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8, 2024

한국사회의 갑질문화와 계급문제 2018

한국사회의 갑질문화와 계급문제


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한국사회의 갑질문화와 계급문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12. 27. 06:51



한국사회의 갑질문화와 계급문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1. 들어가며 : 우리는 평등한가?



2018년 한 해를 돌아보며 몇 개의 죽음을 생각한다. 가장 당혹스러운 사망 소식은 정치인 노회찬이었다. 그가 보여 주었던 높은 지성과 탁월한 유머 감각, 정치적 소신을 사랑했던 한 사람으로서 갑작스러운 그의 자살 소식에 깊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과연 그 일(정치자금 문제)이 죽음을 택할 정도로 중한 일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진보적 정치인으로서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얼마 전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김용균 씨. 태안화력발전소는 내가 살고 있는 서산에서 멀지도 않다. 스물네 살의 비정규직 청년에게 이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의 어머니는 대한민국을 저주한다며 울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은 이 정부의 캐치프레이즈지만 여전히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 사람이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조항을 들어 뒷받침한다.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그러나 ‘모든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은 재벌들 간에도 통용된다. 삼성 이재용이 집행유예로 풀려날 때, 롯데 신동빈은 ‘예기치 않게’ 구속수감되었다. 물론 법정구속 235일 만에 석방되었으니 재벌과 일반국민의 격차는 엄청난 것이다. 일반국민 중 누가 징역을 2년 6개월 받고(뇌물을 70억이나 주었는데도!) 집행유예 4년을 받을 수 있겠나?



한국사회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신분제 사회였다. 고조선의 8조법에 따르면 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고 하였으니 한국사에서 신분제는 고조선 시대에 이미 나타났다. 신라의 성골, 진골, 6두품 그리고 고려에 와서는 신라시대보다 느슨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신분간 격차가 남아 있었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은 더욱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다. 백성을 양인과 천인으로 나누는 신분제도인 ‘양천제’를 시행하였는데, 백성들은 각각의 신분에 따라 사회적으로 맡은 역할이 달랐고(사농공상), 신분 간에는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사회는 어떨까? 5년 전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 바 있다.(356회, 2013년 11월 16일) 조선시대의 광대 역을 맡은 방송인 노홍철이 지나가는 시민에게 물었다. “그래, 그대는 직업이 뭔가?” 시민은 “회사원”이라고 답했다. 이어 노홍철은 “그럼 회사원은 현대 사회에서 신분이 뭐냐? 천민이냐? 양반이냐?”고 물었고, 시민은 별 고민없이 답했다. “노비요.”



현대 한국사회를 신분제 사회라고 하기는 어렵다. 신분제란 전근대 사회의 특징으로 혈통이나 가문, 직업, 교양, 수입, 재산, 권력 등에 근거해서 사회적 평가와 처우를 받는 서열 제도를 말한다. 이것은 태어날 때 이미 결정되는 것이고 나중에도 바뀌지 않는다. 물론 오늘날 많은 직장인들,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 감정노동자, 단순노동자, 이주노동자 들이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현대판 노비’라고 부르긴 한다. 이들은 세상이 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불평등한 구조가 공고화되어 간다고 느낀다. 프롤레타리아 계급만 그런 게 아니라 자영업자와 같은 중간 계급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사실상 ‘사회적 특수계급’은 이미 형성되어 있고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서열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말이 ‘갑을관계’ 또는 ‘갑질문화’일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왜 갑질문화가 확산되었는가?’와 ‘어떻게 해야 갑질문화를 없앨 수 있는가?’이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계급문제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2. 오늘날 대한민국의 갑질문화



‘갑질’을 키워드로 하는 뉴스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갑질로 뉴스 검색을 해 보자. 최신 뉴스만 몇 개 간추려보면, 국토위에 소속된 민주당 국회의원이 공항에서 보안요원에게 한 행위가 ‘공항 갑질’로 이슈화되었고,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지역구 주민의 “지금 정권에서는 잘 지내고 있다”는 말에 (바닥에) 침을 뱉은 게 갑질 행위로 알려져 비난을 사고 있다. 이밖에도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에 접수된 갑질 사례가 언론에 회자되고 있으며, 제주대 병원에서 직원을 상습폭행한 혐의를 받는 ‘갑질 교수’가 직위해제되었다는 뉴스도 올라와 있다. 예전 같으면 단순히 비도덕적 행위나 폭력 행위로 소개되었을 일이 이제는 갑질이라는 이름을 달고 기사화된다. 그렇다면 그만큼 갑질문화가 확산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권력형 폭력에 대중의 반응이 더욱 민감해졌다고 해야 할까?



