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6, 2026

진실이 밝혀지다 | 마리오 소사 | 알라딘

진실이 밝혀지다 | 노동자 교양문고 3 | 마리오 소사 | 알라딘


진실이 밝혀지다 -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 제3판  | 노동자 교양문고 3
마리오 소사
(지은이),노사과연 편집부 (옮긴이)
노사과연(노동사회과학연구소)2013-06-01







미리보기



Sales Point : 175

7.3 100자평(0)리뷰(3)




목차


일러두기
한국어판 저사 서문
역자 서문
개역판 서문

제1편
쏘련 역사에 대한 거짓말

제2편
1930년대 쏘련에서의 계급투쟁 - 쏘련공산당(CPSU) 내의 숙청과 정치재판

제3편
안토니 비버의 《스딸린그라드》비평 - 나찌의 전쟁 흑색선전

저자 소개

부록 까띤숲 학살




저자 및 역자소개
마리오 소사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949년 12월 뽀르뚜갈에서 태어났다. 뽀르뚜갈의 식민지 전쟁을 거부하며, 20세에 스웨덴으로 망명, 맑스-레닌주의 공산당 (KPML(r))에 입당했다. 현재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버스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공산당(Kommunistiska Partiet) 웁살라지구당위원장이며, 이 당 중앙위원이다.


최근작 : <진실이 밝혀지다> … 총 3종 (모두보기)

노사과연 편집부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마이리뷰
구매자 (2)
전체 (3)
리뷰쓰기
공감순




소련의 악마화에 의문을 던져보다



국내 운동권 단체인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에서 번역한 마리오 소사(Mario Sausa)의 책인 ‘진실이 밝혀지다’를 읽었다. 국내에 출판된 소련이나 사회주의에 대한 서적은 대체로 소련이나 스탈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들이 대다수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 국가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소련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필자로선 이 책의 부제목이 끌려 읽고 싶었었고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목차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편은 ‘수용소 군도’의 저자인 솔제니친이나 로버트 콘퀘스트같이 반공주의적 입장에서 소련에 대해 비판해온 사람들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대략 600만 명이 스탈린에 의해 의도적으로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진 홀로도모르(Holodomor)에 대한 반박과 대략 1200만 명이 수용되었다고 알려진 소련의 굴라그(Gulag) 수감자 수치에 대한 반박이 주를 이룬다. 2편은 스탈린 대숙청기 희생당한 사람들과 그 수치에 대한 반박이 담겼다. 이 책의 마지막인 3편은 영국 보수주의자이자 군사 전문가인 앤토니 비버(Antony Beevor)가 쓴 <스탈린그라드:Stalingrad>에 대한 비평이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2편의 경우는 필자의 주관과는 분명 다른 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즉 책에서 내린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얘기하듯이 대숙청기 희생당한 사람들의 수치과 서방에 의해 과장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 생각한다. 3편에서 다른 스탈린그라드 비평은 필자가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아서 그 내용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앤토니 비버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감안했을 때, 서구식 반동주의를 경계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는 영국군인이자 보수주의자이기에 당연히 소련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아마 필자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공감했던 파트와 가장 많이 호감을 표했던 파트는 제1편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따르면 홀로도모르는 절대로 이오시프 스탈린의 의도적인 학살이 아니었고, 소위 쿨락이라 불리는 부농들과의 계급투쟁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열악한 소련의 농업 조건도 한몫했다. 거기다 1918년에서 1921년까지는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내전을 치렀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서방 학자들이 출처로 사용하는 우크라이나 대기근 사상자 수치는 사실 1930년대 나치 독일의 선전선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즉 나치 독일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악마화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최소 600만 명이 아사했다는 주장을 하곤 했는데, 반공성향이 강했던 영미권 언론에서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 마치 1990년대 북조선이 고난의 행군을 겪으며 대다수의 아사자가 생겼을 때 미제와 서방 언론들이 300만 명이 아사했다는 날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듯이 말이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판단했을 때, 우크라이나 대기근의 아사자 수치는 과장됐고, 의도적인 학살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소련의 까다로운 농업 조건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1편에서 지적한 소련의 굴라그 수감자 수치도 마찬가지다. 솔제니친과 로버트 콘퀘스트를 비롯한 반공주의자들은 굴라그 수감자가 대략 900만에서 1200만 명 혹은 많게는 2000만 명이나 된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스탈린시기 가장 많은 수감자 숫자는 최대 250만 명이었다. 이는 순수히 굴라그 사용자만 포함된 것이 아닌, 감옥 및 교도소 그 외의 잡범들이 수용된 수치를 얘기한 것이다. 쉽게 말해 소련 인민의 30%가 굴라그에 수용됐다느니 하는 것은 명백한 과장이고 날조라는 것이다. 굴라그를 언급하며 1990년대 미국의 교도소 및 감옥 수감자의 수치를 보여준다. 책에서 제시한 FLT-AP 통신의 단신 기사에 따르면 1996년에 미국에서 감옥에 갇혀있는 수감자 550만 명이나 되는데, 이는 소련에서의 최대 굴라그 및 감옥 수감자 숫자보다도 300만 명이나 더 많은 수치였다. 책에선 언급 안 했지만, 필자는 스탈린 시기 굴라그에 대해 비판하는 미국의 반공주의자들에게 묻고 싶다. 미국 남북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남부 흑인의 대부분을 노예로 삼았고, 이후에도 KKK같은 인종 혐오 단체들이 미국을 돌아다니며 유색인종에게 무차별 테러를 일삼으며 산사람을 산채로 태워 그 유골을 기념품으로 갖는 린치 따위 행위를 20세기까지 남부에서 하도록 방조한 미국 정부가 과연 굴라그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과연 있는지 말이다??



