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22, 2026

신현준 - 남조선 마르크스주의가 망한 이유 1: 손민석

(6) Hyunjoon Shin - 남조선 마르크스주의가 망한 이유 1: 손민석 [서평] 초역사적 비유인가, 고도... | Facebook




Hyunjoon Shin

tsropoSend90c5uu0t6la2lat52f97almcu92hulc611ai78205ta33hl240 ·



남조선 마르크스주의가 망한 이유 1: 손민석
[서평] 초역사적 비유인가, 고도 자본주의의 역설인가
― 『자본 이전의 세계』를 향한 독법

1. 서론: ‘임금농노’라는 문제적 명명
손민석의 『자본 이전의 세계』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 이론을 호출해 현대 한국의 노동 현실을 ‘임금농노제’라는 개념으로 포착하려 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초기 자본주의의 ‘임금노예제’가 해체된 것이 아니라, 플랫폼과 부채라는 비가시적 장치를 통해 변형·심화되었으며, 그 결과 노동자는 다시금 구조적으로 결박된 존재가 되었다는 진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명은 설명의 힘만큼이나 검증의 부담을 동반한다. ‘임금농노’라는 용어는 강한 직관을 제공하는 동시에, 사회과학적 엄밀성과 개념사적 정합성이라는 두 가지 기준 앞에서 즉각적인 해명을 요구한다.

2. 경제학적 쟁점: ‘노동 서비스’ 개념과 용어 선택의 문제
저자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따라 ‘노동’과 ‘노동력’의 구분을 통해 착취 구조를 분석한다. 하지만 이 구분은 현대 주류 경제학이 노동을 어떻게 재개념화해 왔는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주류 경제학에서 노동(L)과 자본(K)은 더 이상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일정한 시간 단위로 제공되는 노동 서비스(labor service)와 자본 서비스라는 유량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용어 선택은 결정적인 이론적 긴장을 드러낸다. 흔히 마르크스 경제학은 노동과 노동력을 구분했지만 부르주아 경제학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서술이 반복되지만, 이는 주류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만 할 수 있는 용감한 주장이다. 두 전통의 차이는 노동의 상품화 여부에 대한 인식 자체가 아니라, 그 상품화가 사회적 관계 전체를 어떻게 조직하고 정당화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초점의 차이에 있다.
‘농노(serf)’라는 개념은 어원적으로 servus—곧 서비스(service)—와 동일한 계보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노동을 서비스로 정의하는 순간, 주류 경제학은 이미 노동의 예속을—중성화한 상태로나마—개념 내부에 포함시키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서비스’라는 현대적 개념 대신 ‘농노’라는 전근대적 명칭을 호출하는 것은, 분석의 정밀함보다는 정서적 효과에 기댄 선택으로 읽힌다. 그 결과 비판은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문제를 깊이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3. 일반화의 문제: 플랫폼과 부채는 예외인가
저자는 플랫폼 노동자의 알고리즘적 통제와 가계 부채로 인한 이동의 제약을 ‘임금농노제’의 핵심 사례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 제시는 현대 자본주의의 일반적 조건을 특정 영역의 특수 현상으로 축소한다.
현대 보험 통계와 재무 이론은 인간의 생명을 ‘사망 시 기대소득의 현재가치’로 환산하며, 이를 인적 자본(human capital)으로 관리한다. 개인의 삶 전체가 금융적 계산의 대상이 되는 조건은 플랫폼 노동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는 구조적 현실이다.
이러한 고도의 추상적 통제 메커니즘을 ‘농노제’라는 전근대적 틀로 환원할 경우, 자본주의의 핵심적 특징—비인신적 계산, 확률화된 위험 관리, 계약과 부채를 통한 자기규율—은 오히려 흐릿해진다. 설명은 강해지는 듯 보이나, 분석은 단순해진다.

