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2, 2024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낳은 10 대 90…‘일상의 불평등’ 때문에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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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의 단도직입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낳은 10 대 90…‘일상의 불평등’ 때문에 절망”
입력 : 2024.07.03
정제혁 논설위원

한석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한석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이 2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1983년 서울시립대 도시행정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1988년 인천에서 노동운동에 발을 담근 이래 금속산업연맹(현 금속노조) 조직쟁의실장, 민주노총 조직실장, 미조직·비정규 사업실장, 연대사업국장, 사무부총장, 사회연대위원장을 지냈다. 2020년 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실행위원장을 맡았고, 2022년부터 전태일재단 사무총장으로 일하다 지난달 10일 물러났다. 학생운동·노동운동 과정에서 세 차례 구속됐다. 

저서로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고교생 딸과의 3년간 산행기>가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운동 위기가 운위되지 않은 해가 없다. 구조적 원인이 주기적 임금 인상과 승진·복지 혜택이 주어지고 노동조합 보호를 받는 1차 노동시장(대기업·정규직 사업장)과 고용 안정성·임금·복지가 취약하고 노조 보호를 받기도 힘든 2차 노동시장(비정규직·플랫폼 사업장 등)의 분단, 다시 말해 노동시장 이중구조라는 것도 알려진 얘기다. 그렇다면 위기의 해법 역시 1·2차 노동시장 간 격차 해소·완화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거칠게 분류하면 노동운동 내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 하나는 국가와 자본을 압박해 2차 노동시장의 처우를 1차 노동시장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 다른 하나는 1차 노동시장만큼은 아니더라도 2차 노동시장의 고용과 처우를 지금보다는 한결 두텁게 보장하고, 이를 위해 1차 노동시장이 연대의 손을 내밀어 2차 노동시장에 보다 많은 사회적 자원이 투입되도록 선도하는 것이다.


한석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60)은 후자를 강력히 주장하는 노동운동가다. 
그는 민주노총에서 무던히도 문제를 제기했으나 반향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무력감이 쌓여 민주노총에 거는 신뢰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던 것 같다. 
그때부터 한 전 총장은 민주노총 울타리 바깥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노동에 적대적인 보수정부의 위원회이기도, 조선일보 지면이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의 선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이 ‘연대’라는 가치에 충실한가, 연대의 정신을 상실한 노동운동을 노동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가 회의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 2차 노동시장 종사자들의 노동 위기, 삶의 위기 앞에서 주류 노동운동이 한가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거나, 관성처럼 튀어나오는 급진적 정답이 
손해보지 않으려는 대기업 정규직의 이기심을 가리는 치장물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 역시 한 전 총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일을 풀어가는 방식을 두고는 걱정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극단적으로 진영화한 사회에서 한 진영의 틀을 깨고 나와 중심을 잡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 번 틀을 깨고 나오면 탈주의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다. 기존 진영에선 척력이, 반대 진영에선 인력이 작용한다. 이런 힘들에 버티면서 중심을 잡으려면 초인적인 균형감각이 필요하거니와, 그렇지 못해 반대 진영의 극단으로 가버린 사례를 우리는 여럿 알고 있다. 지난달 26일 경향신문 사무실에서 한 전 총장을 만났다.


한석호 전 전태일재단 사무총장(60)은 후자를 강력히 주장하는 노동운동가다. 그는 민주노총에서 무던히도 문제를 제기했으나 반향이 없었다고 했다. 그런 무력감이 쌓여 민주노총에 거는 신뢰의 마지노선이 무너졌던 것 같다. 그때부터 한 전 총장은 민주노총 울타리 바깥에서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노동에 적대적인 보수정부의 위원회이기도, 조선일보 지면이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의 선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정규직 중심 노동운동이 ‘연대’라는 가치에 충실한가, 연대의 정신을 상실한 노동운동을 노동운동이라 부를 수 있는가 회의하는 사람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노동운동의 위기, 2차 노동시장 종사자들의 노동 위기, 삶의 위기 앞에서 주류 노동운동이 한가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거나, 관성처럼 튀어나오는 급진적 정답이 손해보지 않으려는 대기업 정규직의 이기심을 가리는 치장물은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 역시 한 전 총장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일을 풀어가는 방식을 두고는 걱정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극단적으로 진영화한 사회에서 한 진영의 틀을 깨고 나와 중심을 잡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한 번 틀을 깨고 나오면 탈주의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다. 기존 진영에선 척력이, 반대 진영에선 인력이 작용한다. 이런 힘들에 버티면서 중심을 잡으려면 초인적인 균형감각이 필요하거니와, 그렇지 못해 반대 진영의 극단으로 가버린 사례를 우리는 여럿 알고 있다. 지난달 26일 경향신문 사무실에서 한 전 총장을 만났다.




  • 조선일보·전태일재단 ‘노동 기획’ 혼란…이사장과 내가 물러나면서 마무리
  • 하청노조에 교섭권 생기더라도 성과급 놓고 원·하청 노조 간 ‘이익 갈등’ 불가피

  • 공정거래법·근로기준법 사이 영세 상인 등 문제…‘노란봉투법’과 별개로 풀 필요
  • 사회적 대타협 핵심고리는 ‘상속세’…마련된 재원, 2차 노동시장으로 돌려야

  • 1차 노동시장 때리는 데서 멈춘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아직 평가할 게 없다


- 근황이 어떤가요.


“조선일보·전태일재단의 ‘노동시장 이중구조 공동 기획’과 관련해 재단 내 혼란이 있었고, 이덕우 이사장과 제가 지난 10일자로 재단에서 동시에 그만두면서 마무리했습니다.”


