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18, 2026

100점 만점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75세 심리사·종활 어드바이저의 노년

【年金月5万】「本当に貧乏した」100点満点を目指すから不幸…75歳女性 心理士・終活アドバイザーの年金リアル - YouTube


【年金月5万】「本当に貧乏した」100点満点を目指すから不幸…75歳女性 心理士・終活アドバイザーの年金リアル
年金リアルどきゅめんと
17,127 views  Sep 5, 2026  ✪ Members first on September 3, 2026  #老後資金 #年金生活 #ドキュメンタリ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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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金いくら?」「年金で生活できるの?」
誰もが不安に思う将来のこと、老後の暮らし、そして年金のリアル。

当チャンネル『年金リアルどきゅめんと』は、単に「年金額の数字」を開示することだけの年金インタビュー(年金トーク)ではありません。

一通の年金振込通知書の背景にあるのは、その人が歩んできた「かけがえのない人生のドラマ」です。
どのような仕事をし、どんな喜びや後悔があり、今どのような思いで日々を生きているのか…。
年金という切実な現実を切り口に、先輩たちの「知恵・価値観・生き様」に迫る街録ドキュメンタリー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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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정말 가난을 겪었다」 100점 만점을 노리니까 불행해… 75세 여성 심리사·종활 어드바이저의 연금 현실>의 인터뷰 요약과 평론입니다.

<요약>

  • 경제적 현실 및 거주 상황: 국민연금 수령액은 월 약 5만 엔에 불과하여 혼자 살고 있는 도쿄 방의 월세 9만 5천 엔조차 감당하기 턱없이 부족하다. 독립 심리사이자 인재 컨설턴트로서 월 약 일주일간 기업 교육이나 자문 일을 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메우고 있다.

  • 생애사와 간병의 무게: 43세 때 남편이 종격동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홀로 중학생 아들을 키워내기 위해 스쿨 카운슬러, 입시학원 강사 등으로 헌신적으로 일했다. 60세 이후에는 오카야마와 도쿄를 오가며 부모, 양부모, 시부모 등 성인 6명의 간병과 배웅을 도맡았고, 7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만의 시간을 찾았다.

  • 일상과 건강 관리: 여유 시간에는 사찰 방문, 화초 가꾸기, 수영장 운동을 하고, 치매 예방과 하체 건강을 위해 자원봉사 역사 가이드로 활동한다. 과거 조기 위암을 내시경으로 완치한 경험이 있으며, 전국 47개 도도부현 중 남은 2곳을 모두 방문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 종활(終活)과 인간관계 정리: 종활 어드바이저 자격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엔딩 노트를 작성해 보험, 통장, 연명치료 희망 여부 등을 정리하고 있다. 물건의 미련을 버리는 단샤리(断捨離)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범위를 좁히며 간소한 삶을 준비한다.

  • 삶에 대한 태도와 조언: 현재 행복도는 약 70점으로 평가하며, 100점 만점을 지향하기에 사람이 불행해진다고 말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타인이나 환경 핑계를 대지 말고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자신답게 살 것을 당부한다.

<평론>

이 인터뷰는 홀로 가장의 책임을 다하고 가족 6명의 마지막을 지켜낸 75세 여성의 생애사를 통해, 고령기 빈곤의 구조적 모순과 이를 돌파해 온 개인의 단단한 주체성을 선명히 보여준다. 대형 출판사와 기업 등에서 장기간 치열하게 일했음에도 계약직 중심의 불안정한 고용 형태로 인해 후생연금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월 5만 엔의 기초연금에 머물게 된 사연은, 비정규 노동과 여성 생애 노동에 불리한 연금 제도의 사각지대를 여실히 고발한다.

