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기반으로 김영삼계와 김대중계 및 과거 보수야당계열 인사들이 1985년 1월 창당하였다. 창당 한달 만에 치뤄진 12대 총선에서 정권의 호구였던 2중대 민한당, 3소대 한국국민당을 제치고 단숨에 제1야당으로 급부상하였다.
이후 민주화를 외치면서 제5공화국 정권과 투쟁하였으나, 이민우 구상의 후폭풍으로 당주류였던 김영삼계와 김대중계가 대거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면서 급격히 추락하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는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고 곧바로 정당등록이 취소돼서 사라졌다.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은 신한민주당 항목 참조.
2.4.4. 민중민주당[편집]
2.4.5. 통일민주당[편집]
2.4.6. 평화민주당[편집]
2.4.7. 한겨레민주당[편집]
양김의 분열로 노태우 정부가 출범하자 민주당계 정치인들이 만든 당이다. 이후 꼬마민주당으로 개별 합류했다.
2.4.8. 민주당(1990년), 통칭 꼬마민주당[편집]
2.4.9. 신민주연합당[편집]
2.4.10. 민주당(1991년)[편집]
2.4.11. 신정치개혁당[편집]
꼬마민주당을 탈당한 박찬종이 제14대 총선을 앞두고 창당했다. 이후 통일국민당과 신민당(1994년)으로 신설합당하여 보수정당 계열로 이탈했다.
2.4.12. 새한국당[편집]
2.5. 문민정부[편집]
2.5.1. 새정치국민회의[편집]
2.5.2. 개혁신당(1995년)[편집]
2.5.3. 통합민주당(1995년)[편집]
새정치국민회의에 참여하지 않고 잔류한 민주당계 인원들이 홍성우, 장을병 등 시민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개혁신당과 합당하여 1995년에 창당한 정당이다. 16대 총선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15명 당선에 그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하고 제4당으로 전락하였다. 이후 15대 대선이 다가오면서 당의 진로를 놓고 내부갈등이 심해졌다. 15대 대선 후보로 영입한 조순 서울시장이 점점 지지율이 떨어지면서 신한국당과의 합당을 결정하자, 노무현, 김원기, 김정길 등은 이에 반발해서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였다. 반면 이철, 제정구, 이부영, 김부겸 등 대다수 당주류 그룹은 한나라당에 합류한다.
자세한 내용은 통합민주당(1995년) 항목 참조. 2차 "꼬마민주당"으로 보기도 한다.
2.5.4. 국민신당(대한민국)[편집]
2.6. 국민의 정부 ~ 참여정부[편집]
2.6.1. 새천년민주당[편집]
2000년 새정치국민회의가 16대 총선에 대비해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변경하며 재창당.
이후 새천년민주당 내 개혁파들이 열린우리당을 만들어 나가버린 탓에 17대 총선에서 대패한다. 덕분에 2005년 당의 로고와 당명을 민주당(2005년)으로 갈아 우리가 정통 민주당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 밖의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2.6.2. 개혁국민정당[편집]
2.6.3. 열린우리당[편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분열되면서 정치개혁과 대통령 수호를 내세우며 창당된 정당. 항목 참조.
2.6.4. 민주당(2005년)[편집]
새천년민주당이 이미지 쇄신을 위해 당명을 변경한 것.
2.6.5. 중도개혁통합신당[편집]
2.6.6. 중도통합민주당[편집]
민주당(2005년)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이 합당해 창당된 정당. 하지만 2달만에 김한길계의 탈당으로 민주당으로 복구한다.
2.6.7. 대통합민주신당[편집]
열린우리당이 또 탈당쇼, 이른바 제2차 탈당쇼를 벌여 만들어진 정당. 2007년 8월 5일 창당.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보름만 공존하고 다시 대통합민주신당에 열린우리당이 흡수 합당되었다.[37][38] 결국 당원의 구성이나 형태가 열린우리당의 후계라고 할 수 있는 위치다.
이 정당은 신한국당(2년)보다도 가장 단명한 여당(6개월)[39]으로 끝났다. 17대 대선에서 예상된 참패를 한 이후 1년 만에 민주당과 통합을 선언, 폐당된다.
그런데 이 연속 탈당쇼로 인해 초대 한국 민주당의 계파가 부분적으로 2008년 통합민주당에 들어갔다. 족보상 한국 민주당의 계파를 이어받으려고 벌인 일이란 설이 있을 정도로 기이한 연속된 탈당쇼라고 한다.(꼬마 민주당건은 경우가 다르니 논외)
2.7. 이명박 정부 ~ 박근혜 정부[편집]
2.7.1. 민주당(2008년)[편집]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2005년)이 합당한 정당. 18대 총선은 "통합민주당"이란 이름으로 치렀다. 항목 참조.
2.7.2. 국민참여당[편집]
2.7.3. 시민통합당[편집]
2.7.4. 민주통합당[편집]
2.7.5. 민주당(2013년)[편집]
18대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이 당명을 개정한 정당. 항목 참조.
2.7.6. 새정치민주연합[편집]
민주당과 안철수의 새정치연합이 합쳐져 2014년 3월 26일에 창당한 정당이다. 국민공모를 통해 정해진 명칭은 '새정치국민연합'이었지만 새정치국민의당이 먼저 창당했으므로 선관위로부터 '유사당명을 사용할 수 없다'는 답을 받았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결정했다. 당초 안철수 측은 '민주'라는 명칭을 빼기를 원했다고 한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해 여당인 새누리당이 불리할 것으로 전망된 지방선거에서 그저 그런 성적표를 받았고, 이후 치뤄진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해서 당이 운영되다가 전임 대선후보인 문재인이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2015년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전패했고, 문재인을 필두로 하는 친노 주류, 박원순, 우상호등의 시민단체, 민주화운동계와 안철수와 김한길, 박지원 등 구 민주계를 필두로 하는 비노계 비주류 간의 갈등이 커졌다.