4. 제목의 문제: ‘자본 이전’이라는 개념적 긴장
이 책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제목과 내용 사이의 간극에서 발생한다. 저자가 분석하는 플랫폼 경제와 주택담보대출 기반의 금융 구조는 자본주의의 외부가 아니라, 그 가장 고도화된 내부다. 이를 ‘자본 이전의 세계’로 명명하는 것은 개념적으로 불안정하다. 만약 저자의 의도가 독일어 개념 Leibeigenschaft를 한국어로 번역·이식하는 데 있었다면, 봉건적 예속 개념이 현대 서비스 노동으로 변형되는 어원적·구조적 경로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Leibeigenschaft에는 ‘농(農)’이라는 직업적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Leibe는 인신, eigen은 소유된, schaft는 상태로 農의 의미소는 1도 없다. 그럼에도 ‘농노’라는 번역어는 직업적·사회적 이미지를 과도하게 고정시킨다. 나 같은 사람은 사노(士奴) 생활을 20년 넘게 했는데 분석되지 않는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같은 공노(工奴)나 오징어잡이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간 어노(漁奴), 다단계 판매를 강요받은 상노(商奴)를 왜 '농'노라고 부르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이 선택은 토착적 개념화라기보다는 낡디낡은 일본어 번역이 지녔던 정서적 효과를 무의식적으로 활용한 수사적 전략이 되어 버린다. 그 결과 개념은 미래를 향해 벼려지지 않고 돌아오지 않을 과거에 고착되어 버린다. 동경제국대학교 교수이자 강좌파 마르크스주의자인 야마다 모리타로 (山田盛太郎)선생이 무덤 속에서 기뻐하실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1934년, 대만과 조선에 이어 그리고 만주까지 지배한 일본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조차 '반농노제(半農奴制)'라고 주장하시었다.

5. 개념, 은유, 이론의 차이
물론 저자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임금농노’라는 표현이 엄밀한 개념이라기보다 현대 노동의 체감적 현실을 포착하기 위한 비판적 은유라고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이 학술 이론서가 아니라 문제제기를 위한 대중적 저작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개념사적 엄밀성이나 주류 경제학과의 정면 대결을 요구하는 것이 과도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 책은 스스로를 단순한 은유의 제안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역사 이론에 기대어 현대 자본주의의 단계 규정을 시도하는 작업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것도 이미 유행이 지난 ‘필연’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논의는 감각적 문제제기를 넘어, 독자에게 특정한 역사 인식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은유는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없으며, 그 개념적 정합성과 번역어의 타당성 역시 검증의 대상이 된다.
대중성을 이유로 개념적 엄밀성을 유예할 수는 있으나, 역사 단계론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그 검증을 면제받을 수는 없다. 만약 ‘임금농노제’가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은유라면, 그것은 이론이 아니다. 반대로 이론이라면, 은유라는 방패 뒤로 물러설 수 없다. 이 선택지 중 어느 쪽을 택하든, 저자의 논의는 동일한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된다.

6. 대안
‘임금농노제’라는 개념은 결정적인 이론적 오류를 범한다. 농노 개념은 본질적으로 생산물을 수취한 뒤 지주에게 렌트를 지불하는 존재에서 출발했다. 이에 반해 임금노동자는 생산물을 수취하지 못하고 임금만 지불받고 착취받는 존재다. 양자는 수탈과 착취의 정도가 아니라 양식에서 구분된다. 임금농노제는 이 구분을 삭제한 채 봉건적 예속과 자본주의적 고용을 동일한 범주로 묶는다.
그 결과 농노는 지대를 바치는 종속 주체인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인지 규정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 개념이 이 지점까지 흔들리면, 더 이상 분석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질문들에 대해, ‘농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담론은 놀라울 정도로 침묵한다. 지대의 귀속 구조도, 수취 메커니즘도, 비가시적 렌트의 경로도 제시되지 않는다.
설명은 지연되고, 개념은 은유로만 소비된다. 인내가 고갈될 때까지 기다려도, 농노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바쳐서 수탈당하는지에 대한 분석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농노’는 분석 개념이 아니라 정서적 비난어로 전락한다. 인신적 예속을 강조하기 위해 선정적으로 동원한 수사에 가깝다. 호미니즘의 탈봉건제는 이런 수사를 넘어 고도자본주의를 설명하는 한 이론으로 제시한 것이다.

6. 결론: 설명의 강도와 해명의 심도의 역비(逆比)
『자본 이전의 세계』는 현대 노동자가 경험하는 구조적 압박을 포착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이론으로서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주류 경제학의 서비스 개념과의 관계 설정, 인적 자본론에 대한 명시적 대응, 그리고 ‘농노’라는 번역어가 지닌 언어적 한계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했다.
결국 독자는 이 책이 제시하는 ‘자본 이전의 세계’가 실재하는 역사적 국면인지, 아니면 저자가 상상 체험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불쾌한 측면을 강조하는 은유적 장치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다만 그 판단은,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실제로 읽어본 독자에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를 ‘새로운 시대 구분’이나 '새로운 발전단계론'으로 받아들일 여지도 남아 있다. 단, 그 새로움은 이론적 텍스트가 아니라 인내의 테스트를 통해 성립한다.

