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6, 2022

박지배의 [근대세계체제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무역] 서평

박지배의 <근대세계체제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무역> 서평

2022.04.02. 오후 11:14

 손민석  3      

박지배 교수의 <근대세계체제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무역>(신서원, 2017)은 한국의 서양사 연구의 성취가 집약된 노작(勞作)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성실한 사료 분석이 돋보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치밀한 실증연구를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 및 제1, 2차 자본주의 이행논쟁이라는 거시적인 틀에 대한 비판과 접목시켰다는 점에서 연구사적으로 변방에 속하는 ‘한국’의 연구자가 서구학계에 ‘개입’하는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박지배의 연구는 아쉽게도 월러스틴이 제시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론의 전체적인 상(像) 자체를 바꾸는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인다. 그는 러시아의 사례를 통해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 제기하는 설명력의 한계를 논하고 그 전체를 수정하기보다는 제1, 2차 자본주의 이행논쟁과의 연관 속에서 강조점을 바꾸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전제로 박지배의 연구를 개괄하기 위해서는 우선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1.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에 있어서의 자본주의로의 이행론과 그 한계 세계사의 전개를 시대적으로 구분할 때 ‘근대’ 시대를 규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 “자본주의”라는 점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자본주의’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그러한 탄생의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서구 학 계에서는 제1, 2차에 걸쳐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벌였으며 이에 대해서는 한국에 도 관련 논쟁들이 번역되었다.(이하의 내용은 다카하시 고히치로(高橋幸八郞) 외, <자본주의 이행논쟁>, 김대환 역, 동녘, 1997.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 외, <신(新)자본주의 이행논쟁>, 이영석 역, 한겨레, 1990, <농업계급 구조와 경제발전>, 이인규 역, 집문당, 1991, 참고.) 이 두 차례의 논쟁의 핵심적 논점은 영국에서의 자본주의의 발생 과정에서 내적 요인이 우세했는지, 외적 요 인이 우세했는지 여부였다.  

제1차 자본주의 이행논쟁에서 모리스 돕(Maurice Dobb)과 폴 스위지(Paul Sweezy)는 모두 봉건제의 외적 모순과 외적 요인 간의 상호작용이 봉건제의 몰 락과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낳았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 문제는 어느 요인이 더

중요했는지 여부로, 돕은 생산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봉건제 발전의 원동력

은 보다 많은 수입을 추구한 영주들의 욕구가 착취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지경

으로까지 몰고 가는 바람에 농노제의 붕괴를 가져온 계급투쟁적 요인에 있다고

보았다. 외적 요인이라 할 수 있는 상업은 고작해야 이러한 계급투쟁의 격화를

위한 착취를 증대시키는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게 돕의 논지였다. 이에 반해

스위지는 봉건제는 그 자체로 대단히 안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내적 동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만약 봉건제 하에서 영주 계층이 더 많은 수입

을 원하며 착취를 증대시켰다면 그것은 봉건제 내부의 논리가 아닌 외부적 요

인, 즉 도시와 상업의 발전이 가져온 수요의 증대가 작용했기 때문이었다고 주

장한다. 다시 말해서 스위지는 안정적인 봉건적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가한 외

적 충격으로 도시와 상업의 발전을 지목하고 있다. 내적인 계급구조의 변동을

자본주의 이행의 동력원으로 보는 돕과 외적인 충격을 동력원으로 보는 스위지 간의 대립은 전체적으로 일국적(一國的) 단위에 기초하여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20여년 뒤에 전개된 제2차 자본주의 이행논쟁 또한 이러한 한계에 있어서는 크 게 다르지 않았다. 브레너는 맬서스(Malthus)적 인구학에 근거를 둔 프랑스의 에 마뉘엘 라뒤리와 영국의 마이클 포스탄의 계량경제사적•인구론적 해석에 반대

하며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인구증감이 가져온 시장구조의 변화가 농

민의 대응의 변화를 가져와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계기를 낳았다는 라뒤리, 포스

탄의 주장을 비판하며 브레너는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우를 비교하며 동일하게 흑사병에 의해 인구가 감소했음에도 서유럽에서는 봉건제의 종말이 나타났는데 반해 동유럽에서는 오히려 봉건제가 강화되는 ‘재판농노제(再版農奴制)’가 나타 났다는 점을 근거로 설령 인구의 감소가 변화를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최

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농노와 영주 간의 계급투쟁이라고 주장했다. 브레너는

계급투쟁 및 생산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자신의 논지가 돕의 것과 유사하다

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돕이 선험적으로 농민 계층이 자본주의 지향적이었다고

가정한 것과 달리 자신은 농민이든 지주든, 심지어 상인 계층들조차도 자본주의

지향적이지 않고 단순히 자신들의 기존의 생활체계를 지키고자 하는 보수적인 입장에서 투쟁했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제2차 자본주의 이행논쟁 또한 이전의 논쟁에 비해 공간적으로 서유럽과 동유

럽 전체로 넓어지고 비교사적 방법론과 계량적 방법론 등의 다양한 방법론이 사

용되며 논의가 풍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외적 요소를 강조했다는 점

에 있어서는 일국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여기서 짚

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이것이 논쟁에 참여한 관련 연구자들의 한계라는 점도

물론 고려해야 하겠지만 자본주의 이행논쟁이 주제로 삼고 있는 영국에서의 자

본주의의 발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조건이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

다는 것이다. 16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지역에서의 자본주의의 발생은

체제 이행이라는 측면에서 선도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에 일국 중심으로 논의가

전개될 수밖에 없었으며, 바로 그러한 조건 속에서 일국의 내외적 요소들 간의

관계가 주요한 논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의 한국 등의 후발자본주의 국가

들의 경우 대외적 조건의 압도적인 규정 속에서, 심지어 식민화의 가능성과 마

주하면서 자본주의화를 수행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국제적 계기를 좀더 중요 하게 다룰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국적 관점의 한계를 돌파해낸 이론이 바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이

었다. 월러스틴은 자신의 저서 <근대세계체제>에서 자본주의 이행의 문제를 세

계경제라는 측면에서 접근하여 서술하였다. 먼저 월러스틴의 이론을 정리한 뒤

에 박지배의 요약을 살펴보아 어떤 지점에서 박지배가 논점을 형성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이하의 내용은 이매뉴얼 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1, 나종일 외 역, 까치, 1999. <근대세계체제> 2, 유재건 외, 까치, 1999. <근대세계체제>

