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wan's post
제르미날
인터넷에 남겨진 서평들을 읽어보면 너무 미흡해서 작가가 아니라 내가 다 서운할 때가 있는데 어제가 그랬다.
젊은 시절 절망의 정점에서 읽었던 책이라 기억이 남는다. 일단 이 책이 엄청 재밌어서 읽는데 열중해서 우울이나 절망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다. 재미있는 게 역시 최고.
지금 앞날이 안 보이고 우울한 분에게 강추
어이없는 건 이 책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본인도 "같은 처지"라는 걸 모르고 있는 거 같다. 아니면 그렇게 굳이 생각하는 걸 피하고 있겠지. 여기 탄광노동자를 불쌍하게 보고 쓴 글 보고 답답.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대량생산으로 굶지 않고. 정크푸드를 먹을 수 있다.
사실 난 이 책을 읽었을 때 마르크스주의나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으면 마르크스 주의인가? 하나같이 서평에 그런 말이 써 있다. 어째 이런 것도 이렇게 획일적인가.
에밀 졸라는 그 당시 그 시대에 자기가 목도한 것을 진술했다. 그때는 디킨즈나 이런 작가들 모두 생생하게 기자의 눈으로 그린 것이라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에밀졸라는 획일적이거나 진부한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 시각이나 보고서들이 얼마든지 있는 지금 그걸 마르크스주의 통속극으로 읽을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이 책에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 뿐 아니라 겉으로는 화려한 생활을 하며 배불리 먹고 있는 부르조아 계급들의 부패와 무지 인간적 고통도 직시하고 있다.
개인사로 복잡한 고통을 겪고 있던 한 부르조아는 노동자들이 봉기가 일어나 악질 중간관리자를 죽이고 그의 고환을 깃발에 걸고 자기 집 앞에 몰려와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도 자기 고통이 너무 심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넨 너네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겠지? 너희들은 내 고통을 아느냐'
나는 이 책을 읽고 나라는 존재가 역사의 큰 소용돌이 속의 작은 비늘 하나 였다는 것을 느꼈고 내가 거기서 겪었던 고통과 한숨에 사로잡히지 않고 거대한 흐름으로 그걸 "부감"으로 넓게 조명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요새 말로 "힐링"도 되었다. 그때 시작했던 수영과 함께 머리 속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은 후로 내가 억울하다던가 내가 상처 받았다는 그런 단어를 쓰지 않게 되었다.
책을 읽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그 책이 보여주는 역사와 격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다면 뭣 하러 그 시간을 독서에 써야 하는 건가.
Sejin Pak
소설을 잘 읽지 않아서 몰랐는데 졸라의 소설 중에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 되어있군요. 영화와 드라마등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호주다문화TV방송에 프랑스 드라마 (2021년) 6편 짜리가 온디멘드로 있군요. ㅠ
3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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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Dwan Lee
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2호선 순환선을 타고 계속 내릴 정거장을 놓쳐서 두바퀴를 돌 정도로 ㅋㅋ
그땐 또 읽을 게 지금 처럼 많지는 않았어요.
3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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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Sejin Pak
신문 Guardian에 이런 평이 나왔네요마지막 부분 구글번역] ----------
그 모든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캐릭터는 황폐화된 지구를 배경으로 투영하면서 신화적인 지위를 갖습니다. 우리 세대의 Germinal은 광부의 역사적 착취에 대한 현실주의(또는 자연주의) 소설적 기록 그 이상입니다. 19세기 프랑스 자본주의의 정신적, 경제적 영향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에 대한 진행 보고서 그 이상입니다. 나중에 프로이트나 로렌스를 다르게 선점하게 될 아이디어의 전조 이상입니다. 이는 로베스피에르가 1794년(10 테르미도르, 2년) 단두대 아래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이후 수십 년 동안 프랑스 국가를 계속 혼란에 빠뜨린 혁명적 유산에 대한 증거 그 이상입니다.
우리의 관심에 대한 이러한 모든 실질적인 주장 외에도 Germinal은 인간이 지구와 가지고 있는 애증 관계에 대한 비유입니다. 죽음의 딸랑이는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충동과 대위법으로 지구를 통해 울립니다. 계속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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