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의 한국 ② 낯선 땅, 낯선 죽음] "3D가 아니라 4D죠···죽도록 일했으니까요" - 경향신문5%의 한국 (2) 낯선 땅, 낯선 죽음"3D가 아니라 4D죠···죽도록 일했으니까요"
김원진 기자입력 : 2022.03.30
지난 2월10일 경기 수원시의 화장장에 마련된 필리핀 이주노동자 삼블라세노 제이의 유족 대기실. 제이의 관이 소각로에 들어가자 창문 커튼이 내려졌다. 제이는 1월20일 근무 도중 가슴 통증을 호소한 지 12시간 만에 숨졌다. 사인은 ‘심근경색 의증’이었다. 건강한 몸으로 입국했다가 갑작스럽게 숨지는 이주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김창길 기자
최근 5년(2017~2021년)간 한국에서 숨진 태국 국적 이주민 535명의 사인 중 ‘미상’이 213명(39.8%)으로, 질병사(36.2%)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년(2020~2021년)간 한국에서 취업비자를 받은 베트남인 사망자 중 3분의 1(14명·33.3%)은 ‘돌연사’로 집계됐다. 올해 1월 한 달간 숨진 필리핀 국적 이주노동자 5명 중 3명의 사인은 갑작스러운 심정지였다.
경향신문이 태국·베트남·몽골 등 3개국의 한국 주재 대사관, 한국 법무부 등을 통해 입수한 국내 체류 외국인 사망 통계를 분석한 결과다. 사인 미상자들은 대부분 취업을 위해 체류 중이었다.
법무부 통계를 보면 2017년부터 5년간 선원 비자(E-10)로 들어왔다가 사망한 미얀마·베트남·인도네시아·중국 이주노동자 98명 중 62명(63.3%)이 ‘사인 미상’으로 확인됐다. 경찰청의 2017~2020년 외국인 변사 통계에서도 전체 변사자 2259명 중 588명(26%)이 사인 미상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통계를 종합하면 국내에서 체류하다 사망한 외국인 중 3분의 1가량이 원인 모르게 갑자기 죽은 셈이다. 이는 2020년 한국에서 사망한 30만4948명 중 3만1801명의 사인이 ‘원인 미상’(10.4%)으로 분류된 것에 비해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신체검사를 거쳐 입국한 건강한 이주노동자가 갑작스럽게 죽는 이유는 뭘까. 경향신문은 25건의 사인 미상 혹은 돌연사 사례를 취재했다. 이 중 21건은 장시간 노동, 열악한 근무환경이 원인으로 추정됐다.
숨진 이주노동자, 3명 중 1명은 ‘원인 모름’
가혹한 노동, 그 끝이 죽음이어도 침묵당하는 이주노동자들
플라스틱 용기 만드는 회사에서
10년간 일한 필리핀 출신 제이
과로사 정황에도 사인 언급 못해
노동부는 근무표 제출 권한 없고
해당국 공관은 ‘외교 문제’ 우려
일용직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숨져도 발견 늦어 규명 어렵고
사업주는 산재 얘기 나오면 ‘냉담’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병원을 찾았다. “아주대로 가야 해요.” 삼블라세노 제이(47)가 회사 동료에게 말했다. 운전대를 잡은 동료는 의아해했다.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한림대 성심병원을 놔두고 아주대병원이라니. 아주대병원은 회사에서 10㎞나 떨어진 터여서 차로 20분은 가야 했다.
제이는 미등록 체류 상태이기에 건강보험이 없었다. 지난 1월 초 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간 지 하룻밤 만에 숨진 방글라데시 미등록 이주민에게 1777만원이 청구된 일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주대병원은 종교기관과 협약을 맺어 미등록 이주민들을 저렴하게 진료한다.
지난 1월20일, 제이는 아침 출근 직후 가슴에 통증을 느꼈다. 동료들이 눈치챌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병원은 가지 않고 견뎠다. 지인들은 “당일 진료를 예약하기도, 일을 미루기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동료가 앞장서 입원 수속을 밟았다. 제이도 뒤따라 들어갔다. 통증이 시작된 지 12시간이 지난 때였다. 하지만 병상에 누워보지도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심폐소생술도 소용없었다. 의사는 다음날 오전 1시10분 사망선고를 내렸다. 사인은 ‘심근경색 의증’, 심근경색이 의심된다는 뜻이다.