- 정부가 꾸린 ‘노동약자 정책 전문가 자문단’ 공동단장이시죠.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약자 지원법’을 만들라고 지시해서 고용노동부가 꾸린 건데, 법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 8월까지 결론을 낼 예정입니다.”


- ‘노동약자’가 무엇입니까.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절반을 넘습니다. 여기에다 영세 사업주, 영세 상인들도 노동약자라고 봐요.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노동3권, 공정거래법으로는 풀 수 없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면 방송작가나 프리랜서 중에는 노동에 대한 적정한 대가나 노동시간을 원하면서도 ‘노동자성 인정받는 거 싫다’고 하는 사람도 꽤 된단 말이에요. 이들에게 근로기준법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거죠. 사업주의 지불능력 등 문제 때문에 개별 기업이 해결하지 못하는 걸 국가와 사회가 나서 같이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 교섭권 보장 등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접근법과는 다르네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해 하청노조에 교섭권을 준다고 해도 원청이 교섭을 안 받으면 방법이 없어요. 파업을 했다고 쳐요. 그럼 원청이 다음에 하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해버릴 텐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지금은 원·하청 교섭이 열리면 다 풀릴 것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원·하청 교섭이 열리면 원·하청 노조가 첨예하게 부딪칠 수밖에 없어요. 성과급 배분 문제가 걸리잖아요. 하청노조도 성과급을 나눠달라고 하지 않겠어요? 원·하청 노동자 간 이익 갈등이 생기는 거죠. 원·하청 노동자가 그런 식으로 맞닥뜨리게 하는 게 맞냐는 문제의식이 있어요. 그런 식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문제를 풀어내는 프로세스를 고민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 이야기를 하는 거고요.”


- 사회적 대타협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교섭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건 계속 넓혀 나가야죠. 다만 선의로 만든 법이 현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거죠.”


-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노동약자에게 교섭권을 주는 건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풀리지 않는 것도 봐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죠. 지금 원청의 사용자성을 얘기하는 사업장은 지불능력이 있는 대기업 하청 사업장이에요. 그렇지 않은 곳에서 일하는 더 많은 노동자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거죠. 또 공정거래법과 근로기준법 사이에 있는 영세 사업주들, 영세 상인들은 어떻게 할 거냐는 겁니다. 노란봉투법과는 별개로 풀어야 할 문제라는 거죠.”


-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얼마나 심각합니까.

“지난해 10대 재벌 총수들의 배당금이 8196억원이에요. 1조원이 안 돼요. 근데 10대 재벌 성과급은 10조원이 훌쩍 넘어요. 사회적 총액으로는 재벌 총수 배당금의 10배가 넘어요. 
대기업 정규직들은 성과급 안 받아도 우리 사회 상위 10%예요. 
  • 독일은 국민소득 5만달러인데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10만달러를 받아요. 독일의 2차 노동시장은 4만달러를 받고요. 
  • 우리는 국민소득 3만달러인데 자동차 공장 정규직들이 10만달러를 받는 거예요. 한국의 2차 노동시장은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니까 2만달러, 3만달러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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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이 4만달러와 10만달러의 격차라고 한다면, 
  • 한국은 2만달러와 10만달러의 격차인 거죠.”


- 하청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되면 원·하청 이익 갈등이 생길 거라고 했는데, 그걸 푸는 건 노동운동의 몫일 텐데요.


“지금은 불가능해요. 양노총 주력 조합원들이 1차 노동시장의 정규직들이에요. 지금도 양노총이 마음만 먹으면 그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요. 원청노조를 중심으로 둔 산별노조, 아니면 양노총이 이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면서 싸우면 돼요. 현장 핑계를 대고 안 하는 거죠. 그런데 하청노조에 교섭권이 생겼다고 산별노조·양노총이 하청노조 편들면서 성과급 나누라고 얘기할 수 있겠냐는 거죠. 그 문제는 모르는 척 외면하면서 하청의 교섭권 확보 얘기만 하는 건 비겁한 거예요. 솔직하지 못한 거죠.”


그의 말이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 때 실력이 검증된 7~8년차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을 전교조가 반대했잖아요. 
지금도 공공운수노조 유명 사업장의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데, 원청노조가 그걸 반대해요. 노란봉투법이 만들어져 하청노조가 교섭권을 갖게 돼도 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더 큰 혼란이 벌어질 거예요.”


-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1차 노동시장 정규직들이 연대라든가 측은지심을 잃어버리고 임금 기계가 되어 버린 것부터 바꿔내는 거대한 흐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건 노동운동의 힘으로는 이제 불가능하다고 봐요. 그런 얘기를 꺼내는 순간 주력 조합원들이 ‘무슨 개소리냐’ 할 거예요. 그래서 사회적 압력이 필요합니다. 진보든 보수든 가리지 않고 이 문제를 사회화시켜야 해요.”


- 노동운동 구호는 ‘비정규직 철폐’였는데, 한 전 총장은 질 좋은 비정규직 일자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층, 주변부, 외부자 이런 게 2차 노동시장을 표현하는 언어들인데 당사자들은 이렇게 호명되는 걸 싫어해요. 이주노동자들이 최저 수준의 임금을 받으려고 한국에 몰려오잖아요. 이 일자리가 다른 나라 노동자에게는 나쁜 일자리가 아니라는 거죠. 
2차 노동시장 노동자들도 들어보면 3~4년에 한 번은 베트남이든 태국이든 일본이든 여행을 다녀올 수 있고, 비정규직도 자가용을 할부 끊어서 몰 수 있고요. 그런데도 동창회에 가서 자기 자식이 비정규직이다, 프리랜서다 이러면 기가 죽어요. 저는 이게 1차 노동시장과 2차 노동시장의 일상의 불평등 때문이라고 봐요.”