===
손민석
 ·
책을 냈으면 책을 읽고 비판글을 쓰든지 하면 되는데 책 내용에 관해서는 전혀 얘기를 안 하고 계속 이상한 딴지들만 건다. 나한테 자꾸 본인들이 아는 걸 가르치려고 한다. 읽고 나서 그래도 늦지 않다. 내가 직접 검증해보라고, 일일이 손아프게 다 인용문도 쳐서 옮겨놨다. 그럼 읽고 말하면 된다. 본인들이 보고 이 부분의 해석은 잘못했다, 손민석이 이 부분은 논리전개에 있어 오류가 있다, 개념의 사용이 엄밀하지 못하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나도 내 글을 확인하고 그에 기초해 자기수정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나? 그런 게 비평/비판의 역할이다. 

 가라타니 고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사용하는 비평/비판에 관한 정의는 좋아한다. 비평/비판이란 자신의 근거를 묻는 과정이다. 나는 <자본 이전의 세계>라는 책을 통해 내 나름의 이론체계를 세웠다. 그 이론체계의 근거를 계속해서 캐묻고 그래야 한다. 내 해석이 맞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또 되묻는다. 이제 독자들과 함께 해보자는 거다. 내가 읽고 이해한 마르크스는 기존의 자타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시한 마르크스상(像)과는 정말 엄청나게 상이하다.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수업을 반복했지만 다들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왜 이 얘기를 안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예를 들어 구글에 "본원적 소유"라고 치면 1980년대 서적 외에는 내 얘기밖에 없다. 40여년 가까이 나 외에 아무도 말을 안해놨다. 왠지 모르겠다.
 그러면 내 해석이 완전히 틀렸든지 기존의 연구사의 해석이 어떤 요인에 의해 잘못된 해석을 계속 하고 있었든지 둘 중 하나다. 본인들이 읽고 검증하면 된다. 나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줬다. 읽으면 된다. 읽고 검증해달라. 책 팔아주기 싫으면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보라. 읽고 이런 부분은 해석이 잘못되었다. 비평/비판해라. 책을 갖고 마음껏 해라. 그래야 나도 배울 것 아닌가? 나도 좀 배워보자. 
 출판사도 그렇고 몇몇 선생님들도 그렇고 이 책이 상당히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한다. 처음에 주어진 개념들이 낯설어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것만 지나면 술술 읽힌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한 개의 표와 한 개의 그림을 이해하면 끝난다. 명료함이 책의 '킥'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드는데, 어쨌거나 명료하다. 이제 읽고 말하면 된다. 나는 다 써놨다. 정말 오랫동안 참아왔다. 서문의 마지막 문장이 다음 글이다.
“나는 말했노라. 그리하여 내 영혼을 구했노라.(Dixi et salvavi animam meam.)"


===
Lewis Lee
이번 사태를 보면서 문득 선생님의 옛 글이 생각났습니다. (링크: https://www.facebook.com/sonminseog.23629/posts/pfbid02zV1rrF1eSrSFnQ3vRiLTXBEgjsj3mjnxYVpB6hUS67KVB9Y7Ys1ipnyQa5YqkqqZl) 주어진 텍스트의 절대성을 인정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말씀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도시 빈민은 그런 의지를 불태우기 쉽지 않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사건이 참담한 이유는 직업적 지식인이 스스로의 역할을 방기했기 때문입니다. 듣지 않은 강의와 읽지 않은 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잠깐은 통할지 몰라도 딛고 있는 토대를 허물어 버리는 행동입니다. 저같은 무지한 사람도 명징한 언어로 말하는 법을 모를 뿐, 이러한 세태를 충분히 감각하고 있습니다. 비록 공학도로서 선생님의 저서는 소화하기 쉽지 않은 책이지만 괴테의 다음 문장을 되새기며 읽어보려 합니다.
"Den lieb' ich, der Unmögliches begehrt."

손민석
Lewis Lee 이리 생각하신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훌륭하시지 않나 합니다. 겸양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지요. 훌륭하십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같은 분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적었습니다. 많은 질정 부탁드립니다.