경향신문은 낯선 땅에서 원인불명의 죽음에 이른 이주민 노동자 25명을 추적했다. 신체 건장한 이들이 한국에 온 지 몇년 만에 망가져 까닭 모르게 스러지는 이유는 뭘까. 가혹한 노동을 용인하고 구조화하는 제도와 관행, 사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여건이 이유로 꼽힌다. 한때 내국인이 일하다 다치고 숨지던 작업장을 이어받은 이주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된 채 고된 노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삼블라세노 제이의 지인들이 지난 2월10일 경기 수원시의 화장장에서 제이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있다. 코로나19로 그의 아내는 입국하지 못했다. 아내는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으면 제이는 늘 피곤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죽음을 캐묻지 못하는 이유
“갑작스럽게 떠난 이유를 온전하게 알지 못하지만…시크하지만 사려 깊던 마음을 우리는 떠나고 나서 기억하게 됩니다.” 지난 2월10일 오후 3시, 경기 수원시의 한 성당. 제이의 장례미사가 열렸다. 이주민 60여명이 모였다. 추모객들은 “일도, 음악도, 농구도 열심히 했던” 제이의 생전 모습을 영상으로 지켜봤다.
필리핀 선교사 갈랑 존스(56)가 휴대전화에서 화상 회의 앱을 켜 영안실과 화장장, 장례미사가 열린 성당을 차례로 비췄다. 유족과 지인들은 비대면으로 장례식을 지켜봤다. 필리핀에 있던 제이의 부인은 입국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양성 판정이 나와 임시 입국 비자를 받지 못했다.
유족을 대신해 화장을 치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병원은 ‘영문’ 사망진단서를 발급했는데 화장장에선 ‘국문’ 사망진단서만 받는다고 했다.
유골 송환 시 필요한 증명서를 요청했더니 ‘장례식장→응급실 원무과→응급실 간호과→상담센터’ 순으로 답변을 떠넘겼다. 제이는 2월28일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제이는 플라스틱 용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회사는 제몫 이상을 해내는 제이를 신임했다. 다른 회사 기계까지 고쳐줄 정도로 숙련이 쌓였다. 그의 아내는 “제이가 보통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7시까지 근무했다. 오늘 하루 어땠냐고 물으면 늘 피곤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토요일 출근도 잦았다. 오후 9~10시에 퇴근하는 날도 많았다. 고용노동부의 과로 인정 기준(발병 전 12주간 평균 주 60시간 초과 근무)에 비춰보면, ‘과로’와 제이의 사망 간 연관성을 의심해볼 수 있다.
회사에 장례처리를 의존해야 하는 처지여서 유족과 대리인은 사인을 캐묻지 못했다. 회사는 장례비용을 전액 부담했고 유골함도 “가장 좋은 걸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회사 지원이 끊길까 과로사 이야기도 꺼낼 수 없었다. 갈랑 존스는 “도의적 책임을 지는 회사는 종종 있지만 산재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분위기가 바뀐다”고 했다.
이국 땅에서 황망한 죽음을 접한 유족은 “이미 다 지난 일”이라며 부검 없이 시신 인계를 요구하기도 한다. 방글라데시 이주민 커뮤니티를 통해 지난 한 해 동안 부검 없이 장례가 치러진 이주노동자 3명의 돌연사를 확인했다. 각각 경기도의 가구 공장, 원단 공장, 플라스틱 공장 기숙사에서 숨졌다. 20대 1명, 30대 2명이었다. 평소 건장했던 이들이 잠자다 숨진 사례들이다. 사인은 알 수 없었다.
죽음에 침묵하는 이들
죽음 이후를 챙기는 것은 주로 이주민 커뮤니티다. 페이스북이나 텔레그램에는 발견 당시의 주검 사진이 흑백처리돼 올라온다. 사진에 ‘R.I.P’(Rest In Peace·고이 잠들기를)가 워터마크처럼 찍혀 있다. 이주민들은 갑작스러운 사망을 알리며 모금을 진행한다.
캄보디아에서 온 싸으(28·가명)는 지난해 2월4일 비닐하우스 안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숙소에서 자다가 숨졌다. 그는 경기 여주시 버섯농장에서 일했다. 싸으의 페이스북에는 사망하기 한 달 전 함박눈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지인들은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하루 9시간 일하고, 한 달에 이틀 쉬었다. 일이 없을 땐 다른 농장으로 보내졌다. 그곳에선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손에 쥔 돈은 한 달에 130만~140만원.