그러나 화자는 이러한 결핍과 구조적 한탄에 갇히지 않는다. 75세의 나이에도 자신의 전문 지식을 살려 1인 사업자로서 경제 활동을 영위하고, 신체와 뇌를 단련하기 위해 자원봉사 가이드로 나서는 등 생의 주도권을 능동적으로 쥐고 있다. 특히 <100점 만점을 바라기 때문에 불행해진다>라며 현재의 70점에 자족하고, 완벽주의 대신 스스로 감당 가능한 행복의 기준을 설정하는 태도는 수많은 상실과 고난을 통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성숙한 지혜다. 물건과 인간관계를 정돈하며 죽음을 담담히 준비하는 종활의 모습 역시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자신의 존엄을 마지막까지 완결하려는 독립적인 인간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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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当に貧乏した」― 100점 만점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75세 심리사·종활 어드바이저의 노년>

이 영상은 앞의 76세 여성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월 약 5만 엔의 연금을 받는 75세 여성의 이야기지만, 삶의 분위기는 꽤 다릅니다. 앞의 여성에게 삶의 중심이 <가족을 위해 무엇인가 해주는 것>이었다면, 이번 여성의 핵심어는 <상실 뒤의 자립>, <완벽주의에서 벗어나기>, 그리고 <자기답게 선택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편을 43세에 잃은 뒤 혼자 아들을 키웠고, 실제 빈곤을 겪었으며, 이후 심리상담과 인재개발 분야에서 전문직 경력을 구축했습니다. 현재는 심리사·인사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종활(終活) 어드바이저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1. “정말 가난하게 살았다”

현재 그녀가 받는 국민연금은 월 약 5만 엔입니다. 임대주택에 혼자 살며 월세는 약 9만5천 엔입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도 일을 합니다. 개인사업자로 심리상담, 인재 컨설팅, 기업 인재육성 등의 일을 하며 의뢰가 있을 때 출근하거나 온라인으로 상담합니다. 하루 일당은 약 2만5천 엔 정도라고 말합니다. 다만 75세가 된 지금은 예전처럼 매일 일하지 않고 한 달에 약 일주일 정도 일을 합니다. 성인이 된 아들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녀가 “정말 가난했다”고 말하는 것은 현재보다 과거를 가리킵니다.

남편이 43세 때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암은 식도와 대동맥 부근의 수술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고, 당시 아들은 아직 학생이었습니다. 남편이 병에 걸린 기간부터 경제적 어려움이 시작되었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혼자 아이를 키우며 일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당시를 거의 웃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였다고 회상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냥 일만 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 여성에게 가난은 추상적인 노후 불안이 아니라 실제 경험입니다. 배우자의 질병, 사별, 한부모 가정, 교육비와 생활비, 불안정한 직업을 한꺼번에 경험한 것입니다.

2. 비극이 오히려 새로운 직업 인생을 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고 사회로 나갑니다.

학교 상담원으로 일했고, 이후에는 경영·인사와 관련된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50대 초반에는 도쿄로 나와 독립했고, 대학과 기업 등을 상대로 상담·연수·인재개발 일을 맡았습니다.

이 지점이 이 여성의 인생에서 중요합니다.

젊은 시절부터 계획해 놓았던 전문직 인생이 아니라 남편의 죽음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제2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에게 닥친 위기가 심리와 인간관계를 이해하는 전문성으로 연결됩니다.

영상 제목에는 단순히 <심리사>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삶은 상담만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상담·교육·조직 인사·인재육성을 오가며 일해온 독립 전문직 여성에 가깝습니다.

3. 남편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던 ‘돌봄의 30년’

남편의 죽음만으로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60세를 전후하여 부모 세대의 돌봄이 시작됩니다. 자신의 부모뿐 아니라 남편 쪽 부모까지 차례로 돌보았고, 약 10년 동안 도쿄와 오카야마를 오가며 간병했다고 말합니다.

냉동식품을 만들어 보내고,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정리하고, 필요한 일을 처리했습니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을 “한 사람씩 차례로 떠나보낸” 인생이었습니다.

남편, 남편의 부모, 자신의 부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92세에 떠나보냈습니다.

그래서 현재 혼자 사는 것을 묻자 매우 흥미로운 답을 합니다.