- 일상의 불평등이요?


“불평등을 얘기할 때 1 대 99가 있고 10 대 90이 있어요. 
1 대 99는 구조의 불평등이고, 10 대 90은 일상의 불평등이지요.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모든 노동자의 의식주 자체가 어려웠기에 1 대 99 불평등 해소가 중요한 사회 문제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최상위 1%와의 격차 때문이 아니라, 매일매일 일상의 삶에서 비교가 되는 10 대 90 불평등 때문에 화가 나고 절망하는 겁니다. 
아이의 장난감, 학용품, 여행지까지 갈라놓은 불평등인 거죠.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만든 일상의 불평등입니다.”


- 비정규직을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봅니까.


“불가능하죠.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면, 고용과 임금과 복지 등에서 균등하게 맞춰야 하고 그러려면 기존 정규직의 양보와 나눔의 연대가 있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해요.”


- 항시 해고 위험이 있는 비정규직이 온전히 권리를 확보할 수 있을까요.


“나도 쉽게 해고하려고 비정규직을 쓰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2차 노동시장의 많은 사업주는 진심으로 직원 처우를 고민하고 있어요.
 2차 노동시장의 상당수는 정규직·비정규직 개념 자체가 없기도 하고요. 
그들의 다수는 해고 위험 때문에 노조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노조를 해봐야 얻을 것이 없다는 이유가 더 커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죠.


“지금 노동 문제, 일자리 문제는 노사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풀려요. 
1차 노동시장에서 노사 갈등은 없어요. 재벌 총수가 많은 배당금을 가져가기 위해 정규직들에게 성과급을 주는 거죠. 
정규직 입장에선 성과급을 그렇게 받으니까 재벌 총수가 배당금을 많이 받아가도 불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1차 노동시장 노사는 자기들끼리 윈원하고 있다, 상생을 넘어 동거하고 있다고 봐요. 
반면 원·하청 기업, 원·하청 노동자, 배달 라이더 요금 같은 생산자·유통인·소비자, 세대, 젠더 갈등이 중첩된 다중 갈등이 있어요. 고용과 일자리 문제는 이 당사자들이 다 참여하는 테이블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봐요. 이 테이블에서 유럽에서 하듯이 4~5년 걸려서라도 사회적 논쟁을 붙이고 격하게 토론도 하고 타협도 하면서 답을 내놔야죠. 
나는 사회적 대타협의 핵심 고리는 상속세라고 봐요.”


- 상속세 인하는 보수진영의 의제 아닙니까.


양노총이 주도하는 사회적 대타협은 불가능해요. 주력 조합원들이 현 상태에서 얻는 것이 더 많거든요. 결국 사회적 압박이 노사정을 향해야 합니다. 재벌은 1차 노동시장에서 초과이윤을 걷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는 소비자,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다시 말해 전 국민의 땀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 초과이윤 일부는 정규직 노사 너희들끼리 알아서 나눠 먹되 일정 부분 이상은 세금으로 사회에 환원하라는 거죠. 그러면 상속세 인하하고 차등의결권 줘서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처럼 안정적으로 경영권·소유권 가질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죠. 그렇게 마련한 재원을 2차 노동시장으로 돌리는 겁니다. 물론 1차 노동시장에 있는 정규직들에게 돌아갈 사회적 인센티브도 고민해야 되겠죠.”


- 비정규직 기간 연장도 필요하다고 보세요.


“기간제 노동자들과 얘기해보면 절반 정도는 기간을 늘려 계속 일하고 싶다 하고, 절반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되면 좋겠다고 해요. 그냥 기존 사업장에서 계속 일하고 싶은데 2년이 되면 사표 내고 다른 기간제 일자리 알아봐야 하는 게 불안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단 말이죠.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 기간 연장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봐요.”


- 현 정부에서 ‘노동약자 정책 전문가 자문단’에 참여 중이고, 상생임금위원회에 참여했고, 경사노위 공익위원으로도 지원했죠.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투쟁하는 그동안의 방식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리고 지금 노동운동은 노동계급을 해체하고 있는 일상의 불평등 문제가 현실에서 얼마나 깊고 심각한지 진지하게 분석하며 요구하고 투쟁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양노총 주력 조합원들은 투쟁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정규직 노조는 이제 불법파업 안 합니다. 그런 지 10년도 훌쩍 넘었어요. 2차 노동시장 문제와 관련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도 않고요.”


- 이 정부의 노동정책에 기대가 있어 그러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라서가 아니라 정부이기 때문에 그러는 거죠.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계속 만나서 떠들어야죠.”


- 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노동개혁의 핵심은 2차 노동시장을 안아주는 것이어야 하는데, 현 정부는 1차 노동시장의 조직된 노동을 때리는 데서 멈췄어요. 이제라도 2차 노동시장 문제를 풀려고 하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데 결론이 나온 게 없어서 아직까지는 평가할 게 없어요.”


