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굴레를 벗고 자주의 새 역사를 여는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임승수 (지은이)
시대의창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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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남미 대륙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콜롬비아.브라질.가이아나와 북쪽으로는 카리브 해와 접해 있고, 산유량은 세계 5위인만큼 석유자원이 풍부해서 20세기 초반부터 미국에게 아주 중요한 나라, 그러나 그 이익을 국민에게 돌리기는커녕 미국에게 퍼다 나른 베네수엘라 기득권층, 때문에 국민의 대다수가 극빈층인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나라 베네수엘라.
현재 안으로는 민중 스스로 자신들을 위한 삶을 개척하는 혁명이 진행중이고 밖으로는 남미 통합의 주도 국가, 반미의 선봉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네수엘라, 그 중심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서있다. 역사의식과 민중애 강한 군인으로 젊은 시절부터 동료장교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새로운 베네수엘라를 만들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고민한 차베스 대통령과 베네수엘라의 오늘날을 살펴본다.
목차
들어가기 : 21세기 사회주의를 위한 발걸음
1부 볼리바리안 혁명 이전의 베네수엘라
1 몇 가지 키워드로 보는 베네수엘라 역사
2 IMF가 불러온 민생고와 민중의 분노, 카라카소
2부 차베스, 혁명을 준비하다
3 진보적 군인들, 혁명을 준비하다
4 카라카소, 쿠데타를 위한 일보전진
5 혁명적 군인의 애국적 봉기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로사 엄마’와의 추억>>
3부 차베스, 개혁을 시작하다
6 선거 전략으로 승리하다
7 제헌의회, 선거 공간을 혁명 공간으로
8 볼리바리안 헌법과 정치개혁
9 49개 개혁법안과 기회주의 세력의 이탈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보수적 군대에서 혁명을 꿈꾸다>>
4부 반대파의 공격과 민중들의 혁명 수호
10 반대파의 첫 번째 공격, 2002년 4월 쿠데타
11 반대파의 두 번째 공격, 2002년 11월 경제 쿠데타
12 반대파의 세 번째 공격, 2004년 8월 소환투표
13 볼리바리안 서클, 혁명을 수호하는 민중조직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민중들과 함께 꾸는 꿈>>
5부 가난을 끝장내기 위해
14 신자유주의, 민중을 벼랑끝으로 몰다
15 차베스 정부의 복지정책
16 베네수엘라와 석유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민중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6부 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 21세기 사회주의로
17 중남미 통합과 새로운 국제 관계
18 석유를 통한 차베스의 국제 정치
19 차베스, 미 제국주의와 맞짱뜨다
20 21세기 사회주의로 나가는 베네수엘라
21 거세지는 혁명의 불꽃, 볼리비아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피델, 영웅에서 동지로>>
맺는말
중남미, 베네수엘라 연표
참고문헌
접기
책속에서
차베스가 대선에서 당선된 1998년은 유가 하락이 가장 극심했던 해였다. 1차 석유파동이 있기 전인 1973년 이후 가장 낮은 유가를 기록했다. 1배럴당 3.19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1리터에 2센트에 불과한 가격이었다. OPEC는 석유 할당량을 어기며 국제 석유시작에 많은 양의 석유를 공급하고 있었고, 러시아나 멕시코와 같은 OPEC 산유국들도 생산량을 늘리고 있어 국제 유가는 나날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OPEC의 할당량을 가장 무시하고 석유를 수출하던 나라는 미국의 입김이 가장 심하게 작용하는 베네수엘라였다.
차베스는 집권 첫 해를 국제 유가를 정상화하는 데 투자했다. OPEC 회원국과 그 밖의 석유 수출국을 방문했고 2000년 카라카스에서 OPEC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OPEC 회원국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결속력을 강화하여 국제 유가를 배럴당 22달러에서 28달러 사이로 유지하는 것에 합의했다. 그 결과 1985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유가는 정상 수준인 27달러를 회복했다. - 본문 203~204쪽에서 접기
P. 247 나는 매일 더욱 확신하게 되며 내 마음 속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습니다. 이전부터 수많은 지식인들이 말해왔듯이, 우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만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강요하는 방식의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접기
- NamGiKim
저자 및 역자소개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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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6일 첫 모임을 시작했으며, 우고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혁명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http://club.cyworld.com/chamworld.
최근작 :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 총 2종 (모두보기)
임승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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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에서 학사와 석사를 취득한 후 한동안 직장 생활을 했지만, 삼십 대 초반에 퇴직하고 20년째 인문 사회 분야 전업 작가로 생존 중인 대한민국 희귀종이다. 학창 시절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맞닥뜨려 결국에는 전업 작가가 되었다. 글치 공학도에서 전업 작가로 거듭난 후 20여 년 동안 글쓰기 내공을 쌓았다. 무림 비급을 후대에 전하는 사파 고수의 마음으로, 이 책에 글쓰기 비급을 담았다.
지은 책으로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오십에 읽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와인과 페어링』,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글쓰기 클리닉』,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공저) 등이 있다.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자이자 와인 애호가이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오십에 읽는 자본론>,<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오십에 읽는 자본론> … 총 52종 (모두보기)
SNS : http://facebook.com/cham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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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을 파산하게 만든 정신나간 대통령. 불의에 항거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정의는 아니다. 이 책 쓴 사람이나 읽은 사람이나 이제는 창피한 걸 알아야 할 듯
곰곰 2016-12-08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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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아직 팔리냐? ㅋㅋㅋ
aeges 2019-10-2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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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주엘라 원유가 질이 안좋아 고유가 일때만 돈이됨, 저유가면 생산비가 판매비를 초과 → 외국 정유회사들이 투자를 안하니 정유시설 낡음 → 정유 단가 더 상승 → 나라 돈이 없음 → 산업이 전무해 휴지까지 수입해 쓰는데 사올 돈 없음 → 식량난 생필품난
리뱅쓰리런 2017-09-1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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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란 대통령을 조금도 알지 못했는데 우연히 임승수의 방송을 듣고 흥미가 생겨서 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음 좋겠다.

더선 2014-07-04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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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읽은게 후회되는 chavez의 개혁일대기 !

lonewolf 2011-09-2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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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때문에 망한 나라 베네수엘라.... 망한 나라 망하게 한 지도자의 면면을 찬양하는 도서.... 이런 도서가 아직도 팔리고 있다니... 신기하다.... 칭찬일색의 서평도 신기하다..... 뼛속까지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는 못말려... 반성은 없다..... 보통사람이라면 쥐구멍이라도 찾아야할 듯한데
hyung0302 2023-05-1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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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에게 권력을~! 21세기 사회주의를 향해~!"

zikomo 2011-01-07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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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가 YES라 말할 때,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

hoyson0326 2011-04-23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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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대자본으로부터 베네수엘라를 구한 영웅 차베스에 대한 책!

fx-max 2012-11-01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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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진행된 세계적 개꿀잼 몰카 ㅋㅋ
hok 2025-08-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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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를 꿈꾼 한 혁명가를 생각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요즘 재밌는 책 한권을 읽었다. 그 책은 바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로 유명한 임승수씨가 공동집필한 저서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책이다. 사회주의자가 되고 난 이후 베네수엘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베네수엘라에 대해서 깊게 공부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고, 진보적인 정책들을 통해 사회주의를 달성하고자 했었던 것 정도만 단편적으로 알았다. 즉,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이들의 정치 상황을 자세히는 몰랐다고 할 수 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인물은 바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Hugo Chavez)다. 우고 차베스는 진보적인 정책들을 통해, 베네수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실제로 차베스는 집권 초기 여러 성과들을 만들어 냈고, 성과들은 고무적이었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과거 빈부격차가 극심하던 베네수엘라를 억압받고 착취 받던 이들에게 보다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자 했고, 빈민들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고 병원을 세웠으며, 문맹 퇴치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차베스는 과거 굶주리던 빈민들을 위해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했고,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해 주택을 건설했으며, 또 건설한 주택들을 가난한 인민들에게 분배했다. 차베스의 정책은 분명 진보적인 정책이었고, 자본주의적 양식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띈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차베스는 빈민 계급이 권력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기업의 이익이 아닌 공적인 이익을 추구했으며, 생산자가 일하고 노력한 만큼 받을 수 있는 평등한 생산관계를 유지한 사회를 추구했다. 그는 소위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구호 아래 민주주의를 추구했지만, 소위 미국에서 주장하는 위선이 가득 찬 민주주의는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제국주의로 포장한 미국식 민주주의에 맞서 저항했다.
1998년 선거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된 차베스는 집권 시점부터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사악하고 위협적인 공격을 받았다. 미국에게 있어서 차베스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방해하는 존재였고, 따라서 축출되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미국은 베네수엘라 내에 있는 우익 부르주아지 세력들을 지원하여, 차베스 정부를 내부에서 흔들고자 했다. 이런 수법은 과거나 현재나 미국이 항상 이용하는 방법이다.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브라질의 골라르트, 칠레의 아옌데 등이 그렇게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당했다. 2002년에만 해도 차베스를 축출하려는 두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실제로 차베스 또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자들의 염원과는 달리, 베네수엘라 민중은 차베스편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우익 세력들이 온갖 흑색선전과 여론조작을 해도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민중들이 차베스를 지키고 수호한 이유는 자명했다. 그것은 차베스가 가난한 인민들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했기 때문이다. 차베스 집권 이전에는 베네수엘라 빈민들과 인종차별을 받던 원주민들을 위해, 헌신하고 그들을 위한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한 지도자는 없었다. 차베스가 집권한 이후 베네수엘라 사회에서 차별받던 원주민들도 ‘권리’라는 것이 생겼고, 공장과 사회에는 인민들의 의사가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탐욕과 이윤밖에 모르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집단과 공동 그리고 대다수 민중을 위한 진보적인 사회가 자리 잡았다. 과거 아주 극소수만 소유하던 집을 빈민들이 소유하게 됐고, 치료비가 없어서 못 가던 병원을 공짜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런 혁명적인 변화들은 차베스가 대다수 인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책을 읽으면서, 우고 차베스에 대한 존경심이 더 생겼다. 사회주의를 향한 그의 원대한 꿈과 정의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순수하다. 1959년 혁명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더불어,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의 사회주의 승리를 향한 발걸음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이들의 혁명과 진보가 아름다운 건, 인간적이고 당연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업과 자본가 계급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가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런 가치를 부정하고, 범죄와 학살 그리고 폭력을 동반하는 주체가 바로 미국이다. 이런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진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을 보고만 있으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각에서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실패했다고 말한다. 물론 베네수엘라는 가난하다.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제재는 지금도 해제되지 않았다. 미국은 차베스가 집권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무려 20년간 베네수엘라에게 살인적인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 문제도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자본과 부, 권력, 달러를 독점한 기업들이 우익들을 동원해 베네수엘라의 자주적인 시스템에 사보타주를 가해서 생긴 일이지,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민중이 의도적으로 망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사보타주 및 테러를 당하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보지 않고, 그저 서방이 주장하는 말말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왜곡된 신념이 진실의 눈을 가린 것이다.
차베스는 2013년에 사망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까지 미제국주의에 맞선 투쟁과 사회주의 승리를 향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그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 현재는 그의 후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지도자로 있다. 우고 차베스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에보 모랄레스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승리를 향한 라틴 아메리카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 인류가 COVID-19를 겪으며, 자본주의 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대로 사회주의를 선택하지 않은 자본주의 국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물론 자본주의 러시아 보다 자본주의 미국의 책임이 훨씬 더 크긴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야만주의가 불러온 결과다.
20세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21세기에 사회주의를 시도한 베네수엘라의 붉은 별 우고 차베스,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사회주의를 향한 라틴 아메리카의 전진은 COVID-19라는 위기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야만주의라는 사실은 미국을 통해서 숱하게 봐왔다. 20세기에는 베트남 21세기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까지 미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표현대로 제국주의 세력이 보여준 야만주의 그 자체다. 그 침략전쟁으로 돈을 벌고 이윤을 축적하는 것도 미제 그 자체다.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경제적 이득을 보는 건 결과적으로 미국일 것이다. 2013년 유로마이단 색깔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탈산업화가 가속화되며, 미국과 서방의 기업들만 이득을 보았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야만주의고, 제국주의의며 신식민주의를 추구한다. 따라서 인류가 선택해야할 길은 사회주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지만, 19세기 마르크스가 분석한 모순은 본질적으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적잖은 영감을 주는 사례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제에 맞서 사회주의를 이룩하고자 했던 우고 차베스의 말을 인용하겠다.
나는 매일 더욱 확신하게 되며 내 마음 속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습니다. 이전부터 수많은 지식인들이 말해왔듯이, 우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만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강요하는 방식의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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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2-03-03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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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좀 있지만... 읽어둘 필요도.