“자유가 7할, 외로움이 3할.”

완전히 외롭지 않다고 하지도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비참하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70%의 자유와 30%의 외로움.

노년의 독거생활에 대해 상당히 현실적인 표현입니다.

4. 돈에 대한 후회도 솔직하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아쉬운 점으로 돈을 꼽습니다.

젊었을 때 조금 더 계획적으로 저축했더라면 지금 생활이 편했을 것이라고 인정합니다.

돈을 벌던 시절 여행도 많이 했고, 아이에게도 돈을 썼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 조금 더 저축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시기의 자신을 지나치게 비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라는 태도입니다.

여기에서 이 여성의 심리상담가다운 사고방식이 드러납니다.

과거의 선택을 현재의 지식으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후회는 하되 자기비난으로 발전시키지 않습니다.

5. 연금 5만 엔에는 개인 문제뿐 아니라 제도 문제가 있다

그녀 역시 왜 자신의 연금이 이렇게 적은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젊었을 때 회사에서 일한 기간도 있었고, 40대 이후 50대 초반까지도 직장생활을 했지만 사회보험 연금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특히 계약직 또는 독립적인 형태로 일한 기간이 길었던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 자신도 “왜 이렇게 적은지 구조를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이 점은 앞의 76세 여성과 매우 비슷합니다.

두 사람 모두 상당히 오랫동안 일했습니다.

그런데 둘 다 연금은 약 5만 엔입니다.

이는 “일을 많이 했느냐”와 “노후 연금이 많으냐”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특히 자영업·프리랜서·계약직·돌봄노동이 많은 여성의 생애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따라서 이 인터뷰를 단순히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사람의 결과”로 읽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합니다.

개인의 선택과 더불어 당시 일본 여성들의 고용 형태와 연금제도의 구조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6. 그녀의 종활은 ‘죽을 준비’라기보다 ‘삶 정리’다

그녀가 현재 종활 어드바이저라는 점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자신도 독자적인 엔딩노트를 만들어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보험 가입 상태, 통장, 병원과 의료에 관한 희망, 앞으로 어떤 치료를 원하는지, 중요한 물건의 처리, 인간관계, 죽기 전에 만나고 싶은 사람, 화해해야 할 사람,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 등 매우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그녀가 생각하는 종활은 단순히 장례식이나 상속을 준비하는 일이 아닙니다.

“죽기 전에 삶에서 무엇을 정리할 것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특히 인간관계까지 정리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필요 없는 관계는 줄이고, 화해해야 할 사람과는 화해하며, 만나고 싶은 사람은 미리 만나는 것입니다.

죽음을 준비함으로써 오히려 남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셈입니다.

7. “100점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제목에도 나온 이 문장입니다.

그녀는 현재 자신의 인생을 대략 70점 정도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면서 남은 30점을 굳이 채우려고 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100점 만점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이다.”

70점이나 80점 정도면 충분하며, 어떤 날 한 점이라도 점수가 올라갔다고 느끼면 그날은 “해피 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긍정적 사고보다 조금 깊은 이야기입니다.

그녀 자신이 상당히 힘든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죽음, 빈곤, 한부모 생활, 오랜 노동, 부모 간병, 자신의 암 경험까지 겪었습니다. 완벽한 인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따라서 “100점을 포기하라”는 말은 실패를 합리화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75년을 살아보고 내린 결론입니다.

인생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8. “환경 탓으로만 말하는 논법은 좋아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에게 주는 마지막 충고 역시 그녀의 삶을 압축합니다.

주변 사람이 그러니까, 사회가 그러니까, 상황이 이러니까 나는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환경이나 인간관계 속에 있더라도,

“자기가 가장 웃을 수 있는 선택을 하라.”

그리고

“자기가 선택하고, 자기가 결정하고, 자기답게 살아라.”

고 조언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강한 개인주의적 메시지입니다.

다만 사회학적으로는 조금 조심해서 읽을 필요도 있습니다.