===

==
손민석
듣지 않은 강의에 관해 말하던 분께서 읽지 않은 책에 관해 서평을 남기셨는데 반응이 있다는 점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령 
 “<자본 이전의 세계>는 현대 노동자가 경험하는 구조적 압박을 포착하고자 한다.“ 
 네?? 제가요??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닙니다. 현재를 분석한 책이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자본 “이전의” 세계입니다. 원시공산제부터 본원적 축적이 이뤄지는 초기 자본주의까지만 다루며, 플랫폼 노동에 대한 분석은 하지도 않습니다. 현재의 콜센터 노동자를 임금농노로 부르지도 않습니다. 임금농노제로의 ‘이행’을 촉구할 뿐이지, 임금농노제가 현재 자본주의의 특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다음의 문장은 이분이 책을 읽은 게 맞는지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저자는 플랫폼 노동자의 알고리즘적 통제와 가계 부채로 인한 이동의 제약을 ‘임금농노제’의 핵심 사례로 제시한다.“
네????? 임금농노제에서의 ‘이동의 제약’이요?? 제가 그런 말을 적었다고요???? 제가요??? 농노가 묶여 있다는 편견에 기초해 말씀하시는 건데 이 책에서 다루는 ‘공적 농노제’로서의 아시아적 전제국가 하의 소경영 농노는 이동이 자유로웠습니다. 실증분석에서도 전근대 아시아 사회에서 소농들의 이동이 자유로웠다는 게 밝혀진 지가 오래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 제가 차단해서 다른 분이 보내주신 글을 받아 적습니다만, 책을 읽어주시고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서글플 지경입니다. 대학교수쯤 되는 분께서 왜 이런 뻔히 들통날 짓을 하셔서 망신을 자초하나요 대체..? 나 진짜 이해가 안되네..

===
손민석
 ·
내가 이번 사태에서 가장 황당했던 게 뭐냐면 신현준씨가 댓글에서 나를 옹호했다는 거다. 다른 사람이 나를 비웃으며 "노동농노"라는 표현을 썼더니 신현준씨는 손민석님의 개념은 "임금농노"이며, 선생님의 주장은 유럽중심주의적인데 반해 손민석님의 주장은 그렇지 않다. 막 이러면서 마치 아는 것처럼 옹호를 하는거다. 여기서는 또 손민석"님"이래. 나 좀 무서워지더라고. 내가 너무 황당해가지고.. 이게 진짜 무슨 일인가 했다. 더 황당한 걸 말해줄까? 저 양반이 내가 필로버스에서 <자본 이전의 세계>로 강의한다고 광고할 때, 듣지도 않고 내 강좌가 유럽중심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내가 그래서 듣지도 않은 강의에 대해 뭐하러 말을 하냐, 듣고 나서 말씀하시라 그랬던 거다. 그래, 어차피 뭐.. 무슨 의미가 있나? 저 양반 글을 읽고 나를 재단하던 이들을 기억한다.
===




===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 레이든대학교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국제 저널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편집위원, 《Popular Music》의 국제고문위원이다. 

지은 책으로 《빽판 키드의 추억》, 《한국 팝의 고고학(전 4권)》(공저), 《글로벌, 로컬, 한국의 음악산업》 등이 있다.  

대표작
모두보기
===

귀환 혹은 순환 - 아주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
| 아이아 총서 105
윤영도,신현준,이정은,조경희 (지은이),신현준 (엮은이)그린비2013-04-15


































책소개

개인적 · 시대적 이유로 한국을 떠나 바깥으로 흩어졌던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재외동포법에 그들은 왜 ‘거주’가 아닌 ‘체류’로 기록되어야 하는가? 이들이 한국 국적은 물론 입국 비자 취득에도 애를 먹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처럼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입국한 동포들의 한국 생활상은 어떠한가?


이 책 <귀환 혹은 순환>은 귀국 동포들(조선족, 고려인, 자이니치)의 이동 유인과 그 양상을 살펴보고 이들이 각기 다른 공간에서 펼치는 문화적 실천의 면면을 포착함으로써,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던’ 재한동포들의 삶을 역사적 · 일상적 차원에서 복원해 낸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와 그린비출판사가 함께 출간하는 ‘아시아문화연구 시리즈’의 한 권으로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동아시아 내에서의 이동성(mobility)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돌아온 동포들’을 바라보는 데 있어 제도적 · 인식적 전환을 촉구하는 한편으로, 심층면접과 사례연구를 통해 한국 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동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고자 한다.