한 전 총장의 주장은 매우 논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비정규직 사용 기간 연장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에서 보듯 비정규직 일자리를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인식은 노동 유연화를 정당화하거나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기 쉽다. 노란봉투법 입법으로 모든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는 그의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노동약자의 노동권 확보를 위한 노란봉투법 입법을 부차적인 문제로 인식되게끔 하는 효과를 갖는다. 한 전 총장의 사회적 대타협론은, 노동자는 노조로 뭉쳐야 한다는 자강의 논리, 특히 노동약자의 교섭권 확보를 위한 제도 확보 운동과 단단하게 묶이지 않으면 시혜적 상층 교섭 문제로 왜소화할 수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상위 10%로 설정한 그의 ‘10 대 90’의 불평등 구조론은 불합리한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책임을 흐리고, 노동시장 문제를 노·노 갈등 문제로 치환할 위험성을 내포한 것으로 보인다. 한 전 총장이 노동 유연화를 추진하고,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대기업·정규직 불문하고 노조·투쟁이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정부·보수언론과 협업하는 모습이 저런 부정적 효과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것도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은 격렬한 논쟁이 불가피한 주제들이다. 어쩌면 한 전 총장 의도도 그것인지 모른다. 자신을 불쏘시개 삼아 사회적 논쟁을 촉발하는 것. 그럼으로써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오랜 무기력과 침묵과 회피의 빙벽을 깨는 것. 한 전 총장은 노동운동 인생 전체를 건 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정제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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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 
고교생 딸과 함께한 입시산행 3년
한석호 (지은이)   레디앙   2017-02-01
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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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중년의 노동운동 활동가가 한석호가 전해 주는 행복 이야기. 활동가로서의 바쁜 생활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 딸과 함께한 3년 동안의 동반산행을 기록한 책이다. 딸과 아빠는 산에 오르면서 산 이야기, 삶 이야기를 함께 나눴고, '대학 합격 전술'을 같이 상의했다. 북한산을 중심으로 도봉산, 사패산, 안산, 지리산을 40차례 가까이 오르내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기 집의 현관문과 안방 문까지 열어 그 안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우리를 집 안까지 들여보내 줌으로써 그 역시 우리 안 깊숙이 들어와서 공감을 만들어 낸다. 행복은 성적순도 지갑의 두께 순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꾸밈없이 말해 준다.

학원 보내달라는 딸, 웬만하면 보내 주자는 아내, 돈이 없어서 못 보내겠다는 남편. 주변에서 이 소식을 안 몇몇 사람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국 저자는 '공부동냥'으로 딸을 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비판적으로 보던 아빠가 자신의 딸의 문제로 맞닥치자 후퇴할 수밖에 없던 사정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책은 또 지금도 무대 위, 밝은 조명 아래가 아니라, 연단의 옆이나 뒤쪽에서 또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조명발 받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의 이면, '달의 뒤편'처럼 보이지 않는 그들 삶의 이야기를 자세하고 솔직하게 묘사한 기록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접기
목차
추천사 속정 깊은 아빠의 ‘입시산’ 산행기 박래군 / 인권중심 사람 소장
서문

“아빠, 학원 보내 줘” … 고등학교 입학 전
입시산 동반산행을 다짐하다
딸에게 공부동냥을 시키다
산길을 빗대어 공부와 인생을 말하다
중학교를 졸업하다

그 많던 꿈은 어디로 갔을까? … 고등학교 1학년
공부감옥에 갇히다
나의 학창 시절을 추억하다
고교 생활에 순조롭게 적응하다
놀이와 읽기를 중시하다
첫 중간고사 관문을 무사히 통과하다
망월사로 가족나들이를 하다
포대능선 Y계곡에 딸을 안기다
문과 이과 선택을 갈등하다
이 시대 고등학생과 딸의 3년을 생각하다
딸과 친구들이 19금 영화를 보다
또래 남학생들을 이야기하다
딸에게 위로 받다
후덥지근한 8월 스마트폰을 조르다
고등학교 입학 등록금을 해결하다
동성애자 결혼식을 축하하다
북한산에서 외상 라면을 먹다 방을 바꾸다
딸아이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다
동반산행에 혜정이가 동행하다
청와대의 기를 꺾다
겨울 지리산을 오르다

팽목항에서 함께 울다 … 고등학교 2학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다
살해된 또래들을 추모하다
기말고사에 낙심한 아이를 달래다
딸에게 짜부라지다
이 시대 중고생 아빠를 생각하다
심리학이 잡은 범인을 읽다
팽목항 기다림의 버스를 타다
이과 성향의 문과 학생으로 칭찬받다
흐림과 맑음이 교차하다
기말고사 증후군에 걸리다
공부를 채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다
가족의 기다림에 밤샘으로 응답하다
학술 발표 주제를 협의하다
딸아이에게 행패를 부리다