그녀 자신의 삶에서는 이 태도가 강력한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빈곤이나 불행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바꾸면 사회구조적 문제를 가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바로 그녀 자신의 연금 문제만 보더라도 불안정 고용과 계약직 경력, 성별 분업, 돌봄노동이라는 구조적 배경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그녀의 이야기는

<사회구조는 중요하지 않다>

라기보다

<사회구조가 불리하더라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영역까지 포기하지 않겠다>

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합니다.

평론 — 앞의 76세 여성과 함께 보면 더 흥미롭다

두 여성은 모두 70대 중반이며 월 연금 약 5만 엔을 받습니다. 그런데 인생철학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앞의 76세 여성은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해주는 것이 나의 사명>

이라고 했습니다.

이번 75세 여성은

<자기가 선택하고 결정하여 자기답게 살라>

고 말합니다.

전자는 돌봄을 통한 삶의 의미를 강조하고, 후자는 자율성을 통한 삶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깊은 곳에서는 두 사람이 만납니다.

둘 다 돈을 인생의 최종 척도로 삼지 않습니다. 둘 다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냈고, 가족을 돌보았으며, 70대에도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준비합니다.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좋은 노후란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번 여성의 표현으로 옮기면 인생은 100점이 아니어도 됩니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을 수도 있고, 연금은 부족할 수도 있으며, 혼자 살면서 외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자유가 70%, 외로움이 30%라면 살아볼 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인터뷰의 핵심은 <월 5만 엔으로 어떻게 사는가>보다 오히려 다음 문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점짜리 인생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오늘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선택을 하라.>