우고 차베스라는 인물, 보수적인 신문들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 '또라이'인가. 그렇게 또라이라면 영국의 '내놓은 좌파'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은 왜 차베스가 런던에 찾아오자 버선발로 환영하면서 차베스의 에너지 공급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던 걸까. 왜 남미에서는 차베스의 말발이 여기저기 먹히는 걸까.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의 '좌파 대통령'들이 차베스와 나란히 어깨 걸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쪽 동네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데 말이다.
차베스라는 사람에 대한 반응은, 요즘 들어선, 거의 카스트로 못잖게 갈리는 것 같다. 스스로 "예수와 카스트로가 나의 모델"이라 말하는 차베스, "이제는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라면서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듯 좌충우돌하는 이단아. 차베스를 둘러싼 '진실'은 무엇이며,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어떤 것이고,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띤 것일까. 아니, 대체 남미 산유국에서 벌어지는 소동들이 '역사적인 의미'를 띤 사건들이 맞기나 한 것일까.
어느 틈에 차베스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도 알음알음 나와 있는 걸 보니 차베스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도 높아지긴 한 모양이다. 한때는 맑스-레닌주의가, 한때는 주체사상이, 한때는 룰라의 노동자운동이, 한때는 리비아의 녹색혁명론이 '대안'이라는 이름을 걸치고 사람들을 혹하게 한 적 있었다.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론을 비롯해 앞서 언급한 무슨무슨 주의-사상-론(論)들이 모두 같은 등급에 속하는 것들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차베스라는 인물,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베네수엘라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산유국이라는 사실을 보태고 뺀다 해도 말이다. 바야흐로 차베스라는 유령이 지구를 휩쓸고 있는 것일까.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책은 앞서 읽은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21세기 혁명’을 좀 길게 늘여 쓴 책 같은 느낌이 든다. 우고 차베스라는 논란 많은 인물을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가’로 칭송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찬양 일변도로 쓰고 있는데, 그 부분은 사실 좀 놀랍다. 한국에서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상황’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자료를 분석해 이런 책을 내놓은 것은 훌륭한데, 이렇게 ‘무비판적’으로 마치 예전 1980년대 대학생들이 북한 칭찬했듯 차베스 칭찬해놓은 것은 좀 뜻밖이다. 이러다가 베네수엘라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차베스의 ‘실험’은 분명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신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말을 붙일만한 구석도 있다. 석유를 바탕으로 국민들 잘살게 하고 매판자본가들 몰아내고 미국에 맞서고... 아무튼 차베스라는 사람을 어떤 의미에서든 재평가하게 해준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에 외신들 보면서 차베스가 하는 일들, 기간산업 국유화를 비롯한 반자본주의적인 행보들과 사회주의 선언, 반미 발언 같은 것들이 너무 돌출적이고 쇼(show)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차베스의 ‘진심’이란 것이 의심스러웠다는 얘기다. 이 책에 나온 차베스의 모습은, 적어도 어떤 진심을 가지고 일관되게 일을 추진해가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점을 ‘혁명가’라고 부르려면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군부 쿠데타 문제나 포퓰리즘적인 측면, 오로지 자원에 기댄 오지랖 넓은 외교와 ‘민주적 독재’ 같은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저자들은 차베스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던 것과 이후 군부를 끌어들이기 위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똑똑한 행동이었다’는 식으로 칭찬하고 심지어 “베네수엘라 군부는 원래 애국적인 전통이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이 부분은 좀 섬?하다. 얼마전 차베스는 대통령 권한을 엄청나게 강화하는 법안들을 통과시켰는데 ‘고이면 썩는다’고 하는 이치가 베네수엘라에서만은 비껴가기를 바래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아무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기뻤다. 책 읽으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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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3-26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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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바리안 혁명의 이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인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차베스이다. 악의 축에 끼지는 않았지만, 그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정도는 악의 축에 포함된 국가들 보다 덜 한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가 우리에게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북한이나 중동이 아니라,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라틴 아메리카의 대통령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을 뿐이다.
차베스가 하고 있는 일은 실로 엄청나다.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인 쿠바의 카스트로를 공공연히 찬양하고, 쿠바에 싼 가력으로 석유를 제공한다. 뿐만아니라 각종 국제 회의에서 미국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과감함을 보인다. 심지어 부시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회의에서도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비정부기구를 통해서 미국의 빈민들에도 싼 가격으로 석유를 공급한다. 미국의 자손심을 건드리는 행동이 아닐수 없다. 게다가 미국을 포함한 다국적 기업의 석유시설을 국유화하고, 세금을 인상하고, 석유생산에 관한 로열티를 인상했다.
그런데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베네수엘라를 공격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군사적인 부담때문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군가력은 이라크에 비할바가 못된다. 이 책에 그 규모가 정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행간의 의미로 추정해보면 병력이 수만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튀는 행보를 참아내는 것은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그는 군인출신이다. 군인의 신분으로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감옥에 구금되었던 인물이다. 사면으로 풀려난 그는 정치활동을 벌인다. 그리고 대통령선거에서 앞도적인 표차로 당선된다. 물론 그가 얻은 압도적인 표는 반대 진영의 선거보이콧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에는 그를 지지하고 응호하는 수많은 빈민층의 지지자들이 있는 반면에, 그의 노선을 반대하고 아예 선거자체를 보이콧 하는 절반에 가까운 반대자들이 있다. 이 책에서 기득권자라고 표현되는 그들의 힘은 예상외로 강하다.
국영석유회사를 국유화하는 가운데 수개월간 계속된 총파업과 거리를 가득메운 거대한 인파의 모습을 우리는 국내에도 방영된 뉴스를 통해서 접한 적이 있다. 그 거대한 인파는 친 차베스 시위대뿐 아니라, 반 차베스 시위대의 숫자가 엄청난 것을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보수파의 시위에 강제적으로 동원하지 않고서는 많은 인원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베네수엘라 내에는 그에 대한 반대파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실제로 쿠데타 세력에 의해 권력을 찬탈당하고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었다. 그를 지지하는 시위대와, 군부내에 그를 지지하는 세력의 노력에 의해 극적으로 다시 권좌에 복귀한 그는 군대를 그가 시도하는 볼리바리안 개혁의 중추적인 세력으로 놓고 있는 것 같다. 그 자신이 군인 출신으로 쿠데타를 시도한바가 있으며, 그가 권력을 잡는데 가장 큰 역활을 한 것도 '의식화된' 군인들이었다. 그가 군생활을 하면서 군부내에 광범위한 친 차베스 개혁파를 심어놓은 때문이다.
군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그가 추진하는 볼리바리안 혁명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의해 늘어난 빈민들을 구제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석유회사를 국유화하고, OPEC와 함께 석유가를 높이는데 성공한 그는 그곳에서 나오는 막대한 재원을 빈민들을 구제하는데 사용한다. 학교와 병원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빈민들을 위해 생필품을 반값에 파는 가게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정책은 강력한 친 차베스 세력을 만드는 한편, 그의 반대파들로 부터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차베스를 보는 그러한 양면의 시각중에서 철저하게 친 차베스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 그래서 약간의 논리적 비약이 보인다. 선거를 보이콧하던 그가 대선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선거에 당선되도록 선거운동을 한 과정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그가 빈민을 구제하는 볼리바리안 개혁을 추진하면서, 베네수엘라의 경제전반에 관해서는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다. 그저 차베스가 가져온 변화의 긍정적인 면만으로 책을 가득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척 반가웠고, 또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든다. 라틴아메리카는 그 면적과 나라의 수 뿐만이 아니라, 21 세기의 중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너무나 적어 불만스러웠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연구한 결과물이 책을 한권만들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수가 없다. 이 책을 바탕으로 더 나은 연구물들이 나올것을 기대한다. 무척이나 고무적이고 흥미로운 독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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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2007-01-11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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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민중봉기
차베스에 대한 기사를 뉴스에서 많이 접했다.
그래서,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란 제목을 보고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기대한 만큼의 내용은 아니었다.
차베스가 미국과 어떻게 맞짱을 뜨는지에 대한 글은 몇페이지에
지나지 않고,거의다가 베네수엘라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와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서의 행적과 그에 대한 글이었다.
조금더 차베스가 미국에 대한 저항정책들을 자세히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베네수엘라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아서
베네수엘라 역사에 대해 처음 접하는 나에게는 처음듣는 역사와
운동이름들로 어렵다거나 지루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너무 차베스를 높이 평가하고 긍정적인 글들로만 쓰여 있어서
그에대한 부정적인글이나 그의 부복한 부분에 대한 글의 부족으로
뭔가 객관성이 떨어지는느낌이 들었다.
저자들이 베네수엘라 연구모임이라 베네수엘라의 민중운동과 차베스에 대한
긍정적인 글로 마치 그가 아주 완벽한 지도자인것 처럼 묘사해서
너무 편향적인 느낌으로 이책을 읽고 베네수엘라와 차베스를 이해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차베스와 베네수엘라,남미의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알게 돼서 좋았다.
1800년대에 베네수엘라가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한후,스페인으로부터 많은
약탈을 당해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삶은 말할수 없이 피폐해 졌다.
이루 두고 볼수 없었던 베네수엘라의 국민적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국민적 봉기를
이끌어 베네수엘라는 독립을 한다.
이때,볼리비아,콜롬비아,페루,에콰도르,파나마도 함께 볼리바르에 의해 독립을
하게 된다.
이런 위대한 지도자 볼리바르를 어릴때부터 그의 인생의 표본을 삼고 ,베네수엘라를
민중들을 위한 나라로 만들려는 꿈을 키우는 차베스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그의 삶이 힘든것처럼 베네수엘라의 역사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여러번의
정권교체가 일어나지만,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정권은 들어서지 않아,일부 기득권층
만 부를 쌓고,빈곤층은 점점더 많아지며 빈부의 격차는 심해진다.
그와 함께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개발되면서 미국의 간섭으로 많은 돈과 석유가 미국
으로 나간다.
이로인해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점점 더 삶이 어려워지고,나라의 정권은 항상 부정축재와
잦은 정권교체로 불안정해 지며,차베스는 이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한다.
대통령이된 그는 국민들의 문맹퇴치를 위해 노력하고,쿠바와 동맹하여 쿠바의사와
베네수엘라의 석유을 교환하며 국민들에게 의료제도도 많이 향상시키며,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의 여러 정책들은 많은 성공을 이루어 베네수엘라의 경제등 여러분야가 발전을 이루고
있다.
또한 그는 반미노선을 걸으며,남미의 쿠바 피델 카스트로,볼리비아의 에모 모랄레스등과
동맹을 맺으며,볼리비아,콜롬비아등 남미의 연합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최근 남미 국가들에 잇따라 좌파 정권들이 집권하면서 사면초가에 몰린 미 제국주의에게
차베스의 시도들은 눈엣가시나 다름없다.그러나 단결된 남미의 민중들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르 ㄹ이겨내고 민중이 해방되는 참다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그 중심에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위치하고 있다.(p244)
21세기의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베네수엘라는 국민를 위주로 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미국식의 신자유주의가 아닌 ,그들식의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우리도 지금 미국에 의해 한미FTA나 평택미군기지 이전등 많은 부분에서 미국자본주의에
침략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그러므로 베네수엘라와 차베스의 민주주의를 배워서
우리에 맞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국민이 잘사는나라를 만들자는것이 이책의 저자들의
주장인것 같다.
맞다! 이책의 주장들은은 맞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역사에 대한 부분보다는
조금더 책의 제목처럼 차베스의 미국에 대항하는 정책이나 운동소개로 미국에 맞짱을
뜨는부분을 더 많이 자세히 소개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담으로 저자 베네수엘라 연구모임은 베네수엘라 사람이 아닌 우리나라의 베네수엘라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모임이었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책이나 혁명을 우리들도 배워서
미국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워질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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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 2007-02-23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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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혁명을 향하여...
옳고 그름 사이에서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많은 명제들 중에서도, '혁명같은 사회 변혁기에는 강력한 지도자의 독재가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은 대답하기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는 진부한 격언에 비춰보거나 스탈린 또는 모택동의 사례를 볼 때는, 혁명 후의 첫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강력한 지도력으로 일정 기간 밀어붙이지 않고서 혁명이란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즉, 이런 의문들 말이다. - 로베스피에르 없이 프랑스 혁명이 수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카스트로의 장기집권 없이 쿠바가 사회주의 혁명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조금 다른 의미일 수는 있어도,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필연적 또는 필수적인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이 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또 하나 답하기 어려운 명제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혁명 이후가 그 이전에 비해 풍요로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혁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또는 주변의 강력한 제국주의 때문인가?' 후진 농업국이었던 러시아가 혁명 이후에 엄청난 고도 성장을 이뤘고 결국 고도 산업국가가 되었던 것을 보면, 혁명이 민중을 배고프게 하기는 커녕 훨씬 풍요롭게 한다고 봐야 하겠지만, 혁명이후 두어 세대만에 벌어진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은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혁명의 비교열위를 나타낸다고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소련 체제는 혁명이 지향했던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라는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쿠바 경제가 낙후한 이유는? 쿠바가 진정한 사회주의를 이룩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같은 수퍼파워가 금수조처를 취해서 무역으로 인한 부의 창출이 거의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쿠바가 그나마 이만한 복지를 갖추고 버텨나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 생각된다. 생각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이런 가정도 가능하리라. '주위에 미국같은 훼방꾼이 없고 인접한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들과 사회주의적 무역이 가능했다면, 쿠바는 진정한 민중들의 지상낙원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법이란 없기에 역사적으로는 무의미한 추측이지만, 대단히 도발적이고 파괴력 있는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다.
차베스가 이끈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고서 느꼈던 당혹감은 바로 전술한 두 가지 명제가 내포하는 당혹감과 일맥상통한다. 그 당혹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차베스의 혁명은 초기의 강력하지만 건강한 권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차베스의 혁명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라는 막강한 도전을 꿋꿋이 이겨내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전자는 혁명 내적인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 후자는 혁명 외적인 방해세력에 대한 조바심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볼리바리안 혁명은 민중이 지켜낸 혁명이므로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은 최소화될 수 있으며, 정당성이 담보된 혁명은 중남미에 혁명의 도미노와 거대한 연대를 이루어 낼 것이므로 방해세력에 대한 조바심도 최소화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고 있다.
저자들의 자신만만한 주장처럼 볼리바리안 혁명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전술한 두 가지 명제에 대해 자유주의적 좌파의 견해, 즉 '외부로부터 교란받지 않는 진정한 사회주의적 혁명은 자본주의보다 비교우위에 있지만 (그것이 꼭 경제적인 효율성의 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님), 민중을 위한 사회주의적 독재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차베스의 혁명이 조금은 위태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차베스가 장기 집권 전략을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아옌데의 칠레 좌파 정권이 미국이 배후에 있는 쿠데타에 당했듯이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리바리안 혁명의 현재까지의 모습은 희망적이다. 국영석유회사(PDVSA) 수익을 바탕으로 한 '미션 로빈슨', '미션 리바스', '미션 수크레' 등의 빈민 교육 개혁, 그리고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라는 무상의료 제도의 도입이 보여주듯, 그 혁명은 매우 순수하게 민중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만명의 의료인을 지원해 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와 제 2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진행중인 에보 모랄레스의 볼리비아 등, 미국과 맞짱뜰 수 있는 좌파 연대가 점점 세를 불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베네수엘라가 지속가능하고 전염성 강한 진짜 혁명을 완수하여 내 가슴한켠에 도사리고 있는 의구심과 조바심을 일소해 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은 그러한 희망을 불순물없이 열정적으로 농축하여 독자의 가슴에 심어 놓는다. 그 순진하리만치 높은 순도가 우려스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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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인간 2007-07-19 공감(3)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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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차베스, 당신을 지지합니다!!

내가 가입해 있는 인터넷 동호회에는 재미삼아 자기소개를 올리는 게시판이 있다.
얼마 전에 나도 내 소개를 올렸는데
이 '자기소개'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
카페에서 만들어 놓은 스무 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다.
재미 위주의 가벼운 질문부터 조금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끔 하는 질문까지 골고루 있는데
그중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물음이 있었다.
한참 생각하다가 "누구를 존경해야 하나?" 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제 그 답을 바꿔야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차베스를 존경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감동의 전율을 느낄 만큼 차베스를 지지하게 되었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차베스는 이러한 기지를 내세우고 진정으로 민중에게 힘이 되는 개혁을 단행했다.
당연히 부자들과 기득권 세력은 반발했고 차베스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각종 작당모의를 했지만 차베스에게는 민중의 지지라는 강한 힘이 있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
그러나 그의 개혁이 미치는 영향은 베네수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남미 여러 나라가 영향을 받고, 미국이 타격을 받고 있다.
자국의 민중을 위한 정치, 이웃 나라 빈민의 복지까지 생각하는 외교정책은
정말 감동적이다.
책 뒤표지에 있는 손석춘의 추천사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에게 그런 대통령은 과연 불가능한가."
정말로 차베스 같은 대통령이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차베스 같은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고 차베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민중도 당신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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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불 2007-03-1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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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신문 국제면 등을 통해 베네주엘라 혁명에 관해 조금 알게 되었고, 관심도 갖고 있던 마당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입했다.
책을 처음 펼쳐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책의 내용보다 집필진을 비롯한 연구모임 참여자들의 면면이었다. 학문적 배경도,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인 이 사람들이 하나의 관심사로 모여(그것도 혁명이라는, 이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부를 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까지 펴냈다는 것이 놀라움, 열정, 희망,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여전히 좀 더 나은, 좀 더 인간다운 세상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곳곳에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에 대한 반성도......
책의 내용은 차베스가 추진해온 볼리바리안 혁명의 배경과 혁명 과정, 그리고 혁명의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베네주엘라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베네주엘라가 어떤 나라인지, 볼리바리안 혁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다. 그리고 국제정치라든지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차베스가 추진한 볼리바리안 혁명의 구체적 내용들-무상의료, 무상교육, 민중 중심의 정치 등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것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왜 요원한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변화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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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er-j 2006-12-13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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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라는 카리스마에 관한 예찬
원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한지라 얼마전만 해도 '베네수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까마득하게 몰랐었다. 언제나 신문에 등장하는 얘기는 다 비슷비슷해 보였으니까. 얼마 전 한겨레에서 특집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서로 다른 논지의 세 편의 글을 실었을때 그제서야 이런일이 있구나 했고 구체적으로 무슨 일들이 있던건지 궁금해졌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혁명'이. 지구 저편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걸까.
아. 핀트를 약간 잘못 잡은듯 싶다.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이라는 이름 때문에 덥석 집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베네수엘라'보다는 '차베스'개인의 카리스마에 더 무게를 둔 듯 하다. 물론 베네수엘라 역사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지만, 반 차베스 세력의 견제를 어떻게 물리쳐 왔는지, 그가 이끌어 온 정책의 성과를 보여주며 온통 차베스를 지지하는 글이다. 아 물론 차베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맹목적 비판'보다 더 무서운 게 '맹목적 지지'이기에. 가능한 문제점이나 부작용도 같이 분석해줬으면 훨씬 좋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처럼 베네수엘라를 '새로운 혁명주체'로 보는 긍정적 시각이 있는가 하면, 오세철 교수처럼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주변부 자본주의의 생존전술'로 일축하는 부정적 시각도 있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여기는 듯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무상의료'나 '무상교육'은 정말 좋은 길이긴 한데, 그 원천이 석유수입에 있다는 게 석연치 않다. 뭐 당분간은 그럴일 없겠지만 석유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충당할건가. 혹은 '석유'라는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 같은 '빈국'은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 과거 큰 회사들과 일부 특권층이 석유수입을 독점하던 때 보다는 훨씬 진보했지만 차베스의 정책이 모두 좋은점만 있는건 아닐거다. 김수행 교수의 지적처럼 차베스를 지지하는 노동조합단체조차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를 반대하는 정책은 반대하니까.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이 불가능할지라도 가능한 문제점을 검토하는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점이 결여되어 있다.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지원하고, 쿠바는 의료진을 제공하는 시스템은 한의사를 지망하는 내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소수이긴 하지만 '국경없는 의사회' 등 자신의 이익보다 '의료'의 사회성을 중요시 하는 의사들이 분명히 있다. 한편으로 의술에 약간의 사기를 더해 떼돈을 벌어들이는 의사역시 있다. 대부분의 의사는 매일 똑같은 진료와 일상을 반복하며 평범하게 살테지...10년 혹은 20년쯤 후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역동적이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에 남다를 애정을 보이시는 한 선생님은, 한번 사는 인생 3모작끔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자기도 몇 년 뒤에 라틴아메리카에 가서 총 잡을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너스레를 떠신다. 새파란 나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역동적이다. 88만원 세대라는 쓰라린 이름이, 한창 팍팍 튀어야 할 활력까지 빼앗아버렸나.
비록 베네수엘라 혁명이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들 어떠랴. 어쨌든 많은 민중의 삶이 달라졌는걸. 우리나라도 저주받은 88만원 세대를 구제할 새로운 대안이 나오길...아니지. 차베스가 혁명의 의지를 키워나간건 20대였는데. '환상의 카리스마'는 목빠지게 기다릴 일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맞는건데. '88만원 세대'에게 그런 희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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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7-10-2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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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거의)국내 최초의 대중 연구서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또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담백하고 쉽게 쉽게 쓰였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이 책에서 두드러진 장점이 없다. 베네수엘라의 간략한 근현대정치사와 혁명의 추이, 그리고 차베스의 사회주의 정책들을 제외하고는 이 책을 통해 베네수엘라 혁명을 깊이 있게 알기란 어렵다. 책을 읽어보면 저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폭 넓은 연구를 수행했다고 보긴 힘들다. 시기적으로 국내에서 베네수엘라에 관한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혁명의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조건과 현 정세에서의 주목할 만한 쟁점, 혁명의 난점과 한계들, 이러한 우리가 혁명에 대한 연구서에서 기대할 만한 내용들을 빠트리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이다.
또 다른 큰 단점은 정세를 둘러싼 모순과 갈등들이 너무 단순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미국의 초국적 자본, 국내 기득권 세력으로 이루어진 반동세력과 빈민, 농민, 원주민, 지식인, 학생 등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 세력의 대결로 과거와 현재의 모든 과정들이 설명된다. 현재 베네수엘라 혁명의 모든 난점과 한계들은 단결하지 못하는 남미 국가들과 국내의 보수반동 세력의 반격으로 환원되고 만다. 이런 단순한 구도로 인해 독자들이 베네수엘라 혁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혹은 기대)이 있겠지만 사실은 이로 인해 연구서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격을 상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단점은 이 책이 균형감을 잃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독자들에게 균형감을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는 것이다. 3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 동안 베네수엘라 혁명과 차베스의 정책에 대한 비판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나처럼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독자들은 '차베스는 비판바들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책의 객관성을 의심할 것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긍정적인 유산을 국내에 남기려는 의도가 있었겠지만 얼마나 효과적이었을지는 의심스럽다. 반대로 최대한 베네수엘라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베네수엘라 혁명 그 자체가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고 긍정적인 내용을 남기도록 접근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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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2009-12-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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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좌파의 유토피아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파산한 이유를 탐욕스러운 신제국주의 국가들과 미국의 탓으로만 돌리는 얼치기들이 많다. 하지만 베버는 정치인이 예견된 결과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저승으로 갔다고 해서 차베스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건 아니다. 물론 그럴듯해 보이는 이 책도 ^^ ㅋ
리뱅쓰리런 2017-09-1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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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가 임승수 : 저술로 세상과 ‘맞짱뜨는’ 글치 공학도
임승수는 저술가로서 여러 방면에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학부에선 전기공학, 대학원에선 반도체소자를 전공하고, 벤처 회사를 5년 동안 다녔다. 회사에 다닐 때 ‘양심적 직장인’이 되겠다며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2006년엔 진보 정치 활동에 전념하려고 회사를 관두고, 첫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를 냈다. 임승수는 이 책을 두고 “출판사 편집자가 거의 모든 문장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빨간펜으로 바로잡아 보내왔는데, 마치 북한의 혁명가극 <피바다> 같았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자본>좀 안다고 폼 잡으려고 낸 게 아닙니다. <자본>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목적 달성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문장이나 문체도 고민하지 않았죠. 제가 목적의식적으로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내 글엔 욕심이 없어요. 문장력이 달리고 글이 후즐근해도 <자본>만 이해시키면 되지 않나요. 거침없이 두려움없이 막 써요. 문학적 가치 같은 데는 심혈을 하나도 안 기울입니다.”
글 쓰는 태도, 지식을 대하는 태도에도 거침이 없다. 임승수는 지식을 하나의 ‘사치재’로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영 못마땅하다. 그는 이런 지식인들이 누구나 그것을 소유하지 못할 때 가치가 높아지는 ‘사치재’를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격’이 올라간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학계에서는 대중서를 쓰는 것에 대해 전혀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죠. 지식을 배타적으로 소유해 기득권을 유지하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식을 사치재로 여기고 그 사치재로 격이 높아진다고 믿는 건, 신과 배타적으로 접선할 수 있고 자신만이 전승지식을 가졌다고 자부한 ‘샤먼’의 현대 버전일 뿐입니다.”
그는 몇 가지 글쓰기 소신도 갖고 있다. 글은 무조건 ‘남’이 보라고 쓰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그저 써 내려가기만 해서는 ‘남’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소통이란 것이 그리 쉬웠다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나의 문장을 쓰더라도 철저하게 독자 중심으로 써야 해요. 그리고 용감하게 써야 합니다.”
임승수는 ‘문장론’이나 ‘글쓰기 방법론’으로 글에 접근하지 않는다. 글은 도구일 뿐이다. 사고와 사상을 풀어내는 도구말이다. 세상을 진보시키고,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글은 꼭 필요한 도구다. 하지만 도구의 사용법보다도 ‘사고와 사상’ 그 자체가 더욱더 중요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솔직담백함, 겸양의 유머, 삶의 충실함 그리고 사랑은 저자 임승수를 더 강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는 현재 자신의 삶을 최고품으로 여긴다. 그러면서 로또 1등에 당첨돼 주변 물건들은 죄다 최고급품으로 바꿔도 책 쓰고 강의하는 삶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 확언한다. 돈에 시간을 팔지 않으면서부터 행복해졌다는 임승수. 그에게 행복한 삶은 바로 ‘책 쓰기’다.




