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9, 2022

하버마스 ㅣ동아시아의 시민사회 건설 公民社會建設 Yuik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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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와 동아시아의 시민사회 건설 公民社會建設
2000년 참여사회 김호기 교수의 글. 아주 어렴풋이 이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당시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참여연대의 회원이었다. 나는 너무 바빠서, 그냥 회비만 내고 있었지만, 어머니를 꼬드겨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시게 했다. 그때 안진걸씨가 평간사였는데, 자원봉사 갔다 오시면 안진걸씨 얘기를 많이 하셨다.
당시 이 글을 읽으면서 그냥 난해하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학교에 다닐 때, 사회과학이나 인문학 공부는 거의 하지 못했던 공돌이였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 ㅎㅎㅎ
그런데, 여전히 이물감이 있다. 왜 이런 식의 프레임이 필요하고, 이런 해석이 필요한 것일까?
서구 근대사회와 현대 시민영역의 현실문제를 분석하면서 이런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하지만, 느낌은 잘오지 않는다.
문제는 2000년대 한국에서 이런 분석틀이 얼마나 유효했을까, 지금은 얼마나 유효한가 질문이 생기는 것이다.
갑자기 이 글을 검색하게 된 것은, 중국출신의 인류학자 샹뱌오 교수의 책을 번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된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는 다른 글과 인터뷰에서 중국대륙에 시민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단기적으로는 그다지 효율적이거나 성공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보통사람의 국가이론(2010)

界面:你之前提到,“公民社会”这个词对我们没有什么帮助,是什么意思?
项飚:这个概念主要从欧洲,哈贝马斯那里出来,被认为是资产阶级社会工业化之后一个很重要的变化。1980年代后期,“冷战”末期,东欧用这个词比较多,被认为是结束东欧社会主义一个很重要的原因。“冷战”结束之后,很多人也会考虑怎么培养东欧的公民社会,当时的团结工会啊,等等,都被理解为公民社会。
基本的意思,公民社会,是政治上自由的个人之间的制度化的结合,从而形成和国家的一种制衡力量。
在中国,由于长期的历史,以及短期的革命历史,党和国家在整个社会生活里无处不在的。也有很多人研究,清朝晚期,出现了很多商会,形式上看,像早期的公民社会,资本主义生产方式下出现了自主结社,但是他们跟地方政府都非常紧密。今天在中国,你要形成自主性的空间,作为中国下一步改变的渠道,我觉得是不太现实的,没有基础。
你要问老百姓,“社会”怎么样,他认为社会是一个坏的词儿,年轻人走向社会要小心,是一个危险的地方,有一种很模糊的国家崇拜。如果我们的政治思考不反应老百姓的实际诉求,那就不会有持续的生命力,可能“热”了一阵,就变得茫然、犬儒。
我的意思是,一方面,从学术的角度讲,这个词在中国不能精确地描述历史经验,也不能精确地描述变化态势,另一方面,从策略上讲,中国的政治变化,我个人觉得,不是在党和国家之外,再建立一个公民社会,而是加入到党和国家改革的斗争里面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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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안: 앞서 '시민사회'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무슨 뜻인가요?
Xiang Biao: 이 개념은 주로 유럽, Habermas에서 유래했으며 부르주아 사회의 산업화 이후 매우 중요한 변화로 간주됩니다. 1980년대 후반 '냉전'이 끝나갈 무렵 동유럽에서 이 용어가 더 많이 쓰였으며, 동유럽 사회주의 종식의 중요한 원인으로 여겨졌다. 냉전 종식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동유럽에서도 시민사회를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고, 당시의 연대 등은 모두 시민사회로 이해되었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개인들이 국가에 대항하여 균형을 이루는 제도화된 연합이다.

