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중국>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5827533 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가 많아서 한번 사읽을 생각이기는 한데, 내가 보기에 현대의 중국을 이해하는데 있어 중요한 책 중 하나가 원톄쥔, 왕솨이의 <삼농과 삼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2351469 이다. 중국 농촌에 대한 이해가 없이 현재의 중국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중국인들 스스로가 농촌, 농민, 농업의 문제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를 넘어서 중국의 '일대일로'를 삼농의 문제와의 연관 속에서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원톄쥔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현실인식에는 두 가지의 주요한 축이 있다.
1) 현행 국제질서 속에서의 중국의 주권의 제한과
2) 그러한 주권의 제한을 강제하는 미국식 금융자본의 질서가 그것들이다.
미국의 금융자본이 만들어낸 유동성의 과잉은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중국의 화폐발행을 유도하고, 그에 따라 "외래적인 인플레이션" 속에서 거시경제가 교란된다. 게다가 미국이 국채발행을 하는 만큼 무역흑자국인 중국은 국채를 끊임없이 사들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주권이 제한(된다고 해석)된다. 중국은 미국과의 긴밀한 경제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으로 주권이 제한당하고 있는, 예속된 형태로 정치적 관계를 맺고 있다. 정치적 예속이 경제적 협력의 근간이 되는 상황이라는 게 원톄쥔의 입장이다. 원톄쥔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국은 "수동적 친미(親美)"를 행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원톄쥔은 "두 다리로 해외진출"이라는 희한한 대안을 내놓는다. 한쪽 다리로는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재의 경제성장을 유지하지만, 다른 한쪽 다리로는 '아시아-아프리카 대륙횡단철도'를 건설하여 새로운 경제권을 형성하자. "미국의 대서양 - 태평양의 달러 호수"에서 벗어날 중국 - 러시아 - 인도라는 삼각형을 잇는 유라시아 대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웅대한 포부가 드러난다.
미국의 금융자본에 약탈되는 지난 20년의 역사를 끝내고 중국의 두 발로 일어서자. 일대일로는 과거 몽골제국이 만들었던 해양실크로드와 육상실크로드의 결합을 보다 광대한 규모에서 재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이다.
지난 세계자본주의 300년의 역사에서 해양세력에 의한 대륙세력의 포위는 반복된 것이었다. 아니, 원톄쥔에 따르면 "서구적 근대" 그 자체가 대륙세력에 대한 해양세력의 우위, 제압, 투쟁 등의 역사였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근대국가를 묘사한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사실은 '바다의 괴물'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근대국가에 의해 평화가 유지되는 '리바이어던'적 상황이 붕괴했을 때 무엇이 나타나는가? '베헤모스'라는 "육지의 괴물"이 나타난다. 질서가 무너진 혼돈의 베헤모스적 상황을 리바이어던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 리바이어던과 베헤모스 간의 복합적 관계가 사실상 근대세계의 전개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의미심장한 지적이다.
대륙세력인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해양세력인 미국의 대서양 - 태평양 포위망을 뚫어내야 한다. 크림반도에서 막힌 러시아가 동쪽으로 나아가는 신新동진정책을 펼치면서 중국의 서진과 맞닿을 수 있는 접점이 생기게 되었다. 중국은 과잉축적된 자본을 대외로 수출하는 것과 함께 세계사의 전개 과정에 있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반복된 대립을 끝내야 하는 과제까지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해양 - 대륙 실크로드가 활성화되었을 때 중국은 번성했고, 그것이 막히게 되었을 때 중국은 약해졌다. 일대일로의 성패에 그야말로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일대일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적 '담론'에 대항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미국식 세계화가 금융 - 전쟁의 수출을 통한 지역형성으로 나아갔다면, 중국은 평화발전을 내세워 그것에 대항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삼농 - 삼치'가 개입하게 된다.
농업, 농촌, 농민이라는 축을 통해 '농민공'으로 상징되는 중국식 자본주의의 어두운 측면에 대한 실질적 해소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농촌의 다원적 경험에 기초해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할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 수 있다. 적어도 원톄쥔은 그걸 지향하고 있다. 삼농주의에 입각한 공동체적 가치의 재구성, 새롭게 구성된 농촌공동체를 통한 생태문제의 해소, 이를 종합한 "생태문명" 개념의 제시 등을 원톄쥔은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민족주의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그로서 그는 농업의 쇠퇴라는 중국 내부의 문제의 해결을 통한 생태위기의 극복이라는 인류 보편의 문제 해결로 나아가고자 한다. 중국식 민족주의의 지향이 국제주의로 전화되고, 그에 기초해 미국식 자유시장경제 - 자유민주주의가 낳은 파국을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문명단계를 열겠다는 포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 기반이 되는 이론적, 실증적 분석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중국혁명의 시작점이었던 농민계급은 중국혁명의 현재를 여전히 규정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중국>이 중국 농촌의 황폐화가 중국 자본주의를 '중진국의 함정'에 빠뜨렸다고 고발하고 있다면, 원톄쥔의 <삼농과 삼치>는 그 문제의 해결을 통해 어떻게 중국이 보편의 제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중국 사상가의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둘을 비교하면서 보아야 중국의 현재를 정확하게 볼 수 있지 않나 싶어 추천글을 가볍게 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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