사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농장주는 언급을 꺼렸다. 지난해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중 12명의 죽음이 ‘사인 미상’으로 처리됐다. 2020년에는 19명의 사인이 규명되지 않았다.
주한 베트남 자선 봉사단(이하 봉사단)은 지난해 1월부터 이달까지 숨진 베트남 이주노동자 9명의 장례를 치렀다. 6명이 사인 미상이었다. 최근에는 르엉(36·가명)의 시신을 본국으로 보냈다. 르엉은 지난 2월3일 경기 광주시의 공장 기숙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입김이 서릴 정도”로 실내가 추웠다. 시신 옆에는 먹다 남은 베트남식 고기 요리가 차갑게 굳어 있었다. 봉사단은 “평소 난방이 제대로 가동됐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한국에 있는 해당국 공관은 외교 문제로 번질까 조심스러워한다. 경향신문이 26개국의 주한 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사망통계를 요청했으나 4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대사관들은 “개인정보여서 밝히기 어렵다”거나 “본국 외교부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며 응하지 않았다. 고용허가제 쿼터도 걸림돌이다. 섹알 마문 이주노조 부위원장은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가 쿼터 배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한국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통해 스리랑카, 필리핀 등 16개국 이주노동자의 입국을 허가한다. 지난해 쿼터는 5만2000명으로, 쿼터 안에서 나라별 인원이 정해진다. 이주민들도 자국의 일자리가 줄어들까봐 문제제기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주민 지원단체들은 주로 사고 산업재해를 다루느라 원인 미상의 죽음까지 대응할 여력이 부족하다. 이주단체 활동가들은 “돌연사를 접하더라도 깊게 들여다보지 못한다”고 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2021년 전체 중대재해 분석 결과’를 보면, 2021년 670건의 중대재해 중 이주노동자 비율은 11%가 넘었다. 국내 임금 노동자 중 이주노동자 비율이 약 4%이니 이주노동자의 산재 비율은 내국인보다 3배 가까이 높은 셈이다.
사업주의 ‘비협조’도 난관이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소장은 “돌연사는 사업주가 딱 막아서면 접근 자체가 어렵다”고 했다. 산재 심사에서 과로사로 인정받으려면 사망 전 근무시간 확인이 중요하다. 하지만 농어촌이나 소규모 사업장은 노동시간을 꼼꼼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근무표 제출을 강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 각국 대사관에서 요구해도 “근무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버티는 업체가 많다”(정해명 노무법인 상상 노무사)고 한다.
사진 크게보기제도 바깥의 죽음
몽골인 벌어르마(47)는 지난해 8월7일 한국을 찾았다. 동생 둘거(35·가명)가 갑작스럽게 숨진 이유를 직접 밝혀내려 입국했다. 한국에 있는 먼 친척, 통역사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둘거는 지난해 6월8일, 몽골에 있는 조카와 마지막 영상통화를 한 뒤 연락이 끊겼다. 경찰은 지난해 6월29일 오전 10시7분쯤 충북 음성 혁신도시 외곽의 한 원룸에서 그의 시신을 찾아냈다. 주변에 카센터와 편의점 하나뿐인 외진 동네였다. 사체검안서에는 ‘부패상태 있음’ ‘구더기 활동 있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죽음은 발견도 더디다. 일용직 일자리를 옮겨다니는 경우가 많아 며칠 얼굴을 비치지 않아도 챙겨줄 동료가 없는 탓이다. 방치된 시신은 부패한다. 사인이 ‘미상’으로 남겨질 가능성 또한 커진다.
하루 12시간 근무…“3D가 아니라 4D죠, 죽도록 일했으니까요”
‘고용허가제’ 기간 제한에 발목
한국인 기피 일, 장시간 혹사
‘주 60시간 근로’ 내국인의 2배
뇌경색 판정받은 필리핀 마그노
일하다 쓰러진 뒤 반신불수 돼
“근골격계 질환, 산재 접근 안 돼”
작년 질병 산재 신청 이주노동자
전체 신청자의 1.5%에 불과해
둘거는 인력사무소의 소개를 받아 비닐하우스 조립하는 일을 해왔다. 부검 결과는 ‘사인 미상’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패로 인해 외상이나 질병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유족이 곁에 없으니 죽음의 원인, 보상의 실마리가 될 유품도 관리되지 않는다. 둘거는 가족과 통화할 때마다 임금이 체불됐다고 호소했다. 장례 과정에서 둘거의 근무일지가 담긴 수첩이 사라졌다. 임금체불 정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였다. 벌어르마는 이달 초 1200만원가량의 임금체불 의혹을 조사해달라며 죽은 동생 대신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비자를 받았더라도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에서 일하다 몸이 상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지난 2월7일 오후 8시30분쯤 까오(29·가명)가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생후 3개월 된 아이와 인사를 나누고 쓰러지듯 잠들었다.