중국에서는 긴 역사와 짧은 혁명 역사로 인해 당과 국가가 사회 생활 전반에 편재되어 있습니다. 청나라 말기에는 상공회의소가 많았고 형태적으로는 초기 시민사회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하에서 자주적 결사체가 출현했지만 지방정부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자율성을 위한 공간을 형성해야 하는데, 중국의 다음 변화를 위한 통로로서 비현실적이고 근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민들에게 '사회'가 어떤 것인지 물어봐야 한다. 그는 사회를 나쁜 말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사회에 갈 때 조심해야 한다. 위험한 곳이고 국가에 대한 매우 막연한 숭배가 있다. 우리의 정치적 사고가 서민의 실제 요구를 반영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활력이 없을 것이며 잠시 '뜨거운' 시간이 지나면 멍해지고 냉소적이 될 수 있습니다. 내 말은, 학문적 관점에서 이 용어는 한편으로 중국의 역사적 경험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 전술적 관점에서 볼 때 중국의 정치적 변화, 변화의 경향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중국이 당과 국가 밖에서 시민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당과 국가 개혁을 위한 투쟁에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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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한 부분은, 하버마스의 소통과 시민사회이론이 (상당기간은) 중국사회에서 왜 적용할 수 없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장기적인 역사적 전통과 단기적인 사회주의 혁명/군중동원 정치 등. 사회주의 당-국가이든 유교적 가국이든 중국인들의 일상생활에 매우 내밀하게 들어와 있다. 감시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념화된 부분 (좌파이념이 아님!).
72년생인 그는 베이징 대학 사회학과 90학번인데 (한국 기준), 당시 학부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직관적으로 이런 이론들이 당시 중국사회와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하버마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당시 홍콩에서 수입된 社會工作 사회복지 이론들을 들으면서 현실과 상당한 괴리감을 느꼈다고 한다 ( 그로부터 거의 20년후 2008~2010년경에 광둥성 정부가 홍콩의 사회공작 이론을 중국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실제로 적용한다. 이건 우리도 잘아는 중간조직 같은 것인데, 정부가 직접 복지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 단체에 위탁하는 형태이다. 지금은 중국내에서 상당히 보편적인데, 이 정책의 장단점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논의가 돼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광둥성은 지금은 이런 정책에서 발을 빼고 있다. 이유는 계약갱신을 통해 위탁단체가 바뀔 경우 발생하는 정책의 연속성문제를 거론하는데, 또 다른 이유는 홍콩사태와 관련이 있다고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그 당시부터 6년동안 베이징 근교에 위치한 가내수공업단지 마을에서 필드스터디를 하게 된다. 이 마을은 그의 고향출신 사람들이 상경해서 집단적으로 거주하며, 옷을 만들어 팔던 동네이다. 그는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원저우사람이다.

이 마을에는 물론, 장사를 하고 가내수공업 업장을 운영하는 원저우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도 와서 노동자/기술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작성한 민족지를 토대로 석사논문을 썼는데, 이 논문이 단번에 중국 인문학 저작중의 고전으로 인정받게 된다.

중국 인류학/사회학의 태두인 페이샤오퉁이 그의 연구를 인정했다. 그는 중국의 도시화, 산업화를 관찰하면서 농촌의 유동인구가 대도시로 이동해서 일종의 민간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을 관찰, 묘사, 분석한 것이다.
어쨌든 그는 2010년 이후, 자신의 관찰과 이해를 토대로, 하버마스의 시민사회 이론이 최소한 지금 단계에서는 중국에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주장한다.
내가 2015년부터 관찰하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나도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리고, 얼마전 타이완의 사회운동진영이 양안삼지에 공민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펼쳐왔던 활동에 대한 리뷰를 볼 기회가 있었다. 이런 내용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리뷰였다.
소름이 끼쳤다. 타이완 사람들도, 나 자신도 “시민사회”라는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3년전부터 막연히 이게 아니구나 싶긴 했는데, 뭔가 확인도장을 받은 느낌이었다.
내가 이런 식으로 시민사회를 (혹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중화주의자이기 때문이라고 오해할 것 같아서 설명을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2015년에 중국에 건너올 때, 머리 속에 그렸던 그림은 조한이 만든 하자센터와 서울에서 늘 접하던 협치 생태계안에 있는 조직들이다. 서울혁신센터에 위치한 수많은 단체들.
공동체와 생태주의적 요소가 강하지만, 그 기반에는 시민사회 생태계 건설에 대한 신념이 깔려있다. 그런데, 중국 사람들과 함께 투닥투닥 이것저것 하면서, 이 모델이 극소수의 엘리트들을 제외하고는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리고, 사실 더 충격적인 건, 그럼 한국은? 이라는 질문이다. 거리를 두고, 한국사회를 바라보고 중국과 비교하면서, 한국 사람들중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하버마스가 이야기한 시민에 해당하는지 회의를 품게 됐다.
일단 2번 찍으신 분들이 이런 생각에 동의할까? 이미 절반의 한국인들이다.
그리고 1번 찍으신 분들….
위에서 인용한 타이완 다큐멘터리 감독이 2018년 금마장 시상식에서 밝힌 눈물의 소감이 굉장히 충격적이다. "대만이 독립국가가 됐으면 좋겠다.” 민족주의적인 발상이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중화권 시민사회건설의 이상"이 왜 갑자기 민족주의로 연결되는 것일까? 내 머리속에서는 그런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유가 있다. 감독은 중화권 시민사회건설의 장애물을 대륙의 공산당, 타이완의 국민당, 그리고 이들 정치세력과 결탁한 양안의 대자본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니까, 공산당과 국민당에 대적하려면, 대만독립??? 논리적 연결이 될듯 말듯….
그러니까, 우리가 북한과의 통일을 추구하고, 우리 민족의 질곡을 가져다준 친일파를 척결!해야 한다는 민족주의 논리를 펼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니까 1번을 찍으신 분들 상당수가 동의할 그 민족주의 말이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대만의 민진당 지지자들과 묘하게 닮아있다.
그런데 이게 하버마스가 이야기한 시민사회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러면 하버마스가 얘기한, 생활세계와 시민의 소통을 방해하는 관료행정체제와 자본체제외에, 한국에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체제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것은 동아시아 특유의 유교적 관료행정체제의 이념적 부속물 같은 것일까?
연구자는 커녕 학부생 수준의 지식도 없는 내가 더 이러쿵 저러쿵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여하튼, “뭣이 중한디”를 많이 고민하고 있는 시점이다.