결국, 주류와 비주류들의 갈등은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으로 이어졌다. 여러 비주류들이 독자적 세력화를 꾀했고, 안철수-김한길계의 국민의당, 천정배계의 국민회의, 박주선계의 통합신당, 김민석계의 민주당(2014년) 등으로 갈라졌다.
안철수가 탈당했기 때문에 새정치연합에서 넘어온 "새정치"라는 이름을 계속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뿐더러, 이름이 길다고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안 전 대표 탈당 이전부터) 줄곧 있어왔으므로 잔류파들은 2015년 12월, 당명 개정에 착수했다. 그리고 같은 달 28일, 당무위원회 의결을 거쳐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개정했다.
이후 제20대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당계 정당은 크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재편된다.
2.7.7. 민주당(2014년)[편집]
2.7.8. 국민회의(2016년)[편집]
- 대표:
- 나상기·천정배 (2016년 1월 31일 ~ 2016년 2월 2일)
- 나상기 (2016년 2월 2일 ~ 2016년 2월 23일)
2.7.9. 국민의당(2016년)[편집]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 과정에서 새정연의 비주류던 안철수-김한길계를 주축으로 2016년 2월 2일 창당한 자유주의와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한 정당이다. 2016년 3월 16일, 탈당한 비주류들을 모아 19대 국회에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였으며 크게는 안철수계와 지역기반을 호남으로 하는 계파들[40]이 양대축을 형성하였다. 이념적 성향은 더불어민주당과 가까운 중도이다.# 합리적 개혁주의를 내세우고 있으며 성찰적 진보와 합리적 보수를 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8석을 확보하며 20년 만에 양당체제가 깨지고, 국민의당이 원내3당으로 자리 잡았다. 국민의당은 논란이 약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으로 분류되었는데, 그 이유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당원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당에서도 평화민주당 이후 새천년민주당까지 민주당계 정당의 주 이념이었던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하였기 때문이다.
2016년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에서 국민의당은 제 2야당으로서의 정치력을 보여줬으나, 19대 대선의 참패[41]이후 대표가 된 안철수[42]는 2017년 말엽, 예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정에서 생겨난 보수 정당인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추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합당과정에 극렬히 반대한 이른바 통합 반대파가 민주평화당으로 분당하고, 일부는 합당과정에 반발해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가는등의 혼란스러운 과정끝에, 2018년 2월 13일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으로, 바른미래당으로 신설합당하며 소멸되었다.[43]
2.8. 문재인 정부[편집]
2.8.1. 민주평화당[편집]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에서 이어질 보수 통합을 저지하고 국민의당의 중도개혁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한다라는 목적으로 국민의당 내 통합 반대파가 만든 정당. 당명 확정 이전 가칭은 개혁신당이었으며 정식 당명은 국민 공모를 통해 민주평화당으로 확정되었다. 이전에 국민의당에서도 표방하였던 자유주의와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한 정당이다. 동교동계 등이 주류를 이루는 정당답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민주당에서 모티브를 삼은 이름이다. 박지원, 유성엽의원을 필두로 한 호남의 동교동계 출신 보수 인사들이 신생 제 3정당의 창당을 둘러싸고 정동영 대표 등 당권파와 충돌 끝에 탈당, 대안신당을 차리며 한 때 의석이 정의당보다 적은 4석까지 줄기도 하였다. 2020년 2월 중순,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가 추진한 바른미래당, 대안신당, 민주평화당의 3당 합당의 결과로 2020년 2월 24일, 민생당으로 합당하게 되었다.
2.8.2. 바른미래당[편집]
대한민국의 중도보수 정당으로, 제2원내야당이었다.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으로 생긴 정당으로 뿌리가 다른 두 세력이 융합하는 형태라 세력이 복잡한 것이 특징이다. 스스로는 탈이념, 탈지역을 추구한다고 말하였지만 중도주의에서 보수주의세력을 포용하려는 정당이니 만큼 당외에서는 중도보수정당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유승민계 및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이 탈당하여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해 나갔다. 남은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범여권 4+1 협의체에 참여했다. 이후 안철수계 역시 바른미래당을 이탈하여 국민의당을 다시 창당하게 되었다. 남은 손학규계와 당권파는 구 국민의당 탈당파들이 설립한 민주당계 정당인 대안신당, 민주평화당 등과 함께 민주당계 정당인 민생당으로 신설합당했다.
2.8.3. 대안신당[편집]
당권파인 정동영계와 갈등을 겪은 비당권파들이 2019년 7월 16일에 대안정치연대를 만드는 것이 시초였다. 이후 대안정치연대 소속 의원들은 민주평화당을 탈당했고, 2020년 1월 12일에 대안신당으로 창당하였다. 2020년 2월 중순, 바른미래당의 손학규 대표가 추진한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3당 합당의 결과물로 그 달 24일, 민생당으로 합당하게 되었다.
- 대표:
- 최경환 (대표, 2020년 1월 12일 ~ 2020년 2월 24일)
2.8.4. 더불어시민당[편집]
더불어민주당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대표 위성정당. 플랫폼 정당 형태로 진보정당 기본소득당과 제3지대 정당 시대전환도 참여했다. 2020년 5월 18일 더불어민주당에 흡수합당되었다.