75세 심리사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생애를 지나온 뒤 말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무게가 있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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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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本当にあの貧乏したんですよ。ほぼも笑えないぐらい厳しいです。
100点満点を目指すから不幸なんで。ご
年齢はおいくつですか?75
歳です。
今年金は受給されてますか?
はい。はい。自給しています。そ
年金の種類はどういう種類ですか?
国民年金。
年金額っておいくらですか?
月5万円ぐらいです。
厳しいですか?
いや、もうも、もう笑えないぐらい厳しいです。
なんか補填か?
ま、長年蓄えてきた、あ、お金を崩すだとか、あともう成人してる息子が
1
人いるので、ま、多少応援をしてもらったりだとか、
どういった家に住んでらっしゃるんですか?
えっと、東京に出てきて、今
22
年になるんですけど、あの、お部屋を借りて
1人で暮らしていて、で、月のうち
1週間ぐらいはお仕事もしています。
ちなみに家賃っておいくらぐらいですか?
もうちは安い方で
9万5000円ぐらいです。
そうすると年金だけじゃ到底無理です。
何をして働いてるんですか?
えっと、私あの一応心理士とか人材コンサルの関係の仕事を独立して個人事業主でやっているので、ま、企業様の人材教育だとかお手伝いを若干しています。
もうその仕事は長いんですか?
あの、えっと、ほとんど毎日やってた時期があったんですが、もう年齢が年齢なので、今はもう頼まれたところにだけ月に何日か行っている感じです。
それって収入っておいくらぐらいなんですか?
それ結構いい収入になるんですけど、ま、
1日出ると5万円とか
ぐらいはいただける。
あの、お子さんは今おいくつなんですか?
47
歳の男の子が結婚して孫と別初体を持ってるんですけど。
ほまさんはいくつですか?
小学校2年生と5
年生。主人が病気でもなくなってしまっていて子供も独立しているので
1人暮らしだから。
お1
人暮らしっていうのは何年ぐらいされてる?
主人がえっと私が
43の時亡くなったのでもう
303
年になります。
えっと、ご主人っていうのはおいくつで亡くなって、
彼が46
の時癌で亡くなって子供がまだ学生、中学生とかだったので、ま、結構ちょっと大変でしたけど、ま、馬車のように働いて社会に出しました。
そうですか。
ご主人ってちなみにどういう癌だったんですか?
え、言って分かるかな?重核って言って、えっと、食堂とえっと間と大動脈と大丈脈が全部この辺で重なってるところにカマキりの巣みたいにできた癌なので切って取るのができないっていう
何病指定みたいな癌でした。
当時
抗が剤とかですか?
そう、そう。放射線と
一切手術できなくて
小学生だった息子が高校
1年生になった途端に亡くなったんで
はい。
で、1番こう大変な時期だったかなって。
ああ、そうですか。お子さんが学生の頃はずっとお
1人で育てられたんですね。
もう本当に仕事だけでしたね。朝から晩まで。
その当時はどういう仕事をされてたんですか?
その当時は中学校のスクールカウンセラーとあとは結構大手な塾のえっとマネジメントと行使をやって秋時間は家庭教師にしてみたいな。
どれぐらいやってたんですか?期間
えっと最後の仕事は15年ぐらいで
53
ぐらいの時東京出てきて独立したのです。
で、そっからは、ま、大学とか企業とか個人様の仕事を受け承回って結構稼いでたんですけど、ま、両親の介護が
60過ぎて始まって、10
年ぐらいも父と母の介護で行ったり来たりが続いてやっと
70
過ぎてちょっと落ち着いてきたって感じです。
その60
からの介護ってどうですか?ま、大変だと思うんですけども。
大変でしたよ。どういうところが大変です。
まず毎月岡山と東京行ったり来たりその時間作りと経費作りてあげられる時はいいけどられない時のま、冷凍食品作ってご飯作って冷凍したり、ま、着替えや家の中の片付け屋をしたり、ま、もろ公共期間とのやり取りをしたり大変でした。
東京に来てもうちょっとしばらくしてからそういうことになったわけですよね。
ご主人が亡くなってそっからまたって本当に番大変でした。もう
1
人ずつ見送ってる感じです。主人の両親、自分の両親、夫、もう本当に順番にって感じです。
ご両親っていうのはご自身のご両親ってことですか?
えっと、母の最婚相手の義の父と母を見送りました。
そうです。
だから、えっと、父の最婚相手、父で主人の両親母と母の最婚相手で大人
6人を見送りました。
そうですか。それぞれ再婚されてたってことですか?
子供1人しかいないから。
1
番最後見送られたのは
が母です。実の母を。
そうですか。92
歳でしたけどね。
あ、でも長きされたんですね。
そう、そう、そう、そう。それは良かったです。
もう今はね、自分のやりたいことで。
そう、もうそう。もう今もうだから自由度
7割がありがたいです。
ああ、
ま、寂しい3割はありますけど、
今までって自分のやりたいことってやってこられましたか?あ
あ、半分ぐらい。
ああ、