하버마스 ㅣ 생활세계의 식민화에 저항하는 신사회운동 - 월간참여사회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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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 ㅣ 생활세계의 식민화에 저항하는 신사회운동
 2000년 04월  2000.04.01

우리는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으며 또 어디로 가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에 대한 설득력있는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사회사상가는 그리 많지 않다.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이런 전환기의 사상적 과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해온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다. 신사회운동 담론들을 검토하는 이 기획에서 하버마스를 첫번째 이론가로 다루는 이유는 그의 이론이 당대 사회이론과 사회운동에 미친 커다란 영향력에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하버마스 사회이론은 환경·평화·여성운동을 포괄하는 서유럽 신사회운동에서 국가사회주의의 몰락을 가져온 1989년 동유럽 시민사회의 폭발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의 구조변화

하버마스 정치이론의 출발점은 1960년대 초반 출간된 그의 교수자격논문인 「공공영역의 구조변동」이다. 이 저작에서 그는 공공영역의 개념을 적극 도입하여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새로운 이론화를 모색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사회는 크게 국가로 이루어진 ‘공적 권위영역’과 시민사회와 공공영역으로 이루어진 ‘사적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시민사회가 상품교환과 노동의 영역인 부르주아 소가족 공간을 뜻한다면, 공공영역은 초개인적으로 구조화된 사회적 개인들간의 행위와 의사소통의 영역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한 이 근대 공공영역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매개항이자 통로로서 이른바 여론이 형성되고 결집되는 사회적 공간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근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계급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국가와 부르주아 계급간의 갈등을 공공영역에서의 다양한 토론을 통해 해결하려는 정치체제의 한 형태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르주아 공공영역은 20세기에 들어와 국가개입의 증대와 거대 사회조직(정당 및 노동조합 등)의 성장과 함께 급속히 축소되고 소멸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공공영역의 재봉건화’라 부를 수 있는 이러한 과정은 바로 그 공공영역의 활력을 제거함으로써 근대 민주주의를 한낱 ‘선거곡마장’으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 하버마스의 진단이다.

생활세계의 식민화와 신사회운동

국가와 시민사회에 대한 초기 하버마스의 이러한 이론화는 1980년대 초반 발표한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체계와 생활세계 모델로 이동한다. 하버마스는 근대화에 따른 시민사회의 내부 분화, 곧 경제영역의 합리화에 따른 사회로부터의 경제의 분화 현상에 주목하여 현대사회를 경제체계와 행정체계로 구성되는 ‘체계’와 사적영역과 공공영역으로 구성되는 ‘생활세계’로 양분한다. 각기 독립적인 그러나 상호작용하는 이 두 영역은 근대화가 진행함에 따라 그 관계가 변화한다. 곧 근대화의 진전과 고도화에 따른 체계의 복합성과 강제성의 증대는 생활세계를 위협하는 병리현상을 야기한다.