- 대표:
- 우희종 (대표, 2020년 4월 16일 ~ 2020년 5월 18일)
2.8.5. 열린민주당[편집]
2.9. 현재[편집]
2.9.1. 원내[편집]
2.9.1.1. 더불어민주당[편집]
새정치민주연합이 2015년 12월 28일 당명을 변경한 뒤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정당이다. 약칭은 처음에는 더민주로 하다가, 2016년 9월 원외 민주당을 흡수한 뒤로는 주로 민주당을 쓰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들이 떠난 뒤에 당명을 개정했기 때문에 새정치민주연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초기에는 여당인 새누리당의 강세와 비주류등의 탈당으로 흉흉한 당 내외적인 상황으로 인해 당에 위기감이 조성되었다. 그리하여 당에서는 인재 영입 등 나름대로 쇄신작업을 진행하였지만, 야권의 분열, 전통적인 텃밭 호남권에서의 당 지지율 저조, 당시 대통령의 지지강세로 인해 20대 총선에서 패배가 예상됐었다.
그러나 대반전을 이뤄내며 전국 정당으로 도약하게 된다. 수도권 압승과 영남권 약진이 선거 승리에 주효했다. 총 123석을 확보하여 제20대 국회 원내 제1당으로 등극[46]하여 정세균을 국회의장으로 선출시키기도 했다. 다만, 국민의당에게 민주당계의 텃밭이라고 불리는 호남권 대부분의 의석을 내줘야 했다. 비록 전통적인 텃밭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이것이 되려 호남 지역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에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호남 의석 대부분을 다른 당에 내주고도 수도권에서의 압승과 영남권에서의 약진 등으로 원내 제1당으로 등극했기에 더 이상 호남에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당이 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라는 과정을 겪으면서 범진보 지지층에서의 주류 정당화에 성공했고, 탄핵중도층과 중도 보수층 일부도 지지층으로 끌어오는데에 성공하였다. 그 덕분에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압승하면서 9년만에 다시 집권 여당의 자리를 되찾고 정권 교체를 이뤄냈다. 선거 기간 정당 지지율이 고공 행진을 했고, 탄핵을 기회로 전국에서의 지지 기반 구축에 힘쓰면서, 정권 교체 이후에도 민주당계 역사상 가장 높은 지지율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정권 중후반기에 치러지는 2020년 21대 총선은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이 있는 선거이기에 특유의 정권심판론 발동으로 더불어민주당이 쉽지 않을거란 예측이 있었으나, 이 예측을 깨고 헌정 사상 초유의 '단독 180석'이란 압도적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등 전국단위 선거 4연승이라는 헌정사상 최초의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에 내부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수권 정당화 및 전국 정당화에 성공했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하지만,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서울,부산 참패를 겪으며 20대 대선을 일년남짓 남겨두고 위기를 맞고있다.
- 대표:
- 문재인 (대표, 2015년 12월 28일 ~ 2016년 1월 27일)
-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년 1월 27일 ~ 2016년 8월 27일)
- 추미애 (대표, 2016년 8월 27일 ~ 2018년 8월 25일)
- 이해찬 (대표, 2018년 8월 25일 ~ 2020년 8월 29일)
- 이낙연 (대표, 2020년 8월 29일 ~ 2021년 3월 9일)
- 김태년 (대표 직무대행, 2021년 3월 10일 ~ 2021년 4월 8일)
- 도종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21년 4월 8일 ~ 2021년 4월 16일)
- 윤호중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21년 4월 16일 ~ 2021년 5월 2일)
- 송영길 (대표, 2021년 5월 2일 ~ 현재)
2.9.2. 원외[편집]
2.9.2.1. 민생당[편집]
3. 소속 정치인[편집]
3.1. 대통령[편집]
번 | 이름 | 대 | 임기 | 선출 방법 | 정당 | |
취임일 | 퇴임일 | |||||
2 | 윤보선 (1897 ~ 1990) | 4 | 1960년 8월 13일 | 1962년 3월 24일 | 1960년 대선 간선 82.2% | 민주당 (1960) 무소속 (1960 ~ 62) |
8 | 김대중 (1924 ~ 2009) | 15 | 1998년 2월 25일 | 2003년 2월 24일 | 1997년 대선 직선 40.3% | |
9 | 노무현 (1946 ~ 2009) | 16 | 2003년 2월 25일 | 2004년 3월 12일 (직무정지) | 2002년 대선 직선 48.9% | 새천년민주당 (2003) 무소속 (2003 ~ 04) |
고건 국무총리가 직무정지 기간동안 권한대행 (2004년 3월 12일 ~ 2004년 5월 14일) | ||||||
2004년 5월 14일 | 2008년 2월 24일 | 탄핵소추 기각 | 무소속 (2004) 열린우리당 (2004 ~ 07) 무소속 (2007 ~ 08) | |||
12 | 문재인 (1953 ~ ) | 19 | 2017년 5월 10일 | (현직) | 2017년 대선 직선 41.1% |
3.2. 부통령[편집]
번 | 이름 | 대 | 임기 | 선출 방법 | 정당 | |
취임일 | 퇴임일 | |||||
2 | 김성수 (1891 ~ 1955) | 2 | 1951년 5월 17일 | 1952년 5월 29일 | 1951년 부통령 선거 간선 51.3% | |
4 | 장면 (1899 ~ 1966) | 4 | 1956년 5월 15일 | 1960년 4월 25일 | 1956년 부통령 선거 직선 46.4% |