물론 필자는 굴라그에 수용된 사람들과 대숙청 시기 희생된 사람 중에는 분명 무고한 사람도 적잖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스탈린과 소련에 대한 서방의 악마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이유는 전혀 없다. 책을 보면 스탈린 집권 시기 8시간 노동제를 1930년대 초중반까지 실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스탈린은 인민대중의 복지를 챙겼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항상 지적해왔듯이 이는 박정희 정권과 차이가 나는 행보다. 당연히 굴라그에 수감된 사람들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스탈린이 대다수 인민대중의 복지를 챙긴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1930년대 소련의 대학진학률과 극적인 문맹률 감소 그리고 노동자 연금 제도가 입증한다.



아무튼 흥미로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소련의 입장에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뭔가 큰 의의가 있었던 것 같다. 소련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접기
NamGiKim 2019-08-07 공감(14) 댓글(0)
Thanks to
공감



누구를 설득하겠다는 건지



1. 요약 。。。。。。。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분명하다. 그동안 친애하는 ‘스딸린 동지’와 ‘사회주의 조국 쏘련’이 당해왔던 ‘억울한 중상’의 진실을 밝히고, 그 부당한 비난들로부터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제1편은 그동안 소련에 (물론 말과 글로) 악질적인 공격을 가해왔던 여러 인물들의 신뢰도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항들 - 연구자금의 출처, 정치적인 견해(일부는 나치에게 우호적이었다는 식이나 극보수적인 관점), 그리고 그들이 출판한 기술들의 부정확성 -을 공격하면서 무난하게 시작된다.



제2편은 1930년 대 소련 공산당 안에서의 정치적인 숙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그 배경에는 스탈린의 야욕이 있었다는 서방세계의 비판을 반박하기 위한 내용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련의 숙청작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수는 비난에 비해 훨씬 적었으며, 그 이유 또한 단순한 권력욕 때문이 아니라 당의 노선을 충실하게 따라가지 않은 채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있던 불순분자들을 걸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재판 과정도 충분히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강변한다.



마지막 제3편은 저자가 쓴 글은 아니고, 안토니 비버가 쓴 ‘스탈린그라드(우리말로 나온 책의 제목은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책에 대한 서평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그라드전투를 묘사한 이 책에서 서평자는 안토니 비버가 지나치게 히틀러에게 우호적인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다며 비난한다.





2. 감상평 。。。。。。。



굳이 ‘스딸린’, ‘쏘련’이라며 외래어표기법에도 맞지 않는 어휘들을 일부러 사용하는 고집은 무엇 때문인 걸까. 물론 그게 원래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발음에 가까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외국어를 정확히 우리의 발음으로 옮겨내는 것 자체가 완전하지 않은 작업인데다(더구나 소련과 쏘련, 스탈린과 스딸린이라면), 이 책은 한국 사람들 보라고 번역해 낸 책인데 말이다. 소위 ‘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자주 빠지는 우월의식의 흔적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결론에 동의나 부정을 하지 말고 일단 있는 그대로 따라가 보자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우선 소련에 대한 공격을 가하는 서방의 저술가들과 언론인들의 정치적 배경과 성향을 공격하는 것은 나름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런 식의 공격은 정확하게 저자 자신에게도 가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스웨덴 공산당에 몸담고 있는 저자가 하는 모든 말이 사회주의에 편향적이라거나, 유리한 쪽으로 정보의 왜곡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는 입장에는 뭐라고 대답을 할지..