이러한 병리현상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번째 그것은 체계의 과도한 발달이 생활세계의 일상적 실천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형태를 띤다. 두번째 그것은 지식생산이 제도화되면서 등장하는 전문가 문화가 일반인의 문화적 참여를 차단함으로써 초래되는 생활세계의 문화적 빈곤이다. 
하버마스가 진단하는 현대 서구사회의 위기는 체계의 기능혼란(대량실업, 생태위기 등)이 체계영역 내부에서 제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생활세계의 하부구조에 전가시키는 것, 다시 말해 체계의 기능상실이 상징적 재생산의 영역에서 혼란을 낳고, 그것이 다시 의미상실, 아노미, 노이로제 등과 같은 정신적 병리현상을 증폭시키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이러한 병합현상을 하버마스는 이른바 ‘생활세계의 식민화’로 개념화한다.

하버마스에게 신사회운동이란 바로 이러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저지하고 방어하는, 그리하여 합리적이고 실천적인 의사소통을 제도화하려는 일련의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지칭한다. 
이 운동들은 그 갈등이 분배의 문제에서 점화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형태의 문법, 즉 문화재생산, 사회통합, 사회화 분야에 대한 질문에서 점화된다는 점에서 이제까지 체계의 생산 및 재생산영역에서 발생했던 계급투쟁 및 권력투쟁과는 다르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이러한 신사회운동들은 체계에 대항하는 잠재력의 성격에 따라 ‘해방운동’, ‘저항운동’, ‘퇴각운동’으로 구별할 수 있다. 
  • 1960년대 미국의 민권운동과 여성운동이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려는 해방운동의 사례라면, 환경·평화·시민주도·녹색당·농촌 코뮨 등 다양한 대안운동들은 저항 및 퇴각운동에 속한다. 
  • 현재 여성운동의 사례를 제외한다면 대다수 저항 및 퇴각운동들은 새로운 영역을 정복하는 데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의사소통의 행위영역을 지키려는 방어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데 그 공통점이 존재한다. 
  • 간단히 말해, 관료제의 강화와 자본주의의 심화에 대항하여 자율과 연대로 상징되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려는 급진 민주주의적 정치기획이 다름 아닌 신사회운동이라는 것이다.

민주적 토론정치를 향하여

하버마스는 1990년대 초반에 발표한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이러한 급진민주주의 기획을 담론이론의 시각에서 포괄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우선 그는 권력을 상호이해를 추구하는 의사소통의 힘으로 규정하는 한나 아렌트의 이론에 의존하여 권력을 행정적 권력과 의사소통적 권력으로 구분한다. 나아가 이 의사소통적 권력이 법치국가의 정치적 정당성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 그것이 언제나 행정적 권력에 언제나 선행하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의사소통적 권력은 어디서 생성될 수 있는가. 여기서 하버마스는 「공공영역의 구조변동」에서의 초기 문제의식으로 되돌아가는데, 자율적인 공공영역에서의 연대와 상호주관성에 입각한 토론정치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정당한 의사소통적 권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쌍선적 토론정치’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의회 안의 내부 공공영역과 의회 밖의 외부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긴장과 협력의 다양한 쌍선적 토론정치를 적극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이야말로 정치권력이 생활세계를 침범하는 식민화를 차단할 수 있는 유효하면서도 민주적인 전략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남는 문제들

앞으로 검토될 다른 신사회운동론과 비교해 볼 때 하버마스 이론은 신사회운동을 ‘탈근대적’ 혹은 ‘전근대적’ 운동으로 설명하는 견해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모더니즘의 신사회운동론을 대표한다. 신사회운동이 추구하는 목표가 계몽과 해방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가치들을 전승하는 것에 있는 한, 이 운동의 기본적 성격은 ‘부정적 근대화에 대한 근대적 비판’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하버마스와 그의 동료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은 이러한 정치적 프로젝트가 기존의 정치체제와 사회운동을 과연 어느 정도까지 대체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는가의 문제다. 이론적 지평에서는 쌍선적 토론정치가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지평에서 신사회운동의 목표는 여전히 방어전략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저항의 잠재력을 어떻게 해방의 잠재력으로 변화시키고 제도화할 수 있는가. 하버마스에게 던져질 수 있는 이 물음은 모든 신사회운동 담론에도 동시에 제기할 수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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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의 국가이론(2010)