갑을관계라는 말은 본래 계약서를 작성할 때 간명함을 위해 당사자의 이름 대신 ‘갑’과 ‘을’을 쓰는 데서 기인한다. 물론 여기에 위아래나 우열의 의미는 없다. 역법의 천간에서 빌려온 이 기호들은 그저 순서를 나타낼 뿐이다. 예를 들어, 내가 모 출판사와 작성한 계약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위 저작물을 번역 출판함에 있어, 저작재산권자(번역자) ○○○를 갑이라 하고 출판권자 △△△를 을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약정하고 신의와 성실로써 이 계약을 준수하기를 다짐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번역자로서 갑이지만 횡포를 부릴 처지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을인 출판권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왜냐하면 다음에 또 책을 내기 위해서는 출판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최근 유행하는 갑을관계는 서열주의에 따른 권력관계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서열에 따라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 관계로서 상대적 개념이다.(강준만, 2013: 26) 우리는 누군가에겐 갑이지만 누군가에겐 을이다. 만화가 윤태호의 웹툰 ‘미생’에서 보듯 중소기업 사장이라면 직원들 앞에서는 절대 갑일지 몰라도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대기업 부장 앞에서는 한없이 초라한 을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대기업 부장이라 할지라도 관련 정부부서 담당과장(공무원) 앞에서는 유순한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갑을관계의 본질은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에 있다. 그리고 갑을관계의 동력은 ‘권력의 맛’에 있다.