베트남에서 온 까오는 지난해 숙련기능인력비자를 취득해 전남의 한 공장에 다녔다. 이날까지 24일간 주말 없이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최소 주당 84시간이다. 주야간을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일한 탓에 생체리듬도 깨졌다.
다음날 오전 4시20분, 아내가 잠에서 깬 아이를 달래다 ‘켁켁’ 소리를 들었다. 까오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사망진단서에 기재된 사인은 ‘불명’이다.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과로의 흔적은 임금명세서에도 선명했다. 까오의 지난해 연말 급여지급명세서에는 주간연장수당 9일, 야간연장수당과 심야수당이 각각 12일씩 붙었다. 여기에 100만원이 넘는 ‘생산력 증진수당’이 추가됐다. 추가 노동시간을 감추려 사업주가 생산력 증진수당을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시간 단축이 제도화됐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 구조에 갇혀 있다. 이주노동자 중 주 60시간 일하는 비율(29.8%)은 내국인(14.7%)에 비해 2배가 넘는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주노동자 건강불평등 보고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이나 농어촌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사각지대’다. 상시근무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은 주 52시간, 연장근로제한 등에서 예외가 적용된다. 한 작업장에서 50명 넘게 일하지만 ‘5인 미만’ 하청회사로 쪼개는 편법도 동원된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지난해 1월 내놓은 ‘한국 이주노동자 실태와 고용허가제의 현황’을 보면, 직원이 ‘10~29명’인 근무지가 35.8%로 가장 많았고 ‘5~9명’(22.2%), ‘4명 이하’(13.1%) 순이었다. 까오가 머문 지역에선 4곳 중 1곳(24.7%)이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마그노(왼쪽)가 지난 19일 경기 포천시의 숙소에서 부인과 사진촬영에 응했다. 마그노는 폐플라스틱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해왔다. 2020년 일하다 쓰러진 뒤 뇌경색으로 왼쪽 몸을 절반만 쓸 수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슬로 데스’의 경로
고용허가제로 입국하는 이주노동자는 건강을 입증해야 한다. 신체검사는 물론 악력·배근력 측정까지 받는다. 평균 연령은 2020년 기준으로 27.8세, 별로 아프지 않을 나이다. ‘튼튼한 몸’으로 입국했지만 귀국이 다가올수록 그들의 몸은 망가져간다. 미국의 의료 인류학자인 세스 홈스는 이주노동자의 건강 악화를 ‘슬로 데스(Slow death·서서히 죽어간다)’로 정의했다.
마그노(42)는 8년 전 필리핀에서 왔다. 경기 포천시의 폐플라스틱 공장에서 줄곧 일했다. 이주노동자 4명이 함께 일했다. 평일에는 하루 12시간 노동했다. 토요일 근무도 많았고, 한 달 꼬박 일할 때도 있었다. 평균 근무시간이 주당 70시간을 넘었다. 사장은 미등록 신분인 마그노에게 급여명세서 없이 월급을 줬다.
“3D(Difficult·Dirty·Dangerous,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가 아니라 4D예요. 죽도록(Deadly) 일했으니까요.” 마그노가 말했다. 매일 폐플라스틱 5t을 삽으로 퍼나르고 저어 녹였다. 겨울에는 폐플라스틱이 딱딱해져 힘이 더 든다. “폐플라스틱을 녹일 때 나오는 증기를 마셨더니 눈에까지 염증이 나타나더라고요.” 공업용 마스크도 없이 일했다. 공장에 딸린 기숙사에서 밥먹을 땐 “플라스틱 씹는 맛이 났다”. 2020년 12월19일 오전, 폐플라스틱을 옮기다 쓰러진 뒤 다리를 움직이지 못했다. 뇌경색이 왔다. 현재 왼쪽 몸을 50%만 쓸 수 있다. 지난해 2월 산재 신청을 했지만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필리핀 이주노동자 마그노가 지난 19일 경기 포천시의 숙소에서 방문객을 위해 커피를 타고 있다. 그는 뇌경색이 발병한 뒤 거동이 불편하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이주민의 ‘질병 산재’는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다. 아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권동희 법률사무소 일과사람 노무사는 “과로사나 근골격계 질환은 정보 부족 등으로 산재에 접근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루 6시간 넘게 쪼그려 앉은 채 반복 작업을 하다가 몸을 다치고도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귀국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주민의 낮은 질병 산재 접근성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질병 산재 신청을 한 이주노동자는 371명으로 전체 신청자(2만4500명)의 1.5%였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3명뿐이었다. 지난 5년간(2017~2021년) 과로사로 산재를 신청한 외국인은 연평균 27명에 불과했다.