샹뱌오|서민의 '국가' 이론 원래의 샹뱌오 오픈 타임즈 매거진 2021-12-16 20:05 영상 [ 이 기사는 2010년 "오픈타임즈" 10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림: Xiang Biao, 출처: Sohu.com. ] 【 초록 】 1980년대부터 중국의 학계와 정부는 국가와 사회의 구별을 주장하고 '사회'의 발전을 인민생활향상을 위한 구조적 조건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여전히 '국가'가 가장 인정받는 범주이고 '사회적'인 사람과 사물 비공식적이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국가의 전반적인 정당성이 의심의 여지가없고 도덕성이 높지만 지방 국가 기관은 신뢰할 수 없으며 교환은 이익 지향적이며 불규칙한 경향이 있습니다. 이 '보통사람 국가론'은 현재 중국 사회에서 '보편적 안정'과 '특정 아노미'의 공존을 어느 정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은 현 단계에서 사회와 국가의 차별화 추구는 기초가 부족하며,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사이의 유기적 연결을 다차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핵심어】 합리적 국가동원형 국가틀 국가정치 토착정치   중국의 "국가" 개념은 매우 일반적이며 국가, 민족 공동체, 폭력 통치 국가, 지역적 의미에서 정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현대 서구 정치 사상의 전제 조건 중 하나이며 중국 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사용하는 중요한 이론적 가정이기도 합니다. 전자를 일반국가개념, 후자를 제한된 국가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다. 중국 학계와 정부는 1980년대부터 제한된 국가의 개념에 따라 국가와 사회의 분화를 주창했으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사회"의 성장이 인민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구조적 조건이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시민사회'를 주창하고 정부는 '정부와 기업의 분리', '정당과 정부의 분리', '작은 정부와 큰 사회' 형태의 건설을 적극 추진했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국가'가 가장 인정받는 범주이고 '사회'는 불규칙하고 신뢰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회문제'는 무질서하고 탁자 위에 앉을 수 없고, '사회인'은 심각하지 않아 경계해야 하고, '사회에 사람을 밀어넣는다'는 것은 그들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부대의 무책임한 접근이다. 서민들은 국가에 들어올 것을 기대했고 국가로부터의 독립이 그들에게 더 큰 자유와 권력을 줄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일반국가의 개념과 제한된 국가의 개념의 차이는 단순한 단어의 구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적 사상과 전략을 나타낸다.   1990년대 베이징의 "절강촌"을 조사했을 때 나는 이 차이를 깊이 이해했습니다. "절강촌"은 온주 지역의 의류 가공 가구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형성된 공동체입니다. 경제적으로 발달되어 있고, 지리적으로 집중되어 있고, 문화적으로 상대적으로 동질적이어서 스스로 관리하는 '시민사회'의 기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경대학교 학생회 '러브클럽'과 함께 기업의 자율적 NGO 구축을 돕고 있습니다. 온주 산업 및 상업 가정은 우리가 옹호하는 정부와의 독립, 독립 및 대화에별로 관심이 없지만 "북경 대학 사랑 사회의 절강 마을 지부"가되기를 열망하고 나에게 "유명인"을 찾아달라고 반복적으로 요청합니다. " 그들에 대한 비문, 컨설턴트 및 "후원자"가 되십시오. 우리의 협력은 가까웠지만 우리의 생각은 거의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국외의 사회적 공간을 어떻게 가꿀 것인가, 산업 및 상업 가정은 Ai She를 국가에 "의존"하는 채널로 간주합니다. , 그리고 그들은 국가의 인정과 공식적인 정체성의 획득이 권리와 이익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샹뱌오[2000] 참조)   물론 서민들의 감정은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국권은 더욱 강화되었다. 중국 재정 수입의 두 가지 주요 원천인 중앙 소유 기업의 국세 및 이윤은 GDP의 2~3배에 달하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와 달리 공무원과 공기업 근로자는 이제 대졸자들에게 최고의 직업 선택이 되었습니다. 소비자권익보호, 주택소유자위원회, 심지어는 노동운동까지 '시민사회'의 조짐을 보이는 많은 현상들이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특정 시장의 이해당사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의존하는 중재. 따라서 Hooper(2005)는 중국 서민을 "소비자 시민"이라고 부릅니다(Yan [2009: 36], Yan [2000] 참조). 