과학철학자 장대익 : 두 가지 렌즈로 세상을 보는 통섭 1세대.
허걱, 그러고보니 최재천 책은 읽어보았지만 장대익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이럴수가.
리처드 도킨스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대익이 한국 사회에서 하는 역할은 도킨스가 서구 사회에서 하는 역할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는 종교와의 다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때 그는 포털 사이트에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려는 종교인들의 움직임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었다. 장대익은 창조과학의 억지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칼 포퍼, 토머스 쿤 등을 인용해 과학의 정의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 과학자들은 대체로 종교를 건드리지 않는다. 건드려봐야 시끄럽고, 어떻게 해도 결판나지 않을 싸움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대익은 달랐다.
“피곤하죠. 하지만 저만이 할 수 있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지식인으로 살아감녀서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까요.”
장대익이 종교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그는 도킨스와 다르다. “종교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틀립니다. 하지만 사회의 공동체성이나 도덕성을 함양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도킨스는 종교를 박멸하자고 하지만, 장대익은 잘 길들이자고 주장한다. “종교가 그 자신의 증식을 위해 인간의 심신을 갈취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종교를 잘 순화시켜야 합니다.”
장대익은 지도교수였던 대니얼 데닛을 자신의 지적 우상으로 꼽는다. “데닛 교수는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최고의 인지철학자이며 용감한 지식인 운동가로, 과학과 철학, 문학, 예술 등 모든 지식을 동원해 화두를 풀고 소통하는 분입니다.”








진화심리학자 전중한 : 드라마, 예능을 소재로 진화를 이야기하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글을 잘 쓰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전중환은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에드워드 윌슨 같은 대중적 글쓰기에 능숙한 과학자들의 책을 자주 읽으면서 이들의 글쓰기를 따라 해야겠다고 노력했단다. 그러면서 대학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버스에게 들은 조언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바로 ‘Vigorous writing is concise’ (힘 있는 글쓰기는 간결하다.)라는 말이다.
한국 대중에게 진화심리학은 많이 생소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진화심리학은 쉽게 말해 ‘인간의 마음이 곧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의 마음은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를 피하게끔 진화한 것도, 헤겔이 말한 절대이성을 역사 속에서 실현하려고 디자인된 것도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디 수렵, 채집 환경에서 부패했거나 독이 있는 음식을 어떻게 피할 것인지, 잠자리를 어떻게 구할 것인지 같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게끔 만들어졌을 뿐이다.
복잡하고 정교한 마음이 어떠한 목적을 수행하게끔 자연선택이 다듬어졌는지를 이해하면 사회현상이나 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폭력적인데, 기존의 과학은 흔히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어서 그렇다는, ‘어떻게’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에 진화심리학은 왜 하필 남성에게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되어 여성보다 더 폭력적인지, 왜 여성에게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되는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는지 하면서 ‘왜’를 설명한다.
그는 현재 권력을 진화심리학 연구 대상에 올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예컨대 2013년 5월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파문이 커졌을 때 이남기 홍보수석은 긴급 브리핑을 갖고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에 전중환은 <한겨레>칼럼에 이런 말을 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먼저 배려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원칙은, 남성과 여성의 마음은 다르다는 진화적 인식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왜 청와대 홍보수석이 피해자는 제쳐두고 대통령에게 먼저 사과했는지는 진화의 미스터리다.”




문학평론가 정여울 : 삶의 모든 문학적인 순간을 포착하라.
세월호 이후, <성난얼굴로 돌아보라>의 기라성 같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나는 정여울의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그때부터 정여울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읽는다.
무엇보다 정여울은 글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내용이 있는가‘라고 물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행위의 도구일 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지고지순한 목적은 아니다. ’글을 쓰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게을리하면, 그 순간 글쓰기는 그 자체로 맹목적인 행위가 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글이 막히는 이유는 쓸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글 쓰는 과정에서 막힐 때도 있다. 그럴 때 그녀는 글을 오래오래 포기하지 않고 쓰기 위해 스스로를 즐겁게 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이 글만 다 쓰면 영화 보러 가야지’하는 식으로 글을 다 쓰고 나면 스스로에게 상을 줬는데, 지금은 포상 먼저 주고 글은 나중에 쓰는 무리수를 두고 있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막혔던 글쓰기가 풀여요.”
이처럼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다른 일에 몰두하고 나면, 막혔던 생각의 물꼬가 터진단다. 마찬가지로 조금 거리가 있는 분야의 논문을 읽거나, 엉뚱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고.












여성학자, 평화학연구자 정희진 : 주류적 시각을 거부하는 ‘소수자’를 위한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는 ‘주류적 시각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서울, 남성,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등의 정체성이 지배하는 한국 주류 사회의 관점을 끊임없이 상대화하는 글쓰기다. 그의 글이 한편으로 낯설면서도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희진은 ‘빤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빤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는 소재가 떠오르면 첫 번째로 그 소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들을 노트에 목록으로 만들어둔다. 예컨대 글의 소재가 복지라면 ‘복지가 늘면 게을러진다’, ‘복지가 늘어나면 성장이 둔화된다’같은 말들을 적어놓는다. 그런 다음 통념적인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세 번째로 자신이 몰랐던 것에 대해 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는 글은 낭비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거나 내가 변화할 수 있어야 해요. 이미 아는 걸 쓰면 글이 진부해져요. 그래서 저도 한국 사회의 통념이나 기존의 논쟁 구도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그는 몰상식한 보수를 혐오하는 꼭 그만큼, 관성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진보도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평화주의자가 징병제에 반대하면서 모병제를 대안으로 내세운다면, 정희진은 징병제에도 반대하지만 똑같이 모병제에도 반대한다. 실제로 그는 차라리 징병제가 낫다고 보는 쪽이다. 모병제를 시행할 경우 오히려 하위 계층 젊은이들을 군대에 격리시키는 제도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쓰면서 배워요. 쓰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죠. 애초의 생각이나 기존에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 곧 글쓰기예요. 이때 중요한 건 나 자신에게 새롭고 생소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사실이에요. 아는 것을 쓰면 망해요.”
글이 막히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생각의 출발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때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글쓰기는 곧 ‘생각’이라는 것이 정희진의 지론이다.
정희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며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 스스로 고통과 혼란 속에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어빈 얄롬, 앤드류 솔로몬, 올리버 색스, 후지타 쇼조, 도미야마 이치로, 이동진, 초기 조갑제, 장정일, 최승자, 노희경, 나혜석, 김혜리, 정성일, 허문영, 정한석, 프리모 레비, 카렌 암스트롱, 프로이트, 주디스 버틀러, 도나 해러웨이 등이 그가 좋아하는 저자 가운데 일부다.
“일하지 않고 예술만 즐기고 싶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열 받지 않아도 되는’ 영화와 소설을 읽으며 살고 싶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름다움만 소비하고 싶다.”
대개 독자는 저자 입장에서 읽기 마련이다. 정희진은 그런 독서를 배격한다. 그는 저자의 생각과 대결하기 위해 읽는다. 매순간 독자와 저자와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그가 책을 통해 어떤 생각을 했는가이다.




철학자 진태원 : 오역 때문에 철학자를 탓하는 현실을 바로잡다.
진태원이 공격적 비평을 하는 이유도 제대로 된 번역 텍스트를 읽고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역이 많은 번역본을 읽으면 ‘이게 무슨 철학자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같은 반응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가 가장 큰 문제라 여기는 부분이다. 철학자의 문제라기보다 오역 문제인데도 철학자를 탓하는 현실을 바로잡고 싶었다.
20년 중 7년 가까운 시간을 발리바르 번역에 매달린 것을 두고 인문학자 고병권도 매우 인상적으로 바라봤다. “한 사람을 번역하는 데 6~7년을 매달리는 진태원 선생의 공부를 보면서 천천히, 묵묵히 갈 길을 걸어가는 게 급진적 근본적으로 혁명을 이루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혁명은 빠른 발걸음이 아니라 단호한 발걸음이죠.”
책을 쓸 때는 주제부터 분명히 정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러한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할지 방법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 일을 할 만한 능력이나 시간이 되는지도 따져봐야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업이 자신에게 가치 있고 보람되는 일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냥 돈이나 좀 벌어보자, 이름이나 내보자는 식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교양 대중이나 다른 연구자들에게 동움이 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새롭게 구성한다는 목표, 또는 새로운 지적 탐구의 장을 열어본다는 태도를 가져야 좀 더 진지하게 전력을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데리다의 사회정치 철학도 그에게는 좋은 사유의 대상이다.
“데리다의 사회정치 철학은 ‘혁명 이후’, ‘해방 이후’를 지향합니다. 혁명이나 해방 같은 급진적 정치 운동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혁명과 해방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데리다는 묻고 있죠. 혁명과 해방을 이루면 전복한 것들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들, 즉 혁명과 해방 이전 지배자들이 행했던 폭력과 똑같은 폭력을 가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요. 해방, 혁명이란 것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혁명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새로운 지배자를 세우는 일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데리다 철학이 묻는 질문입니다. 저한테도 굉장히 중요한 화두지요.”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 역사학자들 가운데 서발턴 역사학을 주도한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나 파르타 차테르지도 훌륭한 작가로 꼽는다.
“이 사람들은 역사가임에도 철학이나 이론에 조예가 아주 깊죠. 이들은 서양 철학이나 현대 인문학 인물들을 광범위하게 논의하면서도 늘 인도의 구체적 현실을 염두에 두고, 인도 역사에 관한 서사나 사회학적 분석, 또는 인도에 관한 문학작품을 원용하여, 인도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서양 철학이나 이론을 새롭게 평가하고 재구성합니다. 추상적인 이론이나 개념만을 논의하기 쉬운 저 같은 철학도에게는 귀감이 되는 글쓰기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사는 게 가장 보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내 삶, 학문의 가장 큰 기준입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 정신분석에서 대중문화까지 아우르는 ‘매체중독자’
하지현이 가장 닮고 싶은 논픽션 작가는 김용석 영산대 교수다. 인문학적 성찰을 하되 대중문화와 우리 사회를 소재로 깊이와 넓이를 모두 아우르기 때문이다. 그는 김용석의 글에서 ‘이종격투기적 글쓰기’를 배웠다고 했다....복싱 선수라도 때론 발차기를 해야 하고, 레슬링 선수라도 펀치를 날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점에 어떤 테크닉을 쓸지 정확하게 아는 일이다. 물론 선수마다 주종목은 있겠지만, 그것 외에 나머지 종목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하지현은 ‘입식타격 하는 사람과 그라운드 기술을 쓰는 사람이 붙으면 어떻게 될까’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책들이 재미있고 그런 책을 지향한다.
책을 구입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일명 ‘333원칙’으로 30퍼센트는 전공과 관련해 공부가 될 책, 30퍼센트는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될 책, 30퍼센트는 개인적 흥미와 즐거움을 위한 책이다. 책을 구매할 때 이 세 가지가 골고루 섞이도록 안배한다. 그래야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 쓰는 사람에게는 다음 세 가지를 조언한다. 먼저 15장 분량으로 서문을 써보는 것이다. 책을 왜 쓰려고 하는지 스스로 정리가 된다. 두 번째는 비슷한 책을 참고하면서 22~25개 정도의 세부 목차를 작성하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한 권의 책을 쓸 만한 거리를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감을 잡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재미있을 챕터를 실제로 써보는 것이다. 자신이 글발이 있는지 없는지, 공저가 필요한 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가능하면 제목까지 정해보는 것이 좋다. 제목 자체가 책의 콘셉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현은 일본의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가 자신의 책상 앞에 붙여둔 메모를 기억해냈다. ‘어려운 것은 쉽게, 쉬운 것은 깊게, 깊은 것은 유쾌하게’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인간은 저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마련이에요. 미래에 대해 미리 10가지 이상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최악이 아닌 것만 확인하면 돼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고 최악을 피하면 돼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가 가장 재미있는 거예요.”








