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8, 2023

[세상읽기] 라이피즘, 자본주의를 넘어 삶으로 / 김누리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모바일

[세상읽기] 라이피즘, 자본주의를 넘어 삶으로 / 김누리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모바일

[세상읽기] 라이피즘, 자본주의를 넘어 삶으로 / 김누리
등록 2020-07-05 16:01
수정 2020-07-06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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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ㅣ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한 지 30년이 지났다. 자본주의의 ‘유일 지배’는 무엇을 남겼는가. 지금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에게 결산서를 내밀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간 자리에 야수 자본주의의 폐허가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레이건과 대처가 키운 야수가 이리도 깊고 처연한 상처를 남길 줄은 몰랐다. 자본의 횡포가 자심한 곳일수록 코로나의 피해는 막심하다. 이제야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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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으로 견고해 보이던 하나의 세계, 하나의 우주가 무너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국의 세기가 저물고 있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경쟁지상주의의 세계에 빨간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시장중심사회에서 인간중심사회로, 경쟁사회에서 연대사회로,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복지국가로, 인간의 자연 지배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으로,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에서 디그노크라시(존엄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하나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와 인간에 대한 성찰은 자본주의가 과연 지속가능한 체제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는 인간 존엄의 조건인 인간성을 파괴하고, 인간 생존의 조건인 사회를 파괴하며, 인간 생명의 조건인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 이후’를 생각할 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질적으로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제3세대를 대표하는 악셀 호네트는 ‘사회적 자유’에 기반한 ‘사회주의의 재발명’을 주창한다. 최근 슬라보이 지제크는 코로나에 대응하는 국가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공산주의’를 꿈꾼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시대착오적이거나 임시방편적이다. 무엇보다도 생태주의적 관점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라이피즘(lifism)을 제안한다. 라이피즘은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안티라이프(anti-life) 체제라는 데 주목한다. 즉, 라이피즘이란 자본주의가 개인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삶(life)을 파괴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존(life)을 파괴하며, 생태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명(life)을 파괴하는 체제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인간을 소외하고 사회를 와해시키며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일련의 사상적, 실천적 활동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삶과 생존과 생명을 존중하고, 그 바탕이자 전제인 생태를 중시하는 사람을 라이피스트(lifist)라고 할 수 있다. 라이피스트는 인간, 사회,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라이피즘은 전통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여겨져온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보다 훨씬 더 시의적이고,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 개념이다. 그 이유는 다섯가지다. 첫째, 라이피즘은 자본주의의 ‘안티라이프’ 성격을 직격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과 생존과 생명에 적대적인 체제임을 가장 확실하게 폭로한다. 둘째, 라이피즘은 이데올로기적 유산에서 자유롭다. 20세기를 각인해온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넘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정파를 아우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인간 소외에 맞서는 자율주의자든, 자본주의의 사회적 착취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든, 자본주의의 자연 파괴에 저항하는 생태주의자든 모두 라이피스트의 우산 아래 모일 수 있다. 셋째, 라이피즘은 현대사회의 최대 현안이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는 생태 문제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강조할 수 있다. 넷째, 라이피즘은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위함으로써 근대 휴머니즘 전통의 현대적 적자임을 주장할 수 있다. 다섯째, 라이피즘은 자본주의가 파괴하는 삶, 생존, 생명의 영역을 총체적으로 겨눈다는 점에서 주로 사회적 착취와 불평등을 문제 삼는 사회주의보다 포괄적이고 진취적인 개념이다. 이상의 이유로 나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이념으로 라이피즘을 제안하는 것이다.
돌아보니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참 오래 썼다. 개인적으론 한국 사회에 대해 요모조모 성찰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동안 과분한 관심을 보여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라이피즘, 자본주의를 넘어 삶으로> 김누리교수, 한겨레 20.07.06. : 네이버 블로그

<라이피즘, 자본주의를 넘어 삶으로> 김누리교수, 한겨레 20.07.06. : 네이버 블로그

<라이피즘, 자본주의를 넘어 삶으로> 김누리교수, 한겨레 20.07.06.
오뚝이
2020. 7. 6.

자유롭게, 행복하게
<라이피즘, 자본주의를 넘어 삶으로> 
김누리교수, 한겨레 20.07.06.

동구 사회주의가 붕괴한 지 30년이 지났다. 자본주의의 '유일 지배'는 무엇을 남겼는가. 지금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에게 결산서를 냄리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휩쓸고 간 자리에 야수 자본주의의 폐허가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레이건과 대처가 키운야수가 이리도 깊고 처연한 상처를 남길 줄은 몰랐다. 자본의 횡포가 자심한 곳일수록 코로나의 피해는 막심하다. 이제야 사람들
자본주의의 실체가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견고해 보이던 하나의 세계, 하나의 우주가 무너지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미국의 세기가 저물고 있다. 물질주의와 소비주의, 경쟁지상주의의 세계에 빨간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거대한 전환의 시대가 될 것이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 시장중심사회에 서 인간중심사회로, 
  • 경쟁사회에서 연대사회로, 
  •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복지국가로, 
  • 인간의 자연 지배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으로, 
  •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에서 디그노크라시(존엄주의)로 
전환해야 한다.

하나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이다. 자본주의와 인간에 대한 성찰은 자본주의가 과연 지속가능한 체제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는 인간 존엄의 조건인 인간성을 파괴하고, 인간 생존의 조건인 사회를 파괴하며, 인간 생명의 조건인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제 '자본주의 이후'를 생각할 때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질적으로 새로운 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재안은 무엇인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제3세대를 대표하는 악셀 호네트는 '사회적 자유'에 기반한 '사회주의의 재발명'을 주창한다. 최근 슬라보이 지제크는 코로나에 대응하는 국가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새로운 공산주의'를 꿈꾼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시대착
오적이거나 임시방편적이다. 무엇보다도 생태주의적 관점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라이피즘(lifism)을 제안한다. 
라이피즘은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안티라이프 (anti-life)체제라는 데 주목한다. 
즉, 라이피즘이란 자본주의가 
  • 개인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삶(life)을 파괴하고, 
  • 사회적 차원에 서는 인간의 생존(life)을 파괴하며, 
  • 생태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명(life)을 파괴하는 
체제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인간을 소외하고 사회를 와해시키며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일련의 사상적 실천적 활동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삶과 생존과 생명을 존중하고, 그 바탕이자 전제인 생태를 중시하는 사람을 라이피스트(lifist)라고 할 수 있다. 라이피스트는 인간, 사회,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라이피즘은 전통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여겨져온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보다 훨씬 더 시의적이고,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 개념이다. 
그 이유는 다섯가지다. 
  • 첫째, 라이피즘은 자본주의의 '안티라이프' 성격을 직격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과 생존과 생명에 적대적인 체제임을 가장 확실하게 폭로한다. 
  • 둘째, 라이피즘은 이데올로기적 유산에서 자유롭다. 20세기를 각인해온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넘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정파는 아우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인간 소외에 맞서는 자율주의자든, 자본주의의 사회적 착취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든, 자본주의의 자연 파괴에 저항하는 생태주의잗느 모두 라이피스트의 우산 아래 모일 수 있다. 
  • 셋째, 라이피즘은 현대사회의 최대 현안이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는 생태 문제의 중요성을 효고적으로 강조할 수 있다. 
  • 넷째, 라이피즘은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함으로써 근대 휴머니즘 전통의 현대적 적자임을 주장할 수 있다. 
  • 다섯째, 라이피즘은 자본주의가 파괴하는 삶, 생존, 생명의 영역을 총체적으로 겨눈다는 점에서 주로 사회적 착취와 불평등을 문제 삼는 사회주의보다 포괄적이고 진취적인 개념이다.

이상의 이유로 나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이념으로 라이피즘을 제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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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말하다 2회(김누리 교수)


김누리의 라이피즘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하기 위한 사상적 예방주사 | 사회주의자

김누리의 라이피즘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하기 위한 사상적 예방주사 | 사회주의자

김누리의 라이피즘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하기 위한 사상적 예방주사
글쓴이: 민현기
-2022년 2월 9일




필자는 작년 10월 14일 『사회주의자』 창간 5주년 기념 토론회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을 방해하는 요인들”에 토론자로 참여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토론회와 관련하여서는 황종원,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을 방해하는 요인들을 철저히 제거, 극복하자!—『사회주의자』 창간 5주년 기념 토론회 후기」를 참고할 것).


한편 몇몇 소위 ‘진보적 지식인’들 또한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을 방해하는 주체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한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난과 모순이 자본주의의 질서에 있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야수자본주의”를 통제하고 (독일식의) 사회적 시장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구호로 “라이피즘(LIFEISM)”이라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하며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이러한 진보적 지식인들은 학계의 권위를 기반으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제시하고, 많은 진보세력들이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필자의 토론문에서 인용)

이 인용문 가운데 등장하는 김누리 교수(이하 존칭은 생략)는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2019년 3월 4일 방영된 JTBC의 TV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에 출연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지식인이다. 방송 출연 이후 김누리는 2020년 3월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2021년 10월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와 같은 저서들을 출판하기도 하였으며,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SBS의 「포스트 코로나—뉴노멀을 말하다」 등 여러 강연·강좌·연설 등에서 최근까지 활발하게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김누리에 대해 최근 몇몇 진보세력들이 환호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가령 이은탁 데모당 당수는 1월 2일 페이스북에 KBS1 TV 프로그램 「이슈 픽 쌤과 함께」에서의 김누리의 강연을 “압권”이라며 호평했으며, 나도원 노동당 대표는 1월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노동당 기획강연 ‘체제전환’ 김누리편: “한국 정치 무엇이 문제인가”」를 소개하며 김누리 교수의 강연을 시원하다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김누리를 우호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인물들을 진보세력 내에서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인용문에서 필자가 말했듯이, 김누리가 제시하는 ‘라이피즘’은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로 인해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다. 이미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은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김누리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자본주의를 문제 삼는 급진적인 주장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시키고 민중의 불만이 자본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공격으로 향하는 것을 막는 사상적 ‘예방주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진보세력들이 김누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김누리의 라이피즘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왜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없는지 구체적으로 비판해보고자 한다.

김누리의 대안, ‘라이피즘’이란 무엇인가

김누리의 글에 따르면, 라이피즘은 자본주의를 세 가지 차원에서의 안티라이프(anti-life) 체제로 인식한다. 즉, 자본주의는 (1) 개인적 차원에서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왜곡하여(상품 질서가 인간을 지배) 인간의 삶(life)을 파괴하고, (2)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왜곡하여(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 인간의 생존(life)을 파괴하며, (3) 생태적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왜곡하여(자연에 대한 무한 파괴) 인간의 생명(life)을 파괴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나는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라이피즘(lifism)을 제안한다. 라이피즘은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안티라이프(anti-life) 체제라는 데 주목한다. 즉, 라이피즘이란 자본주의가 개인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삶(life)을 파괴하고, 사회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존(life)을 파괴하며, 생태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생명(life)을 파괴하는 체제라는 사실에 착안하여, 인간을 소외하고 사회를 와해시키며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일련의 사상적, 실천적 활동을 뜻한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삶과 생존과 생명을 존중하고, 그 바탕이자 전제인 생태를 중시하는 사람을 라이피스트(lifist)라고 할 수 있다. 라이피스트는 인간, 사회, 자연을 파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강력하고 근본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라이피즘은 이러한 안티라이프(anti-life)적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시장 중심 사회에서 인간 중심 사회로, 경쟁 사회에서 연대 사회로, 신자유주의 국가에서 복지국가로, 인간의 자연 지배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생으로,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에서 디그노크라시(존엄주의)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동시에 김누리는 다른 글에서 이른바 ‘야수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통하여 자본주의는 효율적으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활동성과 효율성을 가지고 있지만, 통제하지 않고 자유롭게 놔두면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라는 야수에 올라타서 ‘잘 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경제체제로 ‘사회적 시장경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즉, 라이피즘이 제안하는 구체적 경제형태는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것이다.(폴리뉴스, 「김누리 중앙대학교 교수② “한국은 약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공공성 중심 사회적 시장경제로 가야”」, 2020. 7. 31.).

그렇다면 김누리는 이러한 라이피즘—사회적 시장경제—을 위한 실천적 행동으로 무엇을 제시하는가? 최근 김누리의 강연이나 연설을 찾아보면, 김누리는 능력주의를 근본 문제로 설정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혁명을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교육혁명이란 68혁명 이후 독일[서독]의 70년대 교육 개혁을 모방하는 것으로, 교육에서 경쟁을 추방하고 학생 스스로 비판하는 능력을 기르는 ‘비판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누리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현재, 특히 한국에는 여러 모순과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거대한 불평등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과 생존 그리고 생명을 파괴하는 야수적 속성을 갖기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지난 세기 자본주의의 효율성은 이미 증명되었으며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는 실패한 것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야수성을 잘 길들여야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통해 자본주의를 잘 길들여야 한다. 동시에 삶, 생존, 생명을 존중하고 연대와 존엄을 지향하는 라이피즘을 기치로 자본주의의 야수성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이러한 문제 해결이 자꾸 실패하는 이유는, 한국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능력주의이기 때문이다. 능력을 기준으로 경쟁하는 것은 야만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이를 교육혁명을 통해 해결해야한다. 독일의 1970년대 교육 개혁은 교육에서 경쟁을 배척했다. 그러했기 때문에 현재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라이피즘을 통해 자본주의의 야수성을 길들이고 인간의 삶과 생존과 생명을 존중하고 생태를 중시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김누리의 주장대로 교육혁명과 사회적 시장경제를 통한 라이피즘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대안이 되어 오늘날 민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답은 “아니오”이다. 이제부터 왜 김누리의 라이피즘이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 수 없는지 서술하려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김누리가 말하는 ‘교육혁명’에 대해서, 그 다음으로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대해 비판하고, 김누리의 주장이 실제로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폭로하도록 하겠다.

자본주의 토대는 그대로 둔 채 독일을 모방하는 상부구조 개혁뿐인 교육혁명

최근 김누리의 교육혁명에 대한 초점은 ‘능력주의’에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능력주의’(Meritocracy)라는 개념은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 개혁가인 마이클 영(Mechael Young, 1915-2002)의 풍자소설 『능력주의의 부상』(1958)에서부터 나왔으며, 최근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원제: The Tyranny of Merit, 김누리는 이를 “능력주의는 폭군이다”라고 번역한다)이 출판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능력주의 담론과 마이클 샌델에 대해서는 이미 본 매체의 기사인 「문제는 ‘능력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다」(박남일)에서 자세히 비판하고 있다.


비록 샌델의 말은 아름답지만, 그 말이 능력주의를 무너뜨리는 실천적 수단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요컨대 샌델의 메시지를 실천하려면 우리는 능력주의로 성공한 엘리트들에게 부디 겸손해달라고 사정해야 하며, ‘성적 경쟁’으로 치러지는 명문대 입시를 ‘행운 경쟁’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또 시민적 공동선에 기여하는 사람은 경제적 보수가 낮더라도 사회적 인정만 받으면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은 굶어죽을 지경이어도 평등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 스스로 공부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샌델이 내놓은 대안들은 현실성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서 필자가 박남일의 샌델 비판을 인용한 것은, 김누리 스스로 마이클 샌델이 자신의 문제의식과 “너무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고산고등학교 배움과 성장의 날 김누리 강연). 김누리는 샌델의 핵심 메세지를 “오늘날 미국을 이렇게까지 처참한 야만 사회로 만든 그 근원에 있는 게 바로 능력주의다”라고 요약하며, 특히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작은 미국”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김누리는 독일을 미국 모델에 대한 ‘대안 모델’이자, 미국에 대한 ‘안티테제’로 인식한다(『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김누리는 이 문제의 해답을 독일에서 찾는다.

김누리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정치제도와 복지 체계, 사회의식을 갖춘 대안 모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68혁명 여파로 이루어진 70년대 교육 개혁에 있다. 그리고 68혁명 이후 70년대 독일의 교육 개혁의 기본 원리는 “경쟁 교육은 야만이다”(테오도르 아도르노)라고 한다. 이러한 근거에서 김누리는 독일의 교육 개혁이 미국적 능력주의와 경쟁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이며 이를 모방하는 ‘교육혁명’이 한국에서 필요하다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김누리의 주장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먼저, 김누리가 말하고 있는 것과 달리 실제 독일 교육에서 경쟁이 배제된 것도 아니다.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졸업 때부터 성적에 따라 김나지움에 들어가거나 직업교육을 받는다. 김누리가 말하는 바 “아비투어[Abitur, 김나지움 졸업시험]에 붙은 학생은 누구나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를 원하는 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김나지움 이전에 일찌감치 경쟁에 의한 배제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일 교육을 모방하는 것이 능력주의와 경쟁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그리고 김누리의 주장에서 더 큰 문제점은 교육을 바꾼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누리는 스스로가 독일의 교육 개혁이 유럽의 68혁명으로부터 비롯했음을 말하면서도, 교육혁명을 위한 반체제적 사회혁명이 필요함을 무시한다. 한 국가의 교육이란 곧 그 국가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상부 구조로 기능한다. 입시지옥과 무한경쟁이라는 오늘날 한국 교육의 현실 또한 한국의 자본가 지배계급의 요구에 따라 구축된 것이다. 그런데 김누리의 주장은 한국의 교육체제를 만든 토대는 그대로 놔두고, 상부구조인 교육을 바꾸면 세상이 바뀔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이는 관념론적 방식일 뿐이며,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지배계급의 지배체제를 유지시키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사회적 계획경제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독일식 신자유주의이다.

이제 ‘사회적 시장경제’를 살펴보자. 김누리는 앞서 말했듯 자본주의를 효율적 체제이지만 인간을 잡아먹는 ‘야수성’을 지닌 양면적 체제로 인식한다. 그리고 사회적 시장경제의 ‘사회적’이라는 말이 국가가 자본주의의 야수성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독일 기민당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조세제도를 중요시하며, 자유시장경제에 의해 필연적으로 생기게 되는 실업 문제를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인식하고 실업수당·재교육·재취업까지 정부가 책임지는 경제체제이며, 한국도 이러한 경제체제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 김누리의 주장이다.

