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4, 2026

재벌개혁론 이후에는 무엇이 <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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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론 이후에는 무엇이
기자명손민석 입력 2026.09.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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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민석 <자본 이전의 세계> 저자
이재명 정부가 집권한 이래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 언론개혁, 사법개혁 등등 수많은 개혁안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하지만 의외로 경제문제와 관련된 개혁안은 잘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특히나 ‘재벌’ 개혁과 관련된 내용은 더 찾아보기 힘들었다. 재벌에의 경제력 집중, 계열사 내의 부당한 내부거래 방지, 순환출자의 해소 등과 같은 여러 문제가 사라진 것도 아니건만 재벌개혁 문제는 도외시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 취임 1년간 공정경제 관련 공약 중 실현되고 있는 건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자본시장 개혁 정도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반도체 산업 등의 첨단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대외조건상 재벌과 같은 대기업집단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 가장 주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의 반도체 정책은 대규모 투자 및 인프라 구축과 그를 위한 규제완화 및 각종 지원책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러한 조건을 활용하여 실제 적극적으로 움직일 주체로 대기업집단을 상정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도 한국 사회의 전제주의적인 특질을 발견할 수 있는데 정부가 일종의 경제 사령탑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같은 거시경제 계획을 수립하고 지자체와 기업체들이 그 밑의 산업정책을 집행하는 하향식이 여전히 관철되고 있다. 청와대 내부에 국가전략투자보좌관실 및 직할 담당관을 신설해 대통령이 민관합동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하며 ‘속도전’을 강조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총력전체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박정희 시대를 연상케 하는, 실제로도 그다지 단절되지 않은 이 ‘총력전체제’는 기업집단의 자율성을 그다지 고려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동원체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인 연구자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는 한국의 총력전체제와 일본의 그것을 비교하며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일본의 경우 통상산업성이 민간 기업체들의 기술혁신 및 설비투자 등의 정보를 종합해 정책을 상향식으로 수립하는 데 반해 한국의 경우 청와대와 경제기획원 등의 국가기구들이 계획을 입안하고 그 세부적인 사안들을 기업에 하달하는 하향식으로 정책을 산출해 냈다. 예컨대 자동차산업 육성을 위해 박정희 정부는 거시적인 경제계획을 수립한 뒤 그 세부 내용을 기업체에 주지시키고 그에 맞는 사업계획서를 1973년 8월5일이라는, 구체적인 시한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이처럼 정치와 사회의 민주화에도 한국 사회는 여전히 하향식으로 기능한다. 재벌해체 혹은 재벌개혁과 같은 정책이 지닌 효용성은 낮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기업체들을 동원해 정책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되는 상황에서 구태여 경제적 성취를 저해할 위험부담을 질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을 포함한 범진보진영이 요란할 정도로 재벌개혁을 외치다가 집권하기만 하면 침묵하는 건 이런 맥락이다.

그나마도 대기업집단과 같은 경제주체들의 역량과 자율성이 커지고, 민주화로 인한 정책적 불안정성이 증대하면서 과거 권위주의 정체들과 같이 일관성 있게 구속력을 갖고 계획을 입안해 실현할 여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실제로 ‘3대 메가프로젝트’를 주관하던 김용범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레버리지ETF 및 부동산 세제 등의 이유로 사퇴하면서 반도체-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피지컬 AI를 중심으로 하던 ‘3대 메가프로젝트’의 추진력도 약화됐다. 그 이후 이재명 정부는 뚜렷한 의제 없이 리스크 관리에만 집중하고 있다.

국가 주도의 하향식 발전전략과 민주주의 체제 간의 불협화음이 추진 주체의 부재, 정치적 변동성, 정책적 일관성 및 체계성의 상실 등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이라는 이상과 재벌동원이라는 현실의 괴리를 넘어서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향식 발전전략을 상향식 발전전략으로 바꿀 담론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각 산업 분야의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해 거시적인 전략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 기업단위의 근로조건 및 분쟁 해결에만 집중된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산업별 교섭구조의 법제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자본 이전의 세계> 저자 (fpdlakst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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