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5, 2021

Namgok Lee 협동조합 좋은 취지로 시작하더라도 망해버리면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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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2 h  · 
어떤 협동조합 강좌에서 몇년전 내가 한 이야기다.
<<협동조합이 아무리 좋은 취지로 시작하더라도 망해버리면 그만이다

내부적으로는 경쟁과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동기를 발전시키는 것이 협동조합의 본령이지만, 외부적으로는 시장 안에서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특히 일반적으로 이윤과 경쟁을 동력으로 하는 다른 사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더 큰 비전을 그리며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사실 지금의 높은 생산력과 소비수준의 근저에는 ‘경쟁’이 있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누군과와는 같이 해야 한다. 그런데 오랜 세월 늘 부족한 재화를 놓고 다투다보니 이 ‘경쟁’이 지배적인 인간 행위의 바탕처럼 되어버렸다. 이제는 재화가 풍부해졌는데도 이 경쟁의식은 변하지 않고, 더 많은 물질에 대한 욕구와 결합하여 ‘무한경쟁’을 찬미하는 지경에 왔다.
그런데 ‘경쟁’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이것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각하고 있다.  이것을 자각하고 삶 자체를 바꾸는 결단을 내리는 과정으로 협동조합을 선택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사실 나는 이런 동기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는 중견기업들이 출현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는 협동하자!’고 해서 경쟁을 넘어서지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협동할 수 있는 사람, 즉 협동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로 되는 것이 먼저 되어야 비로소 협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협동이 즐거워야 생산력도 떨어지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자기와 다른 방식으로 일하는 다른 사람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恕)이 먼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일에 ‘자발적으로 전념’할 수 있게 된다. 공자는 이것을 충(忠)이라 부르고, 15세기의 에크하르트는 이것을 ‘거룩함’이라고 부른다.
무엇이라 부르건 이 두 상태가 만나는 것이 협동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부자유한 협동, 즐겁지 않은 협동은 공허한 것이다. 좋아서 즐거워서 하는 협동이 아니면, 마치 주인 없는 공사처럼 생산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 마음을 연습하고 그것을 진척시키는 것이 협동조합의 생산력과 직결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자기실현의 노동’이 ‘경쟁에 내몰려 쥐여 짜내지는 노동’보다 즐거운 것은 당연하지만 생산력이 나올 수 있을까?
이것은 지난 한 세기가 실험했지만, 만족스러운 해답을 얻지 못한 과제다.
아무리 이상적인 시스템을 만들더라도 생산력이 나오지 못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이 생산력은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최근 경험했거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다.
“요즘 여행도 많이 하고, 남자들끼리만 살다 보니 식당을 많이 가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처음 가보는 식당이라도 잘될지 어떨지가 대강 알 것 같은 느낌이다. 어제 설렁탕집에서도 처음 신경 쓰인 것이  젊은 청년의 태도였다. 아들인 것 같은데,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고, 그 일에 붙고 있는가였다. 처음에는 좀 걱정스러웠는데, 나중에 마음이 놓였었다. 받아들이는 것이 '서(恕)'이고, 붙는 것이 '충(忠)'이다. 공자가 일이관지(一以貫之;하나로 꿰뚫음)하였다는 서와 충이 어려운 관념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그 상대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서'이고, 자기 역할에 즐겁게 전념하는 것이 '충'이다. 
음식에 정성이 묻어난다. 밑반찬이 좋다. 맛이 있다. 이런 것들은 그 결과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 식당은 성공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잘하지 못할 때는 일반적인 자본주의 기업에서는 불이익을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는 비난 받거나 왕따당하거나 해고된다.
그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이나 집단이라면, 그 일이 그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이거나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라서 그가 힘들어하는데 마음이 간다.
어떻게 하면 그가 적성에 맞고 편하게 할 수 있을까, 알맞는 일도 알아보고, 노동조직이나 분업도 바꿔보는 방향으로 마음이 나간다.
이런 마음이 서로 작용하는 곳이라야 자본주의의 결함을 넘어설 수 있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경제는 책임이 약하고 느슨해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곳이 아니라, 이런 마음이 사회적 공기로 작용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올 세상은 힘든 노동은 인공지능에 의한 기계화 자동화로 이루어질 것이다.
분배 문제만 원활하게 이루어지면(나는 개인적으로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는 자본주의와 어울리지 않고 무소유 사회 시스템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서와 충이 보편적인 덕성으로 될 것이다.
아마도 소규모의 농업이나 수공예가 가장 인기 있는 일자리 가운데 들어갈  것이다.
자연과 노동의 교감, 아름다움과 노동의 결합, 놀이와 노동의 일치 등 꿈에 그리던 일들이 이루어질 기술적 수준은 머지않아 가능할 것인데, 문제는 사람들의 의식(意識) 지체(遲滯)라고 생각한다.
인문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종교의 제자리 찾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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