흥미로운 것은 소련이 해체된 이후 러시아가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문서고를 개방했는데, 그곳에서 이제까지의 소련에 대한 공격 - 엄청난 수의 희생자들이 나왔다는 -에 대한 (문서상의)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그동안 과장된 공격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자가 참고 했다는 문서가 어느 정도 수준의 신뢰도를 가진 것인지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지금도 북한의 노동신문에는 북녘 땅에 사회주의 낙원이 임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고, 여러 공식적인 기구의 성명서나 종종 북한 방송을 통해 나오는 주민들의 인터뷰도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걸 어느 정도나 믿을 수 있을까. 요컨대 어떤 것이 ‘공식적’이라고 충분히 ‘사실적’인 것은 아니다. 심지어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정치범 수용소나 고문도 존재하지 않는다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도 공식적으로는 집회와 결사,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 하고.





숙청과 관련된 기술 역시, 저자는 부득불 사회주의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한 불가피한 작업이었음을 강조하면서, 일부의 무고한 희생자가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옳은 일이었다고 말한다. 희생자의 숫자는 서방세계의 비판보다 훨씬 적었음을 주지시키면서.



기본적으로 이런 식의 논리전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니, 무고한 희생자들이 나왔던 것은 유감이라니 하는 식의 논리는 자기가 그 희생자가 아니었을 때나 쓸 수 있는 논리다. 또 그런 숙청작업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과거 소련처럼 독재적인 권력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구조에서는 최고권력자 자신이나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거고. (역시 공식 문서에는 얼마든지 미화될 수 있다.)



재판 과정에 있어서의 공정성 또한 절차적인 공정성이 실제적인 공정함과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과거 이 나라에서도 (그리고 현재도 종종) 합법적으로 정권을 쥔 이들의 눈에 껄끄러운 사람들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지곤 했으니까. 그리고 저자도 ‘스딸린 동지’의 입장이 되어 한 마음으로 비난하고 있는, 트로츠키를 비롯한 소위 종파분자들의 반체제행위는 레닌이나 스탈린 자신도 저질렀던 수준이 아니던가. 설마 저자는 레닌이나 스탈린이 오직 인민의 행복을 위한 선의로 가득 찼던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책의 세 번째 부분인 서평의 내용도 좀 떨어진다.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이 600여 페이지짜리 책은 나도 읽어봤지만, 개인적으로는 (서평자가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히틀러에 대한 찬사나 사회주의에 대한 깎아내리기 같은 부분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히틀러와 스탈린이라는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두 독재자의 오만과 고집이 함께 드러내는, 그리고 엄청난 수의 사상자를 낸 이 무익했던 전투를 통해 전쟁의 의미를 묻는, 비교적 괜찮게 쓰인 역사 르포였다. 이 또한 어떤 비난과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 그 쪽 동네의 완고한 이념적 경직성을 드러내주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끝으로 책머리에 번역자가 끼적여 놓은 (하지만 거의 필요 없었던) 서문의 말투도 지적해야겠다.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하는 사람들을 향해 ‘노예근성’이니 ‘속물근성’이니 하는 표현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일까? 이 오만한 자신감으로 누구를 설득하겠으며, 무엇을 설명할 수 있을까.
- 접기
노란가방 2014-12-23 공감(6) 댓글(0)
Thanks to
공감



알라딘의 2014-12-23에 올라온 ‘노란가방‘의 ㅈ같은 리뷰에 대한 반박 리뷰입니다






1. '스딸린', '쏘련' 이 외래어표기법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말꼬리잡기다. 비판을 할 거면 내용에 대해 해야지 하다하다 이런 것까지 꼬투리를 잡나? 수준하고는... 게다가 외래어 표기법은 하나의 기준에 불과할 뿐 절대적 법칙이 아니고, 시대가 변하면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기준이다. 개인적으로 러시아어를 할 줄 알기에 역자의 표기법이 외래어 표기법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으며, 역자는 더 정확한 발음표기를 위해 임의로 적는다고까지 써놨는데 무슨 운동권의 우월의식을 논하고 있나? 고작 이 따위 것에 시비걸 거면, 온갖 잡사상으로 무장한 철학자들이 의미없이 학자인 체 떠들어 대는 단어들부터 따져라! 나참 이런 거까지 답해야 하나 수준떨어지는구만 ㅉ




2. 정치적 견해에 따른 정보의 왜곡? 이 또한 ㅈ같은 소리다. 정보에 기반한 '해석'이 정치적 견해에 따라 달라지는 거겠지, 무슨 정보의 왜곡? 숙청으로 죽은 십수만명을 최대 1500만명까지 부풀려서 떠들어대는 제국주의자들과 파시스트들이 정보를 더 왜곡한 것인가, 아니면 소련의 국가 비밀 문서고의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쓴 저자가 정보를 더 왜곡한 것인가?