칼럼니스트 한윤형 : 청년 세대의 ‘웃픈’ 처지를 항변하다.
한윤형을 이해하는 데 단서가 될 만한 일화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서울대와 <조선일보>가 주최한 논술경시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은 그는, 당시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임을 밝히며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절할 정도로 ‘발칙’했다. 2001년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간 뒤 안티조선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고 민주노동당원이 되어 참여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가 집필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책은 <안티조선운동사>다. 팔릴 책도 아니면서 원고량이 2,200장에 육박했다. 원고지 600장을 썼는데도 진중권이 등장하지 않아 초반부터 지쳤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사장될 수 있겠다는 다급한 마음과, 우리 사회의 굉장히 중요한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어우러졌다. 하지만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가 없어 ‘2008년 촛불’이 지난 후 세상에 나왔다.
“ 제 글이 정서적 글쓰기는 아니라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판단하는 편입니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기사든 칼럼이든 닥치는 대로 찾아봅니다. 그 가운데 나를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글이 있으면 똑같은 주제로 글을 쓰지 않아요. 내 마음에 드는 글이 없을 때 글을 씁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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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10-10 공감 (49)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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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 독재자와 좌파 사이
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독재자와 좌파 사이
2026년 1월 3일 새벽에 미국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씨를 붙잡았다고 한다. 여러 글을 보면, 베네수엘라 마두로 씨를 ‘좌파 + 반미’로 여기기도 하는데, 마두로 씨는 ‘왼쪽(좌파)’이라 하기 어렵다. 허울만 ‘좌파 + 반미’일 뿐, 사람들을 짓밟고 죽이고 괴롭히고 우려내면서 나라를 수렁으로 빠뜨린 ‘망나니(독재자)’ 한 놈이라고 해야 맞다.
적잖은 이는 “어떻게 한 나라 우두머리(대통령)를 붙잡느냐?”고 따지네. 마두로 씨는 ‘대통령’이 아닌 ‘독재자’이다. 우리로 치면, ‘조선총독부 우두머리’라든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같은 놈이다. 여태 사람들을 잡아서 가두고 족치고 죽일 뿐 아니라, ‘소금밭종(염전노예)’이라든지 ‘맨손으로 갯벌 메우는 종’으로 부리던 숱한 만무방 가운데 하나가 베네수엘라 마두로 씨이다. 이이한테 ‘대통령’ 같은 이름을 그냥 붙여도 될까? 아니지 않은가?
비록 베네수엘라사람 스스로 만무방을 끌어내리지 못했더라도, 만무방은 끌어내려야 맞다. 적잖은 벼슬꾼은 만무방한테 붙어서 나라를 좀먹었다. 마두로 씨는 예전에 ‘버스일꾼’으로 지냈다지만, 벼슬자리와 우두머리를 꿰차며 저지른 짓이란 ‘일꾼(노동자)’하고는 그냥 멀 뿐 아니라, 망나니라고 해야 맞다. 만무방에 망나니로 뒹구는 놈과 무리가 “난 왼쪽인데?” 하고 목소리를 내면 ‘착한놈’으로 보아야 하나?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말썽꾼은 말썽꾼이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나라를 말아먹으면서 썩은짓을 저지르는 무리는 그저 썩은무리이다.
지난날 인도가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던 일을 떠올려 본다. 우리나라와 대만과 태평양 여러 섬나라가 드디어 굴레에서 벗어나던 일을 되새겨 본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가. 더구나 우리나라는 ‘중국 사대주의’라는 차꼬를 벗기까지 끔찍하게 오래 걸렸지만, 아직 중국 그늘에서 못 벗어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 독재정권 + 마약정권’ 탓에 시름시름 앓고 죽어야 하던 사람들 자리에서도 바라볼 일이지 않을까? 2026.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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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01-05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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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 서다. 차베스
남미가 이슈를 장식하고 있다. 미국과 맞짱을 뜬 지도자로 유명한 차베스가 숨을 거둔 후 남미 출신 프란치스코 신부가 교황이 되었다. 개인적인 사정상 독서에 많은 시간을 쏟지도 못하고, 다른 독서목록으로 여유가 없지만 이 때가 아니면 언제 남미를 들여다 볼까 하는 생각으로 일단 도서관에서 차베스와 관련된 책을 대출하였다.
雨香 2013-03-1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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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와 민중권력
차베스와 민중권력
한 혁명가의 죽음
지난 3월 5일, 우고 차베스가 암투병 끝에 서거했다. 그를 설명하는 최선의 말은 아마 차베스 본인이 한 말일 것이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빈민에게 권력을 주기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고, 모든 가난한 자들 즉, 베네수엘라 민중은 여기에 21세기 유일한 혁명으로 응답해왔다. “민중권력을 창조하라!” 이 선언이 바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혁명의 정신이다.
정치무대에서 차베스가 처음 등장한 해는 `92년이다. 육군 중령이었던 차베스는 부패정권을 쓰러트리기 위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때, 당장의 패배를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미래의 승리를 기약하는 당당한 모습을 통해서 당시 암담한 현실을 버텨내던 민중 사이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98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고, 이후 14년간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볼리바리안 혁명을 강력한 카리스마로 이끌어왔다. 이제 차베스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겠다. 대신 그가 마지막까지 헌신했던 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볼리바리안 혁명 속에서 차베스의 고결한 이상과 강한 의지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개혁
지구 반대편 남미대륙에 위치한 이 나라의 현재 국호는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이다. 차베스가 집권 후 곧바로 추진한 헌법 개정이 `99년 국민투표에서 통과됨으로써 국호가 바뀌었다. 새로운 헌법은 볼리바리안 헌법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볼리바리안”의 의미는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인 시몬 볼리바르를 뜻한다. 볼리바르는 1810,20년대에 스페인에 맞서 식민지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였다. 차베스가 볼리바르를 호명하며 불러내고자 했던 건 지배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정신이었다. 과거의 지배자가 스페인이었다면, 오늘날 남미대륙을 도탄으로 빠뜨리고 있는 건 미국이 전 세계에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이다.
베네수엘라에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건 경제파탄과 `89년의 IMF협상을 통해서였다. 당시의 페레스 정권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재정긴축과 사회보장 축소, 민영화, 시장 자유화 등을 합의해주었다. 이를 발표한 지 11일 만에 수도 카라카스에서 대중교통비가 두 배가 오른 것에 분노한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수천 명이 희생당했다. 이후 차베스가 집권하기까지 십여 년 동안 빈곤율이 64.2%까지 증가하고, 석유회사를 비롯한 기간산업이 민영화돼 물가가 치솟았다. 반면에 소수가 독차지한 부는 이를 틈타 더욱 커졌다.
신자유주의는 가뜩이나 불평등한 사회를 더 비참한 곳으로 전락시켰고, 구조적 모순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깊어진 것이 볼리바리안 혁명의 배경이다. 새 헌법을 제정한 이후 `01년에 차베스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경제와 사회의 복구를 목표로 49개 개혁법안을 통과시킨다. 이중 탄화수소법은 석유산업의 민영화를 중단시키고 국영화와 석유이익의 국민경제 환원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토지법은 개인 토지소유를 제한하고 정부가 사유의 미경작지와 휴경지, 도시 유휴지를 징발해 농민과 도시빈민에게 분배하려는 조치다. 또 협동조합법은 민중의 자조 노력에 협동조합이라는 공식지위를 부여해 정부의 지원을 보장해준다.
그런데 기존의 기득권세력은 개혁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고 군대와 경찰, 관료, 자본가, 언론, 어용노조가 총집결해 `02년에 군사쿠데타와 경제파업을 연달아 일으키며 차베스 정권을 전복시키려했다. 위기의 순간에 차베스를 구한 건 정치권력도 군대도 아니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민중이 새 헌법과 개혁을 수호했다. 그리고 이 순간 진정한 혁명이 시작된다.
민중권력으로의 급진화
볼리바리안 혁명의 특징은 위로부터의 개혁이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딪쳐 위기에 처하자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급진전됐다는 점이다. 민중은 반혁명세력으로부터 차베스와 헌법, 개혁을 수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과 미래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를 조직했고, 나아가 엘리트들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다. 차베스는 현명하게도 반혁명세력과 타협하지도, 민중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제한하지도 않았고, 민중의 요구에 발맞추어 함께 전진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역할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분출하는 요구들을 지원하고 조정하는 것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는 반혁명 시도에 언제든지 동참할 수 있는 국가관료와 변화할 뜻이 없는 관료기구에게 혁명을 맡길 수 없다는, 시행착오로 얻은 교훈이기도 했다.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료주의를 민중의 자치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민중권력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02년 겨울에 자본가들이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물자를 파괴하며 경제파업을 벌이자,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스스로 생산을 재개시켰다. 차베스는 이런 공장들을 국가가 인수하도록 해 노동자 투쟁을 지원해주었고, 국유기업에는 자주관리와 공동경영을 도입했다. 베네수엘라에서 기업과 경제의 사회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무력한 피고용인에서 일터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편, 비교적 소규모 단위에서 일반적인 협동조합은 백만 명이 넘는 농민과 노동자를 포함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성장은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의 성숙과 민중이 스스로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역량의 진전을 반영한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06년부터 조직된 공동체평의회이다. 공동체평의회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수백가구로 이루어지며, 해당 지역주민의 요구를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재정을 배분받아 집행까지 한다. 한마디로 동네 자치이고, 국가의 의사결정과 기능이 수 만개의 공동체평의회로 이전돼 국민 모두가 의원과 공무원이 되는, 차원이 다른 참여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이다. 물론 아직까지 공동체평의회가 기존의 국가를 대체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베네수엘라 민중이 전인미답의 한 발을 내딛은 건 틀림없다.
이중권력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지배계급의 재산, 관료기구 같은 구체제가 온존하면서도 민중권력이 등장해 활력을 키워왔다. 그동안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불평등도 완화돼왔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으로 민중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여기에는 차베스의 지렛대로서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다. 이런 맥락에서 차베스는 민중에게 새로운 사회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차베스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새로운 사회로 가는 문이 잠겼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문 밖으로 걸어 나와 더 전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제2의, 제3의 문들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국가에 모순적인 두 힘이 나란히 존재하는 이중권력의 상황이 언제까지고 평화롭게 계속될 수는 없다. 그동안 민중권력이라는 새로운 사회의 씨앗과 함께 낡은 사회와의 갈등과 투쟁의 여지도 더불어 커온 셈이고, 구체제는 파괴될지언정 스스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과 베네수엘라 민중의 승리를 응원한다.
더 읽을거리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베네수엘라 현장 활동가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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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e 2013-03-3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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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혁명, 신자유주의 넘어선 21C 사회주의?
"혁명은 미풍처럼 스며들고, 개혁은 폭풍처럼 몰아친다."
언뜻 생각해보면 '혁명'과 '개혁'의 위치가 뒤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를 읽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손석춘은 이 책의 발간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글을 시작한다.
"혁명의 시대. 누군가 지금을 혁명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핀잔받기 십상이다. 혁명의 꿈은 어느새 덧없는 열망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 그러나 냉철히 톺아볼 일이다. 과연 그 시기(=1980년대-인용자)가 혁명의 시대였을까. 아니다. 굳이 규정하자면 개혁의 시대였다."
그러면서 1980년대의 몇 가지 정황을 이야기하며, 먹물들 사이에 혁명의 담론만 넘쳐났지 노동자 농민에게는 기실 아무런 준비없이 부닥친 자연발생적 저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의 문제에 주목하자고 한다. 양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한미FTA 체결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농민, 악화되는 부익부빈익빈, 부시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을 보라고 한다. 일흔을 앞둔 소작 농민과 4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가 백주대낮에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맞아 숨지는 시대, 네오콘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평택 대추리 주민의 삶을 앗아가는 시대가 지금 여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데도 왜 혁명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1980년대의 논리가 민중의 삶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시대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이렇게 무르익어 가는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새로운 사회의 꿈이 영글어가는 시대에...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 필요한 시대라며 혁명을 준비하자고 한다. 언뜻 보면 이 무슨 철 지난 유행가도 아니고 생뚱맞은 소리인가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 인용문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릴 것이다.
"오해없기 바란다. 무장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시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무장 혁명의 시대는 지났다. 선거 혁명의 시대다.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거 혁명이 옳은 노선이다. 비단 브라질의 룰라가 보기는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보라. 미국과 맞서 꿋꿋하게 베네수엘라 경제를 혁명적으로 재건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혁명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차베스의 실험은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시각차가 존재할 것이다. 과연 '선거혁명'이 유일하게 옳은 노선인지, '선거혁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002년에도 '얼빠진' 인간들, 노무현 당선을 일러 '선거혁명'이라고 하던 얼빠진 인간들이 어디 한둘 이었던가? 아마도 2007년 12월에도 '선거혁명'의 구호가 난무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는 베네수엘라 혁명의 전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분석하고 있다. 먼저 배네수엘라 혁명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1980년대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가 신자유주의 10년의 폐해 속에서 싹튼 민중의 저항에서 그 싹을 찾아낸다. 또한 차베스가 우발적 쿠데타의 실패 이후 10년이 지나 합법적 선거에 참여하여 승리하는 배경에는 40년 동안 정당정치를 통해 안정화된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적 정치지형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선거를 통한 합법적 집권 이후 반혁명 세력에 맞서 진정한 '민중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제헌의회', '볼리바리안 헌법' 등이 차베스 집권 이후 행해진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면,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차베스를 군기지에 감금했을 때 보여준 민중들의 '응징'은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 과정은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의렴풋이 기억하는 2002년 그 봄의 며칠 동안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들려왔던 뉴스의 세세한 내막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칫 1973년 칠레 아옌데 정부의 재판이 된 채 잊혀진 혁명이 될 수도 있었던 과정을 헤쳐나오는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용기는 부러움 그 자체다. 차베스가 집권 이후 3년 동안 인민들에게 준 것을 인민들은 잊지 않고 3일 만에 차베스에게 보답해준 것이었다. 이것은 베네수엘라 선거혁명의 핵심을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선거때만 되면 '주둥이'로만 '선거혁명'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허왕된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의 10년을 거치면서 내용 없는, 알맹이 없는 '개혁'의 허황됨은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내용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내용 이전에 그 내용을 담보하는 '이념'이 전제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무슨 거창한 '이데올로기'로서의 이념이 아니라 모든 정책의 기초가 되고 그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가 드러나는 이념적 지향 같은 것.
이외에도 진정한 참여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볼리바리안 클럽'의 형성과 활동, 공동경영 제도와 협동조합의 확산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적 정책들이 정착되는 과정, 미국의 대외정책에 맞서는 대안적 중남미 지역네트워크 건설 등을 8편의 글들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주목은 사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브라질의 룰라 당선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우리 나라 진보세력도 주목하고 연대를 표방했지만, 이상하게도 베네수엘라 만큼은 우리의 관심에서 비켜 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행스러운지는 몰라도 작년부터인가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차베스 혁명에 대해서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란 자가 자신을 지지해준 정파의 비위를 맞추느라 '혁명열사릉 참배' 같은 소리나 하고, 무슨 2단계니 3단계니 하는 통일방안을 연출하느라 카메라 앞에서 폼이나 잡고 있는 현실에서는. 언제나 정신 차릴런지...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역시 이 책과 비슷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솔직히 중복이라는 느낌도 없진 않다. 아마도 이 책임은 늦게 나온 새사연 쪽에 있을 것이다. 아래 글은 한겨레 신문에서 연재하고 있는 "우리 시대 지식논쟁"에서 인용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넘어선 21C 사회주의가 뜬다
우리시대 지식 논쟁
출처:인터넷한겨레(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39138.html) 2007/09/30

»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① 왜 대안인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실험은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가 ‘우리시대 지식논쟁’의 두 번째 주제다.
반미노선과 기간산업 국유화, 석유판매 대금의 극빈층 지원 등 차베스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지향과 판이하다는 점에서 대안 모델의 한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 63%의 지지율로 재선된 차베스는 이런 높은 국민적 인기를 기반 삼아, 그가 명명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 정책들을 강도 높게 밀어붙이고 있다.
높은 주목도만큼이나 평가의 진폭도 넓다.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시키고 있다는 적극적인 긍정론에서부터 재분배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있다는 비판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가 연임제한 규정을 없애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의구심을 사는 한 요인이다.
이번 논쟁에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참여한다. 김 센터장은 대다수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자치위원회가 민중참여 권력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제도'의 심화 확산, '협동조합적 기업'을 통한 15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등을 들며 베네수엘라 사회가 ‘실행을 통한 학습’이라는 경로를 통해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유럽 모델을 한국 사회 대안으로 검토하던 진보학계에서도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기 시작했다. 직접 베네수엘라를 찾는 학계 인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베네수엘라의 무엇이 이들의 주목을 받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체제를 생생한 현실 속에서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고통이 10년쯤 될 무렵인 1998년, 56.2% 지지율로 처음 대통령에 오른 우고 차베스는 이듬해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헌법’을 제정하면서 새 세기의 문을 열고 헌법에 근거한 합법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그 후 지금까지,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의 쿠데타, 2002년 12월 석 달에 걸친 자본 파업, 2004년 8월 대통령 소환투표로 이어지는 반혁명 세력의 도전을 극복한다. 지난해 12월 63%의 지지율로 다시 재선된 차베스는 주요 기간산업 국유화, 새로운 정당 건설, 국가권력 재편과 헌법 개정 추진을 비롯한 강도 높은 개혁프로그램을 현재 실시하고 있다.
혁명이 일정한 궤도에 오른 2005년,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지향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처음으로 밝힌다. 20세기 사회주의를 국가사회주의라고 규정하면서 그는, 21세기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재창조하자고 주장했다. 역사의 무덤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새로운 모습으로 남미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실험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혁명이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면서도, 대안모델로 선뜻 수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장벽은 차베스가 ‘연임제한 철폐’를 하면서 독재자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차베스는 지난 8월에 헌법조항 총 350조 가운데 33개 주요 조항을 수정하는 개헌안을 공식적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에 현재의 연임제한 조항 철폐를 제안한 대목이 분명히 들어 있다. 차베스도 독재자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니냐는 의문은 당연히 제시될 수 있다. 그런데 개헌안에는 다음의 조항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 70조에서 “민중들이 직접 통치권을 행사하는 경험, 공직 선출, 국민투표, 민중협의, 대통령을 포함한 중앙선출직 관료의 국민소환, 국민발안, 그리고 공개집회를 통해 민중들의 참여와 주인정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하는 내용을 추가하자는 차베스의 제안이 그것이다. “주권은 민중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자본가들의 반발 맞서 초강수 개혁
빈곤의 늪 지나 4년째 두자릿수 성장
대통령 연임 따른 독재 우려도
직선·소환제 등 민중 참여로 근거 잃어
물론 이를 연임제한 철폐를 무마하기 위한 장식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이 아닌 베네수엘라의 실제를 보자. 현재 2700만 베네수엘라 국민의 대다수를 포괄하는 2만여 개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아래로부터 민중참여 권력으로 창설되어 작동되고 있다. 2004년 소환투표가 이미 실행된 사례를 볼 때 대통령소환 역시 한갓 장식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 대통령 견제수단이다. 유신독재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민투표를 악용해서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사실 자체가 아니라, 유신헌법에서 또 하나의 국민적 투표라고 할 수 있는 직선제를 폐기하고 체육관 선거로 대치한 데 있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대통령 직선은 물론이고 지금의 우리 헌법에도 없는 대통령 국민소환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경험은 우리에게 연임제한을 민주주의의 절대 조건으로 각인시키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기제가 아니다. 연임제한 철폐를 문제 삼지 않는 베네수엘라 전문가들이 “프랑스나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영국 같은 나라들도 제한 없는 재선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도 독재국가인가” 하고 반문하는 것이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도 절실한 것은 국민의 실질적 참여와 정치기제에 대한 국민의 직접적 통제이다. 참여정부 아래에서 민주주의의 유린은 어디서 벌어졌는가. 다수 국민의 참여 과정도 없고, 국민의 의사와도 다르게 강행된 국회의 일방적 대통령 탄핵,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민주주의는 사실상 유린되었다. 이런 면에서, 지금 베네수엘라는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이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주민자치위원회 실험에서, 아래로부터의 새 정당 건설 실험에서, 기업의 노동자 공동경영 제도에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이 지점이다.
정치와 함께 베네수엘라 모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분야는 바로 경제 시스템이다. 2007년 한국 대선도 경제대통령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절박한 양극화나 비정규직화를 구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파격적이면서도 현실성 있는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한국 사회 양극화 현상을 능가하는 빈곤과 침체의 경제를 물려받은 이가 차베스였다. 그는 쿠데타와 자본파업이라는 시련을 극복한 2003년 이후, 빈곤층과 실업률을 꾸준히 줄이면서도, 고성장의 중국에 견줄 10% 수준의 경제성장을 4년째 이어오고 있다. 기업 내부도 주목할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 참여하는 경영 확산되고
수년간 일자리 150만개 창출
도그마 아닌 생생한 현실 속 변화
미국식 경제만 좇는 한국에 교훈
기업경영에서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 제도’가 실험·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3만 개 벤처기업 육성을 고창하는 사이, 비록 첨단 벤처는 아니지만 다양한 생산적 산업분야에서 ‘협동조합적 기업’이 베네수엘라에서 수년 간 18만 개 이상 만들어지고 있다. 15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했음은 물론이다. 자영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대략 30만 개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더욱이 이번 개헌안에는 하루 법정 노동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는 조처가 포함되어 있다. “정규적이고 생산적인 고용을 늘리고 비공식 무문 경제와 실업률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개정 목적이다.
물론 이런 실험이 고전적 사회주의의 국유화라는 잣대로 보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제도는 ‘사적 소유를 포함해서 다양한 독립적인 경제단위가 공존하는 일종의 혼합경제 시스템’이다. 과거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실행을 통한 학습’이라는 현실적 경로를 통해서 경제구조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차베스 정부가 전혀 미국과의 교역량을 줄이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차베스의 반신자유주의는 실제가 아닌 레토릭(수사) 수준이라고 폄하하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반신자유주의적인 경제개혁을 착실히 수행하면서도 세계경제와의 교류를 폭력적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있는 지점은 거꾸로 높게 평가받아야 할 지점이다.
반신자유주의가 실제가 아닌 레토릭으로 그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집단과 진보학계일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아닌 방식으로 실제적인 국민 삶을 한발자국씩 전진시키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대안은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다.