목차


서문

1장 동포와 이주자 사이의 공간, 혹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상이한 성원권_신현준
1. 돌아온, 그러나 환영받지 못한 | 2. 이동하는 코리안들: 뿌리, 경로 그리고 귀환 | 3. ‘돌아온 동포’의 개념화를 위하여 | 4. 이름과 정체성의 분류학 | 5. 결론

2장 조선족.고려인 초국적 역/이주와 포스트국민국가적 규제 국가장치_윤영도
1. 들어가며 | 2. 동아시아의 초국적 이주사와 조선족.고려인의 역/이주 | 3. 조선족?고려인의 초국적 이주와 규제장치의 변천 | 4. 나가며: 포스트국민국가 시기, 조선족.고려인 이주와 정체성정치의 가능성

3장 한국 내 조선족동포 커뮤니티의 구성과 교류_이정은
1. 머리말: 조선족동포 커뮤니티의 등장 | 2. 조사방법과 조사대상자들의 성격 | 3. 문화자원을 활용한 커뮤니티의 구성 | 4. ‘정치적 집합행위’에서 일상문화 활동으로의 변화 | 5. 중국동포 사회와 한국 사회와의 교류 | 6. 맺으며

4장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 재한고려인들의 월경 이동과 과문화적 실천들_신현준
1. 서: 포스트소비에트 공간에서 고려인을 위한 복수의 장소들의 발생 | 2. 영토화된 ‘소비에트 고려인’으로부터 탈영토화된 ‘CIS고려인’으로 | 3. 장소의 치환과 사회적 지위의 변환 | 4. 사회적 관계들과 소통의 네트워크 | 5. 차이의 문화정치와 과국적 커뮤니티의 (재)구축 | 6. 결론: ‘고향’에 정주하지 않는 고려인들

5장 이동하는 ‘귀환자’들: ‘탈냉전’기 재일조선인의 한국 이동과 경계의 재구성_조경희
1. 디아스포라의 역/이동 | 2. 대상과 방법: 자이니치의 변별성 | 3. 한국 사회와 재일조선인의 관계의 재편 | 4. 경계선을 둘러싼 일상적 정치 | 5. 상상적 이동과 문화적 접속 | 6. 결론: 생활권의 확장과 과국적 성원권의 요구

6장 동포의 권리로부터 재한의 권리로? 혹은 성원권으로부터 장소권으로?_신현준
1. 서: 민족적 불평등과 공간적 불평등으로 | 2. 외국인들을 위한 장소들: 서울의 경우 | 3. 이주자로서 동포들의 치환된 장소들 | 4. 도시의 공간적 불평등과 이주자들을 위한 장소 | 5. 결론: 시민권 없는 장소권

후기: 대면(interface)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P. 32 냉전이라고 부르는 시기 동안 조선인들의 후예들은 소련, 중국, 일본에서 소수민족 혹은 ‘민족적 소수자’(national minorities)로서 각기 특징적인 정체성을 형성하고, 서로 다른 언어의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정체성은 한반도에 남아 있던 사람들의 정체성과의 차이뿐만 아니라 그들 사이에도 상당한 차이를 발생시켰다. 진영 간 대립과 국민국가 간 경합으로 인해 이런 차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중국과 일본, 소련과 일본, 중국과 소련 사이에는 상이한 성격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긴장과 대립이 존재했고 이는 때로 영토분쟁까지 야기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북한(조선)과 남한(한국) 사이의 적대는 이들에게 ‘고국’(homeland)이나 ‘고향’(hometown)에 대한 상상을 혼탁하게 만들었고, 특히 한국의 경우 ‘자본주의 진영의 피투성이 독재국가’라는 상상 이상을 낳지 않았던 것 같다.  접기

P. 70 이제까지의 고찰에서 명확해졌듯, 1990년대 이래 동포들의 ‘귀환’은, 비(非)한국인들의 한국 내부로의 이입(移入) 및 한국인들의 외국으로의 이출(利出)과 더불어 한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와 통합되는 방식과 양상에 의존한다. 동포들의 경우 한국인이 아니면서 외국인도 아닌 독특한 지위를 갖도록 ‘만들어지는’ 과정이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것이다. 이렇게 한국으로 이입된 동포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특정한 정체성을 부여받아 왔다.  접기

P. 87 한국 역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변화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과거와 달라진 것은 이주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출국에서 이입국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적 약소국의 처지로부터 벗어나 거의 선진국의 문턱에까지 이를 정도로 경제적으로 급성장한 점이 동남아와 중국과 같은 지역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하나의 흡인요인으로 작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위 국내에서도 저임금 노동력의 부족이나 농촌총각 문제와 같은 다양한 문제들로 인해 이들 지역의 이주자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는 점 또한 흡인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주와 관련된 전반적인 법?제도상의 변화를 가져왔는데, 기본적으로 외국인 노동력의 적극적인 수용을 그 기본방향으로 하는 정책과 관련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1993년 산업연수제나 1998년 연수취업제, 그리고 2003년의 고용허가제와 같이 노동 송출국으로부터 입국한 노동자들의 취업과 체류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고, 노동부와 법무부가 함께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전반적인 국가장치의 정비를 진행해 왔다.  접기