3, 김인중 외, 까치, 1999. 이매뉴얼 월러스틴, <세계체제 분석>, 이광근 역, 당대, 2005. 참고)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의 주요한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경제/세계-경제’(월러스틴은 ‘세계경

제’와 ‘세계-경제’를 구별하여 사용한다. 전자가 일반적으로 전세계를 포괄하는

경제 그 자체를 의미한다면, 후자는 아직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전 지구적인

규모의 세계시장을 형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한 국가의 경계선을 넘

어서는 광역적 규모의 경제를 형성했다는 의미에서 ‘세계-경제’라 부른다. 이 표

현에는 국가를 주체로 했을 때 타자(다른 근대국가)와의 관계성이 포함되어 있 다.)가 한 축이라면, 그런 세계경제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근대국가 및 근대국가

들 간의 관계로서의 국제체제가 다른 한 축이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는 14, 15세기 봉건제의 경제발전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러한 한계

를 돌파해내는 과정에서 새롭게 나타난 잉여추출방식이다. 각지에서의 농민반

란, 기근, 전쟁, 질병, 교역침체 등의 현상이 수반되는 ‘봉건제의 위기’와 마주하

여 농업잉여를 봉건귀족이 직접적으로 수취하는 방식의 봉건경제로는 ‘봉건제

의 위기’에 대응해 국내적 질서를 유지하고 중상주의적 정책을 펼치는 근대적 관

료제를 도입할 수도, 유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

부로의 팽창과 상공업의 발전이 필요했고, 이 팽창 과정에서 도입된 중심부 - 주

변부 간의 위계적인 국제분업관계가 주변부에 대한 중심부의 착취를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착취는 중심부로 잉여를 이전시켜 중심부로 하여금 보다 강력한

중앙집권화된 국가기구를 가질 수 있게 하였고, 그것이 다시 위계화된 국제분업

을 주변부에 강요할 수 있게 함으로써 외부로의 팽창과 상공업의 발전을 이룰

수 있게 하였다. 즉 유럽의 지리적 팽창, 상품별•지역별로 다양한 노동통제방식

의 발달, 중심부에 강력한 국가기구의 존재 등은 자본주의적 세계경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대국가 및 국제관계의 확대과정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월러스틴은 ‘근대세계체제’를 “정치적 상부구조의 낭비를 없앰으

로써 더 많은 잉여가 하층에서 상층으로,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다수에서 소수 로 흘러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경제시스템이라 규정한다.(월러스틴, <근대세계체제> 1: 24) 이러한 위계적 구조의 존재를 강조하는 바람에 월러스틴이 ‘유럽 중심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지만 월러스틴이 딱히 유럽의 우월성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로의 이행은 월러스틴에게 있어 근본적으로 대단 히 우연적인 사건이다. 물론 어느정도의 구조적 필연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본질적으로 유럽은 그 농업적 기반에서부터 대외적인 확장

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 월러스틴은 중국과 유럽의 작물인 쌀과 밀을 비교하면서 쌀이 지니고 있는 높은 인구부양력에 주목한다. 밀의 낮은 생산성과 유럽의 토양은 상대적으로 대외팽창 없이 체제를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유럽은 상업이 발달할수록 마차 등의 더 많은 운송

수단이 필요했는데, 이는 더 많은 말 먹이와 목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 다. 대외팽창 없이 이러한 목초지의 확장은 농토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즉 생산성이 급격하게 늘어나지 않는 이상 대외팽창은 불가피해진다. 다시 말해

서 서유럽의 농업은 발전하면 할수록, 그리고 그에 기반한 상품경제가 발전할수

록 토지의 더 많은 사용을 필요로 하는 조방적인 농법에 기초해 있었던데 반해

아시아의 농업은 쌀농사에 기초해 보다 집약적인 농법을 사용하면서 ‘대내적’으 로 팽창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구조적 필연성에 따른 대외확장이 실제로 가능하기 위해서는

팽창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형태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월러스틴은 근대국가가

중국의 제국 체제에 비해 훨씬 더 확장에 유리하다고 지적한다. 기술축적, 농업

의 존재양태, 국가들 간의 경쟁에 있어서 중국식의 제국체제는 그다지 유리하지

가 않다. 제국 체제는 지나치게 안정적인데 반해 중세 유럽의 봉건제는 훨씬 더

불안정해서 쉽게 붕괴될 수 있었고, 그러한 붕괴 속에서 새로운 중앙집권적 권

력체의 등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체제였다. 그 중앙집권적 국가기구는 신흥

부르주아지들의 이해관계를 봉건귀족들의 그것과 함께 조정하며 잉여수취를 보

다 용이하게 만들어갔다. 서유럽이 봉건적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것도 우연적인

사건이었지만 그것이 농업발전이 대외팽창을 꾀하지 않을 수 없는 한계에 도달

해 있던 14, 15세기에 마침 유럽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 또한 대단히 우 연적인 사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조적 필연성과 우연적 사건 간의 결합속에서 서유럽의 대외팽창이 가능했고, 그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나타 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월러스틴은 서유럽의 발흥을 “우연적인 필연성”이라는

다소 모순적인 용어로 표현한다. 동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대외적 팽창보다 대내

적 팽창이 더 용이한 구조적 필연성 속에서 제국체제가 대외적 팽창을 낳을 계 기를 차단하고 있었기에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나타날 수 없었다. 상술했듯이 자본주의적 세계체제는 중심부 - 주변부, 더 자세하게는 중심부 - 반 (半)주변부 - 주변부라는 위계적인 상품별•지역별 분업체계를 갖추고 고도의 기 술력과 자본을 지닌 중심부가 미숙한 노동력을 지닌 주변부를 착취하는 방식으