»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2006년 세계사회포럼에서 차베스는, “우리는 다른 나라 모델을 복사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를 따라 모델을 복사하는 것은 20세기 사회주의의 큰 잘못 중에 하나였다. 자주성과 다양성, 모든 공동체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통해 21세기에 새로운 경로를 여행할 사회주의 배너를 다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경제는 미국식 모델을 복사해온 과정이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역시 미국식 모델에 더욱 가깝게 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경험이 진정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 모델을 ‘복사’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김병권씨는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1964년생이며 대안사회의 주체 형성과 중소기업 역할 재규정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공저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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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오랜꿈 2007-09-3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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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남미 대륙 북동부에 위치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콜롬비아.브라질.가이아나와 북쪽으로는 카리브 해와 접해 있고, 산유량은 세계 5위인만큼 석유자원이 풍부해서 20세기 초반부터 미국에게 아주 중요한 나라, 그러나 그 이익을 국민에게 돌리기는커녕 미국에게 퍼다 나른 베네수엘라 기득권층, 때문에 국민의 대다수가 극빈층인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나라 베네수엘라.
현재 안으로는 민중 스스로 자신들을 위한 삶을 개척하는 혁명이 진행중이고 밖으로는 남미 통합의 주도 국가, 반미의 선봉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네수엘라, 그 중심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서있다. 역사의식과 민중애 강한 군인으로 젊은 시절부터 동료장교들을 모아 조직을 만들고 새로운 베네수엘라를 만들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고민한 차베스 대통령과 베네수엘라의 오늘날을 살펴본다.
목차
들어가기 : 21세기 사회주의를 위한 발걸음
1부 볼리바리안 혁명 이전의 베네수엘라
1 몇 가지 키워드로 보는 베네수엘라 역사
2 IMF가 불러온 민생고와 민중의 분노, 카라카소
2부 차베스, 혁명을 준비하다
3 진보적 군인들, 혁명을 준비하다
4 카라카소, 쿠데타를 위한 일보전진
5 혁명적 군인의 애국적 봉기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로사 엄마’와의 추억>>
3부 차베스, 개혁을 시작하다
6 선거 전략으로 승리하다
7 제헌의회, 선거 공간을 혁명 공간으로
8 볼리바리안 헌법과 정치개혁
9 49개 개혁법안과 기회주의 세력의 이탈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보수적 군대에서 혁명을 꿈꾸다>>
4부 반대파의 공격과 민중들의 혁명 수호
10 반대파의 첫 번째 공격, 2002년 4월 쿠데타
11 반대파의 두 번째 공격, 2002년 11월 경제 쿠데타
12 반대파의 세 번째 공격, 2004년 8월 소환투표
13 볼리바리안 서클, 혁명을 수호하는 민중조직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민중들과 함께 꾸는 꿈>>
5부 가난을 끝장내기 위해
14 신자유주의, 민중을 벼랑끝으로 몰다
15 차베스 정부의 복지정책
16 베네수엘라와 석유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민중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은?>>
6부 미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넘어 21세기 사회주의로
17 중남미 통합과 새로운 국제 관계
18 석유를 통한 차베스의 국제 정치
19 차베스, 미 제국주의와 맞짱뜨다
20 21세기 사회주의로 나가는 베네수엘라
21 거세지는 혁명의 불꽃, 볼리비아
<<차베스가 말하는 차베스 : 피델, 영웅에서 동지로>>
맺는말
중남미, 베네수엘라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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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차베스가 대선에서 당선된 1998년은 유가 하락이 가장 극심했던 해였다. 1차 석유파동이 있기 전인 1973년 이후 가장 낮은 유가를 기록했다. 1배럴당 3.19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는데, 이는 1리터에 2센트에 불과한 가격이었다. OPEC는 석유 할당량을 어기며 국제 석유시작에 많은 양의 석유를 공급하고 있었고, 러시아나 멕시코와 같은 OPEC 산유국들도 생산량을 늘리고 있어 국제 유가는 나날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OPEC의 할당량을 가장 무시하고 석유를 수출하던 나라는 미국의 입김이 가장 심하게 작용하는 베네수엘라였다.
차베스는 집권 첫 해를 국제 유가를 정상화하는 데 투자했다. OPEC 회원국과 그 밖의 석유 수출국을 방문했고 2000년 카라카스에서 OPEC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OPEC 회원국과의 신뢰를 회복하고 결속력을 강화하여 국제 유가를 배럴당 22달러에서 28달러 사이로 유지하는 것에 합의했다. 그 결과 1985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유가는 정상 수준인 27달러를 회복했다. - 본문 203~204쪽에서 접기
P. 247 나는 매일 더욱 확신하게 되며 내 마음 속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습니다. 이전부터 수많은 지식인들이 말해왔듯이, 우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만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강요하는 방식의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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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6일 첫 모임을 시작했으며, 우고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혁명을 함께 연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 http://club.cyworld.com/chamworld.
최근작 :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 총 2종 (모두보기)
임승수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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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에서 학사와 석사를 취득한 후 한동안 직장 생활을 했지만, 삼십 대 초반에 퇴직하고 20년째 인문 사회 분야 전업 작가로 생존 중인 대한민국 희귀종이다. 학창 시절 마르크스 『자본론』을 읽고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에 맞닥뜨려 결국에는 전업 작가가 되었다. 글치 공학도에서 전업 작가로 거듭난 후 20여 년 동안 글쓰기 내공을 쌓았다. 무림 비급을 후대에 전하는 사파 고수의 마음으로, 이 책에 글쓰기 비급을 담았다.
지은 책으로는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오십에 읽는 자본론』,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와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와인과 페어링』, 『피아노에 몹시 진심입니다만,』,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글쓰기 클리닉』, 『세상을 바꾼 예술 작품들』(공저) 등이 있다. 아마추어 피아노 연주자이자 와인 애호가이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오십에 읽는 자본론>,<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오십에 읽는 자본론> … 총 52종 (모두보기)
SNS : http://facebook.com/cham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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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의 실험
죽음정치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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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을 파산하게 만든 정신나간 대통령. 불의에 항거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정의는 아니다. 이 책 쓴 사람이나 읽은 사람이나 이제는 창피한 걸 알아야 할 듯
곰곰 2016-12-08 공감 (1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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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아직 팔리냐? ㅋㅋㅋ
aeges 2019-10-2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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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주엘라 원유가 질이 안좋아 고유가 일때만 돈이됨, 저유가면 생산비가 판매비를 초과 → 외국 정유회사들이 투자를 안하니 정유시설 낡음 → 정유 단가 더 상승 → 나라 돈이 없음 → 산업이 전무해 휴지까지 수입해 쓰는데 사올 돈 없음 → 식량난 생필품난
리뱅쓰리런 2017-09-1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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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란 대통령을 조금도 알지 못했는데 우연히 임승수의 방송을 듣고 흥미가 생겨서 사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통령이 일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음 좋겠다.
더선 2014-07-04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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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읽은게 후회되는 chavez의 개혁일대기 !
lonewolf 2011-09-2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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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때문에 망한 나라 베네수엘라.... 망한 나라 망하게 한 지도자의 면면을 찬양하는 도서.... 이런 도서가 아직도 팔리고 있다니... 신기하다.... 칭찬일색의 서평도 신기하다..... 뼛속까지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는 못말려... 반성은 없다..... 보통사람이라면 쥐구멍이라도 찾아야할 듯한데
hyung0302 2023-05-1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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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에게 권력을~! 21세기 사회주의를 향해~!"
zikomo 2011-01-07 공감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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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가 YES라 말할 때, NO라고 할 수 있는 용기.
hoyson0326 2011-04-23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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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대자본으로부터 베네수엘라를 구한 영웅 차베스에 대한 책!
fx-max 2012-11-01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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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진행된 세계적 개꿀잼 몰카 ㅋㅋ
hok 2025-08-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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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를 꿈꾼 한 혁명가를 생각하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요즘 재밌는 책 한권을 읽었다. 그 책은 바로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로 유명한 임승수씨가 공동집필한 저서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책이다. 사회주의자가 되고 난 이후 베네수엘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베네수엘라에 대해서 깊게 공부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고, 진보적인 정책들을 통해 사회주의를 달성하고자 했었던 것 정도만 단편적으로 알았다. 즉,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이들의 정치 상황을 자세히는 몰랐다고 할 수 있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인물은 바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인 우고 차베스(Hugo Chavez)다. 우고 차베스는 진보적인 정책들을 통해, 베네수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실제로 차베스는 집권 초기 여러 성과들을 만들어 냈고, 성과들은 고무적이었다. 차베스는 베네수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과거 빈부격차가 극심하던 베네수엘라를 억압받고 착취 받던 이들에게 보다 더 많은 권력을 부여하고자 했고, 빈민들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고 병원을 세웠으며, 문맹 퇴치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차베스는 과거 굶주리던 빈민들을 위해 무상으로 급식을 제공했고, 집이 없는 이들을 위해 주택을 건설했으며, 또 건설한 주택들을 가난한 인민들에게 분배했다. 차베스의 정책은 분명 진보적인 정책이었고, 자본주의적 양식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민주주의적 성격을 띈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차베스는 빈민 계급이 권력을 가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기업의 이익이 아닌 공적인 이익을 추구했으며, 생산자가 일하고 노력한 만큼 받을 수 있는 평등한 생산관계를 유지한 사회를 추구했다. 그는 소위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구호 아래 민주주의를 추구했지만, 소위 미국에서 주장하는 위선이 가득 찬 민주주의는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제국주의로 포장한 미국식 민주주의에 맞서 저항했다.
1998년 선거를 통해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이 된 차베스는 집권 시점부터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주의 세력의 사악하고 위협적인 공격을 받았다. 미국에게 있어서 차베스라는 존재는 자신들의 사적 이익을 방해하는 존재였고, 따라서 축출되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미국은 베네수엘라 내에 있는 우익 부르주아지 세력들을 지원하여, 차베스 정부를 내부에서 흔들고자 했다. 이런 수법은 과거나 현재나 미국이 항상 이용하는 방법이다. 과테말라의 아르벤스, 브라질의 골라르트, 칠레의 아옌데 등이 그렇게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를 당했다. 2002년에만 해도 차베스를 축출하려는 두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실제로 차베스 또한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자들의 염원과는 달리, 베네수엘라 민중은 차베스편이었다. 그래서 미국과 우익 세력들이 온갖 흑색선전과 여론조작을 해도 쿠데타는 실패로 끝났다.
민중들이 차베스를 지키고 수호한 이유는 자명했다. 그것은 차베스가 가난한 인민들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했기 때문이다. 차베스 집권 이전에는 베네수엘라 빈민들과 인종차별을 받던 원주민들을 위해, 헌신하고 그들을 위한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한 지도자는 없었다. 차베스가 집권한 이후 베네수엘라 사회에서 차별받던 원주민들도 ‘권리’라는 것이 생겼고, 공장과 사회에는 인민들의 의사가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시스템이 도입됐다. 탐욕과 이윤밖에 모르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닌, 집단과 공동 그리고 대다수 민중을 위한 진보적인 사회가 자리 잡았다. 과거 아주 극소수만 소유하던 집을 빈민들이 소유하게 됐고, 치료비가 없어서 못 가던 병원을 공짜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이런 혁명적인 변화들은 차베스가 대다수 인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책을 읽으면서, 우고 차베스에 대한 존경심이 더 생겼다. 사회주의를 향한 그의 원대한 꿈과 정의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순수하다. 1959년 혁명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더불어,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의 사회주의 승리를 향한 발걸음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이들의 혁명과 진보가 아름다운 건, 인간적이고 당연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기업과 자본가 계급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가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이런 가치를 부정하고, 범죄와 학살 그리고 폭력을 동반하는 주체가 바로 미국이다. 이런 미국에 대한 환상을 가진 대다수의 한국 사람들을 보고만 있으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일각에서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실패했다고 말한다. 물론 베네수엘라는 가난하다. 무엇보다 미국의 경제제재는 지금도 해제되지 않았다. 미국은 차베스가 집권한 시점부터 현재까지 무려 20년간 베네수엘라에게 살인적인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 문제도 그 원인을 따지고 보면, 자본과 부, 권력, 달러를 독점한 기업들이 우익들을 동원해 베네수엘라의 자주적인 시스템에 사보타주를 가해서 생긴 일이지,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민중이 의도적으로 망치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의 경제제재와 사보타주 및 테러를 당하는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보지 않고, 그저 서방이 주장하는 말말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왜곡된 신념이 진실의 눈을 가린 것이다.
차베스는 2013년에 사망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까지 미제국주의에 맞선 투쟁과 사회주의 승리를 향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았다. 비록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베네수엘라는 사회주의로 가기 위한 그 과도기적 단계에 있다. 현재는 그의 후임자인 니콜라스 마두로가 지도자로 있다. 우고 차베스와 피델 카스트로 그리고 에보 모랄레스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승리를 향한 라틴 아메리카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전 인류가 COVID-19를 겪으며, 자본주의 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의 말대로 사회주의를 선택하지 않은 자본주의 국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물론 자본주의 러시아 보다 자본주의 미국의 책임이 훨씬 더 크긴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야만주의가 불러온 결과다.
20세기가 끝나는 시점에서 21세기에 사회주의를 시도한 베네수엘라의 붉은 별 우고 차베스, 그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사회주의를 향한 라틴 아메리카의 전진은 COVID-19라는 위기 속에서 지속되고 있다. 자본주의가 야만주의라는 사실은 미국을 통해서 숱하게 봐왔다. 20세기에는 베트남 21세기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까지 미국이 일으킨 침략전쟁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표현대로 제국주의 세력이 보여준 야만주의 그 자체다. 그 침략전쟁으로 돈을 벌고 이윤을 축적하는 것도 미제 그 자체다.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경제적 이득을 보는 건 결과적으로 미국일 것이다. 2013년 유로마이단 색깔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탈산업화가 가속화되며, 미국과 서방의 기업들만 이득을 보았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야만주의고, 제국주의의며 신식민주의를 추구한다. 따라서 인류가 선택해야할 길은 사회주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지만, 19세기 마르크스가 분석한 모순은 본질적으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는 적잖은 영감을 주는 사례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제에 맞서 사회주의를 이룩하고자 했던 우고 차베스의 말을 인용하겠다.
나는 매일 더욱 확신하게 되며 내 마음 속에는 한 점의 의심도 없습니다. 이전부터 수많은 지식인들이 말해왔듯이, 우리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통해서만이 자본주의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민주주의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강요하는 방식의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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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2-03-03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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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좀 있지만... 읽어둘 필요도.
우고 차베스라는 인물, 보수적인 신문들에 나오는 것처럼 정말 '또라이'인가. 그렇게 또라이라면 영국의 '내놓은 좌파'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은 왜 차베스가 런던에 찾아오자 버선발로 환영하면서 차베스의 에너지 공급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던 걸까. 왜 남미에서는 차베스의 말발이 여기저기 먹히는 걸까.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의 '좌파 대통령'들이 차베스와 나란히 어깨 걸고 있는 것을 보면 분명 그쪽 동네에서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이는데 말이다.
차베스라는 사람에 대한 반응은, 요즘 들어선, 거의 카스트로 못잖게 갈리는 것 같다. 스스로 "예수와 카스트로가 나의 모델"이라 말하는 차베스, "이제는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라면서 시간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듯 좌충우돌하는 이단아. 차베스를 둘러싼 '진실'은 무엇이며, 베네수엘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어떤 것이고,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띤 것일까. 아니, 대체 남미 산유국에서 벌어지는 소동들이 '역사적인 의미'를 띤 사건들이 맞기나 한 것일까.
어느 틈에 차베스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도 알음알음 나와 있는 걸 보니 차베스에 대한 관심이 한국에서도 높아지긴 한 모양이다. 한때는 맑스-레닌주의가, 한때는 주체사상이, 한때는 룰라의 노동자운동이, 한때는 리비아의 녹색혁명론이 '대안'이라는 이름을 걸치고 사람들을 혹하게 한 적 있었다.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론을 비롯해 앞서 언급한 무슨무슨 주의-사상-론(論)들이 모두 같은 등급에 속하는 것들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차베스라는 인물,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베네수엘라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산유국이라는 사실을 보태고 뺀다 해도 말이다. 바야흐로 차베스라는 유령이 지구를 휩쓸고 있는 것일까.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책은 앞서 읽은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21세기 혁명’을 좀 길게 늘여 쓴 책 같은 느낌이 든다. 우고 차베스라는 논란 많은 인물을 ‘21세기 새로운 사회주의 혁명가’로 칭송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찬양 일변도로 쓰고 있는데, 그 부분은 사실 좀 놀랍다. 한국에서 베네수엘라의 ‘혁명적 상황’에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자료를 분석해 이런 책을 내놓은 것은 훌륭한데, 이렇게 ‘무비판적’으로 마치 예전 1980년대 대학생들이 북한 칭찬했듯 차베스 칭찬해놓은 것은 좀 뜻밖이다. 이러다가 베네수엘라 잘못되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차베스의 ‘실험’은 분명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신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말을 붙일만한 구석도 있다. 석유를 바탕으로 국민들 잘살게 하고 매판자본가들 몰아내고 미국에 맞서고... 아무튼 차베스라는 사람을 어떤 의미에서든 재평가하게 해준 것은 분명하다. 그동안에 외신들 보면서 차베스가 하는 일들, 기간산업 국유화를 비롯한 반자본주의적인 행보들과 사회주의 선언, 반미 발언 같은 것들이 너무 돌출적이고 쇼(show) 같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차베스의 ‘진심’이란 것이 의심스러웠다는 얘기다. 이 책에 나온 차베스의 모습은, 적어도 어떤 진심을 가지고 일관되게 일을 추진해가는 그런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점을 ‘혁명가’라고 부르려면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군부 쿠데타 문제나 포퓰리즘적인 측면, 오로지 자원에 기댄 오지랖 넓은 외교와 ‘민주적 독재’ 같은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저자들은 차베스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던 것과 이후 군부를 끌어들이기 위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똑똑한 행동이었다’는 식으로 칭찬하고 심지어 “베네수엘라 군부는 원래 애국적인 전통이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이 부분은 좀 섬?하다. 얼마전 차베스는 대통령 권한을 엄청나게 강화하는 법안들을 통과시켰는데 ‘고이면 썩는다’고 하는 이치가 베네수엘라에서만은 비껴가기를 바래야 하는 것인지.
그래도 아무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기뻤다. 책 읽으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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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03-26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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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바리안 혁명의 이해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인물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차베스이다. 악의 축에 끼지는 않았지만, 그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정도는 악의 축에 포함된 국가들 보다 덜 한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가 우리에게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북한이나 중동이 아니라, 우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라틴 아메리카의 대통령이라는 것 때문에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을 뿐이다.