‘입시산’ 하산, 새 세상을 마주하다 … 고등학교 3학년
3학년 1학기 반회장에 당선되다
딸의 발톱이 빠지다
딸을 깨우려고 한바탕하다
아이가 아프다
딸이 상념에 빠지다
2년간의 방송을 마무리하다
나의 청춘 시대를 떠다니다
짬쭈가 떠나다
친구를 재우러 가다
늦은 밤 학원 앞으로 마중가다
고3병을 생각하다
학교 시험에서 해방되다
들뜬 아이에게 초를 치다
사회기여자전형을 알게 되다
자기소개서를 시작하다
입시 전문가와 상담하다
공기놀이를 하다
과민성대장증후군에 걸리다
본격적인 자소서 국면에 들어서다
친구 관계에서 행복을 느끼다
수능이 임박한 딸에게 빈 공간을 만들다
이화여대 면접을 보다
우리 집 보물의 수능 전날이다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치르다
시립대와 연대 면접을 보다
버리는 책 더미를 뒤적거리다
이화여대에 합격하다
할매에게 뜻하지 않은 선물 호두가 오다
외고와 강남고 등을 생각하다
국가 장학금의 혜택을 받다
등산 일지를 정리하다
입시산 동반산행을 마무리하다
아빠의 글을 읽고 “나의 인생 산행은 끝나지 않았다” 한누리
책을 만들고 나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산행” 이광호 / 도서출판 레디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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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산행을 마치고서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갔다. 딸은 들깨칼국수와 두부김치, 나는 막걸리에 두부김치, 술잔이 2개 딸려 나왔다. 딸애와 나는 마주보고 킥킥거렸다. 중학생인데 술잔이 나왔다는 웃음이었다. 이왕에 조금 따라 줬다. 딸은 이번에도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칼국수와 두부김치를 먹었다. 막걸리도 맛 봤다. 다 먹고 나선 이거 보라며 빵빵한 배를 내밀고 위아래로 쓰다듬었다. 나는 파안대소하며 사진에 담았다. 음식 값 1만9,000원.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의 나는 딸의 고등학교 3년에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나의 머리와 가슴에 축적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믿지 못한다. 나는 이미 딸아이 교육 앞에서 별 수 없는 속물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더 얼마나 속물근성을 드러낼지 알 수 없다.

꿈같은 일이었다. 딸내미와 지리산을 올랐다. 과연 대한민국 부모 가운데 고등학생 자식과 도란도란 지리산에 오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 마음에 무언가 한가득 들어찼다.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행복이란 표현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 지리산 일지를 쓰는 게 사실은 약 2주일이 지난 뒤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아빠가 산에서 “지리산에서 힘들었던 것 기억해. 공부하면서 힘들 때 떠올려 봐.”라고 했던 것처럼 계속, 계속 상기할 것이다. 무엇보다, 지리산 산행은 나에게 굉장한 자신감, 잊을 수 없는 추억, 감각 그리고 아빠가 감옥에서 어떻게 버텼는지 들으면서 나도 정신적으로 한층 성숙해질 수 있었다.

난 세월호에 짓눌려 허우적댔다. 살해당한 아이들과 딸애가 중첩되는 심리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기를 쓰면서 떼어내려 해도 어느새 중첩되곤 했다. 박근혜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앞에 있다면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 반미치광이가 된 데는 자괴감도 컸다. 딸아이 세대에게 노동이 당당한 세상은커녕, 비정규직 세상을 물려주는 것도 모자라서, 참사 세상까지 물려주게 되었다는 자책감이었다.
저자 소개
지은이: 한석호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 … 총 1종 (모두보기)
고시를 권유한 아버지 뜻에 따라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에 입학했다. 1983년이었고, 군사독재를 참지 못해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는 노동운동의 길을 걸으며 평등세상을 꿈꿨다. 고문, 감옥, 풍찬노숙으로 상징되는 거친 삶이었다. 늘 가난하고 배고픈 삶이었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 견딜 만했다. 의미도 있었다. 하지만 궁핍이 가족에게, 특히 하나뿐인 딸에게 전가되는 상황은 견디기 힘들었다. 대학 진학 의지가 강했던 딸의 학원 소망도 들어주지 못한 채, ‘공부동냥’을 시켜야 했다.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들어 울었다. 아가를 품에 안는 순간부터 딸바보가 되었다. 물질로 해 주지 못하는 만큼, 정성을 쏟으려 애썼다. 아기 때는 스킨십을 하고 자장가를 불렀다. 조금 더 커서는 같이 책을 읽으며 뛰어놀았다. 손잡고 걸으며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동반산행을 하며 입시에 함께했다. 그러면서 친구가 되었다. 지금은 대학생이 된 딸이 어떻게 하면 ‘세상과 동행하는 홀로서기’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접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덤으로 큰 깨우침을 얻었다. 자식을 아이로 남기면, 자식은 부모 인생의 의무고 짐이 된다. 벗으로 세우면,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자식을 부모의 판단과 지시로 움직이는 객체로 취급하면, 진심을 얻지 못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존중하면, 자식은 진심을 줄 뿐 아니라 부모의 진심까지 알아준다. 직접 체험하며 깨달았다. - <본문 중에서>

가난한 노동운동가의 행복이 가득한 책

노동운동 판에서 한석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30년 동안 노동 현장에서 온갖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해온 유일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온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노동운동 판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이런 대답을 듣기 십상이다. “한석호한테 물어 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께서 말씀하신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가는 먼 여행의 비유를 빌어 말하자면 한석호는 발이 바쁜 사람이다. 가투 선봉대, 사수대, 조직쟁의국 등 한석호와 뗄 수 없는 ‘직무’를 표현하는 용어는 과격한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얘기되지만 기실 과격한 것은 자본과 권력이었다. 그가 과격한 것에 맞서 오랜 기간 최전선에서 투쟁하면서 쟁취하고자 했던 것은 더불어 함께하는 일상의 행복이었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고교생 딸과 함께한 입시산행 3년』은 중년의 노동운동 활동가가 한석호가 전해 주는 행복 이야기다. 활동가로서의 바쁜 생활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 딸과 함께한 3년 동안의 동반산행을 기록한 책이다. 딸과 아빠는 산에 오르면서 산 이야기, 삶 이야기를 함께 나눴고, ‘대학 합격 전술’을 같이 상의했다. 딸이 산행을 통해 자연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깊어지는 대목을 서술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이렇게 딸과 아빠는 북한산을 중심으로 도봉산, 사패산, 안산, 지리산을 40차례 가까이 오르내렸다.