3.3. 내각제 총리[편집]
번 | 이름 | 대 | 임기 | 선출 방법 | 정당 | |
취임일 | 퇴임일 | |||||
4 | 장면 (1899 ~ 1966) | 7 | 1960년 8월 19일 | 1961년 5월 18일 | 장면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안 간선 52.0% |
3.4. 국회의원[편집]
3.4.1. 13대 국회[편집]
3.4.2. 14대 국회[편집]
|
3.4.3. 15대 국회[편집]
|
|
3.4.4. 16대 국회[편집]
|
3.4.5. 17대 국회[편집]
|
|
3.4.6. 18대 국회[편집]
|
|
3.4.7. 19대 국회[편집]
|
3.4.8. 20대 국회[편집]
|
|
|
|
|
|
|
|
3.4.9. 21대 국회[편집]
3.5. 광역자치단체장[편집]
3.5.1. 서울특별시장[편집]
3.5.2. 부산광역시장[편집]
3.5.3. 인천광역시장[편집]
3.5.4. 광주광역시장[편집]
3.5.5. 대전광역시장[편집]
3.5.6. 울산광역시장[편집]
3.5.7. 세종특별자치시장[편집]
3.5.8. 경기도지사[편집]
3.5.9. 강원도지사[편집]
3.5.10. 충청북도지사[편집]
3.5.11. 충청남도지사[편집]
3.5.12. 전라북도지사[편집]
3.5.13. 전라남도지사[편집]
대수 | 이름 | 임기 | 당적[65] |
민영남 (閔泳南) | 1960년 12월 31일 ~ 1961년 05월 23일 | ||
허경만 (許京萬) | 1995년 07월 01일 ~ 1998년 06월 30일 | ||
1998년 07월 01일 ~ 2002년 06월 30일 | |||
박태영 (朴泰榮) | 2002년 07월 01일 ~ 2004년 04월 29일 | ||
박준영 (朴晙瑩) | 2004년 06월 06일 ~ 2006년 06월 30일 | ||
2006년 07월 01일 ~ 2010년 06월 30일 | |||
2010년 07월 01일 ~ 2014년 06월 30일 | |||
이낙연 (李洛淵) | 2014년 07월 01일 ~ 2017년 05월 12일 | ||
김영록 (金瑛錄) | 2018년 07월 01일 ~ 현재 |
3.5.14. 경상북도지사[편집]
3.5.15. 경상남도지사[편집]
3.5.16. 제주특별자치도지사[편집]
3.6. 당대표[편집]
4. 역대 선거결과[편집]
4.1. 대통령 선거[편집]
후보자 | 연도 | 대수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결과 |
764,715 | 10.9% | 3위 | ||||
유세기간 중 사망[73] | ||||||
29 | 11.5% | 2위 | ||||
3 | 1.2% | 3위 | ||||
3 | 1.2% | 3위 | ||||
2 | 0.8% | 5위 | ||||
2 | 0.8% | 5위 | ||||
1 | 0.4% | 7위 | ||||
1 | 0.4% | 7위 | ||||
1 | 0.4% | 7위 | ||||
1 | 0.4% | 7위 | ||||
1 | 0.4% | 7위 | ||||
1 | 0.4% | 7위 | ||||
208표 | 82.2% | 당선 | ||||
4,546,614표 | 45.1% | 2위 | ||||
4,526,541표 | 40.9% | 2위 | ||||
248,369표 | 2.2% | 4위 | ||||
5,395,900표 | 45.2% | 2위 | ||||
404 | 7.7% | 2위 | ||||
26 | 0.5% | 4위 | ||||
6,337,581표 | 28.0% | 2위 | ||||
6,113,375표 | 27.0% | 3위 | ||||
8,041,284표 | 33.8% | 2위 | ||||
10,326,275표 | 40.3% | 당선 | ||||
12,014,277표 | 48.9% | 당선 | ||||
6,174,681표 | 26.1% | 2위 | ||||
1,375,498표 | 5.8% | 4위 | ||||
160,708표 | 0.7% | 6위 | ||||
15,380표 | 0.06% | 9위 | ||||
14,692,632표 | 48.0% | 2위 | ||||
13,423,800표 | 41.1% | 당선 | ||||
6,998,342표 | 21.4% | 3위 | ||||
20대 |
4.2. 부통령 선거[편집]
4.3. 국회의원 선거[편집]
연도 | 국회 | 정당 | 전체 의석수 | 지역구 | 비례 | 결과 |
29 / 200 | 29 / 200 | -[77] | 원내 2당 | |||
24 / 210 | 24 / 210 | 원내 1당 | ||||
3대 | 15 / 203 | 15 / 203 | 원내 2당 | |||
4대 | 1 / 233 | 1 / 233 | 원내 3당 | |||
80 / 233 | 80 / 233 | 원내 2당 | ||||
초대 참의원 | 31 / 58 | 31 / 58 | 원내 1당 | |||
5대 | 175 / 233 | 175 / 233 | 원내 1당 | |||
1 / 233 | 1 / 233 | 원내 5당 | ||||
6대 | 40 / 175 | 26 / 131 | 14 / 44 (20.1%) | 원내 2당 | ||
14 / 175 | 9 / 131 | 5 / 44 (13.5%) | 원내 3당 | |||
9 / 175 | 6 / 131 | 3 / 44 (8.1%) | 원내 4당 | |||
2 / 175 | 2 / 131 | 0 / 44 (8.8%) | 원내 4당 | |||
7대 | 45 / 175 | 28 / 131 | 17 / 44 (32.7%) | 원내 2당 | ||
8대 | 89 / 204 | 65 / 153 | 24 / 51 (44.4%) | 원내 2당 | ||
1 / 204 | 1 / 153 | 0 / 51 (4.1%) | 원내 3당 | |||
1 / 204 | 1 / 153 | 0 / 51 (1.4%) | 원내 4당 | |||
9대 | 52 / 219 | 52 / 146 | -[78] | 원내 2당 | ||
2 / 219 | 2 / 146 | 원내 2당 | ||||
10대 | 61 / 231 | 61 / 154 | 원내 2당 | |||
3 / 231 | 3 / 154 | 원내 3당 | ||||
2 / 276 | 2 / 184 | 0 / 92 (6.7%) | 원내 4당 | |||
81 / 276 | 57 / 184 | 24 / 92 (21.6%) | 원내 2당 | |||
35 / 276 | 26 / 184 | 9 / 92 (19.7%) | 원내 3당 | |||
67 / 276 | 50 / 184 | 17 / 92 (29.3%) | 원내 2당 | |||