하지만 사회적 시장경제는 태생부터 시장의 자유와 경쟁을 수호하기 위한 사명감으로 탄생한 경제모델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론의 창시자로는 독일의 신자유주의학파 학자들인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 알프레드 뮐러-아르막(alfred Müller-Armack), 루드비히 에어하르트(Ludwig Erhard) 등이 있다. 여기에는 독일의 전후 재건이 배경으로 깔려있다. 당시에는 이미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으로 인한 위기가 심화된 상태였다. 오이켄은 자본주의는 시장과 경쟁의 가격기구에 의해 완전고용 및 생산·분배·소비의 최적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했고, 당시의 불황이 최적균형을 가져올 수 있는 경쟁질서가 부재하거나 국가의 개입에 의해 왜곡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경쟁질서는 자생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경제정책을 통해 구성되고 조절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의 결론으로 도출된 것이 중립적 국가에 의한 ‘경쟁적 질서의 확립’이고, 이것의 표현이 ‘사회적 시장경제’인 것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사회적 정의’가 침해되지 않는 한에서 기업의 자유를 허용하는 경제체제 정도도 아닌, ‘기업의 자유’가 침해되지 않는 한에서 사회적 정의를 용인하는 체제라는 것이다. 이를 이해한다면, 사회적 시장경제는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형태에 대한 대안이 아니라 ‘독일식 신자유주의’ 그 자체로, 복지국가나 케인즈주의보다도 못한 매우 우익적 경제사상임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하는 김누리는 이러한 ‘독일식 신자유주의’를 우리가 따라야 할 대안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시키는 예방주사로써 라이피즘

이제까지 김누리의 라이피즘이 제시하는 능력주의를 배제하는 ‘교육혁명’과 야수 자본주의를 통제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해 비판했다. 김누리는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강연들에서 독일의 ‘백만 난민의 기적’(2015년 유럽 시리아 난민 문제 당시 독일이 100만 명이 넘는 난민들에게 국경을 개방한 것)을 독일의 ‘사회적 정의’와 ‘인간 존엄을 중시하는 시민 의식’의 사례로 언급한다. 하지만 이 또한 독일 자본가 계급이 독일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회주의자』의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저임금 부문의 수많은 일자리가 난민들에게 제공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부문은 자격증이 하나도 필요 없다. 그리고 독일이나 다른 유럽 국가의 노동력으로는 충분히 자리를 채울 수 없다는 게 분명하다. 노령 인구가 많고, 고용주가 임시고용을 선호할 뿐 아니라 일하기 힘든 조건이어서 이직률이 높기 때문이다. 난민들이 없었다면 이런 기업들이 어떻게 값싸고 일할 동기를 갖춘 신규 노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여기서 결론은 독일에 도착한 난민들의 상당 부분이 값싼 단순 노동력으로 독일 노동시장에 쉽게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김누리가 제시하는 독일 모델들은 자본주의의 문제를 극복하기는커녕 자본주의 체제를 긍정하고 지속시키는 것들일 뿐이다. 이는 라이피즘이 자본주의를 극복할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김누리의 주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아름다운 말들로 치장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것은 모두 독일식 자본주의, 그것도 독일에서 매우 우파적인 자본주의로 귀결된다. 이는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이 고조되어 가자,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듯하면서 실제로는 ‘도로 자본주의’로 민중의 불만을 호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김누리의 라이피즘의 실제 역할이다.

이것은 또한 김누리가 라이피즘이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훨씬 더 시의적이고,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다고 말하는 데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한겨레신문에 실린 2020년 7월 5일자 글에서 그것을 다섯 가지의 근거를 들어 설명한다.


라이피즘은 전통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여겨져 온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보다 훨씬 더 시의적이고,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 개념이다. 그 이유는 다섯 가지다. 첫째, 라이피즘은 자본주의의 ‘안티라이프’ 성격을 직격한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삶과 생존과 생명에 적대적인 체제임을 가장 확실하게 폭로한다. 둘째, 라이피즘은 이데올로기적 유산에서 자유롭다. 20세기를 각인해온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넘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모든 정파를 아우를 수 있다. 자본주의의 인간 소외에 맞서는 자율주의자든, 자본주의의 사회적 착취를 비판하는 사회주의자든, 자본주의의 자연 파괴에 저항하는 생태주의자든 모두 라이피스트의 우산 아래 모일 수 있다. 셋째, 라이피즘은 현대사회의 최대 현안이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는 생태 문제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강조할 수 있다. 넷째, 라이피즘은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위함으로써 근대 휴머니즘 전통의 현대적 적자임을 주장할 수 있다. 다섯째, 라이피즘은 자본주의가 파괴하는 삶, 생존, 생명의 영역을 총체적으로 겨눈다는 점에서 주로 사회적 착취와 불평등을 문제 삼는 사회주의보다 포괄적이고 진취적인 개념이다. 이상의 이유로 나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이념으로 라이피즘을 제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근거들 역시 모두 잘못이다. 첫째 라이피즘이 겨냥하는 자본주의의 ‘안티라이프’ 성격이라는 것 자체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다. 결국 자본주의의 어떠한 점이 문제인지를 흐리게 만든다. 둘째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정파를 아우른다는 것은 사실 제대로 된 이념도, 사상도, 관점도 없다는 뜻이다. 확실한 이념적·사상적 관점을 가지고 투쟁하지 않으면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듣기 좋을 말을 하는 것에 불과하고, 사실상 이념적・사상적으로 경박한 태도라 할 수밖에 없다. 셋째 오늘날 생태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자본주의이며, 그 책임은 자본가 계급에게 있다. 그런데 앞에서와 같이 자본주의를 제대로 극복할 수 없고 자본가 계급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라이피즘은 생태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대안이 될 수 없다. 나아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천착해보면, 여기에서도 김누리의 결정적 역할이 드러난다. 그는 “자본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이념”과 같은 그럴듯한 말을 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유포하여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인 사회주의 운동의 발전을 막고 있다. 이것 역시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시키는 사상적 예방주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진보’란 탈을 쓰고 실상은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예방주사를 경계하지 않고, 심지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삶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고, 민중의 대안세력으로서 사회주의 세력이 성장하는 것 역시 지체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김누리의 주장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유포하는 일부 진보세력들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

김누리가 나와서 이러한 주장을 유포하고 있는 것 자체는 그만큼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이런 지배계급의 예방주사에 현혹되지 않는 제대로 된 사회주의 운동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분명하고 명확한 대안은 사회주의임을 당당히 외치며 투쟁해나가자!

Thursday, March 16, 2023

알라딘: 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알라딘: [전자책] 돈의 인문학

[eBook] 돈의 인문학 -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 
김찬호 (지은이)
문학과지성사2013-08-12 



종이책 페이지수 : 271쪽

책소개

<사회를 보는 논리> <문화의 발견>의 저자이자 길거리 인문학자로 알려진 김찬호 교수의 신작. 돈의 실체를 인문학적으로 규명한 책으로 돈과 삶에 대한 그의 깊은 성찰이 돋보인다.《한겨레21》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스무 차례 정도의 강연을 하면서 내용을 가다듬어 엮어 책으로 펴냈다.

한국에서는 “돈이라고 하면 경제학의 연구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경향이 있고, 인문학은 경제학과 늘 일정한 거리를 두어왔”기 때문에 인문학에서는 돈을 본격적으로 다룬 저술이 미미했던 게 사실이다. 저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적실한 실례들을 들어가며 “돈과 삶의 관계를 분석하고 성찰하는 철학적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탐색하는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돈을 물질로 규정하며 오해해왔던 여러 사례들을 되짚으며, “돈은 물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에게 돈은 무엇인가? 개인은 돈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이며, 인간관계에서 돈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사회는 돈의 시스템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물음들을 지속적으로 던지며 복잡한 돈의 실타래를 풀어 본다. 이 책은 “나를 끊임없이 모독하는 힘에 굴복하지 않는 얼은 어디에 있는가. 천박함과 난폭함으로 치닫는 세계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항체를 갖고 싶다”(270~71쪽)는 저자의 소망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목차
[서문] 돈은 물질이 아니다

제1부 숫자의 현혹: ‘가격’과 ‘가치’ 사이에서

제1장 돈의 매력, 이것이다
1. 힘의 원천 또는 블랙홀
2. 돈이 좋은 일곱 가지 이유
3. 불멸의 환상을 위하여

제2장 화폐의 정체
1. 지폐가 통용되기까지
2. 돈은 어디에도 없다
3. 화폐는 곧 언어다

제3장 가격은 무엇을 나타내는가
1. 달을 분양해 떼돈 번 사나이
2. 사람의 몸값이 천차만별인 까닭은
3. 연봉과 보상금의 계산법은?
4. 가치에 무지한 인간

제4장 숨겨진 비용
1. 엉뚱한 손익 계산
2. 화폐 환상이라는 것
3. 모두가 손해를 보면 괜찮다?
4. 숫자의 함정

제5장 돈이 무용지물이 될 때
1. 재난 상황에서 돈의 운명
2. 통화의 남발과 인플레이션
3. 백만장자들끼리만 모여 사는 세상이라면

제2부 대안 경제의 모색: ‘소유’에서 ‘관계’로

제6장 투기 경제의 사필귀정
1. 금융공학, 위험 전가의 무한 연쇄
2. 부동산, 불패 신화의 종말
3. 파국이 불가피한 까닭

제7장 ‘쩐의 전쟁’에 휘말리는 삶
1. 카지노형 머니게임의 얼개
2. 노동자, 소비자, 투자자 사이의 삼각 충돌
3. 화폐, 또 하나의 ‘이기적 유전자’

제8장 얼굴 있는 돈을 찾아서 : 소액금융과 지역화폐
1. 그라민은행, 빈곤 탈출의 길잡이
2. 미소금융의 결정적인 맹점
3. 레츠(LETS) : 누구나 발행할 수 있는 화폐
4. 부(富)를 매개하는 돈으로

제9장 우애(友愛)의 경제를 디자인하자
1. 시장 규칙과 사회규범
2. 비시장 부문이 탄탄해야 시장도 건실하다
3. ‘돈맹’과 ‘MQ’의 새로운 정의(定義)

제3부 돈의 주인이 되려면

제10장 아이들에게 돈은 무엇인가
1. 일찍 돈맛을 알게 되는 환경
2. 구체적인 경험과 문제 해결 능력
3. 스스로 동기 부여할 수 있는 마음

제11장 남녀 관계를 시험하는 물신(物神)
1. 사랑에 속고 돈에 웃고
2. 경제력, 연애와 결혼의 지렛대
3. 사랑은 가질 수 없는 것을 주는 것

제12장 품위 유지의 비용은 얼마인가
1. 돈을 밝힐 수 없는 인간관계
2. 위세의 두 얼굴 - 위엄과 허세

제13장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1. 타인에게 종속된 욕망
2. 돈이 아무리 많아도, 돈이 하나도 없어도
3. 유능함과 무능함의 다른 기준

제14장 돈과 나, 관계의 리모델링
1. 결핍과 풍요의 역설
2. 노후 준비 자금, 3천만 원이면 된다는데
3. 부(富)의 원천을 찾아서

[후기] 우리는 다시 존귀해질 수 있다
접기
책속에서
P. 6~7 돈에 대한 욕망은 왜 끝이 없는가. 돈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갑이나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은 분명히 물질로 만들어졌지만, 그것은 돈의 표시일 뿐 돈 그 자체는 아니다. 돈을 숭배하는 풍조를 가리켜 ‘물질만능주의’라고 표현하는데, 본질을 놓친 개념이다. 우리가 만일 물질을 추구한다면 음식이나 옷을 끝없이 확보하고 비축해야 하지... 더보기
P. 9 돈은 개인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두는 문제다. 돈의 액수만 숨기는 것이 아니다. 돈에 대한 나의 느낌이나 욕망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다. 그리고 돈이 자신의 삶과 마음에 어떤 모습으로 깃들어 있는지, 스스로에게도 명료하지 않다. 매스컴에서 돈에 대한 정보가 쏟아지고 일상에서 돈 이야기를 많이 주고받지만, 돈과 삶의 관계를 성찰하... 더보기
P. 10~11 인문학은 자아와 세상을 성찰하도록 지성과 감성을 연마하는 수행(修行)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언어는 그러한 시야를 열어주는 핵심 매체가 된다. 이 책은 돈을 둘러싼 경험과 마음을 묘사하면서 거기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을 그려보려 한다. 점점 더 많은 가치들이 돈으로 수렴되어 우리의 궁극적 관심에 대한 질문을 봉쇄하는 시대에, ... 더보기
P. 267~268 우리는 그동안 돈을 최대한 획득하는 방법에만 골몰하느라, 그 돈으로 삶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는 소홀했던 편이다. 그 배경에는 한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빈곤을 벗어난 것은 커다란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근면과 성실로 이뤄낸 자랑스러운 성취다. 그러나 너무 짧은 시간 동안에 부(富)가 막대하게 불어나면서 ... 더보기
P. 270~271 맹신하던 시스템을 의심하고 불신하던 사람을 신뢰하기 시작할 때, 돈으로 매개되지 않고도 이어지는 관계의 회로가 열린다. 거기에서 타자의 숨겨진 욕망과 나의 잠재된 능력이 접속하여 멋진 신세계를 빚어갈 수 있다. 금융공학이 거는 마법의 주문에 속절없이 휘둘리지 않는 삶의 연금술이 거기에서 터득된다. 우리는 서로에게서 존재의 위대함을...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찬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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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초빙교수. 사회학을 전공했고 일본의 마을 만들기를 현장 연구하여 박사논문을 썼다. 대학에서 문화인류학과 교육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부센터장을 지낸 바 있고, 현재 교육센터 마음의씨앗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모멸감』 『눌변』 『생애의 발견』 『사회를 보는 논리』 『도시는 미디어다』 『문화의 발견』 『휴대폰이 말하다』 『교육의 상상력』 『돈의 인문학』 『인류학자가 자동차를 만든다고?』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작은 인간』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모든 것의 ... 더보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대면 비대면 외면>,<대면 비대면 외면>,<[큰글자도서] 나는 오늘도 교사이고 싶다> … 총 5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인류가 만들어낸 희한한 발명품, 돈
돈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적 사유로 풀어낸 돈과 삶에 대한 깊은 성찰

누구나 돈을 좋아하고, 돈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은 별로 없다. 그토록 중대한 관심사가 돈이지만 누구도 돈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지는 않고, 심지어 개인의 가장 깊은 곳에 감춰두는 프라이버시의 대상이기도 하다. 인류가 만들어낸 희한하고 오래된 발명품, 돈. 대체 돈이란 무엇인가? ‘청소년 반부패인식지수’에 따르면 “10년 감옥 사는 한이 있어도 10억 원을 번다면 부패 저지를 수 있다”고 응답한 중고생이 17.7퍼센트였고, “아버지에게 원하는 것은 재력뿐”이라고 대답한 대학생이 무려 44퍼센트였다는 설문조사도 있다(190쪽). 서민들은 ‘88만원 세대’나 ‘사오정’ ‘오륙도,’ 그리고 ‘하류사회’ ‘프레카리아트’ ‘파라사이트 싱글’ 같은 비참한 용어들에 익숙해진 반면(32쪽), 어떤 투자의 귀재에게는 눈덩이를 굴리기만 하면 되는 일처럼 쉬운 일이 돈을 버는 일이기도 하다(26쪽). 그러니, 대체 돈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인문학자’인 김찬호 교수(성공회대 초빙교수)가 펴낸 『돈의 인문학: 머니 게임의 시대, 부(富)의 근원을 되묻는다』(문학과지성사 발행)는 돈의 실체를 인문학적으로 규명한 최초의 국내서라 할 만하다. 한국에서는 “돈이라고 하면 경제학의 연구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경향이 있고, 인문학은 경제학과 늘 일정한 거리를 두어왔”기 때문. 그간 돈의 실체를 규명하는 작업이 점점 더 활발하고 다양해진 반면, 인문학에서는 돈을 본격적으로 다룬 저술이 미미했던 게 사실이다. 저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적실한 실례들을 들어가며 “돈과 삶의 관계를 분석하고 성찰하는 철학적 작업”을 지속해왔으며,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존재 가능성을 탐색하는 운동의 시발점이” 되기를 희망하며 이 책을 저술했다.

김찬호 교수는 『사회를 보는 논리』와 『문화의 발견』 등을 출간하면서 사회의 부조리한 측면들을 독자들이 알기 쉽도록 풀어내온 한국의 대표적인 ‘길거리 인문학자.’ 이번에 출간한 『돈의 인문학』은 2009~2010년에 『한겨레21』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스무 차례 정도의 강연을 하면서 내용을 가다듬어 엮었다. 저자는 그간 우리가 돈을 물질로 규정하며 오해해왔던 여러 사례들을 되짚으며, “돈은 물질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를 통해 “인간에게 돈은 무엇인가. 개인은 돈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이며, 인간관계에서 돈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사회는 돈의 시스템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물음들을 지속적으로 던지며 복잡한 돈의 실타래를 풀어 보인다.

‘제1부, 숫자의 현혹: 가격과 가치 사이에서’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을 통해 돈의 정체를 규명한다. ‘돈이 좋은 일곱 가지 이유’를 통해서는 ‘돈’이 다른 ‘물질’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꼼꼼하게 살피며, ‘돌돈’을 사용해온 야프 섬 사람들을 통해 돈의 속성을 인문학적으로 분석한다. 또한 달을 분양해 떼돈을 번 미국의 ‘달 대사관,’ 사람의 몸값이나 예술작품의 가격이 매겨지는 속성들을 통해 가격과 가치의 의미를 따져보며, ‘화폐 환상’을 통해 우리가 빠지게 되는 오류들을 진지하게 되짚는다.

‘제2부, 대안경제의 모색: 소유에서 관계로’는 ‘파생상품’으로 대표되는 금융공학과 ‘부동산 불패 신화’ 등으로 불거진 ‘머니 게임’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치며, 돈이 더 이상 소유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제3부, 돈의 주인이 되려면’은 우리가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돈과 나와의 관계를 어떻게 리모델링해야 하는지를 살핀다. 일찍 돈맛을 알게 되는 아이들, 경제력이 없어 사랑도 할 수 없는 ‘88만원 세대’들, 그리고 ‘위엄’과 ‘허세’를 위해 경제력을 숨겨야 하는 우리의 ‘품위’에 대해 살피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본다. 예컨대 저자가 책 속에서 던지는 두 가지 질문, 즉 “이 세상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얻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와 “이 세상에 돈이 한 푼도 없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가 실은 써놓고 보면 비슷한 답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가 돈을 대하는 양면성을 꼬집는다.

저자는 『돈의 인문학』을 통해 “나를 끊임없이 모독하는 힘에 굴복하지 않는 얼은 어디에 있는가. 천박함과 난폭함으로 치닫는 세계로부터 마음을 지키는 항체를 갖고 싶다”(270~71쪽)는 소망을 더듬으며 질문하고 상상했다고 한다. 인류가 발명해낸 희한한 발명품, 돈이란 대체 무엇인가? 과연 어디에 쓸지도 모르면서 모으기에만 급급해야 하는 걸까? ‘필요’가 아닌 ‘투기’를 위해서, 혹은 ‘관계’가 아닌 ‘소유’를 위해서 돈을 굴려야 하는 걸까?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무한경쟁의 이 시대에, 경제학적인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인 눈으로 돈을 바라봐야 하는 당위들이 이 책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돈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은 깨어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 본문에 언급된 명사들의 돈에 대한 생각들

“나는 모든 것의 가격을 안다. 그러나 어느 것의 가치도 모른다.” 쇼펜하우어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지만, 대중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 뉴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돈과 명예만 빼고 생각해야 올바른 답을 낼 수 있다.” 안철수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 마르크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있다.” 법정

“돈은 최상의 종(하인)이고, 최악의 주인이다.” 베이컨

“복리(複利)는 언덕에서 눈덩이를 굴리는 것과 같다. 작은 덩어리로 시작해서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끝에 가서는 정말 큰 눈덩이가 된다. 나는 열네 살 때 신문 배달을 하면서 작은 눈덩이를 처음 만들었고, 그 후 56년간 긴 언덕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굴려왔을 뿐이다. 삶도 눈덩이와 같다. 중요한 것은 습기 머금은 눈과 긴 언덕을 찾아내는 것이다.” 워런 버핏

“너의 일상이 초라해 보인다고 탓하지 말라. 풍요를 불러낼 만한 힘이 없는 너 자신을 탓하라.” 릴케

“당신이 갖고 있는 것과 갖고 싶은 것을 비교하면 불행해진다. 당신이 갖고 있는 것과 가져 마땅한 것(what you deserve)을 비교하면 행복해진다.” 에반 에사르

“부족하나 만족하면 늘 남음이 있고, 족한데도 부족하다 하면 언제나 부족하네. 즐거움이 넉넉함에 있으면 족하지 않음 없지만, 근심이 부족함에 있으면 언제나 만족할까.” 송익필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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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정체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구매
pkm1277 2011-03-0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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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관한 새로운 정의 - 가치의 척도로써의 돈  구매
수나기 2017-11-2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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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인문학이라니? 읽다보면 의외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돈에 대해서 그리고 삶의 다른 문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구매
희현맘 2014-12-06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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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해박한지식과 명쾌한 논리가 맞아떨어진 책. 재밌게 읽었어요  구매
커피홀릭 2011-03-2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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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과 인문을 함께 읽는다  구매
whpark35 2013-08-29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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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노예가 될것인가? 돈의 주인이 될것인가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책은 우연히 아주 급작 스럽게 나에게로 왔다. 책을 선택할때 참조하는 여러 블로그글에서 마음이 확 끌렸나보다. 알라딘 서재에 장바구니에 담겨진 여러종류의 책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 그 "돈" 직설적이고도 대담한 돈 이란 어휘때문? 아니면 전혀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언어를 생산한다는 인문학이란 어휘와의 어울리지 않을것 같은 조합때문인지.. 아무튼 냉큼  클릭하여, 주문을 해버렸다.