3. 소련 국가 비밀 문서고 자료의 신뢰성? 어떤 자료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것은 학자로서 중요한 자세다. 그렇기 때문에 1,2년도 아니고 수 십 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가 아주 정확한 계산을 통해 집계됐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보처리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2020년에도 오류가 발생하는데,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이면 당연히 오류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소련의 국가문서고에서 나왔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은 결코 타당한 주장이 아니다. 소련이 왜 그것을 비밀 문서고에 넣어놨고, 제국주의 세력들은 왜 비밀 문서고를 열라고 닦달했을까? 서방에서 떠드는 것보다는 현저히 낮은 수치지만, 무시 못 할 만큼의 수의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을 괜히 공개했다가는 그 나름대로 또 까일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련이 개방되고 나서, 제국주의 세력들도 신이 난 것이다. '이야, 여기서 1500만은 아니더라도 500만, 1000만 정도만 나와도 대박이겠다!!!!' 그러나, 비밀문서고의 자료가 공개되고 나서 그들의 반응은? 자기 입맛에 맞는 자료가 나오면 환호하고, 그게 아니면 무시로 일관? 이게 바로 '노란 가방' 당신의 태도다!!!




4. 아니, 그리고 '북한 땅에 사회주의 낙원이 임한 것 같이 서술'했다는 내용은 대체 어디서 나온건가? 최신 2020-11-04 자 '반공'자료를 인용하겠다. "김정일의 ‘사회주의는 과학이다’라는 ‘노작’ 발표(1994.11.1) 26돌을 맞아, 동(同) 노작에 대해 찬양일색의 논조를 펼쳤습니다. 이 ‘노작’은 “사회주의위업 수행과 그 완성을 위한 영원불멸의 대강, 대헌장”으로, “사회주의의 절대적 진리성과 필승불패성을 논증”하였고, “여러 나라 공산당, 노동당들과 진보적 정당들이 사회주의재건운동을 벌려나가는 데서 틀어쥐고 나가야 할 강령적 지침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출처불명의 외국문헌을 인용, “북한의 현실은 사회주의가 결코 공상이 아니며, 과학적인 이상사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고,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사회야 말로 사람의 자주적 본성에 부합되는 가장 우월하고 선진적인 사회”라고 선전했습니다. 희대의 속임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review-rodong/co-rd-11042020092332.html

여기서 '노란 가방' 당신이 꼬투리 잡고 있는 부분은 아마 '북한의 현실은 사회주의가 결코 공상이 아니며, 과학적인 이상사회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고'라는 부분일 것이다. 이것은 맑스-레닌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읽는다면, '북한의 현실 = 이상사회' 라고 단순하게 받아들이게 되지만, 이 문장은 결코 그렇게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자본주의에 대한 의식적이고 확고부동한 투쟁의 과정이 장기간 수반되지 않으면, 다시 자본주의로 돌아가고 만다. 그것은 스탈린이 수 십 년간 사회주의 체제를 견고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탈린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흐루쇼프와 같은 수정주의 세력이 등장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의해서도 증명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노동신문 논설의 요지는 수정주의에 물들어 버린 소련과 중국이 결국 자본주의에 굴복한 것과 달리, 그리고 이렇게 현실 사회주의의 큰 형들이 붕괴한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북한의 인민들을 칭찬하고 북돋아 주는 문장이라고 해석해야 정확하다. 자본가의 애완견에 불과한 '노란가방' 당신같은 자들은 사회주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지멋대로 해석하기 일쑤겠지만!