P. 287 아이러니는 우리가 다루고 있는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은 이 둘 모두로부터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동포’이기 때문에 탈민족화된 다문화 시민에 대한 혜택으로부터 배제되고, 또한 ‘외국인’이기 때문에 재민족화된 재외국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것이다. 앞에서 내가 불평등성에 대한 미래의 경합이 점점 더 문화적인 (상상된) 동질성이 아니라 경제적인 현실적 합리성(계급)에 기초하여 전개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민족에 대한 ‘상상된’ 동질성은 이제까지 조선족과 고려인을 비동포 외국인에 비해 바람직한 이주노동자로 주조해 냈다. 그렇지만 국민국가의 영토에 거주 혹은 체류할 권리를 논할 때 이 민족이라는 범주는 점점 더 통용되지 못할 것이다.  접기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3년 5월 3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윤영도 (지은이)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소장 겸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국제법과 춘추의 유비(類比)적 사유 연구 ― 윌리엄 마틴의 중국 고대 국제법 연구를 중심으로」, 「‘권/권리’ 개념 절합의 계보학 ― 『만국공법』을 중심으로」가 있으며, 저역서로 종보현 저 『홍콩영화 100년사』(공역, 2014), 윤영도 편저 『정동하는 청춘들: 동아시아 청년들의 정동과 문화실천』(2017), 왕후이 저 『근대 중국 사상의 흥기 2』(공역, 2024) 등이 있다. 중국 ... 더보기

최근작 : <문화과학 108호 - 2021.겨울>,<정동하는 청춘들>,<아시아의 접촉지대> … 총 14종 (모두보기)

신현준 (지은이)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 레이든대학교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국제 저널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편집위원, 《Popular Music》의 국제고문위원이다. 지은 책으로 《빽판 키드의 추억》, 《한국 팝의 고고학(전 4권)》(공저), 《글로벌, 로컬, 한국의 음악산업》 등이 있다.

최근작 : <동아시아 팝, 소실의 자취>,<[단한권] 아시아,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변방의 사운드> … 총 10종 (모두보기)

이정은 (지은이)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


최근작 : <주권의 야만>,<주권의 야만 (양장)>,<아시아의 접촉지대> … 총 4종 (모두보기)

조경희 (지은이)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열림교양대 학장으로 재직중이다. 사회학/일본학 전공. 주요 연구분야는 탈식민주의, 디아스포라, 젠더 등이다. 한반도와 일본을 중심으로 기존 질서를 이동과 경계의 관점에서 비판하는 작업을 진행해왔고, 최근에는 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정동 정치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주요 저서에 『주권의 야만-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한울, 2017), 『‘나’를 증명하기-동아시아에서 국적, 여권, 등록』(한울, 2017), 『残余の声を聴く-沖縄、韓ࢲ... 더보기

최근작 : <동아시아의 역사부정과 혐오 정동>,<수용, 격리, 박탈>,<포스트 냉전과 팬데믹> … 총 10종 (모두보기)

신현준 (엮은이)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방문연구원, 레이든대학교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국제 저널 《Inter-Asia Cultural Studies》의 편집위원, 《Popular Music》의 국제고문위원이다. 지은 책으로 《빽판 키드의 추억》, 《한국 팝의 고고학(전 4권)》(공저), 《글로벌, 로컬, 한국의 음악산업》 등이 있다.

최근작 : <동아시아 팝, 소실의 자취>,<[단한권] 아시아,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변방의 사운드> … 총 10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그린비


출판사 제공 책소개

환영받지 못한 자, 돌아온 동포들의 위치를 묻다!!
조선족, 고려인, 자이니치 ― 소외와 배제 속 ‘특별한’ 존재들의 이야기!