2015년 1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60세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사흘간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갑질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문항에 95%의 응답자가 그렇다고 동의했다. 갑질이 ‘모든 계층에 만연해 있다’는 응답은 77%로 ‘일부 계층에 해당된다’ 20%와 ‘몇몇 개인에 해당된다’ 3%를 크게 앞질렀다. 가장 심각한 갑질은 정치인·고위공직자 및 재벌의 갑질인 것으로 나타났다. 갑질이 ‘매우 심각하다’에 대한 응답은 재벌 64%, 정치인 및 고위공직자 57%, 고용주 및 직장상사 46% 순이었다. 재벌 응답 비율이 높은 것은 2014년 12월 벌어진 대한항공 조현아의 ‘땅콩회항’을 비롯한 재벌 3세의 행태를 집중 보도한 결과라고 재단은 판단했다. 응답자 자신이 갑인지 을인지 묻는 질문에 85%는 ‘나는 을이다’라고 답했다. 85% 중 ‘항상 을이다’는 17%, ‘대체로 을이다’는 68%였다. ‘항상 갑이다’라는 응답은 1%에 불과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볼 수 있듯 한국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을 갑보다 을로 규정한다. 갑으로서 누리는 권력보다 을로서 겪는 설움이 더 뚜렷하게 마음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준 상처는 곧 잊히기 쉽지만 자신이 받은 상처는 오랫동안 응어리로 남는 법이다.(김찬호, 2015: 83-84) 따라서 재벌이나 정치인, 고위공직자의 갑질은 쉽게 공분을 산다. 고용주 및 직장상사의 갑질도 비난을 면치 못한다. 누가 봐도 그들은 권력자로서의 갑이기 때문이다. IMF 사태 이후 경제적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취약한 처지에 놓이게 된 사람이 늘어난 것도 갑을관계의 확산에 기여했을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갑을관계’나 ‘갑질문화’라는 말의 용례가 나타난 것은 2004년이다. IMF 사태 이후 민주화·정보화의 진전과는 반대로 일부 대기업에 권력이 집중되는 분위기가 팽배하면서, 강자와 약자의 관계를 ‘갑을’로 치환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부터 대중의 의식도 바뀌었다. 그전까지는 유교윤리가 버티면서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이 대중화되지 않았다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에는 의식의 빗장이 열린 형국이었다. 이와 관련해 1999년을 대표하는 책을 세 권 꼽는다면, 한문학자 김경일의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와 배우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그리고 여성학자 오한숙희의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돈이 좋다』를 들고 싶다. 이 세 책은 당시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들은 ‘케케묵은’ 유교윤리를 폐기했다. 그리고 체면 때문에 드러내어 표현하지 못하던 두 욕망, 즉 성욕과 금욕을 거리낌없이 표출하기 시작했다. 슈타이너의 말을 빌리자면, ‘반사회적 힘(anti-social force)’이 ‘사회적 힘’을 앞서나가게 된 것이다.(김훈태, 2017: 99)[각주:1] 아무도 손해보려 하지 않는 세태 속에서 사람들이 더 이상 갑의 횡포를 인내할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작은 ‘권력질’도 참고 넘어갈 수 없는 부당한 횡포가 되었다.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름 없는 을들은 갑에 대한 비판과 고발을 인터넷 게시판과 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첨단장비의 발달로 갑질을 효과적으로 고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세상이 바뀐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의 해체와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자유주의적 욕구와 사상이 막 싹트던 시점에 IMF 경제위기가 발생했고, 경제위기와 함게 출범한 김대중 정권 하에서 급속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박소진, 2017: 36) 갑을관계 또는 갑질문화라는 말 자체는 노무현 정권 때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성장 시대가 종언을 맞이한 이 시기에 대기업은 물론 갑의 위치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이윤 보전을 위해 을을 더 옥죄는 방식으로 나아가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강준만, 2013: 254) 그리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신자유주의 질서가 전면화되면서 한국사회에 그나마 남아 있던 유교적 인간존중 문화는 퇴색해 버렸다. 옅게나마 잔존하던 공동체 윤리의식은 경제위기를 거치며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개인주의와 배금주의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카드업계의 경쟁이 불꽃을 튀기던 2000년대 초 배우 김정은이 광고한 BC카드는 새로운 시대를 알렸다. “여러분, 여러분, 부자되세요, 꼭이오”라는 광고 카피는 한동안 대유행을 했다. 카드를 팍팍 긁으라고 권하는 신용카드 회사가 덕담으로 부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러한 모순은 뒤로 한 채 이제 누구나 거리낌없이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드러냈다. 이 욕망의 뒷면을 ‘이제 나도 갑질을 하고 싶다’ 또는 ‘갑질의 맛을 느끼고 싶다’로 읽는다면, 갑질문화의 토대는 이때 다져졌을 것이다. 그러나 갑질이라고 해서 다같은 갑질은 아니다. 오늘날 갑질은 일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모방 범죄이고, 더욱 심각한 것은 갑질의 계급화이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갑질 사건은 지난 11월 16일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보도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손녀가 벌인 일이다. 방상훈의 차남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이사 가족을 수행하던 운전기사가 해고된 것은 10월 26일이었다. 방정오의 사택기사로 일했던 김아무개 씨(57)는 MBC에 녹음파일을 보낸다. 파일에 담긴 내용은 주로 방정오의 초등학교 3학년 딸이 김씨에게 내뱉은 폭언들이다. 방정오의 딸을 태우고 학교와 학원, 집 등을 오가며 차 안에서 벌어진 대화는 상식 밖의 수준이었다.



“내가 오늘은 엄마한테 진짜 얘기를 해야겠어, 얘기해서 아저씨 잘릴 수도 있게 만들 거야.”

“아저씨는 해고야. 진짜 미쳤나 봐.”

“내가 좋게 얘기하고 있잖아 지금. 나밖에 아저씨한테 이렇게 얘기해주는 사람 없어.”

“싫다고 했지 내가. 내가 왜 앉아야 돼. 내 차야. 아저씨 차 아냐.”

“아저씨는 장애인이야. 팔, 다리, 얼굴, 귀, 입, 특히 입하고 귀가 없는 장애인이라고. 미친 사람이야.”

“전에 있던 아저씨가 너 보단 더 나은 거 같아.”