 

우리의 삶에서 돈이라는 것을 빼고 삶을 설명할수있을까. 세상은 돈을 중심으로 돌고 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도 어쩌면 돈때문이고 ,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돈을 설명함이 없이는 도대체 우리의 삶을 상상 할수가 없을 지경이다.

우리의 삶의 과정 과 목적이 모두 돈을 벌고 쓰기위한 것인데. 그렇게만 말하면 , 삶이 너무 허망하기 짝이 없다. 그럼 돈만 잘벌면  삶을 잘 살았다고 단언할수가 있나, 그러기에는 돈의 노예인것 같아

그건 올바른 삶의 방향이 아니것 같고, 그렇다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뭘까를 고민해보자라는것이 저자의 제안이다.

그렇기에 돈은 무엇인지 돈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 인간관계에서 돈을 어떻게 배치할지 또 사회는 돈의 시스템을 어떻게 조직할지 근원적으로 물어야한다는것이다.

 

이러한 사유가 돈돈돈을 쫓는 현대사회에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삶에대한 태도를 바꾸는게 도움이될것이다라고 한다.

 

돈은 물질이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고, 개인과 세계를 묶어주는 시스템이다. 단순히 물질이 아니기때문에 돈에 대한 욕망이 끝이 없다고 주장한다. 물질에 대한 것은 쌓아놓으려고 하지않지만 , 돈은 인간 욕망의 초절정이다.

 

1. 가격과 가치의 문제

2.대안경제의 모색

3,돈의 주인이되려면

 

이렇게 세가지 큰틀을 가지고 얘기를 풀어가고 있다

 

전통 근대 현대 사회로의 과정을 겪으면서 아무것도 예측가능하지 않는 사회로 진입하면서 사람들은 불안해한다.인간관계도 유동적이고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도 어렵고 , 그것에 대한 대체재로서 점점 사람들은 무소불위의 절대자 돈에 의지하며 ,돈을 가장 견고한 힘으로 여긴다,그돈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게된다.돈이 사실 사람보다도 더 버팀목이된다. 보험광고에서도 버젓이 광고한다

 

고대 사회의 조개껍질서부터 소금,쇠 엽전,지폐 .. (돌 에 아무개의것 으로 소유표기를 한것)거쳐서 지금은 실물을 확인할수 없는 숫자로 파악되는 것이 돈이다.

 

달토지를 분양한다는 달대사관의 이야기는 참 흥미로웠다.3만원만 내면 1200평을 분양해준단다.소유등기권리증 도 준다니.. 미국대통령, 유명감독등도 취득했다고한다.달토지는 가격이매겨져서 가치가 생겼다. 가치가 있어서 가격이 매겨진게 아니라.

사실 사람에게도 가치가 매겨지는건 놀랄일도 아니다.하지만 나의 존재를 화폐의 단위로 측정하여 본질을 포착할수 있나. 가격이 높다고 가치가 있다고 말할수있나, 요즘에는 가격이  가치를 규정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명품의경우를 봐도 그렇다. 구별짓기의 만족감이랄까

 

이책에서 여러가지 사례를 제시하면서 돈의 본질은 뭔가 ? 돈은 타인이 그것을 원할때만 쓸모가 있다는것이다. 나자신이 원해서가아니라,다른사람이 원하기때문이다, 바로 그점이 돈과 다른 재화가 다르다는것이다(예를들면 목이 마를때 비유- 온전한 나의 욕망)

 

두번째 대안 경제의 모색편 - 갈수록 불확실성이 심해져가서 돈독이 삽시간에 인간 관계속에 스며들면서 모든것을 집어 삼키고, 서브프라임위기, 하우스 푸어, 주식투자의 폐혜등 돈이 절대적 존재가 되어  그것자체의 존속과 확장을 위해 모든걸 재물로 삼는다

이에 몇가지 현재 진행되는 대안경제를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돈의 주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한국부모는 시간 낭비에는 엄격하고 돈낭비에는 관대하다-음료수 자판기이야기

내적동기가 충실해야  목표를 달성할수가 있다- 유대인 돌던지는 이야기는 내적동기가 돈이라는 외적동기로 바뀌는 순간 목적을 상실한다

 

남녀사이의 관계-물질을 중심으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한다,

 

돈이 왜좋은가 ? 재화를 사는 수단인 동시에 존경의 기준, 본질적으로 명예로운것이 되고 있으며 , 물론 지나친 궁핍도 인간적 자존감을 잃게하지만 , 돈만 있는 삶이 아니라 돈도 있는 삶을 추구해야하지 않을까

 

돈을 인생 최고의 성공증표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돈벌이에만 전력투구할것이 아니라 다른쪽으로도 관심과 에너지를 골고루 투입하자. 꾸준한 학습으로 두뇌 성능 업그레이드, 가족과 친밀한 경험, 인관관계속에서의 교류, 몸과 마음의 건강유지 물질적부는 성공의 한요소이다

 

성공 그럼 과연 무엇인가 - 건강 ,활력, 삶에 대한 열정, 만족스런 인간관계, 창조적 자유,정서적 심리적 안정, 넉넉하고 평화로운 마음이라는 걸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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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sion 2015-07-10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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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한 달에 나는 얼마쯤의 현금을 ‘만지게’ 될까? 텅빈 지갑을 며칠씩 들고 다닐 때도 흔치 않다. 은행 갈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가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때로는 지갑도 두꺼워 플라스틱 카드 한 장만 주머니에 넣고 외출한 적도 많다. 통장에 숫자가 찍혔다가 카드 명세에 나눠지고 그 숫자들은 곧 사라진다. 한 달을 단위로 정확하게 회전하는 숫자의 흐름은 재미있는 게임같이 느껴진다. 돈의 흐름은 마치 눈앞에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비온 뒤의 무지개보다 허무하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숫자들의 향연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수의 개념이 부족하고 숫자들과 친하지 않은 사람은 더욱 그렇다. 도대체 한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내가 어떤 일을 하고 그 일이 얼마만한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 계산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 거의 모든 물건을 인터넷으로 구매하고 현금을 사용할 일이 점점 줄어들자 가끔 나는 바보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급여를 지급하는 주체도 모호하고 내가 사용한 내역에 따라 그것을 분배하는 과정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런데도 기막힌 타이밍과 시간을 맞춰 돈은 돌고 돈다. 그리고 나는 불편 없이 살아간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돈과 그리 관련이 없는 일만 하면서 살아가는 내 직업의 탓도 있겠지만 하나의 상징과 기호가 되어버린 현대사회의 화폐와 신용카드의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누런 월급봉투가 기억난다. 손으로 쓴 명세서가 봉투 겉면에 씌어있었고 그걸 안주머니에서 꺼내시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시절이 낭만적이었을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돈’과 무관한 사람은 없다. 아니 돈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를 폄훼할 생각도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유난히 돈과 관련된 책이 눈에 들어오고 자꾸 손이 가는 이유는 우리들의 ‘삶’이 궁금해서이다. 아이들은 돈 잘 버는 직업을 선호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기도 한다. 돈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사회의 자화상을 인문학적으로 들여다보는 김찬호의 『돈의 인문학』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와 짝을 이룰 만하다.

전작 『사회를 보는 논리』와 『문화의 발견』 등으로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들을 써온 사회학자의 책은 눈여겨 볼만했다. 읽으면서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주고 호기심을 갖게 하며 또 스스로를 성찰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이 책을 권한다. 삶의 방향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가 인문학이라면 ‘돈’에 관한 인문학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돈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에서 출발해야 한다. 화폐의 기원과 역사를 살펴보고 현대 사회에서 돈이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내 삶에서 ‘돈’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성찰하게 된다.

인문학은 언어를 생산하는 학문이다. 언어는 생각을 빚어내고 삶을 가다듬는다. 언어와 생각과 삶이 어떻게 맞물리는가에 따라 세상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 P. 9

인문학적 상상력이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세계를 해석하고 변화시키는 실마리는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가 인문학을 삶의 토대로 삶아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저자는 ‘돈’을 이야기하면서 행간에 ‘삶’을 숨겨 놓았다. 독자들이 읽어야 할 것은 돈에 관한 지식과 가치 너머에 있는 것은 아닐까. 같은 말일 수도 있겠으나 세태를 비판하고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것은 돈을 ‘소유’가 아닌 ‘관계’로 바라보는 일이고 돈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는 방법이다.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돈과 인문학, 돈과 책이라니! 하지만 둘 다 종이가 아닌가! 이 어이없는 비교는 물론 웃자고 한 말이다. 하지만 돈, 일, 삶이 모두 한 글자 안에 수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곧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통계자료와 실제 사례들은 우울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자유주의 물결과 무한 경쟁시대의 치열함을 넘어 비극에 가깝다. 삶의 태도와 방법을 조금 바꾸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인생을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돈에 관한 한!

돈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 되는 세상은 가깝게는 내 생각의 변화에서부터, 멀게는 자라는 아이들에 대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생각의 변화와 태도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구조와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해 온 사람에게 해결할 수 없는 높은 대학 등록금, 부족한 사회보장제도, 고용 없는 성장, 인색한 사회 환원, 성장위주의 경제정책, 부족한 복지제도…….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은 높고 ‘돈’은 돌고 돌지 않고 한 곳에 쌓인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가난한 사람은 책의 힘으로 부유해질 수 있고, 부자는 책의 힘으로 귀해질 수 있다.”(김찬호) - P. 271

돈과 책이라니! 저자의 마지막 말이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다면, 냉소적인 미소를 띠었다면 일단 이 책을 읽으면서 당신의 돈과 일과 삶을 돌아보라.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보자. 나는 누구이며 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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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nizer 2011-03-16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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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다 새창으로 보기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돈이 인간에게 필연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것은. 우리 인간은 돈 때문에 울고 웃고, 절망하고 희망을 품고, 흥분하고 실망한다.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걸 '사랑'이라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지만) 돈 때문에 사랑하고, 돈 때문에 헤어지는 사랑 말이다. 돈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고, 일부 사람들은 그것에 온 목숨을 바치는 '숭배'의 지경까지 이른다. 나 역시 돈의 맛을 이미 알아버려서 돈을 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커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대부분의 문제가 '돈' 때문에 일어남을 알 수 있다. 뇌물 사건, 절도 사건, 살인 사건 등은 대부분 돈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건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범죄만 가지고는 부족하다.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면 지금 온 세상이 돈을 필요로 하고 그래서 돈 때문에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꾸 이렇게 돈, 돈, 하는데 돈이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 걸까? 대답은 간단하다. 돈은, 말 그대로 돈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할 수 없는 까닭도 '돈'이기 때문이다.

 

 『돈의 인문학』은 이 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하는 책이다. 조금은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돈은 조심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얼마나 실천할 수 있는가, 곧 욕망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만약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면 돈(힘)은 인간을 지배해버린다.

 

 물론, 이 책이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 책의 사고는 얕지만, 그 범위나 내용의 풍부함에 있어서는 최고다. 또 재미있기까지 한다. 평소에 돈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돈과 인문학을 서로 연결시키려는 다소 위험한 시도를 저자가 왜 했을까?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돈에 대한 경각심은 나도 이미 가지고 있는데 말이다.

 읽어보고 나서야 『돈의 인문학』이 더 깊은 사고를 통해 돈에 대한 경각심을 갖추라는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머니 게임의 시대에서 무사히 살아남는 방법은 돈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 아래에 있는 것이다(저자가 한 말은 아니다). 돈을 정복해 봤자 도리어 제가 돈의 노예가 될 뿐, 어차피 돈을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니 돈을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절제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사회의 현상을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돈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나는 그 힘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저자는 물었다. 

 "이 세상에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얻기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이 세상에 돈이 한 푼도 없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그리고 정반대의 질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답이 거의 비슷함을 증명했다.

 이윽고 저자는 또 물었다.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해도 마음이 없으면 줄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인가?"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해도 기꺼이 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나는 후자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답은 '인간'이라고. 인간의 행동은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마음만큼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 나는 이렇게 믿고, 그래서 돈에 대한 경각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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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over 2012-03-09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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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다-돈의 인문학 새창으로 보기
 

대만에는 10년동안 거리 생활을 하며 한국돈 12억을 모은 거지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화제는 그 거지는 자신의 거지 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12억을 모았다고 알려진 후에도 계속 거지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12억을 모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거지의 제자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부자 거지는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한다고 하니 이것 역시 놀라운 일 아닐까. 시장경제 사회에서 돈의 힘이란 이런 것이지 싶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수시로 굴욕감을 맛보아야 하지만 나름대로 자신만의 소명의식이 있고 근성이 있기에 10년동안 거지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돈 또는 화폐'는 인류의 역사상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단지 지금의 동전과 지폐, 수표 등의 모습이 아니었을 뿐, 인간들과의 공동체 생활에서 부족한 물건을 자신의 물건과 교환하거나 구하기 위해 화폐가 있어왔다. 잘 알려진대로 조개, 소금, 쌀, 금, 은, 모포 등도 화폐였다. 우리나라는 화폐라는 개념이 조선전기부터라고 한다. 하지만 화폐의 큰 전환점은 바로 지폐의 등장이라고 한다. 그 시대에도 화폐위조가 있었고, 상업이 발달하면서 어음 등의 지폐가 널리 사용되게 되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돈을 '소유'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과 사실은 그 반대이다.

인간이 돈의 '노예'에 가깝다. 돈이 있는 삶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라 생각한다.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돈이 인생의 주인이다. 돈이 없기에 더 좋은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돈이 없기에 더 멋진 차를 타지 못하고, 돈이 없기에 더 고급스런 옷을 사 입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다.

 

저자는 돈을 '물질'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라고 한다. 개인과 사회를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사회 시스템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좋은 역할을 할수 있는 것이 돈이지만 근대사회이후 돈의 사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돈의 힘이 막강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돈으로 사는 현대인들의 사랑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한쪽에선 돈에 모든 조건을 맞춰 결혼을 하고, 한쪽에선 돈 때문에 결혼도 미루고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돈은 어떤 의미일까? 씁쓸한 우리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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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4-02-0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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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돌아야 돈이라네~ - 돈의 인문학 새창으로 보기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 돈이다. 돈의 가치는 그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그것이 환산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있다. 돈이 있다면... 으로 시작되는 바람에는 그저 돈이 축적되어서 좋다기보다는 그것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늘어나는 데 대한 충족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엇보다 돈을 좋아하고, 많아도 더 있기를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무한한 가능성'이란, 어린이들에게 꿈나무라며 붙이는 호칭이기보다 돈에게 보내는 찬사일 때 더 어울리는 것 같기까지 하다.

 

이러한 돈이 어떻게 생겨났을까. 그리고 현재 돈의 가치는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돈의 가치에 기반한 자본주의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어왔으며, 현재 발생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은 어떤 것들이 실행될 수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 이 책에 담겨있다.

 

"자본주의의 경쟁력은 비자본주의적인 영역들이 얼마나 건실하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보장된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역설이다." p.175

 

오늘날 자본주의는 생태계,사회관계,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서비스 등과 같은 비자본주의의 영역을 갉아먹으면서 성장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주지했던 것과 같이 이러한 비자본주의영역이 축소될수록 우리의 자본주의구조는 아래층이 빈약한 불안정한 형태를 띨 수밖에 없고, 결국 자본주의가 가진 단점에 잡아먹히는 수밖에 없다.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라는 냉소적 평가가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돈이 돈 이상의 가치를 가지면서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한 사람의 수입으로 자녀를 키우기 힘들다는 호소와 살기 힘들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절규가 개개인이 열심히 살아야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말로 끝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비자본으로 해결해야할 것까지 모두 자본으로 해결하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사회의 잘못을 개인의 잘못으로 오해해버리는 것이다.

 

돈이 흐르게 해야한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울림이 있다. 적은돈이라도 벌면 쓰라는 말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사회적 자본의 영역을 확대하기 위한 구조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축적해 놓고 대외적으로 우리나라 국민 생산이니 수입이니 떠들어대는데 필요한 수치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서 공공재로 흘러다니는 돈이 생겨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 퍼져있는 가느다란 모세혈관에까지 숨쉴수 있는 산소가 공급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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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엄마 2014-05-09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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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March 11, 2023

알라딘: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알라딘: [전자책]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ebook

책소개

삶과 글이 깊은 윤리적 지향 속에 하나로 삭혀 녹아 있는 우리 시대의 '숨겨진 선비' 이수태.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서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그가 길어낸 고결한 영혼의 기록들. 그의 글들은 글쓰기란 자기 기억과의 대화라는 글의 기본을 새삼 일깨우며, 일상의 구체성 속에 스스로를 성찰함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깊은 잠언적 울림을 전한다.

저자는 결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도 아니고, 대단한 명성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는 한때 문학청년으로, 시와 소설을 사랑하여 문학 서클에 들어가 문학과 철학을 이야기하며 밤을 새우기도 하고, 습작에도 몰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자신의 전공과는 별 상관없는 직업인의 길을 걸었지만, 자신의 꿈을 외면하거나 잊지 않았다.

어릴 적 품었던 꿈을 성장한 다음에도 잊지 않고, 계속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면서 일상의 결결이 그 꿈이 배이게 하는 힘, 그 꿈을 지향하는 마음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힘, 그는 그런 순수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전공과는 상관없이 쌓은 인문학적, 철학적 성과로 논어를 새롭게 번역하고, 논어에 관한 책을 낸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이다.

저자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특별할 게 없는 생활인이지만, 자신의 일상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통해 자신의 꿈을 반추해내고 성찰하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문장 곳곳에선 글을 본업으로 삼지 않는다는 겸양과는 달리 때로 노트에 적어놓고 싶을 정도로 빼어난 잠언적 경구들이 확인된다. 그는 진정한 삶의 공부를 결코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에세이는 큰 것, 강한 것, 힘센 것, 자극적인 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위압하는 우리 사회에서 작은 것, 약한 것, 소박한 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뿌리임을 일깨워준다.


