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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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아직 미국의 세기이다. 16세기 대서양을 배경으로 서유럽에서 발흥한 자본주의는 19세기 초반 나폴레옹 전쟁의 종말과 1825년 최초의 공황을 기점으로 삼아 19세기 중반 중국, 일본 등의 개항과 캘리포니아의 금광개발, 호주의 식민화 등을 지표로 전세계적 유통망을 형성하며 '19세기형 세계시장'으로 이행한다. 이 19세기형 세계시장이 지닌 생산력은 전세계 모든 사회와 민족공동체들을 자본주의적 생산이 완전히 장악하게 할 정도가 되지 못했다. 19세기형 세계시장을 운영하는 영국만이 인민의 대다수가 임금으로 생활하는 프롤레타리아트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머지 사회들은 여전히 농민이 사회구성원의 주요한 부분을 점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이 세계의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형식적 포섭"의 단계였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패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미국은 포드주의, 대기업체제, 자동차 등의 소비재 상품 등장, 은행 및 주식의 도입으로 대량신용의 공급가능 등등의 혁신 속에서 사회구성원의 대다수를 임금노동자로 바꾸며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신용에 기초한 자본주의를 이뤄냈다. 미국이 중심이 된 20세기형 세계시장은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의 도전에 직면했지만, 그러한 도전 속에서 미국은 선진자본주의를 중심으로 강하게 결속하며 자본주의의 사회침투를 심화시켰다. 채30년도 되지 않아 선진 자본주의 국가 대부분이 '실질적 포섭'의 단계에 도달했다. 선진 자본주의의 침투에 저항하던 공산주의 국가들의 역사적 의의는 선진 자본주의 내부를 실질적으로 포섭했던 자본이 공산권 국가들의 내부로 빠르게 침투할 수 있도록 국가가 주도해 강력하게 사회를 일원화, 균질화했다는 데에 있다. 공산권의 산업화란 기껏해야 선진 자본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전시동원체제를 지속시킬 군수공업 중심의 산업화였다. 사회 내부에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집단들을 모조리 제거하고 사회를 균질화시켜 잘 훈련된 임금노동자 집단을 만들었다는 정도가 역사적 사명이자 의미였다 할 수 있겠다.
그렇게 공산권 국가들이 내부를 정리하며 근대적 민족국가 체제를 만들어놓자 선진국의 내부를 장악한 자본은 다국적 기업을 활용해 후진국 내부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근대국가에 의한 균질화의 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리고 노동력의 질적 수준이 높을수록 더 빠르게 자본이 이동하여 이윤을 창출해냈다. 1970년대 이후의 이런 과정은 1991년 소련 패망을 계기로 가속화되었고 전세계적인 규모의 자본, 노동력, 그리고 기술과 산업이 이동하며 세계화를 주도했다. 이제는 선진 자본주의 내부의 산업들이 전세계 각지로 이동하며 선진국에서는 내부 공동화의 문제가 나타났으며, 후진국에서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들이 우후죽순으로 창출되며 반反세계화 운동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1945년 이후부터 1972, 1979년 미중수교와 베트남전쟁의 종결을 기점으로 하는 시기까지는 선진 자본주의 내부의 '실질적 포섭'이, 약간의 소강기를 거쳐 1992년부터 2011~2012년까지는 후진 자본주의 내부의 '실질적 포섭'이 진행되었다.
19세기형 자본주의가 세계적인 규모의 유통망을 건설했다면, 20세기형 자본주의는 선진 자본주의에서 출발해 점차로 '실질적 포섭'의 범주를 확장하며 전세계를 자본주의화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제 남은 건 무한히 확장되었던 자본주의가 다시 한번 내포적 심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고, 내가 보기에는 노동력의 질적 수준이 이전과 차원이 다른 수준에 도달하는 것밖에는 발전 방법이 없다. 나는 그것이 노동자들이 이제 단순히 노동력으로써만 기능하는 게 아니라 경영 능력까지 행사할 정도로 자발성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자발성이 고도로 발휘될 수 있는 기업 조직 방법과 그를 뒷받침할 자본 공급 기제 및 기술혁신을 낳을 정보의 유통체계의 변혁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질 것인지 미리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하는 작업은 결국 노동력의 가치 평가가 노동시장 내부에서 굉장히 '객관적'으로, 마르크스 식으로 말하자면 "가치대로" 측정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동력의 이동이 매우 자유로워야 한다. 노동력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그의 실적대로 평가하는 방식이 사회적으로 자리잡아야 노동시장 내부에서 '하나의 상품'으로서의 노동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가치측정이 가능해진다.
내가 보기에 이게 되는 건 현재로서는 미국밖에 없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거의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미일이 동일한 지평 위에 놓여 있는데 그중에서도 미국은 임금노예제의 최선진을 달리고 있다. 새로운 기업조직 방식이나 새로운 형태의 자본 공급 기제 그리고 끝없는 기술혁신도 현재로서는 미국만이 동시에 다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20세기형 세계시장의 후반기를 상징하는 세계적 규모의 자본, 노동력, 그리고 기술 및 산업의 무제한적인 이동이 미국에 의해서 가로막혔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면서 자기 내부의 노동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조직하려 노력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이 이에 대항해서 경쟁할 수 있을까? 나는 어렵다고 본다. 임금농노제로의 이행의 조건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을 갖추고 있는 사회는 미국밖에 없다. 여전히 세계사는 미국 주도 하에 놓여 있다. 노동력의 질적 수준 향상을 통한 자본주의의 내포적 발전이라 요약할 수 있는 21세기형 세계시장의 출현은 미국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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