“일단은 잘못된 게 네 엄마 아빠가 널 교육을 잘못시키고 이상했던 거야. 돈도 없어서 병원하고 치과도 못 갔던 거야. 가난해서.”

“돈 벌 거면 똑바로 벌어. 아저씨처럼 바보 같이 사는 사람 없거든.”

“나 아저씨 보기 싫어 진짜로. 아저씨 죽으면 좋겠어. 그게 내 소원이야.”



기자는 그나마 덜 폭력적인 말들을 고른 것이 이 정도라고 전했다. 이것은 열 살짜리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 환경을 봐야 한다. 이 기사를 보고 반사적으로 떠오른 인물은 정유라였다. 이제는 많은 이의 관심에서 벗어났지만 정유라가 언론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승마 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한 정유라는 한국사회의 모순을 집약해 보여주는 듯했다.[각주:2]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8살 때의 일이다. 다음은 오랫동안 최순실의 단골 목욕탕 세신사로 일했던 A씨의 증언이다. 그는 최순실의 행패를 이야기하다가 딸 정유연(정유라로 개명)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한다. 동아일보 기사의 일부를 직접 옮긴다.



딸 정 씨에 대해서도 “인성이 덜 된 아이”라며 8살 때 일화를 들려줬다. 어린 정 씨가 세신을 하다가 자꾸 똑바로 일어서길래 “아줌마가 때 밀게 누워봐, 유연아”라고 건네자 “뭐라고?”하며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고 했다. A 씨는 “같이 온 유연이 사촌 언니는 자랑이랍시고 밖에 나가서 ‘유연이가 아줌마 때렸대요’하고 놀리더라”며 “최 씨도 그렇고 누구도 미안하단 말을 안 해서 속상했다. 때린 거야 아이니까 실수라고 쳐도 가정교육이 제대로 안 돼 있는 집안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렇게 공부도 안하고 못된 애가 이화여대도 들어가고 대단한 나라”라는 혹평도 했다.



이것은 단순히 인성의 문제나 가정교육의 문제가 아니다. 방정오 역시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저를 꾸짖어 달라”며 TV조선 대표직에서 사퇴했지만 이것은 더 이상 개인적인 가정사 문제가 아니다. 조선일보 손녀 녹취록을 최초 보도한 MBC 기자는 이 사건을 갑질을 넘어선 ‘계급질’이라고 주장했다. 기존의 갑질은 사장과 사원 혹은 직원 사이에 나온 문제이기 때문에 갑질로 볼 수 있지만 이 사건은 조선일보 손녀의 우월적 태생에서 나온 문제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완성된 새로운 계급사회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을 갑질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사회의 계급적 구조를 도외시하는 일이다.



갑질 프레임은 체제의 부당함을 개인의 부족한 인성에서 비롯된 행위 탓으로 여기게 한다. 언론이 주목하는 것도 갑질 행위의 비도덕성과 폭력성에 국한된다. 땅콩회항의 조현아나 그의 동생 조현민의 물컵갑질도 구조적 측면보다 비이성적 행태 그 자체에 언론의 조명이 집중된 바 있다. 위디스크 양진호의 기행과 폭력행위도 마찬가지였다. 갑의 분노조절 능력이 문제라는 식이다. 그리고 특정한 자본가의 갑질에 대한 비난이 거셀수록 갑질을 하지 않는 갑은 정당성을 얻게 되는 모순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오뚜기 그룹은 단지 갑질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착한 기업’이라거나 ‘갓뚜기’라는 칭송을 듣는다. 이런 시각에 따르면 갑질을 막기 위해 우리는 부당한 행위에 대한 국가의 처벌과 함께 갑들의 인성이 바뀌길 바라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러야 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은가.