로 주변부에서 중심부로의 잉여의 이전을 통해 발전해왔다. 그러한 발전과정 속

에서 중심 - 주변부 간의 불평등한 잉여수취관계가 확대재생산되고 그에 따라

세계적 규모의 불평등 또한 확대되어 왔다. 여기서 불평등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요소는 ‘부등가교환(不等價交換)’이다. ‘부등가교환’이란 여러 가지 조건의 차이로 인해 다른 노동량이 투입되는 상품이 같은 가격으로 거래되면서 나타나

는 불평등한 교환관계를 의미한다. 월러스틴은 기술, 자본 간의 차이 외에도 세

계체제 내에서의 국가 간의 힘의 차이 또한 이러한 부등가교환을 만들어내고 유

지하는 요소라 본다. 예를 들어 많은 양의 곡물과 자동차 한 대가 동일한 가격으

로 교환될 때 많은 양의 곡물에 더 많은 노동력이 들어가 있을 수 있다. 투입된

노동양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가격으로 교환되는 과정에서 주변부는 중 심부에 더 많은 잉여노동을 빼앗기며 착취당한다.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에서 중심부는 주변부에 이러한 잉여수탈에 적합한 노동형

태를 강요하는데 월러스틴은 세계경제 내에서 대체로 중심부의 노동형태는 자 영농 및 임금노동, 반주변부는 분익소작제(지주제), 마지막으로 주변부는 노예 제와 봉건제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적 세계체 제 속에서 임금노동 및 자립적 소농(중심부) - 계약농 혹은 소작농(반주변부) 예속농(주변부)의 노동형태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으며 그것이 세계경제 내에서

의 위계적인 분업관계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는 게 그의 입론의 핵심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흑인 노예제가영국 제조업에 원료를 제공하던 미국 남부의 주변부적인 성격에 기초해 형성된 예속농의 한 유형이다.  

월러스틴은 어떠한 동력을 통해 예속농이 소작농 혹은 자립적 소농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한 근대세계체제에 포섭된 주변부의 예속신분제, 예컨대 흑인노예제를

곧바로 ‘근대적’이라 규정한다는 점에서 주변부 사회의 성격에 대한 고찰을 가로

막고 있다. 주변부 사회가 노예제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 사회를 노예제 사회로

보아야 하는데 월러스틴에게 그것은 근대세계체제 하의 노동분업에 포섭된 사

회이기 때문에 노예제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성격의 사회가 되어버린다. 이

미 자본주의적 성격의 사회라면 해당 사회의 근대화 과정은 어떠한 계기로, 어

떠한 주체를 통해 이뤄질 수 있는가? 월러스틴은 그러한 질문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 일축하지만 해당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있어 이 문제는 실존적으로 중요

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가 굳이 이러한 무리한 규정을 사용하는 이유는 소련

의 국가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난 독자적인 시스템이라는 주장을

비판하기 위함이었다. 근대세계체제가 가한 압박에 못이겨 잠시 세계시장으로

부터 이탈한 중상주의적 시스템이기에 다시금 세계체제로 빨려들어갈 것이라는

그의 예언은 실현되었지만 ‘중상주의적’이라는 성격 규정에 비해 소련의 자본주

의로의 이행은 너무나 크게 실패했다는 점에서 의문의 여지가 많다.(이에 대해 서는 안데쉬 오슬룬드, <러시아의 자본주의 혁명>, 이웅현 외 역, 전략과문화,

2010. 참고.) 

앞서 살펴본 제1, 2차 자본주의 이행논쟁과 달리 월러스틴의 논지는 외부로부터 의 규정성을 상당히 강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즉각적인 반발을 낳았다. 예컨대

브레너는 반(半)주변부로 분류되는 동유럽 등지의 '재판농노제'가 서유럽과 경제

적 관계를 맺기 이전에 나타났으며 이 재판농노제를 비롯한 세계경제 내에서의

노동통제 방식의 차이 또한 세계경제의 규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해당 사회

내에서의 농민의 계급조직력 강도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에 따

르면 엘베 강 서쪽 지역의 경우 개방경지제의 공동체적 성격이 강해 농민들이

봉건영주들에 조직적으로 대항할 수 있었던데 반해 엘베 강 동쪽 지역에서는 봉 건제 하의 소농의 경제적 협력과 촌락자치의 발달 정도가 상대적으로 미약해봉건영주의 농노제 강화에 효율적으로 저항하기 어려웠다. 결국 농노제의 폐지 혹 은 강화를 결정한 주요한 요인은 농민들의 저항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었는 지 여부, 즉 계급투쟁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브레너의 반론은 선후관계를 명확하게 해서 외부적 규정성을 강

조한 월러스틴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것은 아

니었다고 본다. 농노제의 강화 자체는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와의 접합 이전에 나

타날 수도, 이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 공간적으로도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다. 중

요한 것은 그것의 지속가능성이다. 접합 이전에 나타났을지라도 재판농노제의 재생산에 있어서 세계체제에의 예속이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세계경제로의 포섭이 없이도 농노제 강화가 지속될 요소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 한 탐구가 없다면 농노제의 강화는 일회적인 사건에 지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영주들이 곧 이어질 농노들의 저항에 곧바로 농노제의 강화를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지배는 브레너와 다른 측면에서 월러스틴을 비판한다. 바로 위계적인 분업구

조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국제질서 간의 모순이다. 박지배는 월러스틴이 핵심부 (중심부), 반주변부, 주변부의 위치가 변화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어 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전망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박지배, 2017: 35) 월러스틴의 논지는 세계체제 내에서의 각 국가 간의 서열과 위계가 고정화 되어 있으며 주변부의 대응은 무시되고 심지어 마치 세계체제에 의해 주변부의

운명이 결정되어 있는 듯한 뉘앙스마저 풍긴다. 박지배는 세계체제 내에서의 러 시아의 위치가 “주변부적인 성격과 반주변부적인 성격이 중첩”(박지배, 2017: 75)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강한 국가’와 ‘주변부적 경제구조’ 간의 모순적 결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즉 월러

스틴의 주장처럼 세계체제 내에서의 분업관계와 근대국가의 능력이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경우처럼 강한 국가와 주변부적 분업관계라는

모순적 결합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박지배는 월러스틴의 주

장처럼세계체제라는 외부적 규정성이 아닌 러시아 사회의 계급구조와 같은 내 적 요소를 강조하며 영국과러시아 간의 무역관계를 분석하여 무역이라는 외부적 요소의 규정성이 어느정도인지를 가늠하고자 한다.  

