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냈으면 책을 읽고 비판글을 쓰든지 하면 되는데 책 내용에 관해서는 전혀 얘기를 안 하고 계속 이상한 딴지들만 건다. 나한테 자꾸 본인들이 아는 걸 가르치려고 한다. 읽고 나서 그래도 늦지 않다. 내가 직접 검증해보라고, 일일이 손아프게 다 인용문도 쳐서 옮겨놨다. 그럼 읽고 말하면 된다. 본인들이 보고 이 부분의 해석은 잘못했다, 손민석이 이 부분은 논리전개에 있어 오류가 있다, 개념의 사용이 엄밀하지 못하다 이렇게 얘기를 해야 나도 내 글을 확인하고 그에 기초해 자기수정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지 않나? 그런 게 비평/비판의 역할이다.
가라타니 고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가 사용하는 비평/비판에 관한 정의는 좋아한다. 비평/비판이란 자신의 근거를 묻는 과정이다. 나는 <자본 이전의 세계>라는 책을 통해 내 나름의 이론체계를 세웠다. 그 이론체계의 근거를 계속해서 캐묻고 그래야 한다. 내 해석이 맞는지를 끊임없이 되묻고 또 되묻는다. 이제 독자들과 함께 해보자는 거다. 내가 읽고 이해한 마르크스는 기존의 자타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제시한 마르크스상(像)과는 정말 엄청나게 상이하다.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수업을 반복했지만 다들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왜 이 얘기를 안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예를 들어 구글에 "본원적 소유"라고 치면 1980년대 서적 외에는 내 얘기밖에 없다. 40여년 가까이 나 외에 아무도 말을 안해놨다. 왠지 모르겠다.
그러면 내 해석이 완전히 틀렸든지 기존의 연구사의 해석이 어떤 요인에 의해 잘못된 해석을 계속 하고 있었든지 둘 중 하나다. 본인들이 읽고 검증하면 된다. 나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걸 다 보여줬다. 읽으면 된다. 읽고 검증해달라. 책 팔아주기 싫으면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어보라. 읽고 이런 부분은 해석이 잘못되었다. 비평/비판해라. 책을 갖고 마음껏 해라. 그래야 나도 배울 것 아닌가? 나도 좀 배워보자.
출판사도 그렇고 몇몇 선생님들도 그렇고 이 책이 상당히 어렵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한다. 처음에 주어진 개념들이 낯설어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그것만 지나면 술술 읽힌다. 이 책은 말 그대로 한 개의 표와 한 개의 그림을 이해하면 끝난다. 명료함이 책의 '킥'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드는데, 어쨌거나 명료하다. 이제 읽고 말하면 된다. 나는 다 써놨다. 정말 오랫동안 참아왔다. 서문의 마지막 문장이 다음 글이다.
“나는 말했노라. 그리하여 내 영혼을 구했노라.(Dixi et salvavi animam m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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