지금의 갑질 프레임은 세월호 참사 당시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이 몰아가려 했던 ‘사고-보상 프레임’과 판박이이다.(김명희, 2015: 229) 그들은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주장했고, 참사의 본질인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안전 불감증’이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일선 학교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안전교과가 설치되었고, 안전매뉴얼이 보급되었으며, 생존수영을 의무적으로 가르치는 정책이 시행되기도 했다. 2013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대구의 한 중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하자 학교 옥상에 학생이 드나드는 것을 막기 위해 쇠창살을 설치하고 인성교육을 확대한 것과 같은 발상이다. 개별 사건은 사회구조의 특정한 작용이나 발현을 의미한다.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처럼 일회적이고 우연적인 현상이 아닌 것처럼,[각주:3] 무수히 벌어지는 갑질 사건, 특히 조선일보 사장의 손녀가 운전기사에게 벌인 갑질 행위는 한국사회의 계급적 고착화를 보여준다. 우리가 갑질 프레임에 매몰될수록 계급의식은 지워지게 된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계급을 계급이라 말하지 못하고 착취를 착취라 부르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더욱이 임금노예(현대판 노비)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된다.





3. 갑질과 흙수저 계급론



갑질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일 뿐 아니라 한국사회가 신분제에 가까운 신자유주의적 계급사회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이를 잘 반영하는 표현이 ‘흙수저 계급론’이다. 2015년부터 유행한 수저론은 새로운 계급사회의 도래를 감지한 흙수저 젊은이들의 계급적 언어이다. 20세기 초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확실하게 전통적인 신분체계가 무너졌다. 조선 말기의 혼란과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신분제가 완전히 해체된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변화와 거기에서 비롯된 집합적 행동이 수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김찬호, 2015: 89) 구질서와 낡은 신분관념을 의식적으로 청산하려는 움직임 없이, 마치 해방이 우리의 독립투쟁보다 일본의 패망으로 갑작스레 찾아온 것처럼 여러 외적 요인으로 인해 신분체계가 그냥 붕괴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신분관념은 그대로 남았다. 옛 신분제는 사라졌지만 서열주의는 남게 되었는데, 그것이 신자유주의 체제와 맞물려 여러 사회적 범주들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사회는 해방 이후, 특히 한국전쟁을 전후해서 평등의식이 강화되었고, 누구나 노력을 하면 계급상승이 가능한 사회로 인식됐다. 전쟁 전후로 농지 개혁을 통해, 당시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던 농민들이 거의 비슷한 처지의 소농이 되었다. 같은 조건에서 재출발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김동춘, 2015: 229) 사회학자 김동춘은 단군 이래 한국사회가 그렇게 평등한 적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한국은 전세계에서 학력경쟁이 가장 극심한 나라가 되었다. 좋은 대학이라는 학력 자본을 얻으면 계급상승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족 공동체의 사업이었다. 실제로 ‘우골탑’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것처럼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자식의 대학 진학을 위해 재산 1호인 소를 팔아서 학비를 댔다. 육체노동의 힘겨움을 아는 부모세대의 소원은 자식이 펜대를 쥐고 일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교육을 통한 계급상승의 가능성은 IMF 경제위기 이후 희박해졌다고 봐야 한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가구의 교육비 지출 격차는 해마다 벌어지고 있다. 올해 6월에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는 한 달에 ‘학생학원 교육비’로 평균 24만2600원을,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는 평균 8925원을 지출했다. 무려 27배가량이나 차이가 난다. 교육비 지출 격차가 그대로 학력 차이로 이어진다면 부모의 소득수준이 대물림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장원호 서울시립대 교수 연구팀이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 의뢰로 2017년에 진행한 ‘학교와 교육불평등 관계: 기존 연구결과에 대한 메타분석적 연구’에 따르면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이른바 ‘SKY’ 대학의 정원 외 특별전형(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전형) 입학생은 2011학년도 264명에서 2016학년도 210명으로 약 20.5% 줄었다. 같은 기간 세 학교 일반전형 입학생 수가 6917명에서 6820명으로 약 1% 감소하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급감한 셈이다. 해당 전형은 입학기회의 평등을 추구하기 위해 만든 저소득층 학생 대상 전형이다. 또 같은 기간 같은 전형에서 일반고 출신들의 비율이 감소한 만큼 특목고·자율고 학생의 입학 비율은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목고·자율고 출신 학생들은 2011학년도 5.3%(14명)에서 31.9%(67명)으로 치솟았다.