2. 박지배의 <근대세계체제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무역> 박지배 연구의 가장 큰 장점은 꼼꼼하다 못해 집착에 가깝다 할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사료수집과 분석이다. 실증분석에 있어 엄밀함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기란 쉽지가 않다. 박지배는 이 책에서 18세기 후반

과 19세기 초의 러시아와 영국 간의 무역 통계를 엄밀하게 추계하고 시계열적으

로 그려내기 위해 당시의 주요한 무역항구였던 상트 페테르부르크, 리가, 아르

한겔스크뿐만 아니라 모스크바, 코펜하겐, 스톡홀름, 심지어 영국 런던에 이르

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방문하여 사료를 수집한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한 사료

들을 아주 꼼꼼하게 분석하는데 가령 실제의 수출량과 세관장부상의 수출량 및

보고서상의 수출량 사이의 차이까지도 꼼꼼하게 검토하여 그 오차의 폭이 일정

한다는 점까지 확인하는 성실함을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러시아쪽의 사료만 검

토하지 않고 교역 상대국이었던 영국의 대러 수입자료까지 비교함으로써 양쪽

의 통계 수치가 서로 일치하는지 여부까지 검증해낸다. 이렇듯 꼼꼼한 사료 비

판과 통계분석을 통해 증명된 사실일지라도 역사통계가 지니고 있는 한계를 놓

치지 않는다. 저자는 브로델의 “통계는 문제를 잘 보여주지만 해결하지는 못한 다.”는 말을 인용하며 통계적 분석이 당대 사회에 대한 분석인 역사학적 분석과

결합해야 함을 강조한다.(박지배, 2017: 80) 통계분석과 역사학적 분석의 결합

을 통해 저자는 18~19세기 영러 무역에 대한 분석을 러시아 사회의 계급구조 및

정부의 무역정책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었다. 이 책은 1부와 마지막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인 5부를 제외하면 2~4부를 주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 책의 1부에서 앞서 우리가 자세하게 다룬 월러스틴 및 제1, 2차 자본주의 이행 논쟁을 통해 비판논점을 잡았다면, 2부에서는 본격적으로 1부에서 행한 사료비

판을 전제로 1761~1825년 사이에 러시아와 영국 간에 이뤄진 무역에 대한 통계

적 분석을 행한다. 제3장에서 러시아와 영국 간의 무역규모가 18그램짜리 은화

루블을기준으로 러시아의수출량은 4.4배, 수입량은 5.0배, 전체 교역량은 4.7 배나 증가했음을 밝혀낸다. 환율을 반영한다면 수출은 3.8배, 수입은 4.3배, 전체적으로 4.1배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증가폭이 다소 감소하지만 그럼에도 불 구하고 상당한 규모의 발전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변화를 1) 1794~1805년의 급격한 상승기, 2) 1808~1811년의 급격한 하강기, 3)

1812~1815년의 회복기, 4) 1816~1820년의 급격한 상승기, 그리고 5) 1821~1825년의 정체기로 나누어 고찰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본적으로 서유럽 의 경기변동이 작동하기도 했지만 무역흑자를 유지하고자 하는 러시아 정부의 관세 정책과 나폴레옹 전쟁과 같은 대외환경의 변화 등이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 다. 저자는 이상의 분석을 통해 러시아의 대외거래량의 변동이 유럽의 정치•경

제적 사건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 결과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한

다.(박지배, 2017: 118-121) 

저자는 18세기 후반에 서유럽과의 무역에 강하게 포섭되어 있는 러시아의 대외 무역이 중국, 페르시아, 오스만, 스웨덴, 폴란드, 독일 도시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등 수많은 국가들과 교역관계를 통해 점차 확장되고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영국과의 무역관계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1773~1825년 러

시아 대외무역에서 82%의 비중을 차지한 발트해 무역, 백해 무역, 흑해 무역을

통해 러시아의 대서구 무역이 이뤄졌는데, 이중 발트해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줄어들기는 했지만 대체로 68~70% 내외였다. 이렇듯 발트해 무역이 차지

하는 비중이 크다보니 저자는 발트해 무역의 주요한 담당 항구였던 상트 페테르

부르크와 리가, 그리고 백해의 아르한겔스크에서의 무역을 분석하여 대(對)영국 무역의 동향을 분석해낸다. 그에 따르면 수출부문에서 대영무역은 1761~1765 년부터 1821~1825년까지의 전체 러시아 대외수출이 4.4배 증가한 것을 능가하 는 7.8배나 증가하였다. 수입부문에서는 동기간에 러시아 전체의 대외수입이 5.0배 증가한 것에 비해 최소 30.1배 증가함으로써 전체적으로 러시아의 대영무 역이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했다는 걸 알 수 있다.(박지배, 2017: 133) 러시아는

이렇게 확대된 영국과의 무역에서 큰 무역흑자를 기록했는데 예를 들어 1828~1830년 대외무역에서 얻은 수입 중 대영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7%나 되었다.(박지배, 2017: 137) 러시아의 대외무역 흑자는 거의 대부분이 영 국과의무역에서 나왔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자는 이러한 막대한 무역흑 자를 통해 러시아로 19세기초에 매년 약 10만 8천 그램에 해당하는 은이 유입되었으며 그것이 러시아의 화폐경제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분석한다.(박지배, 2017: 143) 

2부의 4장에서는 이렇듯 양적으로 크게 확장된 대영무역의 질적인 내용을 다룬 다. 대영무역이 그렇게나 크게 증가했다면 그것은 영국의 수요의 확대도 있었겠

지만 분명 러시아 내부의 생산 능력이 수출을 뒷받침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러시아가 어떠한 물품들을 수출했는지를 통해 러시아 사회의 생산