목차

1부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
전태일과 김윤동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Pierre Gardin?
윤 하사와 당앙
가장 무서운 사람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간소한 생활에의 꿈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사 유감1
이사 유감2
두 자매
우리들의 죄의식

2부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고향이라는 허물
고요한 시간
핼리 혜성 이야기
해리 골든의 수필집
헌 책 이야기
꿈꾸던 날의 우상
신화의 탄생과 죽음
달리기1
달리기2
안양천에서
It’s me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이영유의 시와 삶

3부 논어와 나
『논어』와 나
공자, 그는 과연 누구인가?
젊은 공자
반문의 의미
진리됨에 대한 보증
공자와 예수, 너무나도 닮은 그들


책속에서


첫문장

전태일, 그는 1970년 11월 청계천 평화시장 앞 거리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스스로의 몸에 석유를 붓고 분신해 당시의 척박한 노동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P.17

“전태일과 김윤동은 분명히 다르다.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 고만고만한 분위기 속에서 평화시장의 서럽고 배고프고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소외된 삶을 살았다는 이 동질성은 여전히 남는다. 언젠가부터 나는 그 동질성이 그들의 서로 다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이―나의 풀리지 않는 화두를 포함하여 점점 하나로 휘덮어가는 것을 느낀다.
줌아웃Zoom out, 어쩌면 그렇게 설명하는 것이 바뀌어가는 나의 인식에 가장 유사할 것 같다. 그리고 왜 많은 영화감독이 그들 영화의 가슴 저미는 마지막 장면을 구태여 줌아웃으로 처리하는지 이해가 될 듯도 하다. 화면 속 수많은 정경이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까마득히 멀어지면서 이제 전태일과 김윤동은 하나의 점처럼 보인다. 흑백으로 낡아가는 1970년대와 함께. 이제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는 그 시대의 설움과 함께.”
P.61

“라면집의 간소함에는 그런 스산함이 있다. 젓가락 통에 젓가락이 조용히 꽂혀 있는 모습이라든가 단무지 접시들이 차분하게 포개져 있는 모습, 그리고 저 거울 속에 전철을 타러 부산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스산함이 있다. 그리고 그 스산함은 나를 편안하게 하고 고즈넉하게 한다. 어쩌면 이 라면집은 언젠가 까마득한 과거에 보았던 혹은 언젠가 먼 미래에 다시 보게 될, 나의 잃어버린 성소(聖所)나 제단(祭壇)의 흔적인지도 모르겠다.
P.96

“고요의 순간은 바깥에 쏠려 있던 우리의 의식이 온전히 회수되는 순간이며 의식이 일상적인 무언가로 치닫지 않고 그 발원지 근처에 무거운 안개처럼 머무는 순간, 그래서 제 자신을 좀 더 낯설게 의식하는 순간이다.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듣고 있다. 그것은 미세하게 가물거리면서 말을 걸어오는 존재의 소리다. 그래서 고요함 속에서 우리의 귀는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열린다.”
P.174~175

“우리가 가장 깊은 눈을 열고 이 세상을 그 심연에서부터 바라볼 때, 이 세상 역시 상처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곳에서 우리는 피 흘림을 보고 신음을 듣는다. 그렇게 본다면 인간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필요하다고 막연히 여겼던 나의 생각도 구태여 잘못은 아닌 셈이다. 다만 엄밀하게 볼 때 필요한 것은 상처라기보다는 이 세상의 미만한 상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적 성실성이라고 바꾸어 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땅 위에 상처 아닌 것이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 광막한 우주의 상처가 아닌가! 단지 우리는 우리가 ‘보는’ 만큼의 상처를 가질 뿐이며 그런 방식으로 가지는 상처의 크기만큼 지혜와 인간적 연대를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희비애락에 노출된 인간의 삶은 드러난 상처와도 같다. 최후의 순간에 지혜는 그 모든 상처와 일체화된다.”


저자 소개

지은이: 이수태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300개의 정치적 혹은 비정치적 화두들>,<공자의 발견> … 총 19종 (모두보기)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서울사대부고와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들어가 32년간 한 직장에서만 복무하며 대전지역본부장, 일산병원 행정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9년 「한국 가곡의 재인식 문제」로 제5회 객석 예술평론상을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격월간 에세이스트사가 제정한 시대의 에세이스트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현재는 강화도에 집필실을 마련하여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하는 한편, 특히 수사학(洙泗學)을 연구하고 강연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 관련 저작, 『논어의 발견』(1999), 『새번역 논어』(1999) 『공자의 발견』(2015), 수필집으로 『어른되기의 어려움』(2002) 『누룩곰팡이의 노래』(2004)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2012) 『영원한 공직』(2013) 『300개의 정치적 혹은 비정치적 화두들』(2017) 등이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스스로 선택한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서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길어낸 ‘한국 최고 수준의 에세이’ 어쩌면, 한글로 쓰여진 모든 에세이 가운데서 단연 최고의 명품 에세이! 

우리 시대의 숨겨진 선비가 펼쳐내는 맑은 영혼의 세계 한 평범한 생활인의 깊은 사유와 통찰로 영혼 상실과 물질 만능의 이 시대에 던지는 최고 수준의 지혜 삶과 글이 깊은 윤리적 지향 속에 하나로 삭혀 녹아 있는 우리 시대의 ‘숨겨진 선비(隱士)’ 이수태.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서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그가 길어낸 고결한 영혼의 기록들! 
그의 글들은 글쓰기란 자기 기억과의 대화라는 글의 기본을 새삼 일깨우며, 일상의 구체성 속에 스스로를 성찰함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깊은 잠언적 울림을 전한다. 

저자는 결코 특별한 인물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도 아니고, 대단한 명성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는 한때 문학청년으로, 시와 소설을 사랑하여 문학 서클에 들어가 문학과 철학을 이야기하며 밤을 새우기도 하고, 습작에도 몰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자신의 전공과는 별 상관없는 직업인의 길을 걸었지만, 자신의 꿈을 외면하거나 잊지 않았다. 어릴 적 품었던 꿈을 성장한 다음에도 잊지 않고, 계속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면서 일상의 결결이 그 꿈이 배이게 하는 힘, 그 꿈을 지향하는 마음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 힘, 그는 그런 순수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전공과는 상관없이 쌓은 인문학적, 철학적 성과로 논어를 새롭게 번역하고, 논어에 관한 책(『새번역 논어』, 『논어의 발견』, 『공자의 발견』)을 낸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이다. 저자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특별할 게 없는 생활인이지만, 자신의 일상 작은 부분 하나하나를 통해 자신의 꿈을 반추해내고 성찰하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문장 곳곳에선 글을 본업으로 삼지 않는다는 겸양과는 달리 때로 노트에 적어놓고 싶을 정도로 빼어난 잠언적 경구들이 확인된다. 그는 진정한 삶의 공부를 결코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의 에세이는 큰 것, 강한 것, 힘센 것, 자극적인 것이 세상의 중심에서 위압하는 우리 사회에서 작은 것, 약한 것, 소박한 것이 우리 삶의 진정한 뿌리임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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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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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hyeffy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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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목소리를 내는일이 얼마나 소중할까요. 낯선장르에 지적호기심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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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D   202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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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완독서평

나는 아직도 완강히 핸드폰 사용을 거부하는데, 누군가는 요즈음은 핸드폰이 없다는것은 예의가 없는 것처럼 취급될 소지가 있다고 넌지시일침을 가한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세상은 수년 전만 해도 최신품이던 핸드폰 사양을 무슨 골동품처럼 취급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나는 아직 버티고 있다. 이 버팀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래도 버티는 데까지는 버티어보려한다.

이것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다.

63-4쪽

이 책의 표제가 된<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는 아날로그를고집하는 것과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아날로그의 낭만을 놓지 못해 불편을 감수하는 것 뿐아니라 디지털을 거부하며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집전화에 이어 상대방의 불편으로 인해 아마도 지금은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겠지만 과거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크게 불편했던 것 같지는 않다.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기록하는 행위에 있어서는 분명 아쉬움을 크게 느끼고 있는터라 나는 초라한 반자본주의 마저 주장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달리기에 관해서도 언급한 부분이 나오는데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방법으로 권하기도 한다. 걷기든 달리기든 그 자체에 몰입하다보면 잡념이 사라지고 신체적인 건강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저자의 말처럼 마치 술과 마찬가지로 달린다는 행위자체가 매력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달리다보니 정신과 육신의 이로운 점이 생겨나는 것이지 그 어떤 것보다 달리기를 우선적으로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가하면 헌책방이나 라면집처럼 반자본주의와 제법 낭만적으로 이어진 내용들도 나오는데 이부분 그야말로 지극히 개인적인 추억과 감상이 저마다 다를것 같아 생략하도록 한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들도 기억에 남지만 안타까운 사연도 등장한다. 알고 지내던 집사님이 가정폭력에 의해 죽을고비를 수차례 넘겼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자녀들의 강권하여 이혼에 이르렀다는데 가정이 해체되는 것을 두고 다행이라고 할 순 없지만 가정폭력만큼은 어떻게든 함께 살라고 강요할 만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수태저자의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가 맘에 들었던 이유는 읽을 때는 공감하지만 책을 덮는 순가부터 공허해지는 여타의 에세이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시대적으로 또 문학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어떻게 인문학적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나의‘라고 했지만 결국 ‘우리의‘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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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겔로스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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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솔직히 제목이 다 어렵게 느껴져서 선뜻 손에 잡기 힘들겠다 느껴졌던 책이다. 이 시리즈들 제목은 다 나랑은 멀게 느껴졌고 작가는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기에 내가 이 책을 손에 잡는다 한들 페이지가 잘 넘어갈까? 의문이 많이 들었는데.. 나의 기우였다. 사무사책방 시리즈 중 제일 먼저 손에 잡은 책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인데 내가 평소 좋아하던 에세이라 편안하게 작가의 젊은 시절, 작가의 삶을 살짜기 엿볼 수 있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서울사대부고와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한 저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32년간 일했다고 한다. '한국 가곡의 재인식 문제'로 제5회 예술평론상을 수상, 2013년 에세이스트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는가 하면 '논어의 발견', '새번역 논어', '종자의 발견' 등을 집필했다. 논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였지만 공자와 예수에 대한 관심이 지극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공단에서 일하며 세금징수를 다녔던 저자의 이야기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를 읽으면서 느껴진 저자의 생활은 청렴함이었다.검소하게 생활하길 원했던 저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가 더 편하게 다가왔나? 나와 그가 살았던 시대가 조금은 차이가 나는데도 말이다. 평소 즐겨읽던 책분류가 에세이여서 그랬을까? 사무사책방 시리즈 중 제목만 보고 딱 고른 책이 에세이였다니! 놀랍기도 했지만 작가의 시선으로 그 시대의 정취를 느끼고, 작가의 시선을 통해 사회도 작가의 생각도 느낄 수 있어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다.


대화와 설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난데없이 인생이 아름답다는 생각, 이승의 삶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

비극과 희극에 공히 내려진다는 신의 축복 같은 벅찬 상념에 휩싸여

핑그르르 도는 눈물을 간신히 억제해가며 서서히 교회 마당을 빠져나왔다.

고요의 순간은 바깥에 쏠려 있던 우리의 의식이 온전히 회수되는 순간이며

의식이 일상적인 무언가로 치닫지 않고 그 발원지 근처에 무거운 안개처럼 머무는 순간,

그래서 제 자신을 좀더 낯설게 의식하는 순간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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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다랜드   2021-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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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다산북스

사건의 발단은 내가 복무하던 논산훈련소의 모 중대에서 화장실 유리창 하나가 분실된 데에서 일어났다. 이 뒤처리를 다른 중대의 화장실 유리창을 밤에 몰래 뽑아다가 박아놓은 것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중략> 자,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도난을 당한 중대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밤에 보초근무를 섰던 기간병이나 훈련병들은 기합을 받았고 즉시 원상복구를 위한 '특공대'가 조직되었다. 그러면 그다음 날은 건너편에 있는 다른 중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p.42~43

어느 중대가 당했다더라는 이야기나 어느 중대에서는 대낮에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 성공했는데 선임하사가 직접 작전을 진두지휘했다더라 하는 이 스릴 넘치는 이야기는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의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에 실린 에피소드이다. 화장실 유리창 하나가 분실된 이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했으나 점점 이야기의 스케일은 커진다. 어떻게 하면 적으로부터 자신의 중대 창문을 지킬 것인가 하는 게임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흥미진진했던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정말 생각보다 쉬운 방법으로 6중대 6중대장에 의해서 사건이 마무리된다. 아마 몇몇 중대장이 왜 자신도 그처럼 남다른 발상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거라는 저자의 말 따라 나 또한 6중대장의 발상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치렀던 '작은 손해'가 다른 모든 중대장과 뚜렷이 구분되는 행동으로 사병들에게 특별한 인물이 되게 하였다면 나에겐 정신 차리라며 뒤통수를 한대 치는 이야기였다. 정말 '내가 공연히 손해 볼 수는 없다'라는 일념이 한 발자국 양보함으로써 생기는 더 값진 것을 잊고 살게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는 목차에서 볼 수 있듯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길지 않게 담겨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평범한 삶이 담긴 인문 에세이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며 그의 삶의 일부분을 통해 나의 삶의 일부분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자와 함께 추억여행을 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던 글들이 많아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3부의 논어 주제가 실렸을 땐 뭔가 아쉬웠다. 저자의 다른 에피소드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3부의 논어를 통해 수없이 들어왔던 '논어'와 '공자'에 대해 맛보기를 할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

각 장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만나볼 수 있는 풍경 그림, 정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과 함께 제목에서 주던 부정적이고 어려운 느낌이 싸악 씻겨내려가기 기분이었다.


저자의 '간소한 생활에의 꿈'편에선 식당에서 홀로 있으며 식생활로 흐른 생각이 종교의식으로 그리고 자신이 미래에 다시 보게 될 잃어버린 성소나 제단의 흔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이야기가 신기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편에선 컴퓨터로 인터넷 세상까지 기웃거리며 세상의 변화와 문명의 이기를 줄레줄레 따라가고 있지만 아직 핸드폰은 없다며 버티는 데 까지는 버티어보려 한다며 이것이 본인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라고 이야기하는 저자를 응원했다.


'고향이라는 허물'편에서는 그의 이야기에 따라 나 또한 고향을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자란 만큼 폭이 좁아졌던 골목길과 담벼락을 보며 이곳이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생각, 예전에 있던 가게가 사라졌을 땐 나의 추억을 도난당한듯한 기묘한 기분 등 나의 낡은 기억 아래에 묻히고 만 고향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이사 유감'편에서는 우리가 거대한 '……척(pretend)' 속에 살고 있으며 너무 오래 척하느라 척한다는 사실마저 잊을 지경이 된 것이 바로 이 자본의 밤이라 이야기를 통해 정말 파괴와 착취와 살육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이 고요를 우리 시대는 잃어가고 있다.

p.97

'고요한 시간'편에서 주는 그 고요함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차 소리 각종 기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 소란한 세상 속에서 벗어나 완전한 고요가 주는 그 여유로움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더라?!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댁을 찾아 그저 멍~하니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끝없이 이어지던 논과 밭이 있던 그 고요한 시간을, 그 여유로움을 느꼈던 그때가 그리우면서 이제는 그곳을 다시 가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하다.


이렇게 저자의 소소하면서도 평범한 삶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다. 정말 제대로 된 추억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더없이 즐거웠다. 그리고 논어 편에서는 묻는다. 저자가 공자에게 말하던 부분이었지만 나에게도 묻는듯했던 말, 이젠 그 답을 찾아볼 시간.


너는 무엇을 하느라 네 일생을 허비하였느냐?

머리는 왜 그리 희었으며

지금 그 늦은 나이에 아직도 무엇을 찾겠다고

서성거리고 있느냐?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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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쟁이   202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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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 책방 시리즈> 일곱 권 중 두 번째로 선택한 책은 이수태 작가님의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앞서 읽은 [만인의 인문학]과 동시에 읽기 위해 비교적 무게감이 적다고 생각되는 책을 골랐다. 페이지 수도 별로 안 되고 에세이라는 말에 덜컥 집어들었으나, 어쩐 일인지 처음 생각했던대로 쭉쭉 읽어나가기가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다고 할까. 읽다보니 갑자기 가슴이 덜컹, 하거나 갑자기 느껴지는 아련함에 어쩔 줄 모르겠는 마음을 부여잡고 멍-했던 순간들도 더러 있어 당황하게 만들었던 책. 평범함 삶 속에서 발견해낸 작가만의 빛나는 순간들, 혹은 아쉽고 그리운 순간들이 담겨 있다.

 

조그마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은 생각하면 하나의 일탈이다. 그것은 단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균적 가치관에 저항하며 구축된, 다소 고독한 가치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 한 발자국을 확보할 수 있는 자를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비록 한 발자국을 물러섰지만 그의 앞에는 몇 배나 더 넓은 영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p 45

 

이 책에 담긴 글들은 이를테면 이런 글들이다. 우리가 그냥 놓치고 지나가는 어떤 것들에 대한 술회. 한 번쯤 생각은 해보았으나 그걸로 끝, 글로는 적어보지 못했던 삶의 단상. 위의 인용문과 같은 내용을 언젠가의 나도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저 단순히 '조금 손해본다고 나쁠 것은 없다'고 스쳐지나갔던 생각들이 작가의 펜 아래에서 구체화된 것 같은 기분. 짧고 간결한 문구로 삶에 관한 철학을 논하는 젊은 세대들에 비하면 투박한 느낌이 배어나오는 듯도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겸손한 자세로 귀기울이게 된다고 할까.

놓쳐버린 이 별에서 인생이라든가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이미지를 느끼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이 별이 인간의 한 생애와 맞먹는 76년이라는 독특한 주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핼리 혜성에 마음이 있다면 혜성은 다시 지구 가까이 돌아왔을 때 그가 76년 전에 보았던 인류의 대부분이 무덤 속에 누워 있고 그들의 낯선 후손이 저마다의 행복과 슬픔 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광경을 고즈넉이 굽어볼 것이 아닌가.

p 105

 

이 대목 읽는데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고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 고독함. 적막감. 외로움. 쓸쓸함. 다음 번 핼리 혜성을 볼 수 있는 해는 2061년이라는데, 그 때즘 되면 아마도 나는 물론 나의 가까운 이들도 대부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자신을 보았던 사람들은 아무도 남지 않는 이 지구 위를 날아갈 핼리 혜성.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평소에는 막연히 생각했던 죽음이나 삶 같은 것들이 핼리 혜성이라는 구체적인 것과 비교되니 더 아련하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받았던 부모의 사랑을 생각하고 먼저 떠나간 친구를 향한 그리움을 토로하는 저자는, 휴대폰 사용을 하지 않는 것으로 '반자본주의자'의 모습을 유지하고 이사를 하면서도 착취와 살육의 현장에 있는 것 같다며 몸을 떠는 사람이다. 순수한 듯 하면서도 '삶이 공허하고 외롭다는 것을 아는 것도 큰 지혜'라는 것을 깨달은 원숙한 사람. <논어>를 예찬하는 그가, 과연 그 책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얻었는지 조만간 정성들여 읽어봐야겠다. 쉽게 읽히나 이런 저런 생각을 곱씹게 만드는 저자의 글 속에서 그의 소박한 향기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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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동맘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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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조용하고도 정갈한 에세이다. 저자의 글들을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니 여름날 바람이 솔 솔 부는 시골집 대청마루에서 얼핏 잠이 들었다가 깬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추운 겨울날 따뜻한 차 한잔 대접 받은 느낌이랄까... 소근소근 들려주는 옛 이야기들로 마음을 청소한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


에세이는 그 사람이다. 글을 읽고 드는 생각이다. 에세이는 그 사람의 생활이자 삶이다. 작가님의 성정이 고스란히 책 속에 묻어나온다.제목이 초라한 반자본주의라고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왠지 다이몬드같은 변하지 않은 보석이 있는 듯하다.