“가난하고,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무질서하고, 몰염치하고, 촌스러운 존재.” 조선족을 떠올릴 때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수식어는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조선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혈연으로 이어진 동포이기보다 ‘일자리를 뺏으러 오는 경쟁자’ 혹은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값싼 인력’에 가깝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추방?유랑?강제동원의 특정 서사가 동반되어 ‘언어와 뿌리를 상실한 방랑하는 존재’쯤으로 여겨지는 고려인들, 남북 냉전체제로 인해 ‘일본에 사는 북한사람’으로 인식되는 자이니치(在日)까지 동포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편견으로 가득하다. 한국으로의 이주와 한국에서의 정주를 원하는 동포들에게는 언제나 ‘불청객’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오해로 가득한, ‘재한’동포라는 어색한 이름의 소수자 집단은 ‘국외의 동포’가 대상인 코리안 디아스포라 연구나 ‘국내의 외국인’이 대상인 다문화주의 연구에서도 미묘하게 벗어나 있다. 고국의 미흡한 정책과 편견으로 인해 내국민으로부터 소외당할 뿐 아니라 다문화 지원에도 배제되는 귀국 재외동포들은 동포도 아니고 외국인도 아닌 어정쩡한 위치에서 ‘특별하고 불평등한’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에 잠시 머물고 있는 외인일 뿐이다.
『귀환 혹은 순환: 아주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은 개인적 · 시대적 이유로 한국을 떠나 바깥으로 흩어졌던 ‘코리안 디아스포라’들이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담았다. 재외동포법에 그들은 왜 ‘거주’가 아닌 ‘체류’로 기록되어야 하는가? 이들이 한국 국적은 물론 입국 비자 취득에도 애를 먹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처럼 어려운 관문을 뚫고 입국한 동포들의 한국 생활상은 어떠한가? 이 책 『귀환 혹은 순환』은 귀국 동포들(조선족, 고려인, 자이니치)의 이동 유인과 그 양상을 살펴보고 이들이 각기 다른 공간에서 펼치는 문화적 실천의 면면을 포착함으로써,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았던’ 재한동포들의 삶을 역사적 · 일상적 차원에서 복원해 낸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와 그린비출판사가 함께 출간하는 ‘아시아문화연구 시리즈’의 한 권으로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동아시아 내에서의 이동성(mobility)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돌아온 동포들’을 바라보는 데 있어 제도적?인식적 전환을 촉구하는 한편으로, 심층면접과 사례연구를 통해 한국 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동포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주고자 한다.

왜 그들의 이동은 ‘귀환’이 아닌 ‘순환’인가

과거 재외동포들의 한국 이주는 ‘귀환’으로 표현되었다. 한국에서의 안정된 정착과 시민권 획득이 주목적이었던 동포들의 귀환에는 이동의 ‘종언’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으며 고국에서 다시 벗어난다는 것은 이동의 ‘실패’를 가리켰다. 그러나 오늘날의 재외동포 이동은 그 규모와 빈도가 증가하였을 뿐 아니라 방향성에도 변화가 생겼다. 한쪽으로의 일회적 귀환이 아닌 양쪽을 왔다 갔다 하는 이동성의 증대가 바로 그것이다. 더군다나 오늘날 한국을 찾는 재외동포에게 사전적 의미의 귀환이라는 단어는 더욱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현재 한국으로 이동하는 주체들은 이주 1세대가 아닌 그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엄밀히 말해 ‘이주해 갔던’ 적이 없으니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말도 성립될 수 없다). 이제 지구화 시대 재외동포들의 한국 이주는 고국으로의 완전한 귀환도, 영구적인 정착도 아닌 것이 되었다. 재외동포들의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성에 주목한 『귀환 혹은 순환』은 이들의 이동을 ‘순환’으로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지구화 시대 동포들의 이동이 초국(超國)에 지속과 반복이 더해진 ‘과국적’(跨國的) 이동임을 피력하는데(46쪽),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현상을 두 개의 고국을 가진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양쪽을 ‘이동하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리안 드림을 향한 기대와 고국에 대한 환상을 품은 채 한국으로 ‘이동’하는 재외동포들은 곧 한국 사회가 보내는 차별의 시선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그러한 시선은 본문의 사례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장님들이 사람 얄밉게 잔소리를 해도 눈 시선이 사람 깔보는 그런 시선이니까 제일 힘들죠. (……) 사람 시선을 내리 밑으로 깔보며 일이 끝나기 전에 처리해라, 이거 해라 반말하시고, 마지막에는 쌍욕 같은 거 어떤 때는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완전히 사람 개 취급하니까 일단은 가서 두 시간, 세 시간 하다가 그런 시선이 있으면 앞치마를 내치고 나와요.” (조선족 인터뷰, 143쪽)

“식당에서 고려인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불편한 시선이 느껴져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우리 러시아에서 온 고려인들이에요. 교포예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나라가 위기상태였는데 너희들 조상들은 그쪽으로 도망친 배신자들이다. 너희들은 그들의 후예다”라고 말했어요.” (고려인 인터뷰, 199쪽)