다이어트 50%, 아빠 사랑 40%, 산 사랑 10%

고교생 딸과 3년 동안 산에 오르는 것은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만, 딸에 대한 사랑은 보편적이다. 어느 아버지가 그렇지 않겠는가. 소중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삶이 그다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어른이면 아는 일이다. 수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면서 찾고자 하는 것이 바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행복이다. 독자들은 가난한 노동운동가의 일상 속 행복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빠랑 산에 가는 이유가 다이어트는 15퍼센트나 20퍼센트 정도고, 40퍼센트는 아빠랑 대화하면서 정을 나누는 거야. 이젠 산에 안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
그리곤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물어보니까,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말할게. 내가 산에 가는 이유는 다이어트 50퍼센트, 아빠 좋아서 40퍼센트, 산이 좋아서 10퍼센트야.”
내 얼굴에 함박미소가 번졌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제 아빠와의 대화에 건성이거나 피한다는데, 나는 고등학생 딸과 대화를 하고 등산도 함께하는 아빠였다. 복 받은 인간이었다. - 본문 중에서

진짜 가난은 가족의 먹고 사는 것을 책임지는 가장의 가난이다. 가장은 엄마도, 아빠도, 소녀도, 소년도 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한석호는 가난한 가장이다. 원고의 곳곳에서 가난이 배어나온다. 감추려 하지도, 강조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가난을 살고 있으니 자연스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꺼이꺼이 우는 가장의 모습에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가장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네 식구가 오랜만에 고깃집에 둘러앉아 서로 고기를 권하며 정작 자기는 젓가락질을 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은 뭉클하다.

행복은 성적순도 지갑 두께 순도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자기 집의 현관문과 안방 문까지 열어 그 안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우리를 집 안까지 들여보내 줌으로써 그 역시 우리 안 깊숙이 들어와서 공감을 만들어 낸다. 행복은 성적순도 지갑의 두께 순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꾸밈없이 말해 준다.

학원 보내달라는 딸, 웬만하면 보내 주자는 아내, 돈이 없어서 못 보내겠다는 남편. 주변에서 이 소식을 안 몇몇 사람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국 저자는 ‘공부동냥’으로 딸을 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비판적으로 보던 아빠가 자신의 딸의 문제로 맞닥치자 후퇴할 수밖에 없던 사정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딸이 중3이던 작년 어느 날이었다. 문화다양성포럼의 후배 권오성이 사정을 딱히 여기고 친구를 소개했다. 셋은 동네 술집에서 만났다. 퉁퉁한 작은 키에 후덕한 인상의 원장 김신은 사정을 듣고서 쾌히 승낙했다.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다른 부모가 알면 항의할 수 있으니 어디에도 얘기하면 안 됩니다. 또 무료라면 아이가 학원에 소홀할 수 있으니 매달 1만 원씩 내야 합니다.”
학원은 해방촌 옆 후암동이었다. 나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 딸아이는 공부 동냥을 하면서 수학에 재미를 붙였고, 떨어지던 성적이 향상됐다. 내가 선행 학습을 만류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였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은 또 지금도 무대 위, 밝은 조명 아래가 아니라, 연단의 옆이나 뒤쪽에서 또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조명발 받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의 이면, ‘달의 뒤편’처럼 보이지 않는 그들 삶의 이야기를 자세하고 솔직하게 묘사한 기록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딸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한다. ‘세월호 가족들이 아이들을 편하게 보내고 활짝 웃을 수 있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지금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으로 그 가족들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하고 있다. 세월호 아이들과 저자의 딸은 동갑내기다. 저자는 자신과 특별한 인연으로 이 세상에서 만난 딸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확대해, 자신이 하는 운동의 대의와 등치시킨 셈이다.

노동운동가로 불리지만 한국의 보통 아빠 중 한 명인 저자는 딸과의 3년 산행이 자신에게 가져다 준 행복과 교훈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지 이 책에서 숨김없이 실토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딸바보 아빠들에게도 이런 기쁨과 행복이 충분히 가능하니, 한 번 해보시라고 권유하고 있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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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24-07-03 07:31 (수)로그인


인터뷰
[딸과 함께하는 노동운동가의 행복한 산행기] “누리야, 아직 인생산행은 끝나지 않았단다”

기자명김학태
입력 2017.03.02

▲ 정기훈 기자

“2학년 땐 적당히 좀 놀아라.”(아버지)

“안 돼. 남친도 사귀어야 하고 미팅도 해야 한단 말이야. 3·4학년 땐 못해. 공부해야 해서.”(딸)

아빠 손을 잡고 산에 올랐던 여고생. 굵은 뿔테 안경을 썼던 앳된 딸은 대학 2학년 스무 살 성인이 됐다.

3년간 딸과 함께 진짜 산과 ‘입시산’을 오르내렸던 아빠. 한창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는 딸을 바라보는 표정은 어김없는 ‘딸바보’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서교동 <매일노동뉴스>에서 만난 한석호(53)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과 그의 외동딸 수민(20)씨.

아빠와 딸은 2013부터 2015년까지 동반산행을 했다. 아빠는 산행일지를 꼼꼼히 기록했다. 딸이 입시공부를 하면서 보인 눈물과 웃음, 옆에서 마음 졸이고 응원했던 가족의 모습도 글로 남겼다.

아빠는 그 글을 엮어 올해 1월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레디앙)를 펴냈다.


함께해서 행복했던 입시산행

딸의 고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2013년 새해 첫날, 아빠는 다짐했다. “앞으로 3년, 딸이랑 가능한 많이 산에 가자.”