1 / 276 | 1 / 184 | 0 / 92 (0.6%) | 원내 6당 | |||
70 / 299 | 54 / 244 | 16 / 75 (19.3%) | 원내 2당 | |||
59 / 299 | 46 / 244 | 13 / 75 (23.8%) | 원내 3당 | |||
1 / 299 | 1 / 244 | 0 / 75 (1.3%) | 원내 5당 | |||
97 / 299 | 75 / 237 | 22 / 62 (29.2%) | 원내 2당 | |||
79 / 299 | 66 / 253 | 13 / 46 (25.3%) | 원내 2당 | |||
15 / 299 | 9 / 253 | 6 / 46 (11.2%) | 원내 4당 | |||
115 / 273 | 96 / 227 | 19 / 46 (35.9%) | 원내 2당 | |||
9 / 299 | 5 / 243 | 4 / 56 (7.1%) | 원내 4당 | |||
152 / 299 | 129 / 243 | 23 / 56 (38.3%) | 원내 1당 | |||
81 / 299 | 66 / 245 | 15 / 54 (25.2%) | 원내 2당 | |||
3 / 299 | 1 / 245 | 2 / 54 (3.8%) | 원내 6당 | |||
127 / 300 | 106 / 246 | 21 / 54 (36.5%) | 원내 2당 | |||
38 / 300 | 25 / 253 | 13 / 47 (26.7%) | 원내 3당 | |||
123 / 300 | 110 / 253 | 13 / 47 (25.5%) | 원내 1당 | |||
163 / 300 | 163 / 253 | 0 / 47 (후보 없음) | 원내 1당[79] | |||
17 / 300 | 0 / 253 | 17 / 47 (33.35%) | 원내 4당[80] | |||
3 / 300 | 0 / 253 | 3 / 47 (5.42%) | 원내 7당 | |||
0 / 300 | 0 / 253 | 0 / 47 (2.71%) | 원외 정당 |
4.4. 지방선거[편집]
연도 | 횟수 | 정당 | 광역자치단체의회의원 | 기초자치단체의회의원 | ||
-[81] | 165 / 866 | -[82] | ||||
21 / 866 | ||||||
4 / 15 | 84 / 230 | 353 / 875 | -[83] | |||
6 / 16 | 84 / 232 | 271 / 616 | ||||
4 / 16 | 44 / 232 | 143 / 682 | ||||
2 / 16 | 20 / 230 | 80 / 733 | 276 / 2888 | |||
1 / 16 | 19 / 230 | 52 / 733 | 630 / 2888 | |||
7 / 16 | 92 / 228 | 360 / 761 | 1025 / 2888 | |||
0 / 16 | 0 / 228 | 5 / 761 | 24 / 2888 | |||
0 / 16 | 0 / 228 | 0 / 761 | 1 / 2888 | |||
9 / 17 | 80 / 226 | 349 / 789 | 1157 / 2898 | |||
14 / 17 | 151 / 226 | 652 / 824 | 1639 / 2927 | |||
0 / 17 | 5 / 226 | 3 / 824 | 49 / 2927 | |||
0 / 17 | 0 / 226 | 5 / 824 | 21 / 2927 |
5. 전당대회[편집]
자세한 내용은 민주당계 정당/역대 전당대회 문서
를
참고하십시오.6. 진보정당과의 관계[편집]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진보적 민주당계 정당이 진보정당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 측에게 해당 측 서술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본 단락에서 말하는 '진보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은, 정당의 이념이 아닌 대한민국 정치사에서의 계보에 따라 구분해 지칭한다. |
"진보적인 민주당계 정당을 진보정당의 일부로 봐야 하는가?"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정당을 이념으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가, 아니면 계보로 나누는 것이 합리적인가?"라는 문제의 해답을 찾는 것과도 같다.
민주당계 정당 역시 성향은 진보정당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당의 분류를 단순히 진보-보수의 성향만으로 구분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당의 계보를 극단적으로 단순히 해야만 가능하다. 민주당계 정당은 창당 이래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이념 변화와 분당 등의 사건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일부 민주당계 정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나 보수의 색채를 가진 적도 많이 있었다. 게다가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용어는 각 메이저 언론사[85]나 논문, 학술 목적의 연구에서도 사용될 만큼[86]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계파는 진보정당과는 별도의 계파로 공인되어 있다. 게다가 민주당계 정당 본인들 역시 '진보정당'이나 '보수정당'이 아닌, '민주당계 정당' 그 자체를 자신들의 이념 정체성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계 정당의 경우, 자신들의 현 입장이나 정치적 사건 등으로 인해 중도보수 쪽으로 기울어진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통합진보당 해산 당시 민주당 및 새정치민주연합은 통합진보당이 해산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던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의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등 민심이 바닥으로 떨어졌던 진보정당과 거리를 두기 위해 우클릭을 하기도 했다.