젊은 부부에게 다른 딴판의 사고가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고자 그가 했던 말은 참 인상깊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고 또 마음에 걸려서 모순의 사고를 끄집어낸 그를 보고 그 마음쓰임이 너무 애틋했다.


가끔 가진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자주한다. 특히 이사를 해보면 안다. 이렇게 욕심들여 살 필요는 없었는데 그 순간 순간 갖고 싶다는 생각에, 그리고 이쯤이야 라는 생각에 불편을 감수할 결심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군더더기에 신경을 쓰면서 시간을 온통 거기에 잡히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저자의 소박한 하루, 그리고 무엇보다 그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다. 페허를 사랑하고 고요한 시간을 즐기고 정갈함을 몸소 실천하는 삶...... .


데이비드 소로처럼 시골에서 땅을 일구고 자급자족하지않고도 저자처럼 도시의 반자본주의자로 살 수 있다면 어떠할까? 어마어마한 유혹들에 휩싸여 난 아마 정신을 잃을 지도 모른다. 난 너무 유혹에 약한 자이니 말이다. 차라리 유혹이 없는 곳에서, 물론 스마트폰이니 문명기계가 없는 곳에서 산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무료할 것같다. 오히려 하루 하루 먹고, 자는 것만 신경쓰면 되니 괜찮으려나 싶기도 하지만...


저자의 반자본주의의 삶... 이는 강요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경지다. 끊없이 스스로 성찰하고 싸워야하만 가능하다. 어찌보면 소박하게 사는 것이 그래서 부유하게 사는 것보다 사실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반자본주의 삶에는 바로 반성과 자기 성찰이 있다. 하지만 부유한 삶에는 그 어떤 반성도 성찰도 들어갈 구멍이 없다. 이미 너무 가득 차 있다. 또 그것을 유지하려면 보이는 틈을 메워야한다. 하지만 소박한 삶에는 여유가 있다. 바람이 통하는 숨구멍이 있다. 그 틈으로 바람이 불어올때 우리는 그것을 자유라 말한다.


여기서 미니멀리즘을 소환하지않아도, 다시금 소로를 그의 통나무집에서 불러 오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어떤 삶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인지를 말이다. 모든 것은 그리고 개인의 선택이다.



출판사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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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hyeffy   2021-04-27




🎋 스스로 선택한
평범하고 소박한 삶에서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길어낸
'한국 최고 수준의 에세이'

🌺시리즈 플라뇌르 Flaneur
산책자를 위한 푸르른 영혼의 성체

필자 이수태님의 에세이는 절대 초라하지 않다. 제목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소박한 일상생활의 평정과 균형을 얻고자 알뜰살뜰 사는 삶이 초라하다 한다면 어느 누가 온전한 모습으로 삶을 반추하고 반성하며 정갈한 기록으로 부끄러움이 없다할 수 있을까.
필자의 눈과 귀를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나도 고요한 삶의 자취를 따라 나의 행적과 언행들을 돌아보고 있음을 깨닫고 만다.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과 체험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소중한 기억들을 차분히 감상할 수 있을까. 지나온 시간만큼 변화된 그의 삶의 중심적 관계, 사랑, 일 그리고 꿈.....격동의 세월을 거쳐온 그의 이야기들은 정작 특별해서라기 보다는 지극히 소소하고 일상적이라는 담백함 속에 모두의 아련한 옛기억과 그 시절의 의미를 회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돌이켜 추억하고 반추하는 문학에 대한 집념, 고뇌, 포기, 이런 말들은 겪어보지 않고는 그 심정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오랜 시간동안 공 들여온 논어 새로 쓰기의 완성은 감격스러움 그 자체였다.
한 가지의 사물을 보더라도 정체되지 않으며 지루하지 않게 끊임없이 새로운 피조물로 승화시키는 필자만의 작법은 오랜 습작이 일궈낸 내공임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연결지을 수 있는 힘, 연결된 사물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주체성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 논리적이지 않고도 이치에 닿을 수 있고, 수사학적이지 않고도 되새기게 만드는 그만의 수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고요의 순간은 바깥에 쏠려 있던 우리의 의식이 온전히 회수되는 순간이며 의식이 일상적인 무언가로 치닫지 않고 그 발원지 근처에 무거운 안개처럼 머무는 순간, 그래서 제 자신을 좀 더 낯설게 의식하는 순간이다.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듣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를 듣고 있다. 그것은 미세하게 가물거리면서 말을 걸어오는 존재의 소리다. 그래서 고요함 속에서 우리의 귀는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크게 열린다.
96쪽

고요한 순간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의 회상 중에서 크게 공감가는 부분이 있어서제일 인상에 남는 글이다.
나는 무수한 일상 속에서 아무리 반복해도 깨닫지 못했던 것을, 알아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을 이리도 간결하고 깔끔하게 들려준다. 말과 글의 곧고 부드러운 힘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사무사책방시리즈 #나의초라한반자본주의 #그어딘가의구비에서우리가만났듯이 #만인의인문학 #메멘토모리죽음을기억하라 #국가의딜레마 #보이지않는가위손 #공주는어디에있는가 #리딩투데이 #리투리포터즈 #인문학 #다산 #리투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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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11687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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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늘이 무엇 하나 덮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마치 땅이 무엇 하나 실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마주하는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제목을 보고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문장이 섬세하고 어렵지 않은 에세이 였다.

고향에 대한 생각이나

자연에 대한 표현이 섬세하였다.

특히 안양천에 대한 글이 기억에 남는다.

고향은 없다. 고향은 다만 내 추억 속에만 있다.

지금 그곳에 있는 고향은 아버지의 헐벗은 무덤을 안고

늙은 어머니의 초점 잃은 퀭한 눈을 안고

오늘도 창백하게 낡아가고 있을 뿐이다.

푸른 숲 그늘을 노래하던 매미는 잠시 자신이 허물을 벗던 나무둥치,

그 메마른 허물 곁에 앉아 본다.

한때는 그의 세계였던 허물,

여름과 녹음을 향한 꿈, 끝없는 비상의 꿈이 배태되던 허물은

이제 하얗게 바랜 흔적만으로 매달려 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봄부터 지금까지 나는 지칠 줄도 모르고 안양천과 놀고 있다.

나는 문명의 개숫물이 흘러 내려가는 이 거친 저지대에서 잠시 숨을 쉰다.

이런 휴식도 어쩌면 내 존재에 있어서는 불성실과 도피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만한 휴식도 없이 어떻게 이 곤고한 세월을 살아간단 말인가.

이제 초가을이다. 안양천의 뿌연 흙빛은 어느덧 다시 녹색의 풀빛들로 바뀌었다.

그래도 자세히 보면 풀더미 아래에는 아직도 큰물의 상처가 뿌옇게 혹은 시커멓게 남아 있다. 그래도 안양천은 지난달보다 훨씬 더 차분해졌고 파란 하늘 아래에는 군데군데 코스모슥가 피어 그림처럼 고운 정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제 그 코스모스도 쓰러져 눕고 풀들도 누렇게 시들어 본격적인 가을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머지 않아 겨울이 오면 이 헐벗은 안양천에도 눈이 올 것이다.

나는 눈 덮인 안양천의 모습이 벌써부터 궁금하다. 그때 자전거 바퀴 자국이 난, 하얀 길을 입김을 뿜으며 걸어가 보고 싶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하천은 생각보다 폭이 넓었고 시원하게 조성된 하천 부지에는

갈대와 잡초가 우거져 있었다. 뚝방 아래 농구코트를 가로질러 곧바로 물 가까이 접근하니

탁한 오수의 냄새가 풍겼다.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그 냄새는 조그마한 소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에게는 추억의 냄새이기도 했다. 잠자리채를 들고 종일 철다리 아래 개천가를 쏘다닐 때 시커먼 도랑에서 나던 그 잊혀졌던 냄새를 나는 모처럼 다시 맡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 검은 물 위로 야생 오리들이 줄을 지어 이 기슭에서 저 기슭으로 미끄러지듯 헤엄치고 있었다. 봄이라서 그런지 하천부지는 온통 연녹색이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58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상처'에 대한 내용이다.

이렇게 사고하는 저자의 시선이 철학적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이런 생각의 전환 가운데 상처를 극복해 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상처를 상처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극복이라는 의미로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다-

정초에 컵퓨터를 고치겠다고 연장을 다루다가 무심결에 손을 다쳤다.

작업에 너무 취해 있었던 탓인지 손이 좀 쓰리다는 것만 느꼈는데 나중에 보니 컴퓨터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 놓았으나 움직임이 많은 부분이라 제대로 붙어 있지를 않았다. 아물다가 피가 나고 또 아물고, 딱지가 앉다가 떨어지고 또 딱지가 앉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 상처를 다스리면서 나는 마음에 난 상처를 생각해 보았다.

우연한 일상일 수도 있고 또 그 순간을 자극한 어떤 마음의 상처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더치고 하는 과정이 몸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67

컴퓨터를 고치다 다친 손의 상터를 통해 내면의 상처를 생각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나였다면 아마 자신의 실수를 탓하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이 작은 실수도

그럴수 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무너질듯 자책을 했을 것 같다.

요증 더 힘들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너무 쉽게 찾아오는 것 같다.

그런데 저자는 나보다 그런 내면의 상처를 인식하고 이겨내는 힘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러한 과정에서도 저렇게 또 다른 시선의 생각을 할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저자는 '막연하게 인간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늘해왔다고 하다.

하지만 나는 할 수 만 있다면 그러한 상처 하나 받고 싶지 않다,

어쩌면 요즘 너무 지쳤기 때문일까.

내가 나를 돌보기도 지치는 날들이 많아서

그냥 편히 쉬고 싶고, 더 이상 상처로 아파하고 싶지도 않다,

나의 몸도 마음도 어디하나 상처 받지 않고 평안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상처를 바라보는 저자의 표현은 인상적이었고, 공감이 되었다.

아무런 상처 없이 고이자란 사람의 시선은 사물의 표면에만 머물기 쉬다.

인간사의 다양하고 미묘한 내정은 제가끔의 상처를 통해,

더 정확히 말한다면 상처를 다스리면서 형성된 경험세계를 통해 비로소 인지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본다면 상처는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기도 하다.

그러나 너무 심한 상처는 때로 그것을 치유하고 극복하려는 의지 자체를 압살해버리기도 한다. 실제 세상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터를 안고 그 고통에 짓눌려 한평생을 불행히 살다 떠나는 사람이 많다. 할수 만 있다면 상처는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와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 그러나 상처는 우리가 임의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상처 그 자체는 대부분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불행이기 때문이다. 다만 상처를 극복하면 우리는 그 우연성과 개별성을 넘어 필연성과 보편성을 갖춘, 한 차원 높은 세계로 지닙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사무사책방 -168

상처를 받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상처, 몸의 상처 한 번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상처는 받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 라는 생각도 든다.

상처라는 주제에 대해 저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상처라는 것이 의미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극복이라는 단어가 함께 존재할 때 일 것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지만, 그것에 눌리지 않기 위해 극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산북스의 사무사책방 시리즈를 읽으며

이렇게 우리나라에도 좋은 책들이 많이 있구나라는 생각이들었다.

주로 읽었던 책이 외국작가들 책이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 작가들의 이야기가 다긴 책을 더 자주 찾아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혹시나 제목을 보고 어려울 것이라고 먼저 생각할 수 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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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딩북   202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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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 시리즈 중에서 사적인 에세이를 담고 있는 책이다. 에세이여서 가볍게 읽어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아니었다.

읽으면서 이태수 작가를 통해 진정한 어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책을 통해서도 작가의 인생의 가치를 볼 수 있었고, 그 가치는 곧 옛 선조들의 신념과 일맥상통함을 엿볼 수 있었다.


가진 것이 많고 두른 것이 많고 내세울 것이 많을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타고난 위상을 잃게 된다.

제 자신을 잃고 어떻게 남을 논의할 수 있는가.


이태수 작가는 한 시대의 사람으로서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삶 속에서 성찰한 인생의 가치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세속적, 물질적 것에 가치를 두지 않는 염세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 부분이 옛 현인들의 지혜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물질적인 것에 흔들릴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내면의 가치가 가장 아름답고 살아가면서 고수하기 힘들며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생각하면 우리의 평온한 일상은 파괴와 착취와 살육의 나날들이다.

우리의 평화는 이미 평화가 아니다.

우리는 거대한 '척'하는 속에 살고 있다.

평범한 삶. 그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의 삶이지만 그 속에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성찰해 볼 수 있게 해준다.

특별하게 살아가는 것은 극소수이고 어렵지만 나는 남들과 비슷한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훨씬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도 부단한 노력과 발돋움을 수없이 해야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는 우리들에게 잠언의 경구들을 통해 성찰을 하게 해준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책 중에서 사무사의 주제와 가장 걸맞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사사로운 에세이 작품이지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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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ekey77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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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사무사책방





마치 하늘이 무엇 하나 덮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마치 땅이 무엇 하나 실어주지 않음이 없듯이





저자의 서문 대신 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저자이신 이수태님은 연세대학을 졸업 후 국민건강보험 관리공단에서 32년간 재직하셨고 논어의 대가로 불리며 작품을 쓰고 있다. 관련 글을 검색해보니 저자를 오랜만에 만난 지인은 그의 모습을 단아한 선비 같다고 표현했다. 그의 작품을 읽으니 작품이 곧 그 사람이므로, 그를 선비라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책은 총 3부로 나누어져 있고 1부, 2부에는 수필이 3부에는 논어를 강연한 내용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다. 책의 초반에 등장하는 전태일 열사와 저자의 사촌 형 김윤동 님은 대조적이다. 우리 삶이 뭔가를 생각해 볼 때, 삶은 이런 간극을 넘나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자의 군대 시절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독특한 대답을 하는 훈련병이 있었는데 그의 대답은 "대화도 설득도 통하지 않는 사람이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지요."였다. 훈령병이면 이십 대 초반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던 걸까! 대화와 설득은커녕 남의 말에 귀 기울여보려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 편 한 편 저자의 수필을 아로새기며 많은 생각을 했고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었는지 떠올려보게 되었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우리의 영혼을 이끌고 유혹하는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감수성을 우리와 함께 나누지 못했다. 그러나 함께 나누지 못하면서도 그들을 그 새로운 세계가 그들의 자녀들의 세계가 되어야 할 것임을 분명히 통찰하고 있었다. 불과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에는 못 먹는 것이 가난이었을진데, 요즘의 가난은 못 먹고 사는 가난이 아니라 상대적인 격차이다. 20세기 후반의 우리나라에서처럼 문화적 간극이 큰 나라가 있을까? 저자의 말에 공감 가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놀라웠다.







저자는 글에서 '조용하다'와 '고요하다'를 구별하여 표현한다. 고요라는 말 자체도 사멸해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고요의 순간은 이제 국어사전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사라진 고어가 될지도 모르겠다. 문명의 이기가 앗아가버린 우리들의 소중한 가치들이 안타깝다....아쉽다.... 







중학교 2학년 때 나간 백일장 대회의 기억을 더듬어 쓴 수필. '대열'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쓴 그의 친구에게 선생님이 대열이 시제로서는 다소 어려웠을 텐데 혹시 4.19 혁명 대열 같은 것에 관해 쓰지 않았느냐고 물으셨다.  『인간이 살아가는 것, 생애 그 자체가 하나의 대열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라고 말하는 그의 친구, 이제는 추억이 된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헬리혜성에 대한 이야기, 헌 책 이야기, 달리기의 추억 등 소소한 수필이 큰 감동을 주었다.  

인문학과 신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가 보다. 신화를 좋아하는 내게는 반가운 일이다. 우리시대가 목말라하는 상상력과 창의력을 신화에서 만날 수 있다.  신화가 성립하기까지의 집단 정신. 시대가 변하고 고유의 가치관이 변하더라도 신화는 영원히 전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몇 달 안 갔던 산책로를 오랜만에 갔다. 높은 아파트들이 한창 공사 중이었다. 몇 달 사이 몰라볼 정도였다. 우리나라 건축기술 특히 속도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폐허의 모습을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까? 『그 벌판에서 폐허의 모습을 본 이후 나는 이렇다 할 폐허를 다시 보지 못한 채 20여 년을 살아왔다. 자고 나면 새로 건설되는 온갖 입방체의 공간에 갇혀 정신없이 사느라 나의 눈은 쇄락의 기회를 그만큼 오랫동안 가져보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인생은 상처 입고 상처가 아무는 과정이다.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서도 안되겠지만 상처 없이 자란 사람이 남의 아픔을 겨안을 수 있을까? 사람 간에 서로 상처 주고받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오해는 종종 있다. 예전 같으면 시시비비를 가린가고 일일이 따지고 들던 일들이 이제는 그냥 시간이 흐르도록 침묵으로 내버려 두었다.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해가 더 쌓일 수 있겠지만!  


저자는 논어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법학을 전공한 그가 논어가 좋아서 논어에 대한 공부를 했다고 하니 독특한 이력이다. 논어를 처음 읽었을 때 세상에 이런 책이 있다니 하고 놀랐다고 한다. 논어 이전에 공자는 누구인가? 공자의 제자들도 한 마디로 일축하기 힘든 분 공자. 저자기 일찍이 세상에서 이보다 멋진 소개를 본 적이 없다는 공자의 소개 글이다.『너는 왜 그리 사람됨이 발분하면 먹는 것을 잊고 즐거움으로써 근심을 잊으며 장차 늙음이 오리라는 것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수태 작가님의 수필은 담담하면서도 감동을 준다. 언제가 나도 삶이 무르익을 때, 이런 글을 쓰고 싶다. 격정적인 논조가 들어가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 책 제목인 대표작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라는 작품을 다른 수필을 먼저 읽고 아껴놨다가 뒤에 읽었다. 이런 행동 역시 작품을 쓴 저자와 닮은 것 같다. 남들이 다 바꿀 때까지 물건을 사용하고 하는 점이나, 저명인사의 집에 30년이나 쓴 귀 떨어진 소반이 아직 있더라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감동을 한다는 저자, 나도 그렇다. 새로운 휴대폰이 나올 때마다 척척 바꾸는 사람을 보면 나 혼자 생각에 왠지, 그는 사람도 척척 바꿀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인문학은 나를 고민하게 하고, 아프게 하고 철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인문학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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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jdajfjd2   202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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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자본주의는 확고부동한 진리가 되었다.주식 투기 열풍과 부동산 투기 광풍 심지어 공공기관의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까지 터져서 온 나라가 난리통이다.이런 시대에 자본주의란 무엇일까.우리는 모두 자본주의 법칙에 따라서 산다.그러나 자본주의가 때때로 어두운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는 것을 안다.그렇기 때문에 반자본주의자가 우리나라에 한명쯤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이 책의 저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책을 읽어보면, 오랫동안 공공기관의 직장인으로 근무한 저자는 살면서 열심히 사색에 매진했다고 생각된다.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회에 대해서 고민하고, 문학을 즐기고 고전을 공부해서 강의까지 한 저자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저자의 에세이가 단순한 일기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서 기뻤다.



공공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은 큰 부자가 되기 힘들다.부정부패에 빠지거나 재테크에 특별히 열을 올리지 않으면 말이다.그러나 부에 관심을 두고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전자는 애처롭지만 후자는 어쩌면 공공분야 종사자로는 적절한 자기관리일 수 있다.물론 저자는 특별히 자기관리를 했다기보다 그저 소박하게 사는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우리 옛 선비들도 안빈낙도를 지향하지 않았나.소박한 삶이 성찰하기에는 좋은 환경일지도 모르겠다.경제적 여유가 부족하면 오는 여러가지 단점들이 있겠지만 생각하고 글쓰는 일이 가능한 환경만 되면 만족할 수도 있다.