등산만이 목적은 아니었다. 지옥이라고까지 불리는 입시생활의 외로움을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딸은 앞으로 3년간 꼼짝없이 ‘입시산’을 올라야 한다. 대한민국 입시산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험악하기로 이름난 곳이다. (…) 내가 딸의 입시산행을 대신할 순 없지만, 아빠이자 친구로서 딸아이가 외롭지 않도록 더불어 오르고 더불어 내려와야 한다.”(책 본문 중에서)

딸 누리(집에서 부르는 이름)에게 제안했다.

“고등학교 가면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힘들 거고, 책상에만 앉아 있어서 살도 많이 찔 테니까, 아빠랑 매주 산에 가자. 체력도 기르고 다이어트도 하고.”

“맛있는 거 사 준다”는 약속에 딸은 흔쾌히 동의했다. 3년에 걸친 아빠와 딸의 동반 입시산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부녀가 함께한 등반은 38회. 수학문제 하나라도 더 풀어야 하는 고교생 입장에서 결코 적은 횟수가 아니다. 주로 서울 인근 산에 올랐는데 한겨울에 1박3일 지리산 등반도 했다.

산에서 아빠는 딸과 소통하려 애썼다. 공부·친구·사회문제·꿈을 얘기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는 산길을 인생에 비유했다. “절대 삶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일상생활도 입시산을 오르는 동반산행이었다. 딸이 시험공부와 성적으로 힘들어하면 아빠와 가족은 함께 힘들어했다. 회의다 집회다 노동운동에 바쁜 아빠는 함께 공부하고 진로를 고민했다. 대학 수시전형에 지원한 딸의 자기소개서를 함께 써 내려갔다.

딸은 바람대로 심리학을 전공할 수 있는 이화여대 사회과학부에 합격했다. 아빠와 딸은 입시산에서 무사히 내려왔고, 동반산행을 마무리했다.

함께 산을 오르고, 책까지 펴낸 것은 딸을 위해서였다. 가난한 노동운동가가 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아빠에게 더 큰 선물이 됐다.

아빠 : 딸한테도 선물이지만, 저한테도 어마어마한 선물이었어요. 경찰이 민주노총을 침탈하기도 했고, 일도 많았어요. 아침 8시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게 힘들었는데, 그런 일상을 버티게 해 주는 청량제였으니까요. 행복이라는 표현으로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딸이 동행해 준 게 고맙지요.

딸 : 대학 가서 술을 먹고 친구를 만나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집에 있는 시간이 줄었고,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줄었습니다. 아빠랑 산에 다닐 때는 잘 몰랐는데, 그때가 정말 소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빠 : 가시나야, 늙으면 더 와 닿아.(웃음)

세상과 동행하는 홀로서기

딸의 대학 합격과 입학은 아빠가 딸에게 처음으로 준 ‘물질적’ 도움이었다.

딸은 ‘사회기여자 전형’으로 지금의 대학에 입학했다. 사교육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도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항쟁에 뛰어들었다가 고초를 겪은 아빠의 민주화운동 경력도 한몫했다. 딸은 사회기여자 전형을 알고 난 뒤 아빠에게 "아빠 개고생 내가 꿀 빤다"며 들떴다.

딸 : 아빠가 감옥 다녀오시고 고생하셨는데 제가 이득을 봤지요.

아빠 : 물질적으로 유일하게 딸에게 도움을 준 거 같네요.

그런데 등록금이 걱정이었다. 1학년 1학기 등록금은 457만9천200원. 고등학교 등록금도 지인 도움으로 겨우 댔는데. 다행히 국가장학금 제도라는 것이 있었다. 그래도 부족해 212만9천200원은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딸에게 안긴 생애 첫 부채였다.

딸 : 아빠가 갚겠지요.(웃음)

아빠 : 그래도 1학년 2학기와 2학년 1학기는 국가장학금으로 해결했어요. 집이 가난하니까 더 주던데요.(웃음) 반값등록금 싸움을 한 결과 같은데요. 제가 국가에서 도움을 받은 것은 처음입니다.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지난해 2월. 아빠는 그토록 행복했던 딸과의 입시산 동반산행이 끝났다는 사실이 못내 서운했다. 딸은 “세상과 동행하는 홀로서기”에 나섰다.

아빠 : 이제는 마음을 정리했어요. 대학 들어가면서부터는 내 품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그걸 인정해야지요. 일단은 놔두고 보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자 이거지요. 세상과 동행하면서 홀로서는 훈련을 받아 봐라, 품에서 벗어나 많이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면, 그때 가서 손잡고 얘기하고 산에 가면 되지요.

딸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교우관계가 좋았다.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었고, 상담도 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합창단 동아리, 학생회 활동을 한다.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사람관계는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힘이 되는 것도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딸이 사람관계 훈련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 아빠의 생각이다.

딸 : 잘 모르겠어요. 지금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돌아봐야 알겠어요. 크게 힘든 고민은 없습니다. 진로가 불투명한 게 가장 큰 고민이죠.
▲ 정기훈 기자

“제가 행복하려면 세상을 바꿔야죠”

딸은 고교 시절에 “쌍용자동차 아저씨들처럼 노조활동 하다가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도우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학전공을 심리학으로 정했다. 그 꿈을 좇아 지금의 대학에 들어갔다. 올해 2학년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공과정을 밟게 된다.

딸 : 지금은 막상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요.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다 보니 막막하네요. 고등학교 때는 전문직을 하더라도 인권운동이나 상담심리 같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저 빼고 취업준비를 위해 스펙쌓기에 몰두하는데, 저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나도 스펙쌓기를 해야 하는지.