차베스가 하고 있는 일은 실로 엄청나다.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국가인 쿠바의 카스트로를 공공연히 찬양하고, 쿠바에 싼 가력으로 석유를 제공한다. 뿐만아니라 각종 국제 회의에서 미국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과감함을 보인다. 심지어 부시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회의에서도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비정부기구를 통해서 미국의 빈민들에도 싼 가격으로 석유를 공급한다. 미국의 자손심을 건드리는 행동이 아닐수 없다. 게다가 미국을 포함한 다국적 기업의 석유시설을 국유화하고, 세금을 인상하고, 석유생산에 관한 로열티를 인상했다.
그런데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베네수엘라를 공격하지 않고 있는 것은 군사적인 부담때문이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군가력은 이라크에 비할바가 못된다. 이 책에 그 규모가 정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행간의 의미로 추정해보면 병력이 수만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튀는 행보를 참아내는 것은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그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그는 군인출신이다. 군인의 신분으로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하고 감옥에 구금되었던 인물이다. 사면으로 풀려난 그는 정치활동을 벌인다. 그리고 대통령선거에서 앞도적인 표차로 당선된다. 물론 그가 얻은 압도적인 표는 반대 진영의 선거보이콧 때문이다. 베네수엘라에는 그를 지지하고 응호하는 수많은 빈민층의 지지자들이 있는 반면에, 그의 노선을 반대하고 아예 선거자체를 보이콧 하는 절반에 가까운 반대자들이 있다. 이 책에서 기득권자라고 표현되는 그들의 힘은 예상외로 강하다.
국영석유회사를 국유화하는 가운데 수개월간 계속된 총파업과 거리를 가득메운 거대한 인파의 모습을 우리는 국내에도 방영된 뉴스를 통해서 접한 적이 있다. 그 거대한 인파는 친 차베스 시위대뿐 아니라, 반 차베스 시위대의 숫자가 엄청난 것을 보여준다. 통상적으로 보수파의 시위에 강제적으로 동원하지 않고서는 많은 인원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베네수엘라 내에는 그에 대한 반대파들의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실제로 쿠데타 세력에 의해 권력을 찬탈당하고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었다. 그를 지지하는 시위대와, 군부내에 그를 지지하는 세력의 노력에 의해 극적으로 다시 권좌에 복귀한 그는 군대를 그가 시도하는 볼리바리안 개혁의 중추적인 세력으로 놓고 있는 것 같다. 그 자신이 군인 출신으로 쿠데타를 시도한바가 있으며, 그가 권력을 잡는데 가장 큰 역활을 한 것도 '의식화된' 군인들이었다. 그가 군생활을 하면서 군부내에 광범위한 친 차베스 개혁파를 심어놓은 때문이다.
군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다. 그가 추진하는 볼리바리안 혁명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의해 늘어난 빈민들을 구제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석유회사를 국유화하고, OPEC와 함께 석유가를 높이는데 성공한 그는 그곳에서 나오는 막대한 재원을 빈민들을 구제하는데 사용한다. 학교와 병원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빈민들을 위해 생필품을 반값에 파는 가게들을 만들었다. 이러한 그의 정책은 강력한 친 차베스 세력을 만드는 한편, 그의 반대파들로 부터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차베스를 보는 그러한 양면의 시각중에서 철저하게 친 차베스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 그래서 약간의 논리적 비약이 보인다. 선거를 보이콧하던 그가 대선에 참여하게 된 과정과 선거에 당선되도록 선거운동을 한 과정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 그가 빈민을 구제하는 볼리바리안 개혁을 추진하면서, 베네수엘라의 경제전반에 관해서는 어떤 정책을 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다. 그저 차베스가 가져온 변화의 긍정적인 면만으로 책을 가득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척 반가웠고, 또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든다. 라틴아메리카는 그 면적과 나라의 수 뿐만이 아니라, 21 세기의 중유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너무나 적어 불만스러웠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연구한 결과물이 책을 한권만들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수가 없다. 이 책을 바탕으로 더 나은 연구물들이 나올것을 기대한다. 무척이나 고무적이고 흥미로운 독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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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하늘 2007-01-11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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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민중봉기
차베스에 대한 기사를 뉴스에서 많이 접했다.
그래서,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란 제목을 보고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기대한 만큼의 내용은 아니었다.
차베스가 미국과 어떻게 맞짱을 뜨는지에 대한 글은 몇페이지에
지나지 않고,거의다가 베네수엘라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와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서의 행적과 그에 대한 글이었다.
조금더 차베스가 미국에 대한 저항정책들을 자세히 다루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베네수엘라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아서
베네수엘라 역사에 대해 처음 접하는 나에게는 처음듣는 역사와
운동이름들로 어렵다거나 지루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너무 차베스를 높이 평가하고 긍정적인 글들로만 쓰여 있어서
그에대한 부정적인글이나 그의 부복한 부분에 대한 글의 부족으로
뭔가 객관성이 떨어지는느낌이 들었다.
저자들이 베네수엘라 연구모임이라 베네수엘라의 민중운동과 차베스에 대한
긍정적인 글로 마치 그가 아주 완벽한 지도자인것 처럼 묘사해서
너무 편향적인 느낌으로 이책을 읽고 베네수엘라와 차베스를 이해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차베스와 베네수엘라,남미의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알게 돼서 좋았다.
1800년대에 베네수엘라가 스페인의 식민지로 전락한후,스페인으로부터 많은
약탈을 당해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삶은 말할수 없이 피폐해 졌다.
이루 두고 볼수 없었던 베네수엘라의 국민적 영웅 시몬 볼리바르가 국민적 봉기를
이끌어 베네수엘라는 독립을 한다.
이때,볼리비아,콜롬비아,페루,에콰도르,파나마도 함께 볼리바르에 의해 독립을
하게 된다.
이런 위대한 지도자 볼리바르를 어릴때부터 그의 인생의 표본을 삼고 ,베네수엘라를
민중들을 위한 나라로 만들려는 꿈을 키우는 차베스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다.
그의 삶이 힘든것처럼 베네수엘라의 역사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여러번의
정권교체가 일어나지만,진정으로 국민들을 위한 정권은 들어서지 않아,일부 기득권층
만 부를 쌓고,빈곤층은 점점더 많아지며 빈부의 격차는 심해진다.
그와 함께 베네수엘라의 석유가 개발되면서 미국의 간섭으로 많은 돈과 석유가 미국
으로 나간다.
이로인해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점점 더 삶이 어려워지고,나라의 정권은 항상 부정축재와
잦은 정권교체로 불안정해 지며,차베스는 이런 나라를 구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한다.
대통령이된 그는 국민들의 문맹퇴치를 위해 노력하고,쿠바와 동맹하여 쿠바의사와
베네수엘라의 석유을 교환하며 국민들에게 의료제도도 많이 향상시키며,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의 여러 정책들은 많은 성공을 이루어 베네수엘라의 경제등 여러분야가 발전을 이루고
있다.
또한 그는 반미노선을 걸으며,남미의 쿠바 피델 카스트로,볼리비아의 에모 모랄레스등과
동맹을 맺으며,볼리비아,콜롬비아등 남미의 연합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최근 남미 국가들에 잇따라 좌파 정권들이 집권하면서 사면초가에 몰린 미 제국주의에게
차베스의 시도들은 눈엣가시나 다름없다.그러나 단결된 남미의 민중들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르 ㄹ이겨내고 민중이 해방되는 참다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그 중심에는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위치하고 있다.(p244)
21세기의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베네수엘라는 국민를 위주로 하는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미국식의 신자유주의가 아닌 ,그들식의 민주주의를 주장한다.
우리도 지금 미국에 의해 한미FTA나 평택미군기지 이전등 많은 부분에서 미국자본주의에
침략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그러므로 베네수엘라와 차베스의 민주주의를 배워서
우리에 맞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국민이 잘사는나라를 만들자는것이 이책의 저자들의
주장인것 같다.
맞다! 이책의 주장들은은 맞다고 생각한다.하지만, 베네수엘라의 역사에 대한 부분보다는
조금더 책의 제목처럼 차베스의 미국에 대항하는 정책이나 운동소개로 미국에 맞짱을
뜨는부분을 더 많이 자세히 소개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담으로 저자 베네수엘라 연구모임은 베네수엘라 사람이 아닌 우리나라의 베네수엘라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연구모임이었다.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책이나 혁명을 우리들도 배워서
미국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워질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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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향 2007-02-23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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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혁명을 향하여...
옳고 그름 사이에서 나를 고민하게 만드는 많은 명제들 중에서도, '혁명같은 사회 변혁기에는 강력한 지도자의 독재가 필요한가?'와 같은 질문은 대답하기 가장 어려운 축에 속한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는 진부한 격언에 비춰보거나 스탈린 또는 모택동의 사례를 볼 때는, 혁명 후의 첫단추를 잘 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강력한 지도력으로 일정 기간 밀어붙이지 않고서 혁명이란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즉, 이런 의문들 말이다. - 로베스피에르 없이 프랑스 혁명이 수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카스트로의 장기집권 없이 쿠바가 사회주의 혁명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조금 다른 의미일 수는 있어도,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필연적 또는 필수적인가?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이 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한가?
또 하나 답하기 어려운 명제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혁명 이후가 그 이전에 비해 풍요로와 보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혁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또는 주변의 강력한 제국주의 때문인가?' 후진 농업국이었던 러시아가 혁명 이후에 엄청난 고도 성장을 이뤘고 결국 고도 산업국가가 되었던 것을 보면, 혁명이 민중을 배고프게 하기는 커녕 훨씬 풍요롭게 한다고 봐야 하겠지만, 혁명이후 두어 세대만에 벌어진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은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 혁명의 비교열위를 나타낸다고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소련 체제는 혁명이 지향했던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라는 또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쿠바 경제가 낙후한 이유는? 쿠바가 진정한 사회주의를 이룩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같은 수퍼파워가 금수조처를 취해서 무역으로 인한 부의 창출이 거의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쿠바가 그나마 이만한 복지를 갖추고 버텨나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 생각된다. 생각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이런 가정도 가능하리라. '주위에 미국같은 훼방꾼이 없고 인접한 중남미 대부분의 나라들과 사회주의적 무역이 가능했다면, 쿠바는 진정한 민중들의 지상낙원이 되었을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법이란 없기에 역사적으로는 무의미한 추측이지만, 대단히 도발적이고 파괴력 있는 정치적 수사일 수는 있다.
차베스가 이끈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리안 혁명'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을 읽고서 느꼈던 당혹감은 바로 전술한 두 가지 명제가 내포하는 당혹감과 일맥상통한다. 그 당혹감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낳는다. '차베스의 혁명은 초기의 강력하지만 건강한 권력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차베스의 혁명은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라는 막강한 도전을 꿋꿋이 이겨내고 지속성을 가질 수 있을까?' 전자는 혁명 내적인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 후자는 혁명 외적인 방해세력에 대한 조바심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볼리바리안 혁명은 민중이 지켜낸 혁명이므로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은 최소화될 수 있으며, 정당성이 담보된 혁명은 중남미에 혁명의 도미노와 거대한 연대를 이루어 낼 것이므로 방해세력에 대한 조바심도 최소화될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고 있다.
저자들의 자신만만한 주장처럼 볼리바리안 혁명은 지속가능한 것일까? 전술한 두 가지 명제에 대해 자유주의적 좌파의 견해, 즉 '외부로부터 교란받지 않는 진정한 사회주의적 혁명은 자본주의보다 비교우위에 있지만 (그것이 꼭 경제적인 효율성의 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님), 민중을 위한 사회주의적 독재라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차베스의 혁명이 조금은 위태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차베스가 장기 집권 전략을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며, 또 한편으로는, 아옌데의 칠레 좌파 정권이 미국이 배후에 있는 쿠데타에 당했듯이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리바리안 혁명의 현재까지의 모습은 희망적이다. 국영석유회사(PDVSA) 수익을 바탕으로 한 '미션 로빈슨', '미션 리바스', '미션 수크레' 등의 빈민 교육 개혁, 그리고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라는 무상의료 제도의 도입이 보여주듯, 그 혁명은 매우 순수하게 민중지향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2만명의 의료인을 지원해 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와 제 2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진행중인 에보 모랄레스의 볼리비아 등, 미국과 맞짱뜰 수 있는 좌파 연대가 점점 세를 불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베네수엘라가 지속가능하고 전염성 강한 진짜 혁명을 완수하여 내 가슴한켠에 도사리고 있는 의구심과 조바심을 일소해 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책은 그러한 희망을 불순물없이 열정적으로 농축하여 독자의 가슴에 심어 놓는다. 그 순진하리만치 높은 순도가 우려스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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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인간 2007-07-19 공감(3)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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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차베스, 당신을 지지합니다!!
내가 가입해 있는 인터넷 동호회에는 재미삼아 자기소개를 올리는 게시판이 있다.
얼마 전에 나도 내 소개를 올렸는데
이 '자기소개'는 자유로운 형식으로 올리는 게 아니라
카페에서 만들어 놓은 스무 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다.
재미 위주의 가벼운 질문부터 조금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끔 하는 질문까지 골고루 있는데
그중에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는 물음이 있었다.
한참 생각하다가 "누구를 존경해야 하나?" 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제 그 답을 바꿔야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차베스를 존경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감동의 전율을 느낄 만큼 차베스를 지지하게 되었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
차베스는 이러한 기지를 내세우고 진정으로 민중에게 힘이 되는 개혁을 단행했다.
당연히 부자들과 기득권 세력은 반발했고 차베스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각종 작당모의를 했지만 차베스에게는 민중의 지지라는 강한 힘이 있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우고 차베스!
그러나 그의 개혁이 미치는 영향은 베네수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중남미 여러 나라가 영향을 받고, 미국이 타격을 받고 있다.
자국의 민중을 위한 정치, 이웃 나라 빈민의 복지까지 생각하는 외교정책은
정말 감동적이다.
책 뒤표지에 있는 손석춘의 추천사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에게 그런 대통령은 과연 불가능한가."
정말로 차베스 같은 대통령이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차베스 같은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
우고 차베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민중도 당신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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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불 2007-03-1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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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신문 국제면 등을 통해 베네주엘라 혁명에 관해 조금 알게 되었고, 관심도 갖고 있던 마당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구입했다.
책을 처음 펼쳐들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책의 내용보다 집필진을 비롯한 연구모임 참여자들의 면면이었다. 학문적 배경도,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인 이 사람들이 하나의 관심사로 모여(그것도 혁명이라는, 이 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부를 하고, 그 결과물을 책으로까지 펴냈다는 것이 놀라움, 열정, 희망,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여전히 좀 더 나은, 좀 더 인간다운 세상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 곳곳에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 자신에 대한 반성도......
책의 내용은 차베스가 추진해온 볼리바리안 혁명의 배경과 혁명 과정, 그리고 혁명의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베네주엘라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베네주엘라가 어떤 나라인지, 볼리바리안 혁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쉽고 재미있게 쓰여졌다. 그리고 국제정치라든지 새로운 사회 시스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차베스가 추진한 볼리바리안 혁명의 구체적 내용들-무상의료, 무상교육, 민중 중심의 정치 등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것들-이 한국 사회에서는 왜 요원한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변화는 그저 오는 것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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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er-j 2006-12-13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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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라는 카리스마에 관한 예찬
원체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한지라 얼마전만 해도 '베네수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까마득하게 몰랐었다. 언제나 신문에 등장하는 얘기는 다 비슷비슷해 보였으니까. 얼마 전 한겨레에서 특집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서로 다른 논지의 세 편의 글을 실었을때 그제서야 이런일이 있구나 했고 구체적으로 무슨 일들이 있던건지 궁금해졌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혁명'이. 지구 저편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걸까.
아. 핀트를 약간 잘못 잡은듯 싶다. '베네수엘라 혁명 연구모임'이라는 이름 때문에 덥석 집었는데. 엄밀히 말하면 '베네수엘라'보다는 '차베스'개인의 카리스마에 더 무게를 둔 듯 하다. 물론 베네수엘라 역사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설명해주지만, 반 차베스 세력의 견제를 어떻게 물리쳐 왔는지, 그가 이끌어 온 정책의 성과를 보여주며 온통 차베스를 지지하는 글이다. 아 물론 차베스가 잘못했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맹목적 비판'보다 더 무서운 게 '맹목적 지지'이기에. 가능한 문제점이나 부작용도 같이 분석해줬으면 훨씬 좋았을거란 생각이 든다.
'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처럼 베네수엘라를 '새로운 혁명주체'로 보는 긍정적 시각이 있는가 하면, 오세철 교수처럼 '미국의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주변부 자본주의의 생존전술'로 일축하는 부정적 시각도 있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여기는 듯 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무상의료'나 '무상교육'은 정말 좋은 길이긴 한데, 그 원천이 석유수입에 있다는 게 석연치 않다. 뭐 당분간은 그럴일 없겠지만 석유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충당할건가. 혹은 '석유'라는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 같은 '빈국'은 어떻게 해야 할지? 분명 과거 큰 회사들과 일부 특권층이 석유수입을 독점하던 때 보다는 훨씬 진보했지만 차베스의 정책이 모두 좋은점만 있는건 아닐거다. 김수행 교수의 지적처럼 차베스를 지지하는 노동조합단체조차 노동조합의 경영참가를 반대하는 정책은 반대하니까.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책이 불가능할지라도 가능한 문제점을 검토하는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점이 결여되어 있다.
베네수엘라가 석유를 지원하고, 쿠바는 의료진을 제공하는 시스템은 한의사를 지망하는 내게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소수이긴 하지만 '국경없는 의사회' 등 자신의 이익보다 '의료'의 사회성을 중요시 하는 의사들이 분명히 있다. 한편으로 의술에 약간의 사기를 더해 떼돈을 벌어들이는 의사역시 있다. 대부분의 의사는 매일 똑같은 진료와 일상을 반복하며 평범하게 살테지...10년 혹은 20년쯤 후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역동적이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에 남다를 애정을 보이시는 한 선생님은, 한번 사는 인생 3모작끔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자기도 몇 년 뒤에 라틴아메리카에 가서 총 잡을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너스레를 떠신다. 새파란 나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역동적이다. 88만원 세대라는 쓰라린 이름이, 한창 팍팍 튀어야 할 활력까지 빼앗아버렸나.
비록 베네수엘라 혁명이 '진정한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들 어떠랴. 어쨌든 많은 민중의 삶이 달라졌는걸. 우리나라도 저주받은 88만원 세대를 구제할 새로운 대안이 나오길...아니지. 차베스가 혁명의 의지를 키워나간건 20대였는데. '환상의 카리스마'는 목빠지게 기다릴 일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맞는건데. '88만원 세대'에게 그런 희망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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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7-10-2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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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거의)국내 최초의 대중 연구서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또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담백하고 쉽게 쉽게 쓰였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는 이 책에서 두드러진 장점이 없다. 베네수엘라의 간략한 근현대정치사와 혁명의 추이, 그리고 차베스의 사회주의 정책들을 제외하고는 이 책을 통해 베네수엘라 혁명을 깊이 있게 알기란 어렵다. 책을 읽어보면 저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폭 넓은 연구를 수행했다고 보긴 힘들다. 시기적으로 국내에서 베네수엘라에 관한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혁명의 객관적이고 물질적인 조건과 현 정세에서의 주목할 만한 쟁점, 혁명의 난점과 한계들, 이러한 우리가 혁명에 대한 연구서에서 기대할 만한 내용들을 빠트리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아쉬운 점이다.