성찰은 과거에 대한 성찰이고, 글쓰기는 현재의 관점에서 이뤄진다.즉 성찰적 글쓰기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기억을 되살려서 과거의 나와 대화하는 일이다.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고 상처를 어떻게 대할지 고민해보는 일이다.이것은 역사 공부와 닮았고 고전 읽기와도 닮았다.저자가 논어에 대해 박식한 사람이라서 책을 쓰고 강의했던 사람임을 상기한다면 철학과 윤리까지도 꺼내들어볼만 하다.더 나아가서는 종교에 대한 이야기인 측면도 있다.우리의 험난한 현대사와 삭막해진 이웃 관계 그리고 책을 읽지 않는 사회를 생각해보면 저자의 모습을 귀감으로 삼을 필요도 있음을 지적해두고 싶다.공자와 예수 같은 성인들에 대해 저자 나름대로의 비교적 식견을 이야기한 부분도 인상 깊었고, 문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시인 친구와의 우정도 읽어볼 가치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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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페이퍼 (21편)쓰기
 에디터D   2021-08-05메뉴


사무사책방 시리즈사무사책방 시리즈 총 7권 읽기와...  
사무사책방 시리즈사무사책방 시리즈 총 7권 읽기와 서평쓰기가 마무리 되었다. 처음에는 한 권씩 읽어야지 싶었는데 우연한 계기로 시리즈의 다른 권을 읽다보니 각권을 개별적으로 읽는 것보다동시에 나눠 읽는것이 무언가 보완되고 확장되는 기분이들게 했다. 에세이처럼 편안한 방식의 책을 읽을때는 공감하고 반성하는 수준이었다면 이론과 관련 문헌을 언급한 책에서는 해당 부분을 메모하고 좀 더 찾아보면서 읽고 흩어지는 지식과 찰나의 사유가 아닌 지속적으로 고민해볼 수 있는 그야말로 인문학적 사고로 전환할 수 있었다. 특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그리고 독서와 기록의 중요성을 얕게나마 알고 있었던 입장에서는 작더라도 열심히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종교적인 내용이 등장할 때는 인문학과 종교의 만남이 서로 대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모두의 주장 혹은 이론을 사무사책방의 각 권별처럼 연결지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좋았다. 저자들이 들려주는 혹은 누군가에게 쓰여진 편지의 고운 내용들이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있길 바랄뿐이다.*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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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쟁이   2021-05-03메뉴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10(완독)  
                예수는 깨끗하게 살아온 것을 자부하던 바리사이 대신 차마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던 죄 많은 세리에게서 의로움을 보았다. 공자는 앎의 실체를 더 많은 앎에서가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찾았다. 잘못을 넘어서는 것에 있어서도 그는 마찬가지 논리였다. 심지어 선의 실질도 구악, 즉 불선이 갖는 겸허한 자인에서 구했을 뿐이었다. p 255  알 듯도 같고 모를 듯도 같은 저자의 공자와 예수에 대한 찬사. 마지막을 공자와 예수로 장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저자를 이토록 감동하게 만들었는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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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쟁이   2021-05-03메뉴


[논어]에는 인간과 세상을 보는 완전히 다른 관점이 있었고, 그것은 경이롭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p 200

 

 

나도 얼마 전에 [논어]를 읽었지만 저자와 같이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그저 그 유명하다는 공자의 말씀이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열심히 읽었고, 그 중 인상깊은 문장들을 몇 개 얻었을 뿐. 아직 도를 덜 닦은 탓인가. 한꺼번에는 못 읽더라도 하루에 몇 페이씩 [논어]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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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쟁이   2021-05-03메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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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年 동안 땅 속에

씨앗으로 묻혀 있다

싹이 트는

식물을

나는 안다

 

 

꽃이 없다

천년 동안 땅 속에

꽃을 감췄다

몰래 言語를 피우는

꽃을, 나는 안다

 

[꽃 없는 꽃] p190

 

 

저자의 지기인 이영유 시인이 세상을 떠나기 전, 저자에게 '목숨 무게가 실린' 묵직한 시를 보낸다. 백년도 다 채우지 못하고 삶을 끝내는 인간에게 천년이란 얼마나 긴 시간인가. 죽음 앞에서 영겁의 세월을 떠올린 시인의 펜 끝을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해온다. 그 자신이 꽃 대신 언어를 피우는 꽃이 되고 싶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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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t's me

p 161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여운계님이 소중한 반려를 만났을 때의 에피소드.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자라 해서 변태를 만난 줄 알았더니, 이런! 이 일화를 가슴에 간직하던 저자에게 그 바바리맨님이 연락해온 적이 있다는 부분을 보니, 인연이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하긴 결혼생각이 없던 나도 옆지기를 만나 결혼하고 곰돌이들까지 낳았으니 인생이란 참 신기하다.

 

그런데 왜 연락해서 직접 만나지는 않으셨을까. 나라면 한 번은 만남을 가졌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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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을 오랜만에 다시 보다가 떠나버린 여인을 막연히 기다리는 젊은 경찰관의 독백이 마음에 다가왔다.

"실연당했을 때 나는 조깅을 한다. 그럼 수분이 모두 빠져나와 눈물이 더 이상 안 나온다."

p 132

 

 

이 부분을 읽는데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처음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달리는 것은 커녕 가볍게 걷는 것도 안 하던 나였는데, 생전 처음으로 몇 날 며칠 공원을 뛰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대로 땅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아서.

공지영님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다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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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쳐버린 이 별에서 인생이라든가 삶과 죽음이라는 숙명적인 이미지를 느끼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이 별이 인간의 한 생애와 맞먹는 76년이라는 독특한 주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핼리 혜성에 마음이 있다면 혜성은 다시 지구 가까이 돌아왔을 때 그가 76년 전에 보았던 인류의 대부분이 무덤 속에 누워 있고 그들의 낯선 후손이 저마다의 행복과 슬픔 속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광경을 고즈넉이 굽어볼 것이 아닌가.

p 105

 

 

이 대목 읽는데 가슴이 콱 막히는 것 같고 울컥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 고독함. 적막감. 외로움. 쓸쓸함. 다음 번 핼리 혜성을 볼 수 있는 해는 2061년이라는데, 그 때즘 되면 아마도 나는 물론 나의 가까운 이들도 대부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자신을 보았던 사람들은 아무도 남지 않는 이 지구 위를 날아갈 핼리 혜성. 삶이란,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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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쟁이   2021-05-03메뉴


이 에세이를 읽다보면 가슴을 찌르르하게 만드는 부분을 종종 만난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도 아닌데, 이 대목에서 왜 눈물이. 아마도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모든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나조차도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나보다 아이들을 먼저 챙기게 된다. 요즘 아동학대 기사를 자주 접하는데, 그들은 과연 이런 마음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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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쟁이   2021-05-03메뉴


간소한 생활을 꿈꾸면서 휴대폰 만들기에도 저항하고, 이사를 하면서 오래된 장롱을 처분할 때에는 자신이 '파괴와 착취와 살육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저자. 새로운 것을 접할 때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설레임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다소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이렇게 자신만의 '반자본주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다.

 

 

삶에는 일련의 스산함이 있어야 한다. 그 스산함은 우리가 헐벗은 상태로 태어났다는 사실에의 끝없는 상기가 아닌가 한다.

p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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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손해를 감수하는 일은 생각하면 하나의 일탈이다. 그것은 단 한 발자국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균적 가치관에 저항하며 구축된, 다소 고독한 가치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그 한 발자국을 확보할 수 있는 자를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비록 한 발자국을 물러섰지만 그의 앞에는 몇 배나 더 넓은 영지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p 45

 

 

앗! 이 부분,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생각해본 적이 있는 내용이라 깜짝 놀랐다. 직장 다닐 때를 떠올려보면 그 순간에는 손해보는 것 같더라도 멀리 보면 오히려 이득이 되었던 경우도 더러 있었던 것 같다. 고집을 부려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다가 후회했던 경험도 있었다. 우선 내 것을 먼저 취하고 싶더라도, 마음을 일단 가라앉히고 물러설 수 있다면 물러서는 것. 그것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도 여유를 주고, 상대에게도 같은 편안함을 전달하는 일인 것 같다.

뭐, 늘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어렵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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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March 5, 2023

China: Imperialism or Semi-Periphery?

Monthly Review | China: Imperialism or Semi-Periphery?:

Monthly Review | China: Imperialism or Semi-Periph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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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Imperialism or Semi-Periphery?

A McDonald's in China

A pedestrian walks past a McDonald's outlet in Yichang, Hubei province. Credit: Xinhua, “China expanding agricultural cooperation with Belt and Road countries,” China Daily, March 29, 2021.

Minqi Li is a professor of economics at the University of Utah. Li can be reached at minqi.li [at] economics.utah.edu.

China is currently the world’s largest economy measured by purchasing power parity. As the rapid expansion of the Chinese economy reshapes the global geopolitical map, Western mainstream media has begun to define China as a new imperialist power that exploits cheap energy and raw materials from developing countries. Some Marxist intellectuals and political groups, drawing from the Leninist theory of imperialism, argue that the rise of monopoly Chinese capital and its rapid expansion in the world market have turned China into a capitalist imperialistic country.

Whether China has become an imperialist country is a question of crucial importance for the global class struggle. I argue that although China has developed an exploitative relationship with South Asia, Africa, and other raw material exporters, on the whole, China continues to transfer a greater amount of surplus value to the core countries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than it receives from the periphery. China is thus best described as a semi-peripheral country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The real question is not whether China has become imperialistic, but whether China will advance into the core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in the foreseeable future. Because of the structural barriers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it is unlikely that China will become a member of the core. However, if China does manage to become a core country, the extraction of labor and energy resources required will impose an unbearable burden on the rest of the world. It is doubtful that such a development can be made compatible with either the stability of the existing world system or the stability of the global ecological system.

Is China a New Imperialist Country?

As China becomes the world’s largest economy (measured by purchasing power parity) and the largest industrial producer, China’s demand for various energy and raw material commodities has surged. In 2016–17, China consumed 59 percent of the world total supply of cement, 47 percent of aluminum, 56 percent of nickel, 50 percent of coal, 50 percent of copper, 50 percent of steel, 27 percent of gold, 14 percent of oil, 31 percent of rice, 47 percent of pork, 23 percent of corn, and 33 percent of cotton.1

A large portion of China’s demand for commodities is supplied by developing countries in Asia, Africa, and Latin America. In this context, Western mainstream media has described China as a new imperialist country exploiting developing countries. In June 2013, the New Yorker carried an article criticizing Chinese capitalists in Zambia for exploiting local copper resources and violating labor rights.2

In March 2018, the Week published an opinion article arguing that as China’s overseas investment skyrocketed, Africa had become a key destination of Chinese investment resulting in vicious exploitation of local resources and ecological disasters. The author further argued that, because of the authoritarian nature of the Chinese political system, Chinese imperialism would prove to be considerably worse than Western imperialism.3

The New York Times asked whether China had become a new colonial power. The writer indicated that China had used its One Belt, One Road Initiative to support corrupt dictators, induce recipients of Chinese investment into debt traps, and promote cultural invasions.4

Financial Times commentator contended that as China pursued the Belt and Road Initiative and promoted various economic projects, the investment logic would inevitably turn some developing countries (such as Pakistan) into China’s client states. China is therefore “at risk of…embarking on its own colonial adventure.”5

One of the recent articles in the National Interest argues that “China is the imperialist power” in much of Africa today. It contends that what China wants in Africa is not some form of socialism, but control over Africa’s resources, people, and development potential.6

For Marxist scholars and political groups, debates on imperialism have been either directly based on or inspired by V. I. Lenin’s concept of imperialism originally proposed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According to Lenin, by the late nineteenth century, the basic relations of production in the developed capitalist world had evolved from free competitive capitalism to monopoly capitalism. The massive accumulation of capital by monopoly capitalists in combination with a saturation of domestic markets led to surplus capital that could only be profitably invested in colonies and underdeveloped countries by taking advantage of their cheap land, labor, and raw materials. The competition for capital export destinations in turn led to territorial partitions of the world by the major imperialist powers.7

In chapter 7 of Imperialism, the Highest Stage of Capitalism, Lenin defined the five “basic features” of imperialism:

(1) the concentration of production and capital developed to such a high stage that it created monopolies which play a decisive role in economic life; (2) the merging of banking capital with industrial capital, and the creation, on the basis of this “finance capital,” of a financial oligarchy; (3) the export of capital as distinguished from the export of commodities acquires exceptional importance; (4) the formation of international monopolist capitalist associations which share the world among themselves, and (5) the territorial division of the whole world among the biggest capitalist powers is completed.8

World political and economic conditions have changed dramatically since the publication of Lenin’s Imperialism. While some of the “basic features” of imperialism proposed by Lenin remain relevant, the “territorial division of the whole world among the biggest capitalist powers” can no longer be understood in its original sense due to the victory of national liberation movements and decolonization of Asia and Africa in the mid–twentieth century. Marxist theories of imperialism (or concepts of imperialism inspired by the Marxist tradition) that evolved after the mid–twentieth century typically defined imperialism as a relationship of economic exploitation leading to unequal distribution of wealth and power on a global scale.9

In the contemporary debate on “Chinese imperialism,” Marxist theorists who contend that China has become a “capitalist imperialist country” usually argue that China has become imperialist in the Leninist sense—that is, internally, China has become a monopoly capitalist country; externally, the monopoly Chinese capital has manifested itself through massive exports of capital. For example, N. B. Turner has argued that both state and private monopoly capital had been established in China and the four largest state-owned banks controlled the “commanding heights” of the Chinese economy, demonstrating the dominance of finance capital. Turner further noted that China had accumulated enormous overseas assets and become one of the largest capital exporters in the world, exploiting workers and raiding resources in various parts of the world.10

David Harvey, one of the world’s best-known Marxist intellectuals, has recently contended that China’s holding of large chunks of U.S. government debt and the Chinese capitalist land grabs in Africa and Latin America have made the issue of whether “China is the new imperialist power” worthy of serious consideration.11

There have also been lively debates on whether China has become imperialist among Chinese leftist activists within China. Interestingly, a leading advocate of the proposition that China has become imperialist is Fred Engst (Yang Heping), the son of Erwin Engst and Joan Hinton, two U.S. revolutionaries who participated in China’s Maoist socialist revolution. In “Imperialism, Ultra-Imperialism, and the Rise of China,” Yang Heping (using the pen name Hua Shi) argued that the Chinese state-owned capital group had become the world’s single largest combination of industrial and financial capital and the world’s most powerful monopoly capitalist group. According to Yang, China’s demand for resources has already led to intensified imperial rivalry with the United States in Africa and Southeast Asia.12

Imperialism and Superprofits

Lenin considered imperialism to be a stage of capitalist development based on monopoly capital. For Lenin, monopoly capital did not simply mean the formation of large capitalist groups but large capitalist enterprises that had sufficient monopoly power to make superprofits—profits far above the “normal” rates of return under free competitive conditions.

Using available business information at the time, Lenin cited several examples of superprofits of monopolist capitalist businesses. The Standard Oil Company paid dividends between 36 and 48 percent on its capital between 1900 and 1907. The American Sugar Trust paid a 70 percent dividend on its original investment. French banks were able to sell bonds at 150 percent of their face value. The average annual profits on German industrial stocks were between 36 to 68 percent between 1895 and 1900.13

After elaborating the five basic features of imperialism, Lenin immediately said that “we shall see later that imperialism can and must be defined differently if consideration is to be given, not only to the basic, purely economic concepts…but also the historical phase of this stage of capitalism in relation to capitalism in general.” In chapter 8 of Imperialism, Lenin further argued that export of capital was “one of the most essential bases of imperialism” because it allowed the imperialist countries to “live by exploiting the labour of several overseas countries and colonies.” The superprofits exploited from the colonies in turn could be used to buy off the “upper stratum” of the working class who would become the social base of opportunism in the working-class movement: “Imperialism means the partition of the world, and the exploitation of other countries besides China, which means high monopoly profits for a handful of very rich countries, creating the economic possibility of corrupting the upper strata of the proletariat.”14

In the preface to the French and German editions, Lenin further elaborated:

[It] is precisely the parasitism and decay of capitalism, which are the characteristic features of its highest historical stage of development, i.e., imperialism.… Capitalism has now singled out a handful (less than one-tenth of the inhabitants of the globe; less than one-fifth at a most “generous” and liberal calculation) of exceptionally rich and powerful states which plunder the whole world simply by “clipping coupons.”… Obviously, out of such superprofits (since they are obtained over and above the profits which capitalists squeeze out of the workers of their “own” country) it is possible to bribe the labour leaders and the upper stratum of the labour aristocracy.15

Lenin considered this to be a “world-historical phenomenon.”

Thus, for Lenin, capitalist imperialism is not simply associated with the formation of large capitals and export of capital. It inevitably leads to and has to be characterized by “high monopoly profits” or “superprofits” through the plunder of the whole world. It is also interesting to note that, for Lenin, imperialism as a “world-historical phenomenon” has to be based on the exploitation of the great majority of the world population by a “handful of exceptionally rich and powerful states,” which Lenin estimated to include a population between one-tenth and one-fifth of the world total. Thus, imperialism must be a system where a small minority of the world population exploits the great majority. It cannot possibly be a system in which the majority exploits the minority.

If we apply Lenin’s concept of imperialist superprofits to the Chinese context, what do we find? Has China already become an imperialist country that is plundering the whole world simply by “clipping coupons”?

Using conventional international balance of payment accounting, China has indeed become a large capital exporter and accumulated enormous overseas assets. But these “assets” need to be analyzed.

From 2004 to 2018, China’s total foreign assets increased from $929 billion to $7.32 trillion. During the same period, China’s total foreign liabilities (that is, total foreign investment in China) increased from $693 billion to $5.19 trillion.16 This means China had a net investment position of $2.13 trillion at the end of 2018. That is, China has not only accumulated trillions of dollars of overseas assets but also become a large net creditor in the global capital market. This seems to support the argument that China is now exporting massive amounts of capital and therefore qualifies as an imperialist country.

However, the structure of China’s overseas assets is very different from the structure of foreign assets in China. Out of China’s total overseas assets in 2018, 43 percent consists of reserve assets, 26 percent is direct investment abroad, 7 percent is portfolio investment abroad, and 24 percent is other investment (currency and deposits, loans, trade credits, and so on). By comparison, out of total foreign investment in China in 2018, 53 percent is foreign direct investment, 21 percent is foreign portfolio investment, and 26 percent is other investment.

Thus, while foreign investment in China is dominated by direct investment, an investment form consistent with the foreign capitalist attempt to exploit China’s cheap labor and natural resources, reserve assets account for the largest component of China’s overseas assets.

China’s reserve assets reflect largely the accumulation of China’s historical trade surpluses and are mostly invested on low-return but “liquid” instruments such as U.S. government bonds. These assets theoretically represent China’s claims on future supplies of goods and services from the United States and other developed capitalist countries. But these claims may never be realized because the United States and other developed capitalist countries simply do not have the production capacity to produce within a reasonable period of time the extra goods and services that may correspond to the more than three trillion dollars of foreign exchange reserves held by China. If China uses a large portion of its reserves to buy raw material commodities or exchange the reserves into other assets, it would dramatically drive up the prices of these commodities or other assets and China would suffer a massive capital loss (a large reduction of the purchasing power of China’s reserves). In addition, China needs to hold several trillion dollars as reserves to insure against possible capital flight or financial crisis.