능력을 점검하고 더 나아가 그러한 대영수출이 영국의 어떠한 산업분야와 연관

되어 있었는지를 확인함으로써 대영수출이 영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또한 확인하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분석이라 생각하 는 것이 바로 이 2부의 4장에서 이뤄지는 수출품에 대한 질적 분석이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는 대마, 아마, 아마 씨, 대마 기름, 농산물, 수지, 돼지 털, 포 타쉬, 역청, 목재, 철, 마직, 밧줄, 아교, 비누, 유프티(무두질한 가죽) 등의 다양한 상품들을 수출했다. 이 16개의 상품들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몫은 1769년 에 무려 96%에 이르렀고, 1790~1800년에는 85%, 그리고 1801~1825년에는 81%의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다시 말해서 18세기 중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의 대영무역에서 16개의 주요 상품, 주로 농산물과 원료, 그리고 약간의 제조품 이 포함된 상품들이 러시아의 주요한 수출품이었으며 그중 대마, 아마, 아마 씨, 곡물, 수지, 돼지 털, 목재, 역청, 포타쉬, 철, 마직, 아교 등의 12개 제품이 러시아 의 대영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769년에 95.9%, 1790~1800년에 98%, 1801~1825년에 94.1%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실질적으로 러시아의 대영 수출이 사실상 러시아 전체 수출과 맞먹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이를

1) 특수작물, 2) 곡물, 3) 축산물, 4) 임산물(산에서 나는 물품), 5) 제조품의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누어 각각 상세하게 살펴본다. 그 결과 12개의 상품 중에서도 대

마와 아마는 당시 해양 강국으로 욱일승천하고 있던 대영제국이 항해에 필요한

범포와 굵은 밧줄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했던 원료였던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18세기 말부터 곡물수출이 크게 증가하

기 시작하여 19세기에는 큰비중을차지하게 되었다는 점 또한 밝혀지는데저자 는 이를 영국이 18세기까지는 곡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본다.(박

혁명 읽는 사람 MY 지배, 2017: 145-179) 

이렇게 러시아의 대영무역의 양적 규모와 질적 내용까지 통계적으로 분석한 저

자는 16세기 중반부터 산업화가 도래하는 19세기 전반까지의 러영무역을 통해

양국 각각에게 러영무역이 지니는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다. 1760~1825년까지

의 러시아의 대외무역은 크게 1) 1760~1794년과 2) 1794~1825년으로 크게 나

눌 수 있다. 즉 1) 18세기 중후반과 2)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로 나눌 수 있 다.(박지배, 2017: 183) 이러한 구별의 의미로 저자는 16세기부터 1)의 시기까지

의 무역이 러시아가 다양한 서구국가, 특히 네덜란드의 주도 속에서 러시아가

서구경제와 접촉하여 점차 편입되는 상황이었다면, 2)의 시기로 이행하면서 러

시아 경제가 영국 중심의 서구 자본주의 경제에 완전히 편입되어 월러스틴이 주

변부 사회로의 재편의 지표로 보는 영국경제와의 노동분업 관계를 맺게 되었음

을 알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산업혁명이 막 시작된 18세기 영국의 확대되는 해

상진출과 산업발전에서 러시아의 선박재료와 산업원료의 중요성이 점점 커져갔

다고 주장한다.(박지배, 2017: 196) 

대외무역에서의 영국의 비중의 증가는 러시아로 하여금 영국을 견제하는 정책

을 펼치게 만들었다. 저자에 따르면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는 영국인들의 주

도권 행사를 우려한 여러 입장들을 고려하여 해상에서 무장중립 동맹을 체결하

는 등 영국을 견제하는 정책을 펼쳤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지적을 하는데, 예

카테리나 2세의 대영견제 정책이 “국가 경제의 발전이라는 거시적인 측면”에 대

한 고려에서 나온 정책이었다기보다는 러시아가 “원하는 가격으로 상품을 팔 수

없다”는 러시아 상인들의 불만이 반영된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나온 정책이었다

는 것이다.(박지배, 2017: 210) 세계경제에서 영국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

전체 국가의 이해관계 속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하기보다는 단기적

으로 러시아 무역에서의 영국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정책을 펼쳤던

것이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의 발발로 대외조건이 변화하자 영국의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영국과의 관계만 악화되었다. 예카테리나 2세의 뒤를 이은 파

벨 1세는 더 적극적인 반(反)정책을펼쳤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1790년대초에 시작된 ‘나폴레옹전쟁’으로인해 유럽의원자재 수입이 크게 증대된 상황에 기초한 일시적으로 유리한 조건에서만 가능했던 것이었으며, 러시아에서도 대영 무역에 막대한 지분을 갖고 있던 귀족집단의 반발을 낳는 것이었다. 확고한 국

가경제의 발전 방향에 대한 입장을 전제로 반(反)영국 정책이 입안된 것이 아니

었다보니 러영무역을 수단으로 영국에 심대한 타격을 가한 만큼이나 국내의 러

시아 귀족들 또한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심대한 타격은 정권에

위협으로 돌아와, 저자는 1801년 3월 11일에 벌어진 궁정반란의 원인 가운데 하

나로 러시아 귀족들과 상인들의 강한 반발을 들고 있다. 반란의 주도 세력은 파

닌을 비롯한 러시아 내의 친영 세력이었다.(박지배, 2017: 217-218) 파벨의 뒤를

이은 알렉산드로 1세 때는 대륙봉쇄와 같은 단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위조

문서 등을 통해 러영무역이 지속되었다는 점이 제3부 제5장에서 계속해서 밝혀

진다. 이미 러영무역은 심화될대로 되어 끊어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 던 것이다.  

3부의 마지막 부분인 6장에서 저자는 끊어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러영무역관 계를 영국과 러시아 각각이 어떻게 인식하고 서로 대안을 찾아 나섰는지를 밝히

고 있다. 앞서 보았듯이 예카테리나 2세 때부터 러시아는 무역에서의 영국의 주

도적 위치를 견제하기 시작했으며, 그러한 상황의 변동은 영국으로 하여금 러시

아 외에 다른 대안적 공급처를 찾도록 만들었다. 특히 저자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1/4분기동안에 나타난 러시아의 가격변동을 통해 이를 입증하려 노력한 다. 이 러시아의 ‘18세기 가격혁명’에 관한 저자의 분석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인

데, 저자는 러시아의 저명한 가격사 연구자인 B. N. 미로노프의 곡물 가격 연구

를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18세기 러시아의 가격혁명은 서유럽의 16세기 가격혁