다만, 21세기 들어 대체적으로는 민주당계 정당도 진보적인 성향이 강해지고 있으며[87],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진보 또는 좌파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진보 성향이지만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은 입장차이가 상당히 크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현존하는 진보정당들은 기존의 보수정당-민주당계 정당의 양강 구도를 깨려는 의지가 강하다. 그래서 민주당계 정당에서는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과의 후보 단일화 문제를 두고 '진보 성향의 표를 모으느냐 아니면 진보 성향의 표를 포기하고 중도보수 외연을 넓히느냐'라는 이슈 때문에 당 내부에서도 늘 시끄러웠다. 그래서 민주당계 정당 일부에서는 '진보정당과 연정을 하느니 차라리 보수정당과 연정하는 것이 속 편하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진보정당의 시각에서 봐도 민주당계 정당이 추구하는 사회자유주의가 자신들의 마음에 들 리가 없다. 특히 진보정당의 주요한 지분을 차지하는 NL 계열의 입장에서 봤을 때 민주당계 정당과 노선을 함께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민주당계 정당이 점차 진보적으로 되더라도, 매일경제신문 정치부, MBN 정치부 기자 20명이 기사를 작성하는 레이더P의 조사에 따르면(법안 표결로 본 국회의원 300명의 이념성향), 정의당이 진보 쪽으로 -0.83만큼 치우쳐 있을 때(-1~1범위 내에서) 더불어민주당은 -0.13만큼만 진보 쪽으로 가 있는 등, 같은 진보적 노선이라 하더라도 민주당계 정당은 다른 진보정당들만큼 강경하게 좌파 쪽으로 이행하고 있지는 않다. 국민의당은 오히려 보수 쪽으로 0.15만큼 가 있다. 민주당계 정당은 이종찬, 이인제, 손학규, 오유방, 김종인, 진영 같이 보수정당 출신의 인물이 넘어오기도 하고[88] 민주당계 자생적인 인물들 중에서도 박영선 같은 보수적 인사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 중도~중도보수 쪽으로 외연을 확장하기도 하였다.
다만, 민주당계와 진보계 정당이라는 두 당사자가 이러한 입장 차이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바깥에 있는 강경 보수나 극우 세력들은 두 계열의 정당들을 싸잡아 좌파라고 하거나 빨갱이, 종북주의자로 매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19대 대선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의 발언이다.(한국일보의 보도, SBS의 보도).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 이후 약 10년 동안의 보수정권 시대가 개막하고 한나라당 - 새누리당 정권 동안 보수적인 정책이 이어지면서, 이에 반대하는 야당이었던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들은 공동의 적에 맞서서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18대 대선에서 이정희 당시 통합진보당 후보가 대선 후보 토론회에 나와 "자신은 대통령이 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단지 박근혜를 떨어트리기 위해 나왔을 뿐이다"라는 식으로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사이에 사실상의 '반 박근혜' 공동전선이 형성된 적도 있고, 2016년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총력전 태세로 필리버스터에 참여하기도 했다.[89],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정부의 인선 및 정책 등에 가장 협조적으로 나오는 야당이 정의당이기도 한 만큼[90]현재는 민주당계 정당과 진보정당이 상당히 친밀해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 10차 개헌을 가지고 진보정당이 보수정당들과 같이 국회중심의 개헌 스탠스를 취함에 따라 갈등이 생긴 상황.
민주당계 정당과 그래도 연대라도 하는 진보정당이 있는가하면, 민주당계정당마저 진보코스프레해서 자신들의 지지자나 빼먹는 원수같은 정당으로 보는 진보정당도 있다.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사상이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그들의 이념에 더욱 가깝더라도 진보정당 계열의 세력이 미약한 것을 감안하여 투표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에 표를 행사하는 전략적 투표를 보여주기도 한다.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진보정당이 전국 모든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못하는 만큼, 선거에서 진보정당 지지자들이 지역구에서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출마한 후보에 투표하고, 비례대표 투표는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반면에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의 강성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진보정당을 중도층들이 싫어하는 비현실적인 소리나 하는 바보들 취급하고 보수 정당을 막기 위해 단일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편이다.
7. 관련 문서[편집]
8. 둘러보기[편집]
|
|
문재인 정부 ~ 현재 (2017 ~ 현재)
|