From the U.S. point of view, China’s accumulation of foreign exchange reserves (mostly in dollar-denominated assets) has essentially allowed it to “purchase” trillions of dollars’ worth of Chinese goods largely by printing money without providing any material goods in return. China’s reserve assets, rather than being a part of China’s imperialist wealth, essentially constitute China’s informal tribute to U.S. imperialism by paying for the latter’s “seigniorage privilege.”

While China’s total overseas assets are greater than its liabilities by $2.13 trillion, China’s investment income received in 2018 was actually smaller than the investment income paid by $61 billion.17 Chart 1 compares the rates of return on China’s total investment overseas with those on foreign investment in China from 2010 to 2018.

Chart 1. Rates of Return on Investment (2010-2018)

Li Chart 1. Rates of Return on Investment (2010-2018).png

Sources: Rates of return are calculated as ratios of investment income to the stock of total investment. China’s overseas investment, foreign investment in China, investment income received and paid are from “The Time-Series Data of International Investment Position of China,” State Administration of Foreign Exchange, People’s Republic of China, March 26, 2021; “The Time-Series Data of Balance of Payments of China,” State Administration of Foreign Exchange, People’s Republic of China, March 26, 2021.

From 2010 to 2018, the rates of return on China’s overseas assets averaged about 3 percent and the rates of return on total foreign investment in China varied mostly in the range of 5 to 6 percent. An average rate of return of about 3 percent on China’s overseas investment obviously does not constitute “superprofits.” Moreover, foreign capitalists in China are able to make about twice as much profit as Chinese capital can make in the rest of the world on a given amount of investment.

On the eve of the First World War, net property income from abroad accounted for 8.6 percent of the British gross national product and total property income accounted for 9.6 percent. It was by observing such massive superprofits that Lenin considered exports of capital to be of “exceptional importance” in the era of imperialism. By comparison, China’s total investment income received in 2018 was $215 billion or 1.6 percent of China’s gross domestic product (GDP) and China’s net investment income from abroad is negative.18

The general pattern of China’s investment abroad can be further revealed by examining where the Chinese investment takes place. China’s total stock of direct investment abroad in 2017 was $1.81 trillion, including $1.14 trillion invested in Asia (63 percent), $43 billion invested in Africa (2.4 percent), $111 billion invested in Europe (6.1 percent), $387 billion invested in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21 percent), $87 billion invested in North America (4.8 percent), and $42 billion invested in Australia and New Zealand (2.3 percent).

Within Asia, about $1.04 trillion was invested in Hong Kong, Macao, and Singapore. Hong Kong and Macao are China’s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s and Singapore is an ethnic-Chinese city-state. About $9 billion was invested in Japan and South Korea. Within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372 billion was invested in the Cayman Islands and British Virgin Islands.19

China’s massive investments in Hong Kong, Macao, Singapore, Cayman Islands, and British Virgin Islands (altogether $1.41 trillion or 78 percent of China’s direct investment abroad) are obviously not intended to exploit abundant natural resources or labor in these cities or islands. Some of China’s investment in Hong Kong is the so-called “round trip investment” to be recycled back to China in order to be registered as “foreign investment” and receive preferential treatments.20 Much of the Chinese investment in these places may simply have to do with money laundering and capital flight. In 2012, Bloomberg reported that Xi Jinping’s family had several real estate properties in Hong Kong with a combined value of £35 million. In 2014, a report by the 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further revealed that Xi’s brother-in-law once owned two shell companies based in the British Virgin Islands. China’s investment in these tax havens has more similarities with wealth transfers by corrupt governments in the third world than projects of imperialist plunder. Much of China’s investment in Europe, North America, Japan, South Korea, Australia, and New Zealand is likely to be of a similar character. Rather than “exploiting” the developed capitalist countries, such capital flight in fact transfers resources from China to the core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21

This leaves about $158 billion (8.7 percent of China’s total stock of direct investment abroad or 2.2 percent of China’s total overseas assets) invested in Africa, Latin America, and the rest of Asia. This part of Chinese investment no doubt exploits the peoples in Asia, Africa, and Latin America of their labor and natural resources. But it is a small fraction of China’s total overseas investment and an almost negligible part of the enormous total wealth that Chinese capitalists have accumulated (China’s domestic capital stock is about five times as large as China’s overseas assets). Some Chinese capitalists may be blamed for their imperialist-like behaviors in developing countries, but, on the whole, Chinese capitalism remains nonimperialist.

Unequal Exchange and Global Exploitation

Lenin considered the export of capital to be exceptionally important in the imperialist era. By the mid–twentieth century, Marxist theorists of imperialism already realized that, in the postcolonial era, imperial exploitation of underdeveloped countries mainly took the form of unequal exchange. That is, underdeveloped countries (peripheral capitalist countries) typically export commodities that embody comparatively more labor than the labor embodied in commodities exported by developed capitalist countries (imperialist countries). In the twenty-first century, global outsourcing by transnational corporations based on the massive wage differentials between workers in imperialist and peripheral countries may be seen as a special form of unequal exchange.22

Given the development of the globalized capitalist division of labor and complex interactions of international trade and capital flows, it is difficult (if not impossible) to identify any single country in today’s world to be either a “100 percent” exploiter in its economic relations with the rest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or “100 percent” exploited. More likely, a country may simultaneously engage in exploiting relations with some countries but have exploited relations with others. Therefore, to identify a country’s position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it is important not just to focus on one side of the relations (for example, calling China imperialist simply because China has exported capital). Instead, it is necessary to consider all trade and investment relations involved and find out whether, on the whole, the country receives more surplus value from the rest of the world than it transfers to the rest of the world. On the one hand, if a country receives substantially more surplus value from the rest of the world than it transfers, then the country clearly qualifies as an imperialist country in the sense of being an exploiter country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On the other hand, if a country transfers substantially more surplus value to the imperialist countries than it receives from the transfer of the rest of the world, the country would be either a peripheral or a semi-peripheral member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depending on further study of the country’s position relative to other peripheral and semi-peripheral countries).

Chart 2 compares the average labor terms of trade of China and the United States. The labor terms of trade is defined as the units of foreign labor that can be exchanged for one unit of domestic labor through trade of exported goods and imported goods of equal market value.

Chart 2. Average Labor Terms of Trade (1990-2017)

Li Chart 2. Average Labor Terms of Trade (1990-2017).png

Sources: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World Bank, accessed May 31, 2021. Average labor terms of trade is calculated as the ratio between total labor embodied in an average pool of one million dollars of imported goods and services and the total labor embodied in an average pool of one million dollars of exported goods and services. For details of methodology, see Minqi Li, China and the 21st Century Crisis (London: Pluto, 2015), 200–2.

The United States is a typical imperialist country. In the 1990s, one unit of U.S. labor could be exchanged for more than four units of foreign labor. By the early 2000s, the U.S. labor terms of trade further improved; one unit of U.S. labor could be exchanged for about five units of foreign labor. Although the U.S. labor terms of trade declined after the global financial crisis of 2008–09, it has since partially recovered. In 2016–17, one unit of U.S. labor could be exchanged for about four units of foreign labor.

By comparison, China was a typical peripheral country in the 1990s. In the early 1990s, China’s labor terms of trade was about 0.05. That is, one unit of foreign labor could be exchanged for about twenty units of Chinese labor. Since then, China’s labor terms of trade has improved dramatically. By 2016–17, China’s labor terms of trade rose to about 0.5. That is, two units of Chinese labor could be exchanged for about one unit of foreign labor. On balance, China remains an economy exploited by the imperialist countries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although the degree of exploitation has declined rapidly in recent years.

Chart 3 compares the net labor gain received by the United States and the net labor loss suffered by China through unequal exchange from 1990 to 2017. Net labor gain received by the United States is calculated as the total labor embodied in the imported goods and services minus the total labor embodied in exported goods and services. The net labor gain calculated in this way includes not only the net labor transfer through the favorable labor terms of trade enjoyed by the United States, but also the labor embodied in the U.S. “trade deficits.” Being a leading imperialist country, the United States benefits from its “seigniorage privilege.” Because of the other countries’ need to hold massive amounts of foreign exchange reserves in the form of dollar-denominated assets, the United States can “purchase” trillions of dollars of goods simply by printing money without providing material goods in return. The labor embodied in the U.S. “trade deficits” therefore should be treated essentially as unilateral transfers from the rest of the world and included in the unequal exchange.

Chart 3. Net Labor Transfer (Million Worker-Years, 1990-2017)

Li Chart 3. Net Labor Transfer (Million Worker-Years, 1990-2017).png

Sources: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World Bank, accessed May 31, 2021. Net labor transfer is defined as the difference between the total labor embodied in a country’s imported goods and services and the total labor embodied in the country’s exported goods and services. If the difference is positive, it constitutes a net labor gain; if negative, it constitutes a net labor loss.

For China, the net labor loss is calculated as the total labor embodied in China’s exported goods and services minus the total labor embodied in China’s imported goods and services. It includes not only the net labor transfer that results from China’s unfavorable labor terms of trade, but also the labor embodied in China’s “trade surpluses.”

It is interesting to see that China’s net labor loss has largely paralleled the U.S. net labor gain since 1990. In 1990, the U.S. net labor gain was thirty-four million worker-years and China’s net labor loss was thirty-nine million worker-years. In 1997, the U.S. net labor gain was fifty-two million worker-years and China’s net labor loss was fifty-seven million worker-years. In 2005, the U.S. net labor gain peaked at eighty-four million worker-years. In 2007, China’s net labor loss peaked at ninety-four million worker-years. By 2014, China’s net labor loss fell to fifty-eight million worker-years and the U.S. net labor gain fell to fifty-six million worker-years. Since then, the U.S. net labor gain and China’s net labor loss have moved in different directions. In 2017, the U.S. net labor gain was sixty-three million worker-years and China’s net labor gain fell to forty-seven million worker-years.

Therefore, in the neoliberal era, Chinese capitalism has functioned as a crucial pillar for the global capitalist economy by transferring surplus value produced by tens of millions of workers to the imperialist countries. At its peak, China’s net labor loss equaled 48 percent of China’s industrial labor force in 2007. Had there not been unequal exchange, ninety-four million workers could be withdrawn from China’s export sector without reducing China’s material consumption levels and the extra ninety-four million workers could help to nearly double China’s industrial output.

Had there not been unequal exchange, the massive amounts of material goods currently supplied to the United States by the rest of the world would have to be produced through domestic production to maintain existing levels of U.S. material consumption. About sixty million workers (38 percent of the total U.S. labor force) would have to be withdrawn from service sectors and transferred to material production sectors. This would result in a massive reduction of services output (by about two-fifths of U.S. GDP) without raising levels of material consumption.

Based on these observations, can we therefore conclude that China remains a peripheral country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The answer to this question depends on not only the economic relations between China and the imperialist part of the world system, but also on the relations between China and the peripheral part of the world system. Chart 4 shows China’s labor terms of trade compared to various regions in the world from 1990 to 2017.

Chart 4. China’s Labor Terms of Trade (1990-2017))

Li Chart 4. China's Labor Terms of Trade (1990-2017).png

Sources: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World Bank, accessed May 31, 2021. EAP: East Asia and Pacific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excluding China); ECA: Eastern Europe and Central Asia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LAC: Latin America and Caribbean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MENA: Middle East and North Africa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SAS: South Asia; SSA: sub-Saharan Africa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HIC: high-income countries (excluding the United States); USA: United States.

In the early 1990s, China was clearly a part of the periphery. China had unfavorable labor terms of trade against not only the United States and other high-income countries but also every group of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Since then, China has succeeded in improving its labor terms of trade against every country group. By 2015–17, while it would still take about five units of Chinese labor to exchange for one unit of U.S. labor and four units of Chinese labor to exchange for one unit of labor from other high-income countries, China had clearly established exploitative positions in South Asia and sub-Saharan Africa. One unit of Chinese labor can now be exchanged for about two units of labor from sub-Saharan Africa or four units of labor from South Asia. One unit of Chinese labor is roughly on a par with one unit of labor from the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of Latin America, Caribbean, Middle East, North Africa, Eastern Europe, and Central Asia. In addition, China has also established a significant advantage relative to other East Asian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If one adds up the population of South Asia, sub-Saharan Africa, and low- and middle-income East Asia (excluding China), the total population accounts for about 45 percent of the world population. Thus, China has established exploitative relations against nearly one-half of the world population. China can no longer be treated simply as a peripheral country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China as a Semi-Peripheral Country

According to world-systems theory, the capitalist world system is divided into three structural positions: core, semi-periphery, and periphery. The core countries specialize in quasi-monopolistic, high-profit production processes, and the peripheral countries specialize in highly competitive, low-profit production processes. Surplus value is transferred from the peripheral producers to the core producers, resulting in unequal exchange and concentration of world wealth in the core. By comparison, semi-peripheral countries have “a relatively even mix” of core-like and periphery-like production processes.23

Ideally, to find the relative position of various countries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one should conduct a detailed study of labor flows between countries, evaluating whether and to what extent a country benefits or suffers from transfer of surplus value. However, detailed data for trade flows and labor productivity are not available for earlier historical periods. Nevertheless, a country’s position in the global hierarchy of unequal exchange is usually highly correlated with its position in the global hierarchy of per capita GDP. Therefore, statistical information about the global hierarchy of per capita GDP and the distribution of global populations across different income levels can be used to decide the approximate thresholds for the division of the world system into the three structural positions.

Chart 5 shows the index of per capita GDP of all countries in the world ranked from highest to lowest in relation to the countries’ cumulative share of the world population in 1870, 1913, 1950, and 1970.

Chart 5. World Hierarchy of Per Capita GDP, 1870-1970

Li Chart 5. World Hierarchy of Per Capita GDP, 1870-1970.png

Sources: Angus Maddison, “Statistics on World Population, GDP, and Per Capita GDP, 1–2008 AD,” Groningen Growth & Development Centre, 2010. Per capita GDP is measured by constant 1990 international dollars.

In a study of global inequalities, Giovanni Arrighi used the weighted average per capita gross national product of about a dozen Western capitalist economies that had occupied the top positions of the global hierarchy of wealth. Arrighi referred to these Western capitalist economies as the “organic core” and their average per capita gross national product as the “standard of wealth,” a standard for the rest of the world that helped determine whether a country had “succeeded” or “failed”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24

I use a similar concept here. Instead of calculating the average per capita GDP of a dozen Western economies, I focus on four major historical imperialist powers: the United States, the United Kingdom, France, and Germany. The four countries were leading imperialist powers in the late nineteenth century and the early twentieth century and have stayed consistently among the wealthiest countries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since 1870. In this sense, it may be argued that the four countries combined have set the “imperial standard” for the capitalist world system. In Chart 5, the per capita GDP of every country is calculated as an index using the weighted average of the four imperialist countries as 100 (that is, “the imperial standard”).

From 1870 to 1970, world income distribution patterns had remained mostly stable. During those one hundred years, about 60 percent of the world population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less than 2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about 20 percent of the world population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between 25 and 50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and the remaining 20 percent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greater than 50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Within the top 20 percent of the world population, the most privileged had per capita GDP greater than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From 1870 to 1970, the share of the world population that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greater than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varied between 10 percent (in 1950) and 17 percent (in 1913). This is a range consistent with the population share of “a handful of exceptionally rich and powerful states” suggested by Lenin.

The United States consistently stayed above the imperial standard from 1870 to 1970. The United Kingdom had a per capita GDP that was 139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in 1870 but its relative per capita GDP declined to 82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by 1970, reflecting the historical decline of British imperialism. French per capita GDP was 82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in 1870 and 77 percent in 1913. German per capita GDP was 80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in 1870 and 81 percent in 1913. The relative positions of both countries fell sharply in 1950, because of the massive destruction of the Second World War. In 1970, French per capita GDP was 87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and German per capita GDP was 83 percent. Thus, with the exception of the period just before and after 1950, French and German per capita GDP stayed above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between 1870 and 1970.

It is therefore reasonable to use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as the approximate threshold between the core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and the semi-periphery.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this is only an approximate threshold and other important characteristics (such as state strength, degree of political and economic independence, technological sophistication, and so on) also need to be considered when deciding whether a country is a member of the core or simply has a core-like income level. For example, in 1970, among the wealthiest countries were rich oil exporters such as Qatar, Kuwait, United Arab Emirates, and Venezuela that clearly do not qualify as core countries.

At the other end of the hierarchy, China and India in 1870 had a per capita GDP just below 2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India was a British colony and China was a semi-colonial country under the competing influence of several imperialist powers. Both were a part of the periphery in 1870. From 1870 to 1970, the share of the world population that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less than 2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increased from 57 percent to 66 percent, suggesting widening global inequalities. I use 2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as the approximate threshold between the periphery and the semi-periphery.

Chart 6 shows the index of per capita GDP of all countries in the world ranked from the highest to the lowest in relation to the countries’ cumulative share of the world population in 1990, 2000, 2010, and 2017.

Chart 6. World Hierarchy of Per Capita GDP, 1990-2017

Li Chart 6. World Hierarchy of Per Capita GDP, 1990-2017.png

Sources: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World Bank, accessed May 31, 2021. Per capita GDP is measured by constant 2011 international dollars.

From 1990 to 2010, the world income distribution patterns were largely similar to what prevailed from 1870 to 1970. The share of the population that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higher than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varied in the narrow range of 13 to 14 percent. The share of the population that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less than 2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varied from 68 to 71 percent.

However, by 2017, as China’s per capita GDP advanced to 31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the structure of world income distribution was radically transformed. The share of the population that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less than 2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fell to 50 percent (the lowest since 1870). The share of the population that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higher than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narrowed to 12 percent. At the same time, the share of the population that lived in countries with per capita GDP between 25 and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expanded to 38 percent (almost double the historical semi-peripheral share of the world population).

As China’s per capita GDP rises to levels significantly above 2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and data from labor transfer flows show that China has established exploitative relations against nearly half of the world population, China now clearly qualifies as a semi-peripheral country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Given China’s current growth momentum, it is not difficult to conceive a scenario in which China advances into the core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and becomes a contemporary imperialist country by subjecting the overwhelming majority of the world population to its exploitation. However, is this possible given the structural constraints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as well as global ecological limits?

The capitalist world system and the system of imperialist exploitation have been based on the exploitation of the majority by a small minority that historically included no more than one-sixth of the world population (what Lenin called “a handful of exceptionally rich and powerful states”). Neither capitalism nor imperialism is compatible with an arrangement where the majority of the world population exploits the minority, or even with a situation where a large minority exploits the rest of the world. Given the size of the Chinese population (almost one-fifth of the world population), if China were to advance into the core, the total core population would have to rise to about one-third of the world population. Can the rest of the world afford to provide sufficient surplus value (in the form of labor embodied in commodities) as well as energy resources to support such a top-heavy capitalist world system?

Table 1 shows the balances of international labor transfer for various parts of the world in 2017.

Table 1. Balances of International Labor Transfer, 2017 (Million Worker-Years)

Labor Embodied in ExportsLabor Embodied in ImportsNet Labor LossNet Labor Gain
China914447
East Asia and Pacific (ex. China)532528
Eastern Europe and Central Asia362412
Latin America and Caribbean382612
Middle East and North Africa16115
South Asia882365
Sub-Saharan Africa311615
High Income (ex. U.S.)121251130
United States168064
Statistical Discrepancies-10-10
World490490184184

Sources: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World Bank, accessed May 31, 2021. All country groups other than the high-income countries refer to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For details of methodology, see Minqi Li, China and the 21st Century Crisis (London: Pluto, 2015), 200–2.