명과 등치시킬 수 없는데, 그건 러시아가 18세기가 아닌 19세기에도 여전히 국

내 교환에 필요한 귀금속이 부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러시아의 화폐스톡의 증대는 귀금속 화폐의 증가보다는 정치적 문제로 발생한

재정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남발한 태환지폐의 증대로 이뤄진 것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8세기 가격혁명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미

로노프는 어찌됐든 태환권뿐만 아니라 은화로도 5배 이상의 가격 증대가 있었

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해외무역을 통해 서유럽의 물가수준이서유 럽을 대상으로 주로 수출을 하던 러시아항구도시들의 가격을 상승시켰고 다시 상승한 무역항구들의 가격이 항구들로 러시아 상품을 공급하는 지방 도시들의

가격을 끌어올린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의 18세기 가격혁명은 16세기

가격혁명을 겪은 서유럽의 높은 가격에 이끌린 “뒤늦은 가격혁명”이었다.(박지

배, 2017: 237-239) 이러한 가격의 변동이 영국 상인들로 하여금 대체재를 찾도 록 만들었던 것이다. 영국은 대마와 아마 등 자국의 선박 건설과 산업발전에 필요한 원료들을 저렴하

게 공급할 수 있는 대안지로 프로이센, 동인도 등을 찾아다니며 많은 노력을 기

울이지만 끝내 러시아만큼 양질의 대마와 아마를 공급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 한다. 그나마 목재, 특히 마스트용 목재는 캐나다에서 대체품을 찾을 수 있었고, 철의 경우 국내 철강업의 발전을 통해 대응할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러시아를 대체할 공급처를 찾는데는 실패하였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러

한 상황은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러시아는 프랑스, 미국 등의 시장에서 영

국 시장을 대체할 시장을 찾아내려 노력했지만 영국을 대신할 만큼의 수출량을

달성하는데는 실패했다. 러시아는 19세기 초반에 새로운 시장을 찾아 동방으로

의 경제적 진출까지 모색했지만 대아시아 무역의 규모가 대유럽 무역과 비교해 지나칠 정도로 작았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 실패하게 되었다.(박지배, 2017: 245-274) 영국은 매우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러시아의 상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 었으며, 이는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로 영국을 대체할 막대한 수요를 찾을 수 없었다. 저자는 이것이 영국이 러시아에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생산력 역시 영국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라 분석한다.(박지배, 2017: 244) 월러스틴의 자본주의적 세계체제의 규정성에 대한 저자의 가장 통렬한 비 판이 이 지점에서 이뤄진다.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내에서의 중심부와 주변부 간

의 관계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긴밀하

게 연결돼 있어 관계의 해체가 양쪽 모두에게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통

찰은 러시아 -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뤄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상당한 울림을 준 다.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16세기 중반이후 18세기 말까지 양국 모두에게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줬던 러영무역의 발전은 19세기 영국의 산업화를 통한 선 진적인 경제구조로의 전환과 러시아의 후진적인 경제구조의 유지라는 대비를

낳게 되었다. 저자는 18세기 말까지 러시아 경제가 지닌 잠재력, 세계경제에서

영국에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었을 정도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고 본다. 월러스틴과 브로델의 주장이 지닌 한계점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본격

화되는 지점이다. 저자는 본래부터 서유럽의 승리가 예정되어 있다는 식의 운명

론적인 이론틀을 제시하는 월러스틴과 브로델을 비판하며 18세기 말까지 러시

아 경제가 상당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러한 가능성을 살리지 못한 원 인을 국내의 계급구조에서 찾는데 이것이 4부의 내용이다.  저자는 4부에서 예카테리나 2세와 알렉산드르 1세 정부의 경제관, 경제정책 및

관세정책을 조망한 뒤에 대영무역의 주요한 담당자라 할 수 있는 상인, 귀족, 농

민 등의 주체들이 놓여 있는 상황을 분석한다. 먼저 저자는 예카테리나 2세의 정

부의 경제관이 자유주의적인 것이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하지만 동

시에 그 자유무역이 지니고 있는 ‘계급성’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비평 또한 이

뤄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예카테리나 정부의 무역정책은 형식적으로는 자유무

역의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신분제에 따른 엄격한 제한이

가해지고 있어 계급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예카테리나 정부는 농

민의 무역의 참가를 제한했는데 그것은 농민들에 대한 귀족들의 통제력이 약화

되어 궁극적으로 귀족의 경제적 기반인 농노제의 해체로 이어질지도 모를 위험

성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농민들뿐만 아니라 귀족들조차도 사치품에 대한 수

요를 제한당해야만 했다. 신분제적 질서의 안정을 위해 국가가 경제전반에 걸쳐

제한을 두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겉으로는 자유무역일지 몰라도 실질적으

로는 지주 계급의 이해관계를 배타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할 수 있 다. 특히 예카테리나 2세는 자신의 남편인 표트르 3세를 살해하고 귀족(=드보랴

닌)들의 지지를 받아 제위에 올랐다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표트르

대제가 일련의 개혁을 통해 귀족계층인 드보랴닌을 국가의 봉직신분으로 재편

하여 토지와 농노를 소유하는 대신 평생 국가에 봉사할 의무를 지게 만든 것을

폐지함으로써 토지와 농노는 소유하더라도 국가에 대한 의무를 지지 않게 만들 었다.(박지배, 2017: 291-292) 저자는 예카테리나 정부의 경제정책이 전반적으로 토지와 노동력을 독점하고 있던 지주귀족, 드보랴닌들이 높은 가격을 동반한 해외수요라는 호황기를 만났을 때 이익을 얻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담고 있다

며 러시아 전체를 위한 자유가 아닌 드보랴닌을 위한 자유를 추구했다고 주장한

다.(박지배, 2017: 307) 

알렉산드르 1세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시대적으

로 중농주의를 거쳐 애덤 스미스의 시대로 옮겨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

무역을 통한 산업진흥보다는 드보랴닌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는 곡물수출을 위

한 자유무역을 유지하고자 하는 귀족들의 여론이 훨씬 강하게 나타났다. 알렉산

드르 1세는 이러한 귀족들의 여론이 궁중쿠데타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보고 집