지난달 27일 경기 의정부시 녹양동 성당 구내 이주노동자 지원센터를 찾은 마그노가 아내의 부축을 받아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아픈 몸’은 누구의 책임인가
일부 한국 주재 공관이나 사업주들은 이주민의 돌연사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곤 한다. “값싼 소주와 삼겹살을 먹고 퇴근한 뒤에도 게임을 하느라 쉬지 못한 탓”이라는 식이다. 장시간 노동도 “돈 벌 욕심에 스스로 몸을 축낸 까닭”이라고 한다. 연교차가 심한 기후도 돌연사의 원인으로 꼽는다. 이들이 가혹한 초과노동으로 내몰리는 구조는 주목받지 못한다.
이주노동자의 ‘낯선 죽음’은 ‘노동 구조’와 관련이 크다. 고용허가제는 과로 노동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면 4년10개월씩 두 번, 최장 9년8개월 일한다. 체류 기간이 제한된 만큼 있는 동안 최대한 벌려는 욕구가 작동한다.
섹알 마문 부위원장은 “사업주 눈치도 봐야 하고 기간 제한이 있으니 있을 때만큼은 죽도록 달린다”고 말했다. 지난 2월13일 충북 음성의 전자부품 공장에 다니다 숨진 후세인(33·가명)은 ‘주 100시간’ 일했다. 일과 시간에 13시간 근무하고, 퇴근 이후에는 빵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사업주의 부당 노동행위가 발생해도 사업장 변경은 극히 제한적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영세 사업장은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장기간 확보해야 한다”며 이주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제한 조항이 합리적이라고 결정했다.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이주노동자가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결론”(정진아 법률사무소 생명 변호사)이었다.
등록 이주노동자마저 꺼리는 저임금·장시간 사업장은 제도 바깥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채운다. 불안정한 신분 탓에 사업주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저항하기 어렵다. 급여가 적으니 퇴근 이후나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한다. 멀쩡한 몸이라도 상하기 쉽다. 코로나19로 일손이 부족해지자 이주민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이 다소 올라갔지만, 일도 그만큼 더 힘들어졌다. 사람이 부족하니 5일 걸리던 일을 3~4일에 끝내려는 농장이나 사업장이 늘었다.
노동조건이 나쁜 사업장들은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노력 대신 ‘노동 피라미드’의 밑바닥에 있는 이주노동자를 갈아넣는 방식으로 버틴다. 사업주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며 미등록 이주노동자 고용을 묵인해줄 것을 공공연히 요청하고, 당국도 이를 묵인한다. 지난해 7월에는 택배 상하차 업무에 이주민들의 고용을 허가했다.
사진 크게보기이주노동자가 ‘질 낮은 일자리’를 메우는 것일 뿐,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구조가 아니다. “과거 내국인이 다치고 죽어가던 일자리를 이주노동자가 채우고 있는 셈”(이보은 웅상노동인권연대 활동가)이다. 농장에서 일하기로 하고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이 작업장을 이탈해 조건이 나은 제조업 공장 등으로 옮겨가는 사례들은 이 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가끔씩 기숙사에서 울어요.” 하산(28·가명)이 말했다. “기계도 고장나면 수리하는데 사람은 고장나도 고쳐주질 않아요.” 하산은 전북의 한 석재공장에서 일한다. 20㎏이 넘는 돌덩이를 하루 1000개 이상 손으로 나르는 고된 작업이다. 짐대(팰릿)와 지게차 사이를 오가며 무릎·허리를 구부렸다 폈다를 종일 반복한다. 관절이 욱신거리면 파스로 버틴다. 야근에 주말근무까지 하니 병원 갈 틈이 없다. “이곳의 이주노동자 70~80%가 일자리를 옮기고 싶어한다”(김호철 성요셉 노동자의집 사무국장). 이주노동자들이 비운 자리는 다른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채운다.
■기획취재팀 배문규·김원진·최민지(스포트라이트부) 이두리(스포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