[A] 1.1 1.2 한민당 등[3] 신민당, 통민당, 평민당 등[4] 새정치국민회의 등[5] 새천년민주당, 국민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6] 열린우리당, 민주통합당, 새정치민주연합 등[7] 새천년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8] 더불어민주당 172석[9] 이는 보수 정당 연혁이 과거 독재 계열 정당부터 이어져 오지만, 실질적 뿌리는 1990년 3당합당으로 창당한 민주자유당으로 보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더 정확히는 민주당계 정당이었던 통합민주당(1995년)이 신한국당과 합당해 1997년 보수 정당 한나라당이 되는 분기점이 있지만, 통합민주당의 규모가 1996년 15대 총선이 끝난 당시 이미 새정치국민회의에 밀려 당의 존속 자체가 위태했던 지경이었으므로 사실상 신한국당에 흡수된 셈이 되었다.[10] 사실 알고 보면 한국의 보수 정당들도 민주라는 용어를 꽤 사용했다.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자유민주연합이 있다.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등 독특한 이름들은 근래에 들어서 사용한 이름들이다.[11] 이 정당들은 보수정당들이다. 대한민국의 보수정당 참고. 다만 민주자유당과 민주국민당의 경우 각각 민주당계 정당인 통일민주당과 통합민주당의 후신이기도 하므로 민주당계 정당과 완전히 관련없는 것은 아니다.[12] 참고로 민노당은 진보정당이다.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문서 참고.[13] 사실 1997년부터 2001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민주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면서 총리직과 상당수의 장관직을 배출했다. 하지만 사실 자민련은 군부 출신인 김종필 전 총리 계통으로 이념상 정통적 정치성향에서 민주당과 거리가 멀었고, 결국엔 갈라섰다.[14] 열린민주당, 미래한국당 등 누락되어있는 부분도 있으니 주의.[15] 동교동계가 자주 사용하며, 호남을 중심으로 하는 당이 많았다.[16]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래서 친노에서 즐겨 사용한다. 과거에는 제13대 대통령 선거 직전에 김대중과 동교동계가 창당했던 평화민주당도 노란색을 썼다.[17] 과거 민주정의당을 시작으로 한나라당까지 보수정당이 오랫동안 상징색으로 사용하던 색깔이라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으며,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면서 미국 공화당처럼 상징색을 빨간색으로 바꾸었기에 파란색이 비어 있는 상황이었다.[18] 국민의당이 초록색을 선택했을 때, 호남을 타겟팅했다고 해석한 이들도 있었다. 왜냐면 새정치국민회의의 색깔인 초록색을 사용하여 김대중 정신과 호남정신을 당에 결부지으려는 의도로도 읽혔기 때문이다.[19] 제12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지역구 의석수 1위 정당이 전국구 의석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희한한 규정이 있었다. 이 당시 정치 환경상 지역구 의석수 1위 정당은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이었다.[20] 2021년 재보궐선거,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 2022년 6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3년 재보궐선거 등[21] 이 때문에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 60주년 행사를 하기도 했다.[22] 다만 이승만과 박정희 시절에는 민주당 계열의 야당들도 반공을 띈 보수 성향이 강했다.[23] 실제로 현재 국민의힘의 계파 중에 가장 많은 원내의원을 보유한 계파인 친윤을 제외하고는, 친유의 수장 유승민, 친홍의 수장 홍준표는 동교동계 또는 상도동계가 절대 다수이다. 이준석도 사실 박근혜 키즈로 이미지가 박혀서 그렇지, 비박계에다 친유로 분류되고 있다.[24] 그런데 사실 양김은 대통령 당선 뒤에도 딱히 노선은 반공 보수에서 변하지 않았다. 문민정부 시기에 터졌던 연세대 사태를 겪은 김영삼은 이후에 시위를 막은 적도 있고, 김대중은 대통령 당선 이래 탈권위주의를 표방했었으나, 연세대 사태 당시 암살위기에 몰려서 그런지,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지정하는 등 아예 씨를 말리러 다녔다. 탄압 수위가 덜 했다는 참여정부 조차도 한총련 탄압은 멈추지 않았으며, 경찰특공대까지 동원했었다. 따라서, 문민정부-국민의 정부-참여정부 조차도 결코 진보라고 할 수는 없다.[25] 그러한 이유로 학계에서는 민주당계의 뿌리를 사실상 새정치국민회의로 보기도 한다.[26] 물론 이 시절에도 진보 성향의 언론이나 지지자들에겐 '좌회전 깜빡이 넣고 우회전한다'고 욕 먹긴 했다.[27] 보수적 자유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사회자유주의)의 차이는 자유주의 항목 참고.[28] 다만, 미국 민주당처럼 빅텐트 정당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더 왼쪽에 자리 잡은 진보정당들이 미약하나마 제3세력으로 그동안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 말도 약간 어폐가 있는 게 미국도 제3세력은 있으며 한 동안 세를 떨쳤던 적도 있었기는 했다. 정당의 세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데 실패한데다가 2000년대 이후로는 눈에 띄는 세력이 없어서 그렇지. 다만, 한국의 제3세력으로 꼽혔던 통합진보당은 출신이 출신인지라 종북성향을 끝까지 버리지 못 하다가 대법원 심판에 의해 해체되었고, 그 뒤로는 미국의 민주당 내 진보인사들 보다도 안습일로를 걷고 있다. 버디 샌더스가 상당한 인기를 얻긴 하지만, 한국에는 그러한 이가 없는 것처럼. 국민의당이 한때 그러했으나, 대안이 되지 못 하고 쪼그라든 것도 있고.[29] 물론 사안에 따라 달랐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 후반에 추진했던 THAAD 배치는 초기엔 국민의당이 배치 반대를 당론으로 취한 반면, 오히려 더민주는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로 중립적 태도를 보였었다.[30] 미국 민주당도 잭슨시절에는 개혁적인 성향이 강했다가 노예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을 때 남부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보수적으로 변모해오다가 우드로 윌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절을 거쳐서 진보적으로 변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왔다.[31] 나중에 부활한 대한국민당(1949년)과는 전혀 다른 정당이다.[32] 대표적인 인물이 김영삼 전 대통령.[33] 의원정수의 75.1%에 해당하는 175명이 당선되었다.[34] 초대 대법원장이자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의 조부.[35] 골수 진산계였으나 1972년의 제2차 진산 사태 때 진산과 결별하였다.[36] 직접적인 뿌리는 아닌 게, 이 정당은 이후에 1990년대를 거치면서 신민주연합당→민주당→통합민주당으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DJ가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분당되었다. 