今はもう経済的にね、行きたくてもないとかやりたくてもやれないっていう制約もありますよね。生活していくお金を維持しなきゃいけないからあり余ってないし。
で、これから先年金がどうなるかもわかんないし
はい。普段ってどういう生活されてますか?
うんと、ま、仕事の日は日中なので、え、会社に出るか
Zoomで対応する。
うん。
で、で、開いてる時間は、ま、趣味で例えば、えっと、古い神社物格巡ってみたり、ま、植のお世話したり、ゆっくりご飯作ったり、あとジムに行って健康管理で
プールで泳いだり。
ああ、いいですね。
ボランティアガイドやってるんですよね。
ガイドもされてるんですね。
歴史の勉強になるし。そうですか。
ボケ防子と足腰を、
ま、あの、衰えさせないというので始めました。
過去にこうしておけばよかったってことありますか?
ま、もうちょっと貯金を、貯金を計画的に増やしておけば今もうちょっと楽だったかなって。あの稼げてる頃はまあいいかと思ってお金かけて旅行行ってみたり、ま、子供にお金かけてみたりした時期もあるので、そういう意味ではもう少し計画的に老の卓をしておくべきだったなっていうのはちょっと思います。
まあ、でもその時はね、もうガムシラだったんですか?
そう、そう、そう、そう。一生懸命だったから、ま、お父さんが早くなくなっちゃった分、あのね、悲しい思いさせたくないってのもあって、
なんか過去の良かった思い出ってありますか?
うん。ま、子供を持てたこと不妊治療して
1人だけ子供が埋めたので。
あ、そうですか。
もしあの子がいなかったら夫がんだって分かった時あんなに頑張れなかったなと思って。
ああ、そうですか。
5年半東病生活が続いて
本当にあの貧乏したんですよ。で、
1
人で働いて子育てしながらだったので、まあ大変でした。
ま、そん時はね、ご主人も働けないわけですから。
あ、もう、もうほとんど入院だったので。
あ、ニュータイン繰り返しですか?
うん。
お体は大丈夫ですか?
えっと、何年ぐらい前に早期発見で胃を見つけて、でもそれはあの内子教で取れてもう回復したので今んとこ元気です。
ああ、良かったですね。
今後やってみたいことってありますか?
えっと、一応47
都道府県あって、えっと、昨年までであと
5件行ったことがなかったので、昨年で
1件、去年1件、今年1件制服してあと
2件なんで、
あと2件を回り切りたいです。
就活っていうことをされる方多いんですけども、ご自身ってどう考えてます?
私あの一応就活のアドバイザーの資格も持っていまして、同行くとみんなから頼まれるんですけど
はい。
ま、あの、お手伝いもしつつ自分の就活も進めている状況です。
どういったことを?
えっと、オリジナルの、えっと、ノートがあるので、それに必要な事項を皆さん書き込もうねっていうことで、ま、具体的に言うと、えっと、どこの保険に入ってるとか、どういう通帳があるよとか、ま、自分の、ま、もちろん身体的な特徴だったりかかってる病院だったりみたいなのと、ま、ここまでの、ま、思い出やこれからの期待や、もしになったり体がになった時じゃあ特
別な治療を希望するかしないかとか、ま、
そういったところを全部書き込むような
ノート作ってるんで、ま、それに書き込ん
だり、ま、あとは神の断捨離、あの、
もったいないとか思い出だからとか言わず
に、ま、なるべくものを身軽にしていくだ
とか、あとは人間関係、えっと、もう
たくさんいらないので、だから、あの、
だんだんと窓をいくする人、いつまでも
仲良くする人って苦空分をかけたり
だとか、ま、それとあとその行ったことないところには行っておきたいなとか、
国や年金制度について言いたいことってありますか?
私は、えっと、20代にJTB、30
代ベネテで働き、
40代から52
までは小学館さんていうところの岡山反社にいたんですけど、なぜかいざ年金いただくことになった時、社会保険からの年金がほとんど加算されていなくて、なんでこんな少な
んだろうみたいな仕組みがよくわからないのでふーんって思ってます。
うん。他の年金とかはなかったですか?例えば会社である企業年金だったりとか。
ま、そういうのはなかったですね。
契約社員みたいな立ち位置で働いた期間が長いんですよね。それがどうも加算されてないんですよね。
と今幸せですか?
うーん。70点ぐらい。
後の30点っていうのはこれから
補おうとは思ってないです。70
点あればいいかなと。
100点満点を目指すから不幸なんで別に
70点80
点でいいのかなと。で、もしそれ点数高く感じられる日が
1
日でもあったらその日はハッピーデーだから
って思ってます。
あ、いいですね。ました。
若い世代に向けて何かアドバイスってありますか?
はっきり言うけど、自分で選んで自分で決めて自分らしく生きて欲しいって思うんですけど周り側だからとかあの人がこうだからとか世の中がこうだからとかっていう理由でだからそうできないみたいに言うそういうなんか論法はあまり好きではない。
もうどういう環境状況であれ、どういう人間関係の中であれ、自分が
1
番笑顔になれる選択をすればいいと思うんですけど、だから自分らしく生きて欲しいなっていう、ま、そこのお手伝いが本業なので、そこはもう誰に対しても言いたいです。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
はい、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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