권했기에 자신의 아버지인 파벨 1세의 여러 정책들을 폐지하였다. 하지만 그럼

에도 알렉산드르 1세가 아예 국가적 이익을 방기한 지도자는 아니었다고 저자

는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국가 재정의 안정을 유지하

기 위해서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러 정책들을 펼쳤으며 특히 관세정책

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러시아 산업의 진횡을 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전체적으로 알렉산드르 정부의 경제정책이 예카테리나 2세와 마찬가지로 귀족

중심의 경제구조의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며 귀족의 이해를 제한하는 것 도 국가의 안보 등의 필수적인 요구에 한정되어 있었다고 본다.(박지배, 2017:

340-341) 

4부의 마지막 부분인 제8장에서는 대영무역에 참여한 각각의 계층인 상인, 귀 족, 농민 등의 상황을 차례로 개괄하는데 그에 따르면 사실상 상인과 농민은 신

분제적 예속 속에서 엄연한 경제주체로 활약할 기회를 봉쇄당한 상황에 놓여 있

었다. 다시 말해서 대영무역의 확장 속에서 경제주체로 활약할 수 있는 계층은

귀족인 드보랴닌 외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의 논지가 절

정을 맞이하게 된다. 즉 러시아의 후진화의 계기, 더 나아가서 제3세계의 후진화

의 계기는 월러스틴의 주장이 함의하는 바와 같이 자본주의적 세계체제가 가한 외부적 압력 때문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계급구조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러시아의 후진화는 18세기 말의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에서 국가기구가 그 자 신의 기반인 귀족드보랴닌 계층의 이해관계에 맞게 움직이는 바람에 사회변혁을 통한 세계체제 내에서의 변화의 계기를 버렸다는 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전체적으로 박지배는 상술한 러영무역에 대한 일반적인 개괄 속에서 2)의 기간

에 해당되는 18세기 후반 이후의 시기를 곡물수출의 자유화 속에서 귀족 드보랴

닌들의 농노제에 기초한 예속노동의 확립이라는 점에서 러시아가 영국 중심의

근대세계체제에 완전히 편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편입 과정

은 월러스틴의 주장처럼 세계체제가 낳은 수요에 이끌린 것이 아니라 러시아 국

가의 결정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하며 월러스틴의 입론에 대한 총체적인

비판을 가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은 러시아 국가의 성격에 대한 저자의 비판에

서 절정을 맞이하게 된다. 저자는 폴란드의 저명한 경제사가인 마리안 말로비스

트의 입론을 두 번이나 인용하며(박지배, 2017: 35, 428)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의 러시아 국가는 “드보랴닌 국가”였다고 일갈한다.(박지배, 2017: 429) 농

노제에 기초한 신분제적 위계 속에서 ‘드보랴닌’의 이해관계가 배타적으로 관철

되는 “드보랴닌 국가”였던 러시아 국가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월러스틴의 세계체

제론이 지닌 규정성은 대단히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농노제 사

회이자 드보랴닌 국가인 러시아 국가가 농노의 노동력을 활용하는데 도움을 주 었을 뿐이다.  

3. 박지배의 연구가 지닌 한계점 박지배의 연구는 ‘걸작’이라는 표현이 아까울 정도로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러영무역의 전반적인 상황과 그에 대한 질적 분석까지 행한 뒤에 그것에

대한 러시아와 영국 정부의 대응 및 무역에서의 주체에 대한 분석까지 이뤄낸 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에 기초해 러시아 국가의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사실상 16세기 이후, 특히 18세기 초부터 19세기 초까지의 러시아 역사의 전개 과정에 서 러시아 사회구조의 후진성의 원인을 그 사회의 계급구조 및 지배계층의 책임

에서 찾고 있다.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러시아 국가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통찰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연 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계도 있는데 저자의 분석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귀족 계층인 드보랴닌

이 곡물수출로 얻은 수입을 어디에 썼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이 생략되어 있 다. 수출품은 집요할 정도로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으면서도 수입품에 대해서는

귀족들이 주로 사용했던 사치품이라는 것 외에 상대적으로 도외시되고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렇다보니 식민지 조선의 지주 계급들이 일본으로의 쌀수

출을 통한 자본축적으로 공업발전을 선도한 것과 비교하여 그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주익종, <대군의 척후>, 푸른역사, 2008. 참고) 러시아 귀족 지 주 계층이 곡물수출을 통하여 축적한 자본을 어떻게 낭비했는지에 대한 보다 자

세한 연구가 뒷받침될 때 러시아의 후진화에 대한 귀족들의 책임이 보다 명료해

질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러시아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이 다소 성급하다는 인

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더 나아가서 러시아 제국의 광대한 영토 내에서의 질서

유지에 귀족 집단이 어떠한 방식으로 기여하였는지에 대한 보다 상세한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질서유지에서 귀족 및 지주 계급이 기여하는 바를 정확하게 규

명해낼 때 대내적인 안보를 위한 국가의 귀족 지주 계급에 대한 양보의 의미가 보다 명료해질 것이다. 또한 저자는 러시아 국가의 이해관계와 귀족지주인 드보랴닌의 이해관계의 충

돌을 대내외적인 국가 안보질서의 위협이라는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살펴보고 있는데, 국가 자체의 경제적 기반에 대한 분석이 자세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중간중간에 국가의 재정을 뒷받침해줄 독점 상품에 대한 분석이 나오고는 있지

만 국가의 재정적 기반 자체가 무엇인지 그것이 귀족 지주 계급의 이해관계와

어느 지점에서 상충하고 어떤 점에서 접합관계를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보여주었던 바와 같이 농민공동

체를 매개로 하여 농민으로부터의 조세 수탈을 통한 국가재정의 안정적인 확보

와 농민공동체 내에서의 귀족 지주 계급의 농노제적 착취로 지역에서의 사회질

서의 유지를 꾀하는 이중의 착취가 경제적 조건 속에서 해명될 때 비로소 국가

와 귀족 계층 간의 접합이 명료해지고 바로 이 지점에서 대외조건의 변화로 국

가 재정의 확충이 필요해질 때 귀족 집단과의 단절 또한 명료하게 살펴볼 수 있 다.  