한국은 1960~80년대에 경제성장과 소득불평등 완화를 달성했고, 세대 간 계급 대물림도 남미나 영미권보다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세대 내 계급 상향이동은 물론 세대 간 계급 상향이동의 가능성에 대한 비관론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저소득층일수록 비관론이 강하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2000년대 이후 저학력계층 및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나타난 세대 내 소득 이동성의 약화를 반영하고 있다.(김희삼, 2018: 352) IMF 경제위기 이후 재벌체제의 재편, 중산층의 위축, 빈곤층의 증가 등이 잇따르면서 한국사회는 구조적 재편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불평등의 심화라는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IMF 경제위기로 인한 충격은 사실상 중간계급보다 노동자계급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실제로 중간계급은 관리직 종사자들만이 타격을 입었지만(전문직 종사자들의 수는 오히려 늘었다), 노동자계급의 기능직 종사자는 IMF 직후 5분의 1 가량이 일자리를 잃었고 사무직원들과 판매서비스 노동자 수도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이들의 많은 수는 비정규직 단순노동자가 되어 노동자계급의 위기는 지속되었다.(신광영, 2004: 230) 문제는 가난의 대물림이다. 개인이 노력해 버는 소득보다 물려받은 자산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면서 수저 계급론이 현실화된 것이다.[각주:4] 이런 현상은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심화되었고, 급기야 젊은 세대는 한국을 ‘헬조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노오력’을 해도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내리막길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수저 계급론은 태어날 때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났는가가 이후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다분히 현실주의적 시각을 담고 있다. 오늘날 젊은 세대는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로 사회적 지위를 세분화한다. 각 수저를 나누는 객관적 기준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수저를 나누는 기준을 제시하곤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 서비스망에 오르내리는 수저 구분표에 따르면 자산이 30억 원 이상이고 가구연수입이 3억 원 이상이면 상위 1%의 다이아수저, 자산 20억 원 이상에 가구연수입이 2억 원 이상이면 상위 1%의 금수저, 자산 10억 이상에 가구연수입이 8000만 원 이상이면 상위 3%의 은수저, 자산 5억 이상에 가구연수입이 5500만 원 이상이면 상위 7.5%의 동수저, 자산 5000만 원 미만에 가구연수입이 2000만 원 미만이면 흙수저이다. 이에 대해 ‘줄세우기식 서열문화’가 문제라느니, 스스로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체념하는 청년문화(일명 N포 세대)가 문제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신계급사회가 출현했다는 점이다. 갑질을 하는 재벌가 3,4세들의 태도와 자세, 말과 행동에서는 계급에 대한 철저한 자각마저 엿보인다.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손녀의 폭언은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새로운 계급사회에서 우위에 선 자, 새롭게 출현한 귀족의 오만이다. 양극화로 일컬어지는, 신계급사회의 도래야말로 저들을 저렇듯 오만하게 만들고 저들로 하여금 끝없는 갑질을 하게 만든 원인인 것이다. 만국의 흙수저들은 단결할 일이다.