“일본인인 척해 달라고…… 대학에서는 본명도 괜찮은 데도 있었지만 학원은 다 안 됐어요. 저는 보통 처음에 확인해요. ‘자이니치’라고 말해도 좋은지. 그런데 학원에서는 다 안 된다고 하더군요. (……) 요즘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아예 일본어 관계에서는 자이니치를 고용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대학도 있어요.” (자이니치 인터뷰, 242쪽)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식민지배와 전쟁, 분단으로 인해 조선반도 외부로 이동했던 동포들은 한민족사(韓民族史)에 포함되기보다는 이주국에서의 국민사(國民史)로 설명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 그들은 어떤 지리적 영토와 어떤 체제의 국가에 속하냐에 따라 이주국으로부터 그리고 한국 사회로부터 서로 다른 형태의 시민권과 성원권(membership)을 부여받았다. 자연스럽게 그들에게는 외부의 평가로부터 기인한 불완전한 정체성이 녹아들게 되었고(30쪽), 고국으로 이동해 온 후에는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한 내국민들의 차별까지 겪었다. 결국 귀환의 과도기를 견디지 못한 동포들은 다시 한국을 떠나 새로운 이동을 계획해야만 했다. 동포들의 불안정한 순환은 환영받지 못한 귀환에서부터 그 씨앗을 틔운 것이다.

소외와 배제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이처럼 혈연적 민족과 법률적 국적 사이에서 내부자도 외부자도 아닌 모호한 위치의 재한동포들은 한국 사회에 흡수되지 못한 채로 생존해야만 했고, 그들이 찾은 자구책은 ‘민족 커뮤니티’였다. 그들은 한국 사회로부터 받는 차별과 자신들의 불완전/불안정한 정체성에 대한 우려의 대안으로 자연스럽게 자신들만의 문화적 연대를 형성했다. 재한동포가 한국에서의 생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적극적 행위자”(119쪽)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국제 이주에서 문화적 연대 및 사회적 연결망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 해외로 이주하는 경우, 정착하고자 하는 지역에서의 사회연결망은 이주의 성공여부를 결정한다(127쪽). 언어적 소통에 무리가 없고 인적 네트워크(친지초청, 국제결혼 등)를 통해 입국한 동포들 역시 한국에서의 네트워크를 넓혀 일상생활의 정보를 교환하고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귀환 혹은 순환』의 2, 3, 4장에는 각각 조선족, 고려인, 자이니치의 한국 생활상과 동포 커뮤니티 현황이 담겨 있다. 저자들은 이들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재한동포들에 대한 참여관찰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출신국별로 무리를 지으며 살아가는 재한동포 거주지역 단체 및 소모임 대표들을 만나 면접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재한동포 커뮤니티는 공간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는데, 주로 일터의 위치와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편성되는 측면이 컸다. 제조업공단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구로 · 영등포의 ‘옌볜거리’, 봉제공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창신동/광희동의 남/중앙아시아인 집거지구, 화교와 러시아 선원을 대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부산 초량동의 ‘상하이거리’와 ‘러시아 텍사스’ 등 지구화 시대 재한동포들의 ‘과국적 이동’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특정한 동포의 정체성은 특정한 장소와 연결된다(262~272쪽). 특이한 점은 서래마을 프랑스타운이나 이촌동 재팬타운 같은 ‘외국인 이주자’ 커뮤니티가 고유의 문화와 특색을 가진 독립된 공간, 내국민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반면, 재한동포들의 커뮤니티는 생계를 위해 ‘체류’하는 사람들의 공간, 독특한 문화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내국민의 생활권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공간 정도로 생각된다는 점이다. 이는 하나의 도시공간이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정체성에 따라 “격리된 채 구조화”되고, 그 영역들 사이에 “상징적 경계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나타낸다(286쪽).
모든 사회에는 길든 짧든 일정 지역을 점하여 ‘머무는’ 외국인들 그리고 동포들이 있다. 이들은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와 문화를 습득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발견되는 차이를 확인하며 스스로의 위치를 고민한다. 따라서 내부인(내국민) 역시 고국인 한국으로 이동한 동포들을 이방인으로 간주하기 전에 그들과 한국 사회의 다양한 차이점들을 확인하여 서로 간의 이해 가능한 접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방인이 아닌 한겨레로서의 민족적 구성원들과 진정한 소통을 일굴 수 있을 것이다.

===





No comments:

Post a Comment

ESG 자본주의 양춘승

 ESG 자본주의 지속가능한 세상을 찾아서 지난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국과 전 세계에서 투자자 및 기업과 함께 기후변화 에 대한 합리적 대응을 가속화하는 데 있어 양춘승씨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제게 큰 기쁨이자 영광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