China is the single largest provider of labor embodied in exported goods among all groups of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providing exports that embody about 90 million worker-years annually. But South Asia has recently overtaken China to become the largest source of net labor transfer in the global capitalist economy. In 2017, South Asia suffered a net labor loss of 65 million worker-years. All the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combined provided a total net labor transfer of 184 million worker-years in 2017. The United States absorbed about one-third of the surplus value transferred from the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the rest of the high-income countries received about two-thirds. It should be noted that the World Bank definition of high-income countries includes not only all the core capitalist countries but also high-income oil exporters (Saudi Arabia and several small Gulf states), high-income small islands, wealthy cities and city-states (Singapore and China’s special administration regions – Hong Kong and Macao), and a number of relatively well-to-do semi-peripheral countries, such as Chile, Cyprus, Czech Republic, Estonia, Greece, Croatia, Hungary, Ireland, Israel, South Korea, Latvia, Lithuania, Slovakia, Slovenia, and Uruguay.

If China were to become a core country, then it would cease to be a net provider of surplus value to the capitalist world system and be turned into a net recipient of surplus value from the rest of the world. Assuming that China’s average labor terms of trade rises from the current level of about 0.5 (one unit of Chinese labor exchanges for about half of a unit of foreign labor) to about 2 (one unit of Chinese labor exchanges for about two units of foreign labor, similar to the current average labor terms of trade of the non-U.S. high-income countries), then the total labor embodied in China’s imported goods and services would have to rise to about 180 million worker-years. Rather than providing a net labor transfer of nearly 50 million worker-years, China will have to extract 90 million worker-years from the rest of the world. The total shift of 140 million worker-years represents about three-quarters of the total surplus value currently received by the core and the upper-level semi-periphery from the rest of the world and is roughly comparable to the total net labor transfer currently provided by all the low- and middle-income countries (excluding China).

Thus, if China were to become a core country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the existing core countries would have to give up most of the surplus value they are currently extracting from the periphery. It is inconceivable that the core countries would remain economically and politically stable under such a development. Alternatively, the capitalist world system would have to develop new schemes of exploitation that manage to extract 140 million worker-years of additional surplus value from the remaining part of the periphery. It is difficult to see how the exploitation imposed on the periphery can be increased by such a massive extent without causing either rebellion or collapse.

China’s advance into the core would require not only the extraction of hundreds of millions of worker-years from the rest of the world, but also massive amounts of energy resources.

Energy Limits to Economic Growth

China is now simultaneously the world’s largest importer of oil, natural gas, and coal. Chart 7 shows China’s imports of oil, natural gas, and coal as shares of world production from 2000 to 2018.

Chart 7. Chinese Energy Imports (as a Percent of World Production, 2000-2018)

Li Chart 7. Chinese Energy Imports (as a Percent of World Production, 2000-2018).png

Sources: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20 (London: BP, 2019). Oil imports are measured by million barrels per day; natural gas imports are measured by billion cubic meters; and coal imports are measured by million metric tons of oil equivalent.

China’s oil imports were 2.5 percent of the world oil production in 2000. By 2018, China’s oil imports surged to 11.7 percent of the world oil production. From 2000 to 2018, the share of Chinese oil imports in the world oil production had increased at an average annual rate of 0.5 percentage points. At this rate, China’s oil imports will need to absorb about one-fifth of the total world oil production by the early 2030s.

China did not import natural gas before 2006. By 2018, China was already the world’s largest natural gas importer and China’s natural gas imports accounted for 3.1 percent of the world’s natural gas production. China’s coal imports peaked at 4.6 percent of the world coal production in 2013 and had stayed just under 4 percent of the world coal production from 2016 to 2018. Will the rest of the world have the capacity to meet China’s insatiable energy demand as the Chinese ruling class aspires to lead China toward its “great rejuvenation”?

A country’s per capita energy consumption (and especially per capita oil consumption) is closely correlated with its per capita GDP. Chart 8 shows the correlations between per capita GDP (measured by constant 2011 international dollars) and per capita oil consumption (in metric tons) in 2018 for seventy-seven significant energy consuming countries reported by BP’s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25

Chart 8. Per Capita GDP and Per Capita Oil Consumption

Li Chart 8. Per Capita GDP and Per Capita Oil Consumption.png

Sources: Oil consumption data are from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20 (London: BP, 2019). GDP and population data are from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World Bank, accessed May 31, 2021.

A simple cross-country regression finds that a 1 percent increase in per capita GDP is associated with a 1.24 percent increase in per capita oil consumption, with a regression R-square of 0.85 (that is, cross-country variations in per capita GDP can statistically explain 85 percent of the observed variations in per capita oil consumption).

The weighted average per capita GDP of the United States, United Kingdom, France, and Germany in 2018 was $50,312 (in constant 2011 international dollars). This implies that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is $37,734. Based on the cross-country regression, the implied per capita oil consumption that corresponds to a per capita GDP of $37,734 would be 1.55 metric tons. By comparison, U.S. per capita oil consumption in 2018 was 2.51 metric tons and China’s per capita oil consumption was 543 kilograms. Given China’s population of about 1.4 billion, if China’s per capita oil consumption were to rise to 1.55 metric tons, China’s total oil consumption would have to increase by about 1.4 billion metric tons (on top of China’s existing level of oil consumption). The increased amount is equivalent to 31 percent of world oil production in 2018 or the sum of oil production by the Russian Federation, Saudi Arabia, and Iraq. It is obvious that it is simply impossible for such a massive increase in oil demand to be met under any conceivable circumstances.

Chart 8 also shows the historical evolution of China’s per capita oil consumption from 1990 to 2018 and the historical trend. Interestingly, China’s oil consumption has grown at a less rapid pace than what would be implied by the cross-country regression. A simple regression of the historical relationship between China’s per capita oil consumption and per capita GDP finds that for each 1 percent increase in China’s per capita GDP, China’s per capita oil consumption tends to rise by 0.65 percent. If China’s oil consumption were to grow according to its historical trend, then when China’s per capita GDP rises to $37,734 or reaches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China’s per capita oil consumption should rise to 812 kilograms and China’s total oil consumption should rise to about 1.14 billion metric tons. Compared to China’s oil consumption of 628 million metric tons in 2018, this represents an increase of about 510 million metric tons. As China’s oil production peaked in 2014 and has been in decline, any additional increase in oil consumption will have to be met from imports. An additional oil demand in the amount of 510 million metric tons is larger than the total annual oil exports by either the Russian Federation (which exported 449 million metric tons in 2018) or Saudi Arabia (which exported 424 million metric tons in 2018). Can the world find another Saudi Arabia (and more) to meet China’s additional oil demand corresponding to China’s expected core status?

From 2008 to 2018, the world oil production increased from 4 billion metric tons to 4.47 billion metric tons, or by about 470 million metric tons over a ten-year period. During the same period, U.S. oil production increased from 302 million metric tons to 669 million metric tons and Canada’s oil production increased from 153 million metric tons to 256 million metric tons. The combined increase from U.S. and Canadian oil production was 470 million metric tons, accounting for 100 percent of the world oil production growth over the ten-year period. That is, the entire world oil production growth now depends on the development of U.S. “shale oil” (using environmentally disruptive hydraulic fracturing techniques) and heavily polluting Canadian tar sands. Outside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the rest of the world’s oil production has stagnated. David Hughes, an independent geologist, argued that the U.S. official energy agency had vastly exaggerated the potential resources of shale oil and the U.S. oil boom would prove to be short-lived.26 If Hughes is correct, world oil production is likely to stagnate (if not enter into permanent decline) beyond the 2020s.

It may be argued that China’s future oil consumption can be reduced substantially through energy efficiency improvement. However, the projections based on China’s historical trend already place China’s future per capita oil consumption at the lower end of the range of cross-country variations in per capita oil consumption given different income levels (see Chart 8). However, the projection is based on the assumption of the imperial standard using 2018 levels of per capita GDP. In the future, if the per capita GDP of four major historical imperialist powers continues to increase (as is likely to be the case), the imperial standard will rise accordingly and bring up the per capita oil consumption level associated with the imperial standard. Any “saving” of oil consumption through energy efficiency improvement is likely to be largely or completely offset by the opposite effect brought about by the rising imperial standard.

China could also attempt to reduce its oil consumption by pursuing a massive program of electrification, replacing oil by domestically produced electricity. In particular, China could try to replace its car fleet with electric vehicles. However, the production of electric vehicles requires large quantities of raw materials, such as lithium and cobalt, that are often produced in politically unstable countries under environmentally damaging conditions. Using the current technology, the production of each electric vehicle requires about ten kilograms of lithium. China is currently producing about twelve million cars a year. Thus, to replace China’s current annual car production by electric vehicles would require the consumption of 120,000 metric tons of lithium annually. World total lithium production in 2018 was only 62,000 metric tons. Therefore, even if China uses up the entire world’s lithium production, it would only be sufficient to replace about one-half of China’s conventional car production.27

China currently has about 140 million passenger cars, or approximately one car for every ten persons.28 If China were to have the same population-car ratio as the United States (two cars for every three persons), China’s total number of cars would need to rise to about one billion. To produce one billion electric cars, China would need a cumulative consumption of ten million metric tons of lithium, using about 72 percent of the world’s current lithium reserves.

Most of China’s oil consumption is not used for cars but for freight transportation and various industrial purposes, which cannot be easily electrified given the current technology and likely technological development in the near term. China’s gasoline consumption for transportation purposes accounts for only about one-tenth of China’s total oil consumption. Therefore, even if in the unlikely event that China turns out to be extremely successful in its effort to promote electric cars, it would at best replace no more than one-tenth of China’s current oil consumption.

Regardless of whether the world can find sufficient energy resources to meet China’s future demand, China’s current energy consumption level is already generating greenhouse gas emissions that are several times the level required for global sustainability.

Climate Crisis and the Exhaustion of the Global Emissions Budget

A scientific consensus has been established that if global average surface temperature rises to two degrees Celsius higher than the preindustrial level, dangerous climate change with catastrophic consequences cannot be avoided. According to James Hansen and his colleagues, global warming by two degrees will lead to the melting of the West Antarctica ice sheets, causing sea levels to rise by five to nine meters over the next fifty to two hundred years. Bangladesh, European lowlands, the U.S. eastern coast, North China plains, and many coastal cities will be submerged. Further increases in global average temperature may eventually lead to runaway warming, turning much of the world unsuitable for human inhabitation. For global ecological sustainability and the long-term survival of human civilization, it is imperative to keep global warming below two degrees Celsius.29

In 2018, the global average surface temperature was 1.12 degrees Celsius higher than the average temperature from 1880 to 1920 (used as a proxy for preindustrial time). The ten-year average temperature from 2009 to 2018 was 1.04 degrees Celsius higher than the preindustrial level.30 To prevent global warming by two degrees Celsius by the end of this century, the world must ensure less than 0.96 degrees Celsius of additional warming.

According to the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cumulative carbon dioxide emissions will largely determine the global mean surface warming over the next century or so. In previous work, I calculated that the remaining global budget for cumulative carbon dioxide emissions from fossil fuels burning for the rest of the twenty-first century should be no more than 1.4 trillion metric tons. Glen P. Peters and his colleagues used a different set of assumptions and calculated the remaining emissions budget from fossil fuels burning to be only 765 billion metric tons.31

The world population in 2018 was 7.59 billion. Using the more generous 1.4 trillion metric tons as the global emissions budget for the rest of the twenty-first century, an average person in the future is entitled to an average annual emissions budget of about 2.3 metric tons per person per year (1.4 trillion metric tons / 80 years / 7.6 billion people). By comparison, China’s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in 2018 were 6.77 metric tons and the U.S.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were 15.73 metric tons.

Chart 9 shows the correlations between per capita GDP (measured by constant 2011 international dollars) and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in metric tons) in 2018 for seventy-seven significant energy consuming countries reported by BP’s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32 The figure also shows the historical evolution of China’s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from 1990 to 2018.

Chart 9. Per Capita GDP and Per Capita CO2 Emissions

Li Chart 9. Per Capita GDP and Per Capita CO2 Emissions.png

Sources: Carbon dioxide emissions are from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20 (London: BP, 2019). GDP and population data are from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World Bank, accessed May 31, 2021.

From 1990 to 2013, China’s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surged from 2.05 metric tons to 6.81 metric tons. If this trend were to continue, China’s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would rise to 12.85 metric tons when China’s per capita GDP rises to $37,734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If every person in the world were to generate this level of emissions every year between now and the end of the century, global cumulative emissions over the last eight decades of this century would amount to 7.8 trillion metric tons, leading to 5.5 degrees Celsius of additional warming (using the approximate calculation that every one trillion tons of carbon dioxide emissions would bring about 0.7 degrees Celsius of additional warming).

As China’s energy efficiency improves and China makes efforts to substitute natural gas and renewable energies for coal, China’s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have actually leveled off since 2013. However, as China’s oil and natural gas consumption continues to grow rapidly, China’s per capita emissions may resume growth in the future, though at a slower pace.

China’s current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are substantially above what would be predicted by the cross-country regression given China’s current income level. Using the cross-country regression, if China’s per capita GDP were to rise to $37,734, China’s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should be 8.67 metric tons. If every person in the world were to generate emissions of 8.67 tons every year between now and the end of the century, global cumulative emissions over the last eight decades of this century would amount to 5.3 trillion metric tons, leading to 3.7 degrees Celsius of additional warming. As the global average temperature is already about one degree Celsius higher than the preindustrial level, global warming by the end of the century would be 4.7 degrees Celsius. This will lead to inevitable runaway global warming and reduce the areas suitable for human inhabitation to a small fraction of the earth’s land surface.

Can China reduce its per capita emissions to levels consistent with its climate stabilization obligations without abandoning its ambition to become a part of the core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To meet the climate stabilization obligations, China (as well as every other country) should keep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to below 2.3 metric tons, which is consistent with a per capita GDP of $9,339 based on the cross-country regression (equaling 19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in 2018). In other words, climate stabilization and global ecological sustainability can be accomplished if every country either accepts a massive reduction of per capita income to peripheral levels or stays with the peripheral levels.

Alternatively, China may hope that energy efficiency technology may improve rapidly and consumption of fossil fuels can be mostly substituted by renewable energies so that China can simultaneously accomplish substantial economic growth and rapid reduction of emissions in the future. From 2008 to 2018, world economic output grew at an average annual rate of 3.3 percent and world carbon dioxide emissions grew at an average annual rate of 1.1 percent, implying an average annual reduction rate of emissions intensity of GDP of 2.2 percent. If the world average emissions intensity of GDP continues to fall at this rate in the future, it will take sixty years to reduce the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associated with the per capita GDP of $37,734 from 8.67 metric tons to 2.3 metric tons. But this has not taken into account the offsetting effect of a rising imperial standard in the future. If the weighted average per capita GDP of the four major historical imperialist powers keeps growing by 1 percent a year, then the effective emissions reduction rate relative to the rising imperial standard would be only 1.2 percent. At this rate, it would take 110 years to reduce the per capita carbon dioxide emissions associated with 75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to 2.3 metric tons. But the world simply does not have 110 years to reduce greenhouse gas emissions to stabilize the climate. If the world keeps its current emissions levels (about thirty-four billion metric tons a year), it will take less than twenty years before the world’s remaining emissions budget (required to keep global warming at less than two degrees Celsius) becomes completely exhausted.33

Concluding Remarks

The currently available evidence does not support the argument that China has become an imperialist country in the sense that China belongs to the privileged small minority that exploits the great majority of the world population. On the whole, China continues to have an exploited position in the global capitalist division of labor and transfers more surplus value to the core (historical imperialist countries) than it receives from the periphery. However, China’s per capita GDP has risen to levels substantially above the peripheral income levels and, in term of international labor transfer flows, China has established exploitative relations with nearly half of the world population (including Africa, South Asia, and parts of East Asia). Therefore, China is best considered a semi-peripheral country in the capitalist world system.

The real question is whether China will continue to advance into the core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and what may be the global implications. Historically, the capitalist world system has been based on the exploitation of the great majority by a small minority that lives in the core or the historical imperialist countries. Given its enormous population, there is no way for China to become a core country without dramatically expanding the population share of the wealthy top layer of the world system. The implied labor extraction (or transfer of surplus value) demanded from the rest of the world would be so large that it is unlikely to be met by the remaining periphery reduced in population size. Moreover, the required energy resources (especially oil) associated with China’s expected core status cannot be realistically satisfied from either future growth of world oil production or conceivable technical change. In the unlikely event that China does advance into the core, the associated greenhouse gas emissions will contribute to rapid exhaustion of the world’s remaining emissions budget, making global warming by less than two degrees Celsius all but impossible.

Several scenarios may evolve in the future. First, China may follow the footsteps of historical semi-peripheral countries. As China’s economic growth continues in the next few years, the growth process may generate various economic and social contradictions (perhaps similar to what happened to Eastern European and Latin American countries in the 1970s and ’80s) and China’s rapid growth will be brought to an end by a major economic crisis that may be followed by political instabilities. If such a scenario emerges, China will then be trapped in the layer of semi-periphery, consistent with the historical laws of motion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that have so far operated.

The second possible scenario is for China to keep moving up in the global income hierarchy beyond the historical range of most semi-peripheral countries. For example, China’s per capita GDP may rise above 50 percent of the imperial standard and begin to approach 75 percent. If such a scenario does materialize, China’s exploitation of labor and energy resources from the rest of the world may become so massive that China’s exploitation imposes unbearable burdens on peripheral regions such as Africa, South Asia, and parts of East Asia. As a result, general instabilities fall on these regions that could pave the way for either revolutionary transformation or a general collapse of the system. However, China’s massive energy demand may lead to intense rivalry with other major energy importers, causing escalating geopolitical instabilities, with the Chinese economy itself perhaps becoming vulnerable to such instabilities (for example, a revolution in Saudi Arabia).

Finally, there is the unlikely scenario that China somehow “succeeds” in its national project to “catch up” with the West and joins the core of the capitalist world system. In this scenario, the combined energy demand by China and the existing core countries, as well as the enormous greenhouse gas emissions and other pollutants generated by a greatly expanded imperialist core, will completely overwhelm the global ecological system, destroying not only the environment but also any meaningful hope for a sustainable human civilization. It is therefore in the best interest of humanity as well as China that such a scenario does not materialize.

Notes

  1.  Jeff Desjardins, “China’s Staggering Demand for Commodities,” Visual Capitalist, March 2, 2018.
  2.  Alexis Okeowo, “China in Africa: The New Imperialists?,” New Yorker, June 12, 2013.
  3.  Ryan Cooper, “The Looming Threat of Chinese Imperialism,” Week, March 29, 2018.
  4.  James A. Millward, “Is China a Colonial Power?,” New York Times, May 4, 2018.
  5.  Jamil Anderlini, “China Is at Risk of Becoming a Colonial Power,” Financial Times, September 19, 2018.
  6.  Akol Nyok Akol Dok and Bradley A. Thayer, “Takeover Trap: Why Imperialist China Is Invading Africa,” National Interest, July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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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Hua Shi, “Imperialism, Ultra-Imperialism, and the Rise of China” [in Chinese], Jiliu Wang, September 19, 2017.
  13.  Lenin, Imperialism, 39, 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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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Volume 73, Issue 3 (July-August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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