마지막으로 박지배의 연구가 지니는 가장 큰 한계는 월러스틴의 입론에 대한 전

반적인 수정보다는 러시아의 사례를 통해 비판적인 수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에 있다. 저자는 분명히 국내의 계급구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브레너의 입장에

서있는 것으로 보인다.(박지배, 2017: 428) 하지만 동시에 저자는 계급구조를 전

제로 세계체제의 편입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월러스틴의 입장을 완전히 배제하

고 있지 않다.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는 브레너적 입장을 좀더 강조하는 입장에

서 월러스틴과 브레너를 종합하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러시아가 반주변부와 주

변부적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월러스틴을 비판한 저자의 입장이 지

니는 타당성이 다소 약화된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러시아는 국가가 반주변부

적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계급구조를 변화하는 세계체제에 적합하게 변모시키지

못해 주변부로 후퇴한 사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월러스틴의 입장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월러스틴이 근대세계체제 자체의 발전

을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명료해진다. 근대세계체제의 발전 속에서 초기

에 반주변부적 위치를 점하고 있던 러시아는 점차 주변부로 재편되어갔을 뿐이 다.  

저자는 거듭해서 러시아 국가가 군사적으로 상당히 강하다는 점을 강조하지만

그 강함이란 세계체제 내에서의 러시아의 위치가 주변부적인 것으로 후퇴한 이

후에 곧바로 터진 크림전쟁에서 러시아 제국이 패배했다는 사실로 반박된다. 사

회경제적 구조의 후퇴 속에서 뒤늦게 상부구조에 그것이 반영되어 나타난 것으

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쟁의 패배가 러시아 사회구조의 변혁을 가

져오는 1861년의 농노제 해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이 가진 설득 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월러스틴의 기본적인 입론을 전혀 부정하고 있지 못

하다고 볼 수는 없다. 월러스틴의 입론의 가장 핵심적인 축은 ‘부등가교환’ 속에

서 주변부가 중심부에게 착취당한다는 것인데, 적어도 저자는 18세기 후반까지

의 러영무역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

사 1차 산업의 생산물을 판매하고 있는 주변부적 지위의 사회일지라도 그 생산 물이 중심부의 경제구조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가에 따라 의미가 상당

혁명 읽는 사람 MY

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월러스틴의 ‘부등가교환’론은 수정되 어야 한다. 월러스틴의 한계는 무역구조를 일종의 “국가 간의 관계”로 보고 있다

는데서 비롯된다. 국제무역을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산업 간의 관계”로 보아야

비로소 그 계급적 성격과 함께 해당 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 간의 관계를 명

료하게 볼 수가 있다. 근대세계체제에서 주변부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모든 지점에서 뒤떨어진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다. 이 지점에서 박지배의

연구는 좋은 반박 근거를 제공해주고 있다. 하지만 박지배 자신이 여전히 월러

스틴의 입장을 받아들여 국가 간의 관계로 대외무역을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그

의미가 적극적으로 해석되지 않은채 박지배 자신에게 ‘강한 국가’와 ‘주변부적

지위’ 간의 모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의 세계경

제에서 특히 그렇지만 후발자본주의 국가라 해서 반드시 첨단산업에서까지 선

진적 자본주의 국가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다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 다. 만약 이런 입장에서 저자가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을 부정했더라면 보다 넓 은 시야에서 러시아의 사례를 다룰 수 있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박지배는 주변부 지역의 경우 원료 수출의 증대에 상응하는 제조품 수

입의 증대로 인해 귀금속의 유입이 없다는 월러스틴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비판 (박지배, 2017: 425-426)하는 등 여러 지점에서 월러스틴의 논지를 논박하고 있 다. 또한 월러스틴이 제시한 세계체제 내에서의 3가지 형태의 노동형태 중 예속

노동인 근대적 농노제의 한 유형으로서의 러시아 농노제의 발전 과정이 대외수

요보다도 국가에 의한 계급구조의 신분제를 통한 조직에 크게 기대고 있다는 점

을 강조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반박지점이다. 경제적 논리를 강조하는 월러

스틴에 맞서 해당 사회 내에서의 국가의 역할을 분석했다는 점은 이론적으로 기

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종국에는 월러스틴의 입론

을 끝내 부정하지 못한채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정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4. 결론 

박지배의 연구서인 <근대세계체제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무역>은 월러스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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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체제론을 비판적으로 수정하는 입장에서 러시아의 사례를 다룬 역작이다. 박지배는 1) 세계체제의 규정성보다 그것에 편입되는 해당 사회의 계급구조가

세계체제 내에서의 위치를 결정한다는 점, 2) 해당 사회의 계급구조에서의 국가

와 지배계층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 3) 세계체제 내에서의 위치와 근대국가의

발전 정도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4) 주변부적 지위를 지닌 사회

가 반드시 중심부 사회에 의해 예속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주요한 논점 으로 삼아 월러스틴을 비판한다.  

하지만 저자는 월러스틴의 입론을 부정하면서도 그의 입론의 근본인 세계체제

가 국가 간의 관계라는 점을 부정하지 못하여 그로부터 벗어나는데 실패하고 있 다. 러시아 지배계층에 대한 비판을 행하면서도 지배계층이 축적한 자본을 어떻

게 낭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분석이 부재한 것 또한 한계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계는 자본주의적 세계체제 내에서의 관계를 국가 간의 관 계가 아닌 산업 간의 관계로 볼 때 비로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배의 책은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aver?bid=1177199

8 의 링크를 통해 꼭 구입해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한국에서 나온 최고 수준의

서양사 연구서라 자신 있게 추천한다. 집에 한 권 정도 갖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 다. 제정러시아, 소련국가사회주의, 그리고 현대의 푸티니즘까지 러시아 국가와

사회에 대한 일반론적인 입장에서 살펴보아도 흠잡을 데가 없는 책으로, 현대의

푸티니즘에 대한 역사적 기원을 탐구한 저작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현재적인 의

미까지 지니고 있는 한국인 서양사학자의 뛰어난 연구서를 모든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확신한다. 위의 링크를 통해 구입하시기를 권하는 바이다. 이 서 평은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음을 혹여나 하는 마음에 명시하는 바이다. 



  근대세계체제에서 러시아와 영국의 무역

가장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교역이라 할 만한 영국과 러시아… b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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