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혁 없는 사회경제적 개혁?
지주형
승인 2021.11.22
지주형 경남대 교수(사회학과)
올해는 한국이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를 공식적으로 졸업한지 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일 IMF 대기성차관협약을 체결한 후 각고의 노력 끝에 2001년 8월 23일 IMF 차입금 195억 달러를 조기에 상환하면서 IMF의 경제 신탁통치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신탁통치를 벗어난 한국의 경제와 사회는 위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조건에 따라 형성된 구조, 제도, 정책은 계속되었다. 심지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7년 대통령 탄핵,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위기 이후에도 한국경제의 신자유주의적 기조는 몇 가지 제도적 보완과 미세조정, 간헐적인 국가의 위기관리 조치 등을 제외하면 지속되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부문별로 일부 개선이 있기는 했지만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수도권-지방의 불균형 등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기본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왜 그럴까?
2009년 KBS가 시사 프로그램 ‘IMF와 트로이 목마’ 제작을 위해 입수한 미국 재무부, 국무부, CIA의 기밀문서, 그리고 2019년 시민단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입수한 IMF 기밀문서(‘IMF컬렉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보여준다. 1997년 영국에서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정치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된 필자가 IMF 체제 하에서의 구조조정에 관해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귀국한 후 접하게 된 자료들이다. 이 자료들에 근거해 IMF가 떠난 뒤에도 신자유주의 사회경제 구조가 지속되는 까닭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한편으로 오래된 보수적인 반공자유주의,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민주화 세력의 권위주의 국가 비판에 기반을 둔 자유 시장경제에 대한 광범위한 동의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 신자유주의 정책은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비난 받거나 자원의 합리적, 효율적 사용을 방해한다고 비판 받는다. 크리스텐슨 주한 미국 대리대사는 외환위기전 이미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모델에서 경쟁적인 시장모델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일반적인 합의가 한국 내에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둘째, 양극화된 사회경제구조로부터 이익을 얻고 그것의 유지에 이해관계를 갖는 강력한 세력이 형성되었다.
- 수많은 대기업들이 해체되었지만 살아남은 상위 재벌들은 규제완화, 자유무역협정(FTA), 감세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통해 더욱 힘이 세졌다.
-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의 주요 시장 행위자로 등장했다. IMF의 보고서에 따르면 IMF는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알면서도 위기 상황에서 고금리와 은행의 건전성과 관련된 바젤 규제를 강제했다. 명백히 미국을 위시한 외국 투자자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대량도산과 주가폭락이 발생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외환위기로 이미 반값이 된 자산을 더 낮은 헐값에 매입했다. 외국자본의 이탈에 따른 위기 가능성은 도리어 더 커졌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실제로 환율폭등으로 위기가 발생했다.
재벌의 투자축소와 외국인 투자자의 이탈을 부를 수 있는 정책이 어렵게 되었다.
셋째, 무엇보다 경제정책을 담당한 관료들이 노동 유연화, 재벌 경쟁력 강화, 민영화, FTA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셋째, 무엇보다 경제정책을 담당한 관료들이 노동 유연화, 재벌 경쟁력 강화, 민영화, FTA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IMF 이사회 기록에서도 보이듯이 IMF 개혁은 한국정부가 본래 원했지만 사회적 저항 때문에 못했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정부는 IMF의 요구 이상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다.
예를 들면 IMF가 반대했음에도 정부는 앞장서 긴축재정을 시행했다. IMF에게는 노동 유연화가 최우선 과제가 아니었음에도 정부는 노동유연화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쇠퇴기에 접어들었지만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계속되는 가장 큰 원인은 IMF보다 더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던 한국정부에 있다.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쇠퇴기에 접어들었지만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계속되는 가장 큰 원인은 IMF보다 더 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했던 한국정부에 있다.
‘모피아’라 불리는 경제관료 개개인들에 대한 비판은 많지만 정작 그들이 좌지우지하는 국가구조의 개혁에 대해서는 진지한 논의가 없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 민주당계열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에서 포괄적 정부조직 개편안이 나왔지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등 일부 개편만 이뤄지고 정작 핵심인 기획재정부는 손도 대지 못했다. 그러니 사회경제 개혁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국가권력 자체의 개혁 없이 국가가 새로운 무언가를 하기는 매우 어려운 법이다. 헌법, 권력구조, 선거제도 등 국가의 전반적인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과 연구가 필요하다.
지주형 경남대 교수(사회학과)
영국 랭카스터 대학에서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한겨레신문>에 '기획-20년 만의 IMF 기밀해제'를 기고했다.
지주형 경남대 교수(사회학과)
영국 랭카스터 대학에서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한겨레신문>에 '기획-20년 만의 IMF 기밀해제'를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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