5. 상당히 최근에 나온 '스탈린이 죽었다'(2017) 따위의 영상물(차마 영화라고는 못 하겠다)에서조차, 소련이 스탈린의 말 한 마디로 몇백, 몇천만명이 목숨을 잃는 사회였다고 왜곡한다. 이러한 왜곡은 전위당으로서의 볼셰비키 또는 공산당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인민대중 사이의 관계에 대한 무지와 악의때문이다. 여기서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상식적으로 제국주의 세력에 포위당한 소련인데 스탈린이 수백만명을 숙청함으로써 인민대중이 공포와 불안에 떨었다면, 2차 세계대전에서 어떻게 파괴적인 파시즘에 맞서 소련이 승리할 수 있었겠는가? 악명높은 러시아의 추위때문에? 개소리 마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대륙은 불과 몇 주만에 히틀러의 파시즘 앞에 무릎꿇었다. 그 잘난 강대국들이 왜였겠는가?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가 그토록 우월한 것이었으면, 왜 내부에서 파시즘 세력이 자라나고, 자본주의의 대중들은 파시즘에 환호한 것인가? 스탈린의 숙청은 여러 과정이 있지만, 스탈린이 파시즘의 총공세에 맞서 내부의 파시스트들을 제거하고, 인민들의 생활 수준과 생산력을 급증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대공황으로 허덕이고 있을 때, 스탈린의 소련은 단 한 번의 공황을 겪지 않고 엄청난 성장률을 구가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소련 인민들이 스탈린에 대해 절대적인 지지를 하지 않았다면, 소련 인민들은 전쟁 초기 밀리던 시점, 모스크바의 공장을 분해해 우랄 산맥 운반한 뒤 다시 조립하는, 피땀 어린 희생을 감내하지 않았을 것이다.




6. '노란가방' 당신 말처럼,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소련 인민들을 파시즘에 팔아 넘기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이 그렇게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소'인가? 당신이 파시스트라면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하라! 물론, 이 숙청 과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내무인민위원회의 수장을 예조프에서 베리야로 갈아치운 것 역시 예조프가 과도한 숙청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숙청이 실제 사형으로까지 이어진 경우는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잘못 숙청된 사람은 다시 돌아올 수 있었으며, 심지어 정상적으로 숙청됐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반성과 교육으로 사상을 바로 잡은 경우엔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도 있었다. 아, 당신같은 자들이 언제나 꼬투리 잡고 싶어하는 1937-38년의 숙청은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것이 맞다. 그러나 그들은 파시스트의 첩자들이었고, 언제든지 파시스트들과 손잡고, 테러행위를 할 준비가 되어 있던 자들이었다.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당신은 스파이를 고참 볼셰비키라고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7. 그리고 이 1937-38년 숙청의 재판과정에서의 공정성을 문제삼는데, '노란가방' 당신이 한 번 상상을 해봐라. 고문과정에서 이 뽑히고, 손톱 뽑히고, 물고문 당하고, 잠 못 자고 하는데 제국주의 국가들의 외교관 등이 참석한 재판 자리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혐의를 고백할 수 있는지. 글쎄...학교 문턱도 못 넘어본 프롤레타리아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들 소련의 국가 기구에서 한 자리씩 한 사람들이면 스파이 혐의를 인정해도 어차피 죽을 거, 외국인들에게 보란 듯이 고문당했다고 소리칠 거 같은데?




8. '노란가방' 당신의 수준은 서평부분을 비판하는 데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동일하게 독재자로 생각하는 것부터 잘못됐다. 이에 대해선 위의 설명으로 대체하겠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독재자의 오만과 고집으로 벌어진 무익한 전쟁이었다는 책의 내용이야말로 정말 '무익'하다. 2차 세계대전과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히틀러 한 명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나? 역사를 영웅이나 우연적 사건의 연속으로 생각하는, 전형적으로 천박한 부르주아 역사관! '노란가방' 당신은 역사공부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9. 사회주의에 반대를 표하는 사람들을 무조건 '노예근성', '속물근성'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맑스-레닌주의자라면 결코 인민 대중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사상을 앞장 서서 변화시키기 위해 인내심을 갖고 설득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문에서 비판하는 자들은 결코 인민대중이 아니다! '노란가방' 당신처럼 철저하게 지배계급에 기생하며 끊임없이 반공주의, 반쏘주의를 떠들어 대는 자본가의 개들을 보고 '노예', '속물'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 너라고 너 '노란가방'!
- 접기
badnamok 2020-11-30 공감(5) 댓글(1)
Thanks to
공감

No comments:

Post a Comment

베네수엘라, 600억 달러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 네이버블로그

베네수엘라, 600억 달러에 달하는 비트코인을.. : 네이버블로그 라스 마두로가 미국 수사당국에 구금되었습니다. 토요일 이른 새벽, 델타포스 요원들이 카라카스의 침실에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그의 부인을 끌어내어 USS 이오지마 함으로 압송했습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