또 다른 큰 단점은 정세를 둘러싼 모순과 갈등들이 너무 단순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미국의 초국적 자본, 국내 기득권 세력으로 이루어진 반동세력과 빈민, 농민, 원주민, 지식인, 학생 등을 중심으로 하는 혁명 세력의 대결로 과거와 현재의 모든 과정들이 설명된다. 현재 베네수엘라 혁명의 모든 난점과 한계들은 단결하지 못하는 남미 국가들과 국내의 보수반동 세력의 반격으로 환원되고 만다. 이런 단순한 구도로 인해 독자들이 베네수엘라 혁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혹은 기대)이 있겠지만 사실은 이로 인해 연구서가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격을 상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단점은 이 책이 균형감을 잃고 있거나, 아니면 적어도 독자들에게 균형감을 읽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쉽다는 것이다. 3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 동안 베네수엘라 혁명과 차베스의 정책에 대한 비판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나처럼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독자들은 '차베스는 비판바들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잘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책의 객관성을 의심할 것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긍정적인 유산을 국내에 남기려는 의도가 있었겠지만 얼마나 효과적이었을지는 의심스럽다. 반대로 최대한 베네수엘라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베네수엘라 혁명 그 자체가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고 긍정적인 내용을 남기도록 접근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0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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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2009-12-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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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치기 좌파의 유토피아
산유국 베네수엘라가 파산한 이유를 탐욕스러운 신제국주의 국가들과 미국의 탓으로만 돌리는 얼치기들이 많다. 하지만 베버는 정치인이 예견된 결과에 대한 책임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결과에도 책임을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저승으로 갔다고 해서 차베스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건 아니다. 물론 그럴듯해 보이는 이 책도 ^^ ㅋ
리뱅쓰리런 2017-09-1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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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곧 `생각`이다
저술가 임승수 : 저술로 세상과 ‘맞짱뜨는’ 글치 공학도
임승수는 저술가로서 여러 방면에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학부에선 전기공학, 대학원에선 반도체소자를 전공하고, 벤처 회사를 5년 동안 다녔다. 회사에 다닐 때 ‘양심적 직장인’이 되겠다며 민주노동당에 입당했다. 2006년엔 진보 정치 활동에 전념하려고 회사를 관두고, 첫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를 냈다. 임승수는 이 책을 두고 “출판사 편집자가 거의 모든 문장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빨간펜으로 바로잡아 보내왔는데, 마치 북한의 혁명가극 <피바다> 같았어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자본>좀 안다고 폼 잡으려고 낸 게 아닙니다. <자본>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목적 달성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문장이나 문체도 고민하지 않았죠. 제가 목적의식적으로 살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내 글엔 욕심이 없어요. 문장력이 달리고 글이 후즐근해도 <자본>만 이해시키면 되지 않나요. 거침없이 두려움없이 막 써요. 문학적 가치 같은 데는 심혈을 하나도 안 기울입니다.”
글 쓰는 태도, 지식을 대하는 태도에도 거침이 없다. 임승수는 지식을 하나의 ‘사치재’로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영 못마땅하다. 그는 이런 지식인들이 누구나 그것을 소유하지 못할 때 가치가 높아지는 ‘사치재’를 소유함으로써 스스로 ‘격’이 올라간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거침없이 말한다.
“학계에서는 대중서를 쓰는 것에 대해 전혀 ‘실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죠. 지식을 배타적으로 소유해 기득권을 유지하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식을 사치재로 여기고 그 사치재로 격이 높아진다고 믿는 건, 신과 배타적으로 접선할 수 있고 자신만이 전승지식을 가졌다고 자부한 ‘샤먼’의 현대 버전일 뿐입니다.”
그는 몇 가지 글쓰기 소신도 갖고 있다. 글은 무조건 ‘남’이 보라고 쓰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해하는 것을 그저 써 내려가기만 해서는 ‘남’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소통이란 것이 그리 쉬웠다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나의 문장을 쓰더라도 철저하게 독자 중심으로 써야 해요. 그리고 용감하게 써야 합니다.”
임승수는 ‘문장론’이나 ‘글쓰기 방법론’으로 글에 접근하지 않는다. 글은 도구일 뿐이다. 사고와 사상을 풀어내는 도구말이다. 세상을 진보시키고,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글은 꼭 필요한 도구다. 하지만 도구의 사용법보다도 ‘사고와 사상’ 그 자체가 더욱더 중요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솔직담백함, 겸양의 유머, 삶의 충실함 그리고 사랑은 저자 임승수를 더 강하게 만드는 요소다. 그는 현재 자신의 삶을 최고품으로 여긴다. 그러면서 로또 1등에 당첨돼 주변 물건들은 죄다 최고급품으로 바꿔도 책 쓰고 강의하는 삶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 확언한다. 돈에 시간을 팔지 않으면서부터 행복해졌다는 임승수. 그에게 행복한 삶은 바로 ‘책 쓰기’다.
과학철학자 장대익 : 두 가지 렌즈로 세상을 보는 통섭 1세대.
허걱, 그러고보니 최재천 책은 읽어보았지만 장대익 책은 읽어본 적이 없다. 이럴수가.
리처드 도킨스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대익이 한국 사회에서 하는 역할은 도킨스가 서구 사회에서 하는 역할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는 종교와의 다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때 그는 포털 사이트에 창조과학을 비판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려는 종교인들의 움직임에 일침을 가하는 내용이었다. 장대익은 창조과학의 억지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칼 포퍼, 토머스 쿤 등을 인용해 과학의 정의에 대해 설명했다.
한국 과학자들은 대체로 종교를 건드리지 않는다. 건드려봐야 시끄럽고, 어떻게 해도 결판나지 않을 싸움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대익은 달랐다.
“피곤하죠. 하지만 저만이 할 수 있는 싸움이기도 합니다. 지식인으로 살아감녀서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까요.”
장대익이 종교의 역할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그는 도킨스와 다르다. “종교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틀립니다. 하지만 사회의 공동체성이나 도덕성을 함양하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도킨스는 종교를 박멸하자고 하지만, 장대익은 잘 길들이자고 주장한다. “종교가 그 자신의 증식을 위해 인간의 심신을 갈취하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종교를 잘 순화시켜야 합니다.”
장대익은 지도교수였던 대니얼 데닛을 자신의 지적 우상으로 꼽는다. “데닛 교수는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최고의 인지철학자이며 용감한 지식인 운동가로, 과학과 철학, 문학, 예술 등 모든 지식을 동원해 화두를 풀고 소통하는 분입니다.”
진화심리학자 전중한 : 드라마, 예능을 소재로 진화를 이야기하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 글을 잘 쓰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자, 전중환은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에드워드 윌슨 같은 대중적 글쓰기에 능숙한 과학자들의 책을 자주 읽으면서 이들의 글쓰기를 따라 해야겠다고 노력했단다. 그러면서 대학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버스에게 들은 조언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바로 ‘Vigorous writing is concise’ (힘 있는 글쓰기는 간결하다.)라는 말이다.
한국 대중에게 진화심리학은 많이 생소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진화심리학은 쉽게 말해 ‘인간의 마음이 곧 진화의 산물’이다. 인간의 마음은 단순히 쾌락을 추구하고 불쾌를 피하게끔 진화한 것도, 헤겔이 말한 절대이성을 역사 속에서 실현하려고 디자인된 것도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본디 수렵, 채집 환경에서 부패했거나 독이 있는 음식을 어떻게 피할 것인지, 잠자리를 어떻게 구할 것인지 같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게끔 만들어졌을 뿐이다.
복잡하고 정교한 마음이 어떠한 목적을 수행하게끔 자연선택이 다듬어졌는지를 이해하면 사회현상이나 제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폭력적인데, 기존의 과학은 흔히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어서 그렇다는, ‘어떻게’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반면에 진화심리학은 왜 하필 남성에게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되어 여성보다 더 폭력적인지, 왜 여성에게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이 분비되는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는지 하면서 ‘왜’를 설명한다.
그는 현재 권력을 진화심리학 연구 대상에 올리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예컨대 2013년 5월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파문이 커졌을 때 이남기 홍보수석은 긴급 브리핑을 갖고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이에 전중환은 <한겨레>칼럼에 이런 말을 했다.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먼저 배려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원칙은, 남성과 여성의 마음은 다르다는 진화적 인식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왜 청와대 홍보수석이 피해자는 제쳐두고 대통령에게 먼저 사과했는지는 진화의 미스터리다.”
문학평론가 정여울 : 삶의 모든 문학적인 순간을 포착하라.
세월호 이후, <성난얼굴로 돌아보라>의 기라성 같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 나는 정여울의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그때부터 정여울 책은 눈에 띄는 대로 읽는다.
무엇보다 정여울은 글 자체가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왜 이렇게 힘든 것일까‘라고 생각하는 것 보다는 ’내가 정말로 쓰고 싶은 내용이 있는가‘라고 물어보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행위의 도구일 뿐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지고지순한 목적은 아니다. ’글을 쓰면서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게을리하면, 그 순간 글쓰기는 그 자체로 맹목적인 행위가 되어버릴 위험이 크다. 글이 막히는 이유는 쓸 내용이 없는 상태에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글 쓰는 과정에서 막힐 때도 있다. 그럴 때 그녀는 글을 오래오래 포기하지 않고 쓰기 위해 스스로를 즐겁게 해주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이 글만 다 쓰면 영화 보러 가야지’하는 식으로 글을 다 쓰고 나면 스스로에게 상을 줬는데, 지금은 포상 먼저 주고 글은 나중에 쓰는 무리수를 두고 있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막혔던 글쓰기가 풀여요.”
이처럼 글쓰기와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다른 일에 몰두하고 나면, 막혔던 생각의 물꼬가 터진단다. 마찬가지로 조금 거리가 있는 분야의 논문을 읽거나, 엉뚱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고.
여성학자, 평화학연구자 정희진 : 주류적 시각을 거부하는 ‘소수자’를 위한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는 ‘주류적 시각으로부터의 탈피’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테면 ‘서울, 남성, 중산층, 비장애인, 이성애’등의 정체성이 지배하는 한국 주류 사회의 관점을 끊임없이 상대화하는 글쓰기다. 그의 글이 한편으로 낯설면서도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희진은 ‘빤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빤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그는 소재가 떠오르면 첫 번째로 그 소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들을 노트에 목록으로 만들어둔다. 예컨대 글의 소재가 복지라면 ‘복지가 늘면 게을러진다’, ‘복지가 늘어나면 성장이 둔화된다’같은 말들을 적어놓는다. 그런 다음 통념적인 생각들을 지워버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세 번째로 자신이 몰랐던 것에 대해 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쓰는 글은 낭비라는 것이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새롭게 배우거나 내가 변화할 수 있어야 해요. 이미 아는 걸 쓰면 글이 진부해져요. 그래서 저도 한국 사회의 통념이나 기존의 논쟁 구도를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많아요.”
그는 몰상식한 보수를 혐오하는 꼭 그만큼, 관성적인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진보도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평화주의자가 징병제에 반대하면서 모병제를 대안으로 내세운다면, 정희진은 징병제에도 반대하지만 똑같이 모병제에도 반대한다. 실제로 그는 차라리 징병제가 낫다고 보는 쪽이다. 모병제를 시행할 경우 오히려 하위 계층 젊은이들을 군대에 격리시키는 제도가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쓰면서 배워요. 쓰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죠. 애초의 생각이나 기존에 아는 것을 버리는 과정이 곧 글쓰기예요. 이때 중요한 건 나 자신에게 새롭고 생소해야 ‘좋은 글’이 나온다는 사실이에요. 아는 것을 쓰면 망해요.”
글이 막히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생각의 출발 자체가 잘못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럴때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런 측면에서 글쓰기는 곧 ‘생각’이라는 것이 정희진의 지론이다.
정희진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의미를 추구하며 대중에 영합하지 않는, 스스로 고통과 혼란 속에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어빈 얄롬, 앤드류 솔로몬, 올리버 색스, 후지타 쇼조, 도미야마 이치로, 이동진, 초기 조갑제, 장정일, 최승자, 노희경, 나혜석, 김혜리, 정성일, 허문영, 정한석, 프리모 레비, 카렌 암스트롱, 프로이트, 주디스 버틀러, 도나 해러웨이 등이 그가 좋아하는 저자 가운데 일부다.
“일하지 않고 예술만 즐기고 싶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열 받지 않아도 되는’ 영화와 소설을 읽으며 살고 싶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름다움만 소비하고 싶다.”
대개 독자는 저자 입장에서 읽기 마련이다. 정희진은 그런 독서를 배격한다. 그는 저자의 생각과 대결하기 위해 읽는다. 매순간 독자와 저자와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떤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그가 책을 통해 어떤 생각을 했는가이다.
철학자 진태원 : 오역 때문에 철학자를 탓하는 현실을 바로잡다.
진태원이 공격적 비평을 하는 이유도 제대로 된 번역 텍스트를 읽고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역이 많은 번역본을 읽으면 ‘이게 무슨 철학자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같은 반응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가 가장 큰 문제라 여기는 부분이다. 철학자의 문제라기보다 오역 문제인데도 철학자를 탓하는 현실을 바로잡고 싶었다.
20년 중 7년 가까운 시간을 발리바르 번역에 매달린 것을 두고 인문학자 고병권도 매우 인상적으로 바라봤다. “한 사람을 번역하는 데 6~7년을 매달리는 진태원 선생의 공부를 보면서 천천히, 묵묵히 갈 길을 걸어가는 게 급진적 근본적으로 혁명을 이루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혁명은 빠른 발걸음이 아니라 단호한 발걸음이죠.”
책을 쓸 때는 주제부터 분명히 정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러한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야 할지 방법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이 일을 할 만한 능력이나 시간이 되는지도 따져봐야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작업이 자신에게 가치 있고 보람되는 일이라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냥 돈이나 좀 벌어보자, 이름이나 내보자는 식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교양 대중이나 다른 연구자들에게 동움이 되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새롭게 구성한다는 목표, 또는 새로운 지적 탐구의 장을 열어본다는 태도를 가져야 좀 더 진지하게 전력을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데리다의 사회정치 철학도 그에게는 좋은 사유의 대상이다.
“데리다의 사회정치 철학은 ‘혁명 이후’, ‘해방 이후’를 지향합니다. 혁명이나 해방 같은 급진적 정치 운동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혁명과 해방 이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데리다는 묻고 있죠. 혁명과 해방을 이루면 전복한 것들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적들, 즉 혁명과 해방 이전 지배자들이 행했던 폭력과 똑같은 폭력을 가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해요. 해방, 혁명이란 것이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혁명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새로운 지배자를 세우는 일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데리다 철학이 묻는 질문입니다. 저한테도 굉장히 중요한 화두지요.”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 역사학자들 가운데 서발턴 역사학을 주도한 디페시 차크라바르티나 파르타 차테르지도 훌륭한 작가로 꼽는다.
“이 사람들은 역사가임에도 철학이나 이론에 조예가 아주 깊죠. 이들은 서양 철학이나 현대 인문학 인물들을 광범위하게 논의하면서도 늘 인도의 구체적 현실을 염두에 두고, 인도 역사에 관한 서사나 사회학적 분석, 또는 인도에 관한 문학작품을 원용하여, 인도 근현대사의 맥락에서 서양 철학이나 이론을 새롭게 평가하고 재구성합니다. 추상적인 이론이나 개념만을 논의하기 쉬운 저 같은 철학도에게는 귀감이 되는 글쓰기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사는 게 가장 보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내 삶, 학문의 가장 큰 기준입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 정신분석에서 대중문화까지 아우르는 ‘매체중독자’
하지현이 가장 닮고 싶은 논픽션 작가는 김용석 영산대 교수다. 인문학적 성찰을 하되 대중문화와 우리 사회를 소재로 깊이와 넓이를 모두 아우르기 때문이다. 그는 김용석의 글에서 ‘이종격투기적 글쓰기’를 배웠다고 했다....복싱 선수라도 때론 발차기를 해야 하고, 레슬링 선수라도 펀치를 날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점에 어떤 테크닉을 쓸지 정확하게 아는 일이다. 물론 선수마다 주종목은 있겠지만, 그것 외에 나머지 종목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쌓아야 한다. 하지현은 ‘입식타격 하는 사람과 그라운드 기술을 쓰는 사람이 붙으면 어떻게 될까’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책들이 재미있고 그런 책을 지향한다.
책을 구입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일명 ‘333원칙’으로 30퍼센트는 전공과 관련해 공부가 될 책, 30퍼센트는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될 책, 30퍼센트는 개인적 흥미와 즐거움을 위한 책이다. 책을 구매할 때 이 세 가지가 골고루 섞이도록 안배한다. 그래야 질리지 않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처음 쓰는 사람에게는 다음 세 가지를 조언한다. 먼저 15장 분량으로 서문을 써보는 것이다. 책을 왜 쓰려고 하는지 스스로 정리가 된다. 두 번째는 비슷한 책을 참고하면서 22~25개 정도의 세부 목차를 작성하는 것이다. 과연 자신이 한 권의 책을 쓸 만한 거리를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감을 잡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가장 재미있을 챕터를 실제로 써보는 것이다. 자신이 글발이 있는지 없는지, 공저가 필요한 지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가능하면 제목까지 정해보는 것이 좋다. 제목 자체가 책의 콘셉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현은 일본의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가 자신의 책상 앞에 붙여둔 메모를 기억해냈다. ‘어려운 것은 쉽게, 쉬운 것은 깊게, 깊은 것은 유쾌하게’ 그가 추구하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인간은 저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마련이에요. 미래에 대해 미리 10가지 이상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최악이 아닌 것만 확인하면 돼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찾고 최악을 피하면 돼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가 가장 재미있는 거예요.”
칼럼니스트 한윤형 : 청년 세대의 ‘웃픈’ 처지를 항변하다.
한윤형을 이해하는 데 단서가 될 만한 일화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서울대와 <조선일보>가 주최한 논술경시대회에 나가 대상을 받은 그는, 당시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임을 밝히며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절할 정도로 ‘발칙’했다. 2001년 서울대 철학과에 들어간 뒤 안티조선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고 민주노동당원이 되어 참여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가 집필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책은 <안티조선운동사>다. 팔릴 책도 아니면서 원고량이 2,200장에 육박했다. 원고지 600장을 썼는데도 진중권이 등장하지 않아 초반부터 지쳤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한다.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누군가 기록하지 않으면 사장될 수 있겠다는 다급한 마음과, 우리 사회의 굉장히 중요한 순간을 목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어우러졌다. 하지만 책을 내겠다는 출판사가 없어 ‘2008년 촛불’이 지난 후 세상에 나왔다.
“ 제 글이 정서적 글쓰기는 아니라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판단하는 편입니다. 어떤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기사든 칼럼이든 닥치는 대로 찾아봅니다. 그 가운데 나를 설득시키고 이해시키는 글이 있으면 똑같은 주제로 글을 쓰지 않아요. 내 마음에 드는 글이 없을 때 글을 씁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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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10-10 공감 (49)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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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 독재자와 좌파 사이
숲노래 책읽기 / 숲노래 책넋
독재자와 좌파 사이
2026년 1월 3일 새벽에 미국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씨를 붙잡았다고 한다. 여러 글을 보면, 베네수엘라 마두로 씨를 ‘좌파 + 반미’로 여기기도 하는데, 마두로 씨는 ‘왼쪽(좌파)’이라 하기 어렵다. 허울만 ‘좌파 + 반미’일 뿐, 사람들을 짓밟고 죽이고 괴롭히고 우려내면서 나라를 수렁으로 빠뜨린 ‘망나니(독재자)’ 한 놈이라고 해야 맞다.
적잖은 이는 “어떻게 한 나라 우두머리(대통령)를 붙잡느냐?”고 따지네. 마두로 씨는 ‘대통령’이 아닌 ‘독재자’이다. 우리로 치면, ‘조선총독부 우두머리’라든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같은 놈이다. 여태 사람들을 잡아서 가두고 족치고 죽일 뿐 아니라, ‘소금밭종(염전노예)’이라든지 ‘맨손으로 갯벌 메우는 종’으로 부리던 숱한 만무방 가운데 하나가 베네수엘라 마두로 씨이다. 이이한테 ‘대통령’ 같은 이름을 그냥 붙여도 될까? 아니지 않은가?
비록 베네수엘라사람 스스로 만무방을 끌어내리지 못했더라도, 만무방은 끌어내려야 맞다. 적잖은 벼슬꾼은 만무방한테 붙어서 나라를 좀먹었다. 마두로 씨는 예전에 ‘버스일꾼’으로 지냈다지만, 벼슬자리와 우두머리를 꿰차며 저지른 짓이란 ‘일꾼(노동자)’하고는 그냥 멀 뿐 아니라, 망나니라고 해야 맞다. 만무방에 망나니로 뒹구는 놈과 무리가 “난 왼쪽인데?” 하고 목소리를 내면 ‘착한놈’으로 보아야 하나? 왼쪽이건 오른쪽이건 말썽꾼은 말썽꾼이다. 이쪽이건 저쪽이건 나라를 말아먹으면서 썩은짓을 저지르는 무리는 그저 썩은무리이다.
지난날 인도가 ‘영국 식민지’에서 벗어나던 일을 떠올려 본다. 우리나라와 대만과 태평양 여러 섬나라가 드디어 굴레에서 벗어나던 일을 되새겨 본다.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에서 벗어나기까지 얼마나 오래 걸렸는가. 더구나 우리나라는 ‘중국 사대주의’라는 차꼬를 벗기까지 끔찍하게 오래 걸렸지만, 아직 중국 그늘에서 못 벗어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 독재정권 + 마약정권’ 탓에 시름시름 앓고 죽어야 하던 사람들 자리에서도 바라볼 일이지 않을까? 2026.1.5.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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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26-01-05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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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중심에 서다. 차베스
남미가 이슈를 장식하고 있다. 미국과 맞짱을 뜬 지도자로 유명한 차베스가 숨을 거둔 후 남미 출신 프란치스코 신부가 교황이 되었다. 개인적인 사정상 독서에 많은 시간을 쏟지도 못하고, 다른 독서목록으로 여유가 없지만 이 때가 아니면 언제 남미를 들여다 볼까 하는 생각으로 일단 도서관에서 차베스와 관련된 책을 대출하였다.