4. 나가며 : 갑질공화국의 심장에서 촛불을 들자



이 글을 쓰는 내내 삼성전기의 고문이었던 임우재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는 삼성계열사 에스원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이건희의 맏딸 이부진과 결혼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2014년 이부진과 이혼한 그는 자녀 친권 및 양육권자 문제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그는 흙수저로 태어나 다이아몬드수저 집안의 여성과 결혼했다. 계급상승을 한 줄 알았으나 온갖 갑질에 시달리다 이혼하고 다시 흙수저, 아니 최소한 은수저가 되었다.[각주:5] 그는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그보다 놀라운 건 그의 아들과 그가 다른 계급이라는 점이다. 그가 언론에 토로한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아들을 어려워하는 아버지를 상상할 수 있나요. 이건희 회장님의 손자이기에, 아들이 어려웠어요. 친할아버지·할머니가 자신의 손자를 9년 가까이 한 번도 못 봤다는 것이 이해가 되나요. 사실이에요. 저도 아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못했어요. 이혼 재판을 진행하면서, 면접교섭권을 갖게 되어 이제야 편하게 아들을 밖에 데려가고 있어요. 아들이 라면을 좋아해요. 라면도 먹고 그래요. 그런데 1심에서 아들을 한 달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게 했어요. 너무 억울해요.”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돌아보면 자본주의 사회는 늘 불평등한 계급사회였다. 자본주의 세상이 평등했던 적이 있는가? 자본주의의 논리는 언제나 똑같이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이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탐욕(이윤)이 정당하듯 불평등 역시 바람직한 일이다. 가진 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 모든 사람이 평등하면 대체 누가 노동을 할 것인가? 억울하면 경쟁에서 살아남아 출세를 하면 될 일 아닌가!” 사실 갑질이란 별 게 아니다. 갑질은 근본적으로 경제적 교환관계를 전제했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만일 시장경제에서 등가교환이 일어난다면 애당초 갑질은 발생할 수 없다. 부등가교환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착취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인간의 신체나 감정, 심지어 영혼까지 다 상품화(물신화)되어 교환가치로 환원된다(소외)고 이야기한 사람은 마르크스였다. 오늘날 갑질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사회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갑을관계의 뿌리에는 계급문제가 있다. 흙수저 계급론의 등장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이간질해 분리통치하고 노조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려 온갖 노력을 해온 이 사회의 갑들이 이제는 그렇게 막아온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형성을 더 이상 막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본다. 청년들은 자신들을 프롤레타리아트도 아닌 프레카리아트, 즉 저임금·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계급이라고 명명한다. 불안정한 직업들을 전전하면서 불안한 노동 생애를 날마다 보내고 있는 프레카리아트가 전세계적으로 수십억 명에 이른다. 대부분은 ‘도시 유목민’처럼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 미래에 어디에 있을지도 모른 채 살아간다. 이들은 정체성도 없고, 일정한 직업도 없고, 자기 인생의 미래를 설계하지도 못한다. 프레카리아트는 일자리를 갖고 있어도 대부분 회사의 복지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며, 국가가 제공하는 공적연금 복지도 제한적으로만 받는다. 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 없이 비정규직으로 서비스 섹터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얼마 전 숨진 김용균 씨는 프레카리아트의 표상과 같다. 관건은 조직과 연대다. 흙수저들이 자신들의 계급성을 자각하고(자조와 유희가 아니라) 조직화를 통해 목소리를 키운다면 어떤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그들이 정치적으로 단결하여 계급의 판을 뒤집어 버린다면, 마침내 그들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촛불을 들어 정권을 바꿔낸 경험이 있지 않은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노회찬과 김용균의 영전에 국화꽃 대신 우리는 무엇을 바쳐야 하는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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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도르프교육학의 창시자이기도 한 루돌프 슈타이너가 사용하는 ‘반사회적 힘’이라는 용어는 도덕과는 무관하다. 사회적 힘이 사람들을 하나로 결속시킨다면 반사회적 힘은 각자를 개별적 존재로 서 있게 한다. 슈타이너는 현대사회에서 인류는 더욱 개별화되며 자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다만 그 속도가 지나쳐 사회적 힘과 반사회적 힘의 균형이 깨지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본문으로]
정유라는 입시를 치르기전부터 어느 대학에 들어갈지 알고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과제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도 학점이 나왔다. 그가 승마 선수로 훈련할 때 탔던 말은 삼성이 사준 것이었고, 삼성은 이재용 승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근혜의 최측근 최순실에게 로비를 집중했다. [본문으로]
이에 대해 소설가 박민규는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다”라고 진술한 바 있다.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김애란, 김행숙 외, 『눈먼 자들의 국가』, 문학동네, 2014) [본문으로]
상속·증여가 전체 자산 형성에 기여한 비중은 1980년대 연평균 27.0%에서 2000년대 42.0%로 크게 늘었다. 국민소득 대비 연간 상속액 비율도 80년대 연평균 5.0%에서 2010~2013년 8.2%로 증가했다. (김낙년, 2017) [본문으로]
그는 1조 2000억원 상당의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부진의 재산 중 86억원을 임우재에게 지급하게 했다. 그 정도면 위의 수저구분표에 따르면 그 역시 다이아수저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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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steinerinstitute.tistory.com/entry/한국사회의-갑질문화와-계급문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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