딸이 인권운동을 하려고 심리학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빠의 영향이 컸다. 아빠는 평생 노동운동에 몸담았다. 엄마인 황혜원(52)씨도 민주노총에서 일했다. 지금은 지역 풀뿌리 운동을 한다.

아빠는 딸이 노동운동이나 전업운동을 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경제적으로 궁핍하기도 하고, 때로는 출세주의자로 손가락질 받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부터 딸에게 “전문성을 갖고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데 딸이 생각한 게 인권운동이었다. 노동운동보다 경제적으로 힘든 인권운동 말이다.

아빠 : 한국 사회가 엉망진창인데, 운동이 소금 역할을 하지요. 운동가와 운동집단이 필요해요. 그래서 복잡합니다. 딸이 운동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하면 좋겠다는 생각….

딸이 입학한 이화여대는 지난해 내내 사회적 논란과 관심의 중심에 섰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에 반대한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해 농성을 했다. 농성이 끝난 뒤에는 국정농단 주범 최순실의 딸 정유라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딸 : 본관 점거농성을 할 때 저는 전면에 나서지 않았거든요. 간단한 일을 도우면서 농성장만 열심히 지켰어요. 그런데 아빠가 맨 앞에서 싸우라는 거예요.

아빠 : 데모 열심히 하라고 했죠. 딸아이가 운동적인 삶을 사는 것에 대해 두 가지 감정이 있지만, 이왕 하려면 열심히 하라고 했어요.

아빠가 펴낸 책에서 딸의 고등학교 2학년을 얘기한 부분의 제목이 눈에 띈다. ‘팽목항에서 함께 울다’.

아빠는 책에서 “참사 이후, 난 반쯤 미쳐 있었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밤마다 만취했고, 집에서는 가족들에게 몹쓸 말을 했다고 한다. 동료나 선배들에게 자주 실수를 했다.

“난 세월호에 짓눌려 허우적댔다. 살해당한 아이들과 딸이 중첩되는 심리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기를 쓰면서 떼어 내려 해도 어느새 중첩되곤 했다.”(책 본문 중에서)

2014년 4월16일 희생·실종된 단원고 학생들과 딸은 동갑내기다. 딸과 아빠는 팽목항을, 광화문과 안산의 분향소를 함께 찾았다.

아빠 : 딸아이에게 비정규직 세상과 참사 세상을 물려주게 됐어요. 하늘을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 건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짐을 떠넘기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딸아이 세대가 기성세대가 못한 것을 이뤘으면 합니다. 함께 손잡고 이 세상을 바꾸자고 말하고 싶어요.

딸 : 세월호 참사 때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셨어요. 아빠가 사고를 낸 것도 아니고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세상을 제대로 바꾸지 않으면 저도 제 자식에게 미안해할 것 같아요.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큰 행복은 자식과의 동행”
딸에게 준비한 200통의 편지

노동운동가인 아빠는 요즘 ‘자식교육’ 또는 ‘자식과 소통하기’ 전문가로 나서는 모습이다. 책이 출판되자 노동교육이 아닌 자식 관련 강의에 초청받기도 했다. 강의요청은 추가로 들어오고 있다.

아빠는 책에서 자식과 소통하고, 동행하는 길을 제시하고 싶었다. 책 서문에 “자식을 아이로 남기면, 자식은 부모 인생의 의무고 짐이 된다. 벗으로 세우면,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고 썼다. 자식에게 돈이나 물질적으로 해 줄 것이 없는 부모가 많은 요즘, 새겨들을 만한 얘기다.

아빠 : 엄마 아빠가 아이 눈높이에 맞는 기대에서 출발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감당 못할 기대로 부담을 주기 시작하면 갈등이 생기고 멀어지게 되거든요. 술을 한잔하든, 어깨를 한번 쳐 주든 간에 아이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동행해 보세요. 산이 아니라도 좋아요. 뭐든 함께해 보세요. 세상의 행복은 참 많고 다양한데, 그중에 으뜸은 자식과의 동행인 것 같아요.

고등학교 3년 동안 아빠와 동반산행을 했던 딸은 이제 세상과의 동행에 나서고 있다. 아빠는 “이제 제2의 동반산행은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지만 정말 그럴까. 딸의 입시산행은 끝났지만 인생산행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사실 아빠는 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

2001년 9월 딸의 네 번째 생일 다음날 아빠는 딸이 보는 앞에서 형사들에게 끌려갔다. 그해 2월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주도한 혐의였다. 세 번째 감옥살이였지만 딸아이가 사무쳐 견디기 힘들었다.

1년7개월 동안 딸에게 200통의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아빠가 필요로 할 때가 있으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겠다”고 약속한 것도, 4년 전 딸과 동반산행을 계획한 이유 중 하나였다. 나중에 그 편지들을 딸에게 주려고 한다.

아빠 : 그때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읽지도 못했고. 한 번도 안 보여 줬어요. 딸이 대학 졸업하고 사회로 나갈 때 읽어 보게 하려고요. 산에 가면서 말하지 못했던 얘기들, 세상에 대한 얘기들, 딸에 대한 내 마음을 담았어요. 사회에 진출할 때 중요한 조언이 될 수도 있고, 다시 동행에 나서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딸 : 울까 봐 보기 싫어요. 그래서 이번 책도 처음에는 읽기 꺼렸어요. 아빠 엄마가 힘드셨던 것들을 알게 되면 감사하긴 한데, 또 미안하잖아요.

딸은 고개 숙여 아래를 쳐다봤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아빠는 딸만 바라봤다.
▲ <정기훈 기자> 김학태 tae@labortoday.co.kr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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