雨香 2013-03-1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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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와 민중권력
차베스와 민중권력
한 혁명가의 죽음
지난 3월 5일, 우고 차베스가 암투병 끝에 서거했다. 그를 설명하는 최선의 말은 아마 차베스 본인이 한 말일 것이다.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에게 권력을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빈민에게 권력을 주기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고, 모든 가난한 자들 즉, 베네수엘라 민중은 여기에 21세기 유일한 혁명으로 응답해왔다. “민중권력을 창조하라!” 이 선언이 바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혁명의 정신이다.
정치무대에서 차베스가 처음 등장한 해는 `92년이다. 육군 중령이었던 차베스는 부패정권을 쓰러트리기 위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때, 당장의 패배를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미래의 승리를 기약하는 당당한 모습을 통해서 당시 암담한 현실을 버텨내던 민중 사이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에 힘입어 `98년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었고, 이후 14년간 민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볼리바리안 혁명을 강력한 카리스마로 이끌어왔다. 이제 차베스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겠다. 대신 그가 마지막까지 헌신했던 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볼리바리안 혁명 속에서 차베스의 고결한 이상과 강한 의지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개혁
지구 반대편 남미대륙에 위치한 이 나라의 현재 국호는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이다. 차베스가 집권 후 곧바로 추진한 헌법 개정이 `99년 국민투표에서 통과됨으로써 국호가 바뀌었다. 새로운 헌법은 볼리바리안 헌법으로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볼리바리안”의 의미는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자인 시몬 볼리바르를 뜻한다. 볼리바르는 1810,20년대에 스페인에 맞서 식민지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였다. 차베스가 볼리바르를 호명하며 불러내고자 했던 건 지배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정신이었다. 과거의 지배자가 스페인이었다면, 오늘날 남미대륙을 도탄으로 빠뜨리고 있는 건 미국이 전 세계에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이다.
베네수엘라에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건 경제파탄과 `89년의 IMF협상을 통해서였다. 당시의 페레스 정권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재정긴축과 사회보장 축소, 민영화, 시장 자유화 등을 합의해주었다. 이를 발표한 지 11일 만에 수도 카라카스에서 대중교통비가 두 배가 오른 것에 분노한 민중봉기가 일어났고, 수천 명이 희생당했다. 이후 차베스가 집권하기까지 십여 년 동안 빈곤율이 64.2%까지 증가하고, 석유회사를 비롯한 기간산업이 민영화돼 물가가 치솟았다. 반면에 소수가 독차지한 부는 이를 틈타 더욱 커졌다.
신자유주의는 가뜩이나 불평등한 사회를 더 비참한 곳으로 전락시켰고, 구조적 모순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깊어진 것이 볼리바리안 혁명의 배경이다. 새 헌법을 제정한 이후 `01년에 차베스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경제와 사회의 복구를 목표로 49개 개혁법안을 통과시킨다. 이중 탄화수소법은 석유산업의 민영화를 중단시키고 국영화와 석유이익의 국민경제 환원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토지법은 개인 토지소유를 제한하고 정부가 사유의 미경작지와 휴경지, 도시 유휴지를 징발해 농민과 도시빈민에게 분배하려는 조치다. 또 협동조합법은 민중의 자조 노력에 협동조합이라는 공식지위를 부여해 정부의 지원을 보장해준다.
그런데 기존의 기득권세력은 개혁을 전혀 용납하지 않았고 군대와 경찰, 관료, 자본가, 언론, 어용노조가 총집결해 `02년에 군사쿠데타와 경제파업을 연달아 일으키며 차베스 정권을 전복시키려했다. 위기의 순간에 차베스를 구한 건 정치권력도 군대도 아니었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민중이 새 헌법과 개혁을 수호했다. 그리고 이 순간 진정한 혁명이 시작된다.
민중권력으로의 급진화
볼리바리안 혁명의 특징은 위로부터의 개혁이 기득권층의 반발에 부딪쳐 위기에 처하자 아래로부터의 혁명으로 급진전됐다는 점이다. 민중은 반혁명세력으로부터 차베스와 헌법, 개혁을 수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과 미래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를 조직했고, 나아가 엘리트들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뛰어넘어 새로운 사회를 꿈꾸고 있다. 차베스는 현명하게도 반혁명세력과 타협하지도, 민중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제한하지도 않았고, 민중의 요구에 발맞추어 함께 전진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역할을 계획하고 관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분출하는 요구들을 지원하고 조정하는 것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는 반혁명 시도에 언제든지 동참할 수 있는 국가관료와 변화할 뜻이 없는 관료기구에게 혁명을 맡길 수 없다는, 시행착오로 얻은 교훈이기도 했다.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관료주의를 민중의 자치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민중권력은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02년 겨울에 자본가들이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물자를 파괴하며 경제파업을 벌이자,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스스로 생산을 재개시켰다. 차베스는 이런 공장들을 국가가 인수하도록 해 노동자 투쟁을 지원해주었고, 국유기업에는 자주관리와 공동경영을 도입했다. 베네수엘라에서 기업과 경제의 사회화는 계속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무력한 피고용인에서 일터의 진정한 주인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편, 비교적 소규모 단위에서 일반적인 협동조합은 백만 명이 넘는 농민과 노동자를 포함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성장은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의 성숙과 민중이 스스로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역량의 진전을 반영한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베네수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변화는 `06년부터 조직된 공동체평의회이다. 공동체평의회는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수백가구로 이루어지며, 해당 지역주민의 요구를 반영한 정책을 수립하고 국가재정을 배분받아 집행까지 한다. 한마디로 동네 자치이고, 국가의 의사결정과 기능이 수 만개의 공동체평의회로 이전돼 국민 모두가 의원과 공무원이 되는, 차원이 다른 참여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이다. 물론 아직까지 공동체평의회가 기존의 국가를 대체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베네수엘라 민중이 전인미답의 한 발을 내딛은 건 틀림없다.
이중권력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지배계급의 재산, 관료기구 같은 구체제가 온존하면서도 민중권력이 등장해 활력을 키워왔다. 그동안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불평등도 완화돼왔다.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으로 민중의 삶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여기에는 차베스의 지렛대로서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다. 이런 맥락에서 차베스는 민중에게 새로운 사회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차베스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새로운 사회로 가는 문이 잠겼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문 밖으로 걸어 나와 더 전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들이 제2의, 제3의 문들을 만들지 못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 국가에 모순적인 두 힘이 나란히 존재하는 이중권력의 상황이 언제까지고 평화롭게 계속될 수는 없다. 그동안 민중권력이라는 새로운 사회의 씨앗과 함께 낡은 사회와의 갈등과 투쟁의 여지도 더불어 커온 셈이고, 구체제는 파괴될지언정 스스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볼리바리안 혁명과 베네수엘라 민중의 승리를 응원한다.
더 읽을거리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베네수엘라 현장 활동가들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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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e 2013-03-3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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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혁명, 신자유주의 넘어선 21C 사회주의?
언뜻 생각해보면 '혁명'과 '개혁'의 위치가 뒤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를 읽어 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임을 알 수 있다. 손석춘은 이 책의 발간사에서 이렇게 말하며 글을 시작한다.
"혁명의 시대. 누군가 지금을 혁명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핀잔받기 십상이다. 혁명의 꿈은 어느새 덧없는 열망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 그러나 냉철히 톺아볼 일이다. 과연 그 시기(=1980년대-인용자)가 혁명의 시대였을까. 아니다. 굳이 규정하자면 개혁의 시대였다."
그러면서 1980년대의 몇 가지 정황을 이야기하며, 먹물들 사이에 혁명의 담론만 넘쳐났지 노동자 농민에게는 기실 아무런 준비없이 부닥친 자연발생적 저항에 지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1987년의 노동자대투쟁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한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문제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여기의 문제에 주목하자고 한다. 양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 한미FTA 체결로 벼랑 끝으로 몰리는 농민, 악화되는 부익부빈익빈, 부시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을 보라고 한다. 일흔을 앞둔 소작 농민과 40대 중반 비정규직 노동자가 백주대낮에 경찰이 휘두른 폭력에 맞아 숨지는 시대, 네오콘의 제국주의적 정책이 평택 대추리 주민의 삶을 앗아가는 시대가 지금 여기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런데도 왜 혁명의 노래가 들려오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1980년대의 논리가 민중의 삶과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시대에, 혁명의 객관적 조건이 이렇게 무르익어 가는 시대에,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새로운 사회의 꿈이 영글어가는 시대에...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혁명이 필요한 시대라며 혁명을 준비하자고 한다. 언뜻 보면 이 무슨 철 지난 유행가도 아니고 생뚱맞은 소리인가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래 인용문을 보면 그 의문이 풀릴 것이다.
"오해없기 바란다. 무장 혁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시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무장 혁명의 시대는 지났다. 선거 혁명의 시대다. 그것이 현실적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선거 혁명이 옳은 노선이다. 비단 브라질의 룰라가 보기는 아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를 보라. 미국과 맞서 꿋꿋하게 베네수엘라 경제를 혁명적으로 재건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혁명적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차베스의 실험은 생생하게 증언해준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약간의 시각차가 존재할 것이다. 과연 '선거혁명'이 유일하게 옳은 노선인지, '선거혁명'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2002년에도 '얼빠진' 인간들, 노무현 당선을 일러 '선거혁명'이라고 하던 얼빠진 인간들이 어디 한둘 이었던가? 아마도 2007년 12월에도 '선거혁명'의 구호가 난무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집권만은 막아야 한다며...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서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는 베네수엘라 혁명의 전과정을 하나하나 되짚어 가면서 분석하고 있다. 먼저 배네수엘라 혁명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1980년대 외환위기로 거슬러 올라가 신자유주의 10년의 폐해 속에서 싹튼 민중의 저항에서 그 싹을 찾아낸다. 또한 차베스가 우발적 쿠데타의 실패 이후 10년이 지나 합법적 선거에 참여하여 승리하는 배경에는 40년 동안 정당정치를 통해 안정화된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적 정치지형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선거를 통한 합법적 집권 이후 반혁명 세력에 맞서 진정한 '민중권력'이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제헌의회', '볼리바리안 헌법' 등이 차베스 집권 이후 행해진 위로부터의 혁명이었다면,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키고, 차베스를 군기지에 감금했을 때 보여준 민중들의 '응징'은 진정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이지 이 과정은 감동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의렴풋이 기억하는 2002년 그 봄의 며칠 동안 지구 반대편으로부터 들려왔던 뉴스의 세세한 내막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자칫 1973년 칠레 아옌데 정부의 재판이 된 채 잊혀진 혁명이 될 수도 있었던 과정을 헤쳐나오는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인민들의 용기는 부러움 그 자체다. 차베스가 집권 이후 3년 동안 인민들에게 준 것을 인민들은 잊지 않고 3일 만에 차베스에게 보답해준 것이었다. 이것은 베네수엘라 선거혁명의 핵심을 설명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진정한 참여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볼리바리안 클럽'의 형성과 활동, 공동경영 제도와 협동조합의 확산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적 정책들이 정착되는 과정, 미국의 대외정책에 맞서는 대안적 중남미 지역네트워크 건설 등을 8편의 글들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어찌 보면 차베스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주목은 사실 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브라질의 룰라 당선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우리 나라 진보세력도 주목하고 연대를 표방했지만, 이상하게도 베네수엘라 만큼은 우리의 관심에서 비켜 서 있었던 게 사실이다. 다행스러운지는 몰라도 작년부터인가 민주노동당 내에서도 차베스 혁명에 대해서 주목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란 자가 자신을 지지해준 정파의 비위를 맞추느라 '혁명열사릉 참배' 같은 소리나 하고, 무슨 2단계니 3단계니 하는 통일방안을 연출하느라 카메라 앞에서 폼이나 잡고 있는 현실에서는. 언제나 정신 차릴런지...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역시 이 책과 비슷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솔직히 중복이라는 느낌도 없진 않다. 아마도 이 책임은 늦게 나온 새사연 쪽에 있을 것이다. 아래 글은 한겨레 신문에서 연재하고 있는 "우리 시대 지식논쟁"에서 인용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넘어선 21C 사회주의가 뜬다
우리시대 지식 논쟁
출처:인터넷한겨레(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39138.html) 2007/09/30
»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차베스 혁명, 사회주의 대안인가
① 왜 대안인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실험은 사회주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가 ‘우리시대 지식논쟁’의 두 번째 주제다.
반미노선과 기간산업 국유화, 석유판매 대금의 극빈층 지원 등 차베스의 정책은 신자유주의 지향과 판이하다는 점에서 대안 모델의 한 형태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말 63%의 지지율로 재선된 차베스는 이런 높은 국민적 인기를 기반 삼아, 그가 명명한 ‘21세기 사회주의 혁명’ 정책들을 강도 높게 밀어붙이고 있다.
높은 주목도만큼이나 평가의 진폭도 넓다.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시키고 있다는 적극적인 긍정론에서부터 재분배 정책을 통해 자본주의와 타협하고 있다는 비판론까지 나오고 있다. 그가 연임제한 규정을 없애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의구심을 사는 한 요인이다.
이번 논쟁에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참여한다. 김 센터장은 대다수 주민이 참여하는 주민자치위원회가 민중참여 권력의 토대가 되고 있으며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제도'의 심화 확산, '협동조합적 기업'을 통한 150만개 이상의 일자리 창출 등을 들며 베네수엘라 사회가 ‘실행을 통한 학습’이라는 경로를 통해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유럽 모델을 한국 사회 대안으로 검토하던 진보학계에서도 최근 베네수엘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기 시작했다. 직접 베네수엘라를 찾는 학계 인사들도 자주 눈에 띈다. 베네수엘라의 무엇이 이들의 주목을 받는 것일까.
단적으로 말해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체제를 생생한 현실 속에서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고통이 10년쯤 될 무렵인 1998년, 56.2% 지지율로 처음 대통령에 오른 우고 차베스는 이듬해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헌법’을 제정하면서 새 세기의 문을 열고 헌법에 근거한 합법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그 후 지금까지, 2002년 4월 반혁명 세력의 쿠데타, 2002년 12월 석 달에 걸친 자본 파업, 2004년 8월 대통령 소환투표로 이어지는 반혁명 세력의 도전을 극복한다. 지난해 12월 63%의 지지율로 다시 재선된 차베스는 주요 기간산업 국유화, 새로운 정당 건설, 국가권력 재편과 헌법 개정 추진을 비롯한 강도 높은 개혁프로그램을 현재 실시하고 있다.
혁명이 일정한 궤도에 오른 2005년, 차베스는 베네수엘라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지향을 향해 나가야 한다고 처음으로 밝힌다. 20세기 사회주의를 국가사회주의라고 규정하면서 그는, 21세기 방식으로 사회주의를 재창조하자고 주장했다. 역사의 무덤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새로운 모습으로 남미에서 부활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실험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혁명이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면서도, 대안모델로 선뜻 수용되지 못하는 가장 큰 장벽은 차베스가 ‘연임제한 철폐’를 하면서 독재자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차베스는 지난 8월에 헌법조항 총 350조 가운데 33개 주요 조항을 수정하는 개헌안을 공식적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여기에 현재의 연임제한 조항 철폐를 제안한 대목이 분명히 들어 있다. 차베스도 독재자의 길로 들어선 것 아니냐는 의문은 당연히 제시될 수 있다. 그런데 개헌안에는 다음의 조항도 동시에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헌법 70조에서 “민중들이 직접 통치권을 행사하는 경험, 공직 선출, 국민투표, 민중협의, 대통령을 포함한 중앙선출직 관료의 국민소환, 국민발안, 그리고 공개집회를 통해 민중들의 참여와 주인정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하는 내용을 추가하자는 차베스의 제안이 그것이다. “주권은 민중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자본가들의 반발 맞서 초강수 개혁
빈곤의 늪 지나 4년째 두자릿수 성장
대통령 연임 따른 독재 우려도
직선·소환제 등 민중 참여로 근거 잃어
물론 이를 연임제한 철폐를 무마하기 위한 장식물로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이 아닌 베네수엘라의 실제를 보자. 현재 2700만 베네수엘라 국민의 대다수를 포괄하는 2만여 개의 주민자치위원회가 아래로부터 민중참여 권력으로 창설되어 작동되고 있다. 2004년 소환투표가 이미 실행된 사례를 볼 때 대통령소환 역시 한갓 장식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 대통령 견제수단이다. 유신독재를 가능하게 한 것은 국민투표를 악용해서 유신헌법을 통과시킨 사실 자체가 아니라, 유신헌법에서 또 하나의 국민적 투표라고 할 수 있는 직선제를 폐기하고 체육관 선거로 대치한 데 있다. 베네수엘라 헌법은 대통령 직선은 물론이고 지금의 우리 헌법에도 없는 대통령 국민소환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박정희 시대의 경험은 우리에게 연임제한을 민주주의의 절대 조건으로 각인시키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기제가 아니다. 연임제한 철폐를 문제 삼지 않는 베네수엘라 전문가들이 “프랑스나 오스트레일리아, 독일, 영국 같은 나라들도 제한 없는 재선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들 나라도 독재국가인가” 하고 반문하는 것이 변명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도 절실한 것은 국민의 실질적 참여와 정치기제에 대한 국민의 직접적 통제이다. 참여정부 아래에서 민주주의의 유린은 어디서 벌어졌는가. 다수 국민의 참여 과정도 없고, 국민의 의사와도 다르게 강행된 국회의 일방적 대통령 탄핵,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 민주주의는 사실상 유린되었다. 이런 면에서, 지금 베네수엘라는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이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주민자치위원회 실험에서, 아래로부터의 새 정당 건설 실험에서, 기업의 노동자 공동경영 제도에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이 지점이다.
정치와 함께 베네수엘라 모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분야는 바로 경제 시스템이다. 2007년 한국 대선도 경제대통령 논쟁이 한창이다. 그러나 절박한 양극화나 비정규직화를 구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파격적이면서도 현실성 있는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의 한국 사회 양극화 현상을 능가하는 빈곤과 침체의 경제를 물려받은 이가 차베스였다. 그는 쿠데타와 자본파업이라는 시련을 극복한 2003년 이후, 빈곤층과 실업률을 꾸준히 줄이면서도, 고성장의 중국에 견줄 10% 수준의 경제성장을 4년째 이어오고 있다. 기업 내부도 주목할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 참여하는 경영 확산되고
수년간 일자리 150만개 창출
도그마 아닌 생생한 현실 속 변화
미국식 경제만 좇는 한국에 교훈
기업경영에서 노동자가 참여하는 ‘공동경영 제도’가 실험·확산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3만 개 벤처기업 육성을 고창하는 사이, 비록 첨단 벤처는 아니지만 다양한 생산적 산업분야에서 ‘협동조합적 기업’이 베네수엘라에서 수년 간 18만 개 이상 만들어지고 있다. 15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했음은 물론이다. 자영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대략 30만 개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더욱이 이번 개헌안에는 하루 법정 노동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줄이는 조처가 포함되어 있다. “정규적이고 생산적인 고용을 늘리고 비공식 무문 경제와 실업률을 줄이는 데 기여”하는 것이 개정 목적이다.
물론 이런 실험이 고전적 사회주의의 국유화라는 잣대로 보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 베네수엘라 경제제도는 ‘사적 소유를 포함해서 다양한 독립적인 경제단위가 공존하는 일종의 혼합경제 시스템’이다. 과거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실행을 통한 학습’이라는 현실적 경로를 통해서 경제구조 전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가장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21세기 혁명의 모습을 보게 된다.
차베스 정부가 전혀 미국과의 교역량을 줄이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차베스의 반신자유주의는 실제가 아닌 레토릭(수사) 수준이라고 폄하하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반신자유주의적인 경제개혁을 착실히 수행하면서도 세계경제와의 교류를 폭력적으로 단절시키지 않고 있는 지점은 거꾸로 높게 평가받아야 할 지점이다.
반신자유주의가 실제가 아닌 레토릭으로 그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한국의 정치집단과 진보학계일 수 있다. 신자유주의가 아닌 방식으로 실제적인 국민 삶을 한발자국씩 전진시키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대안은 하나씩 현실이 되고 있다.
»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2006년 세계사회포럼에서 차베스는, “우리는 다른 나라 모델을 복사하려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를 따라 모델을 복사하는 것은 20세기 사회주의의 큰 잘못 중에 하나였다. 자주성과 다양성, 모든 공동체와 대중으로부터 나오는 힘을 통해 21세기에 새로운 경로를 여행할 사회주의 배너를 다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경제는 미국식 모델을 복사해온 과정이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역시 미국식 모델에 더욱 가깝게 가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경험이 진정으로 가르쳐주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 모델을 ‘복사’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센터장
김병권씨는 ‘새로운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1964년생이며 대안사회의 주체 형성과 중소기업 역할 재규정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공저로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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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오랜꿈 2007-09-30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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