후에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신설합당하여 한나라당이 되면서, 이 정당의 직계 후신은 국민의힘이다. 충공깽 다만 오늘날 민주당계의 정신적인 뿌리라고 할 수는 있는데, 당장 단절된 민주당계의 계보는 새정치국민회의부터 더불어민주당까지 이어지고 있다.[37]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였던 김한길파(23명)가 07년 2월 탈당, 이후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원내 교섭단체)을 구성했다가, 4월 국민중심당 일파와 중도개혁통합신당 창당 후, 이인제를 받아들인 후 민주당과 함께 6월 말 합당하여 중도통합민주당을 만들었으나, 7월 말 김홍업 등이 탈당하고, 다시 8월 초에는 김한길파가 도로 탈당하면서 중도통합민주당은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그 직후, 즉 탈당 이틀 후인 8월 5일 열린우리당과 중도통합민주당의 탈당파, 손학규 세력 등이 결합한 것이 대통합민주신당이며 보름 후에 다시 열린우리당과 합당했다.[38] 다만 이들도 돌고돌아 결국 다시 모이게 될 걸 알고 이런 거다. 가만히 있는다고 뭐가 바뀔 상황이 아니었기에...[39] 사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공식 당적은 없었지만 경선 과정에는 명부가 넘어가면서 있다는 게 드러났다. 당적 신상 퍼가요[40] 주로 동교동계.[41]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인 홍준표 후보가 보수파 일부의 결집에 성공하며 2위를 차지하였다.[42] 안철수는 19대 대선 당시 국민의당의 대선후보였다.[43] 바른미래당은 보수정당 계열에도 속한다.[44] 2018년 6월 14일 사퇴[45] 2020년 4월 16일 사임[46] 이후 새누리당 탈당파들의 복당으로 2당이 되었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보수 정당의 분당으로 다시 원내 1당이 됐다.[47] 3월 24일 사퇴[48] 4월 20일 사퇴[49] 선거당시 당적[50] 당시 야권의 단일후보였다.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후보를 꺾었고 시장 취임 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한다.[51] 선거당시 당적[52] 선거당시 당적[53] 선거당시 당적[54] 선거당시 당적[55] 선거당시 당적[56] 선거당시 당적[57] 선거당시 당적[58] 선거당시 당적[59]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60] 선거당시 당적[61]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62] 선거당시 당적[63]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 변경. 사퇴서 제출 시점에는 제명 절차 중이었다.[64] 선거당시 당적[65] 선거당시 당적[66] 선거당시 당적[67] 선거당시 당적[68] 야권 단일 후보로 무소속 당선 후 민주통합당 입당하였음[69] 선거당시 당적[70] 선거를 열흘 남기고 전주로 가기 위해 전라선 열차를 타던 중 호남선 구간인 함열역 부근에서 뇌일혈로 졸도했고 이리역에 급히 내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71] 전체 투표수의 20.5%인 1,856,818표의 무효표를 이승만을 반대하지만 조봉암을 지지하지 않는 민주당 지지층의 표라는 해석이 있다.[72] 3.15 부정선거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73] 후보등록을 하고 나서 위병이 심해져서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으로 가서 복부수술을 받았는데 수술후유증으로 인한 심장발병증으로 사망했다. 이쪽은 상태가 회복되다가 일어난 상태라 암살설이 퍼졌다.[74] 간선제로 실시되어 민·참의원 합동투표로 이뤄졌다.[75] 대통령 선거인단으로 뽑는 간선제였다.[76] 당시에는 국회에서 간선제로 실시했는데, 여기의 수치는 결선투표의 수치이다. 1, 2차 선거는 제2대 부통령 선거 참고바람.[77] 비례대표제 없음[78] 비례대표제 없음[79] 더불어시민당과 합산하여 180석[80] 더불어민주당의 연합정당[81] 광역자치단체장와 기초자치단체장은 그 당시 임명직이다.[82] 기초의원직에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지 않아 정당 소속이 없었다[83] 기초자치단체의회 없음[84] 보수정당으로도 분류[85] 조선일보, 연합뉴스, 한국일보, |중앙일보 등의 언론에서 '민주당계' 또는 '민주당계 정당'이라는 하나의 정당 분류나 계보를 사용하고 있다.[86] 한 사례로, 영남대학교 정치학과 김학노 교수가 21세기 대한민국의 통일 정책에 대해 분석한 논문(해당 논문, 링크 클릭 시 pdf 파일이 자동 다운로드되니 주의에서는 대한민국의 양대 정치 세력을 '보수계 정당'과 '민주당계 정당'으로 구분하기도 하였다.[87] 박윤희 ( Yun-hee Park ) , 김민수 ( Min-su Kim ) , 박원호 ( Won-ho Park ) , 강신구 ( Shin-goo Kang ) , 구본상 ( Bon Sang Koo ), 한국의회발전연구회, <의정연구> 49권0호 (2016), pp.117-157[88] 다만 현재는 진영, 박재호, 김부겸, 이시종, 조정식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다 탈당한 상태. 심지어 이 경우도 대부분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을 때 보수정당과 성향이 맞지 않아 합류했던 인사들이다. 보수정당에 1~2년 이하로 잠깐 머문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는 보수정당계 인사라 보기 어렵다.[89] 당시 국민의당은 일부 의원들이 개별적으로 필리버스터에 참여하기만 하였다.[90] 오히려 국민의당이 정의당보다 여당(더불어민주당)의 정책에 관해 반대가 심했다. 애초에 새정치민주연합이 당내 갈등으로 분열했던 것을 보면 이러한 국민의당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국민의당이 분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반 여당(더불어민주당) 기조는 국민의당을 계승한 양당에게 이어지는 형태를 보였다.[91] 반독재 투쟁 당시 동교동계와 함께 민주당계 정당의 양대 산맥이었다. 그러나 당수였던 김영삼 총재가 1990년 3당합당으로 인해 보수정당인 민주자유당으로 이동하면서 상도동계 다수 역시 보수 정당으로 이동한다. 반면 소장파 일부는 민주당계 정당으로 다시 이동하여 활동하였는데, 이 중엔 노무현 의원도 있었다. 다만 노무현 의원의 경우 YS가 발탁하긴 했으나, 상도동 직계는 아니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