이제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중국 공산당이 아닌 다른 조직이 중국을 통치하고 대표하는 것은 과거보다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2004년 중국공산당 제16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사회 건설'을 엄숙히 내놓았고 중국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 정치보고에 경제, 정치, 문화 건설과 함께 4위를 차지한 사회 건설에 관한 별도 섹션. 2007년 말 베이징시정부는 "사회건설사업국"을 설립하여 "사회건설 기본계획"을 수립하였다. 따라서 현재 중국 사회학에서 논의되는 “사회 구성”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논의된 사회와 매우 다릅니다. 사회는 더 이상 국가 외부에 있지 않고 국가의 프로젝트가 됩니다. 이것은 또한 중국 국가의 복귀가 전체주의 또는 약탈적 정권의 복귀가 아니라 사회를 완전히 침투하고 흡수하기 위한 새로운 통치 능력을 나타냄을 나타냅니다. 이러한 발전은 분명히 주류의 이론적 가정과 일치하지 않지만 모두 여론과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국가가 사회 건설을 촉진하는 데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서민 상태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중국의 현재 사회 변화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부분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나라"라고 말할 때 그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서민들의 '국가론'은 어떻게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나? 그것이 인민의 실제 정치적 행동과 중국의 정치적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까? 이 기사는 이러한 중요한 문제에 대해 매우 피상적인 탐구를 할 것입니다. 내 생각에 현재 서민을 위한 국가 이론의 주요 특징은 그것의 이중성이다. 한편으로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국가"는 도덕화되고, 전체화되고, 귀화되고, 그 정당성과 정의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에 모든 사람들은 특정 국가 기관의 행동에 대해 매우 의심하고 있으며 일반 사람들과 특정 국가 기관 간의 상호 작용은 기회주의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두 수준의 갈등은 차례로 국가 개념을 더욱 도덕적으로 만듭니다. 서민들은 도덕화된 언어를 사용하여 지방 부처를 비판하고 일상 생활에서 특정 기관에 대한 불만은 국가에 대한 도덕적 기대를 자극합니다. 이 서민의 국가 이론을 이해하면 현재 중국 사회의 일반적인 안정과 특정 아노미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최근 사회적 저항에 관한 연구에서 우리는 서민들의 국가론의 이중성이 그들의 정치적, 사회적 행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문헌은 중국인이 개인의 권리와 이익의 관점에서 국가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관점에서 정부가 이를 존중할 것인지 여부를 확인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Perry, 2007; Pei Yili). 및 Yu Jianrong, 2008; Pye, 2008), 1996). 서민들은 낮은 수준의 국가 기관에 저항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국가 기관에 의존합니다(농민의 법적 저항에 대해서는 O'Brien and Li Lianjiang [2006] 참조, 도시 저항에 대해서는 Chen Yingfang [2004] 및 Shi Yunqing [2007] 참조, 항의 에 기초한 전략”; Lee[2007]는 노동운동의 “합법주의” 전략, 특히 Zhu Jiangang[2004]의 “현실적 전략”, 즉 항의당은 강력한 정당이 정부법을 엄격하게 집행할 것을 요구함 '진정한 전략'은 이명박의 '합법주의' 전략의 미시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서민들이 중앙정부의 '좋은 경전'을 이용해 지방의 '비뚤어진 승려'를 다스리는 것은 실용주의적 전략일 뿐만 아니라 국가 정치에 대한 이해를 더 높은 차원에서 반영하기도 한다. 중국 동북지역 집단민사분쟁 사건을 분석한 결과, 한편으로는 서민들이 중앙정부의 정책을 자신들의 담론 자원으로 충분히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발표에서 '법률주의(legalism)'(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다)라는 말을 구사했지만, 결국 법원에 가기를 꺼리고 지방정부에 직접 배상을 요구했다. 절차가 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도덕의 화신인 (중앙)국가와 직접교섭의 대상인 (지방)국가의 공존과 교대는 그들의 행동전략의 핵심이다(Xiang, 2006).   다음에서 나는 먼저 서민국가론이 무엇인지 논의한 후, 현재의 서민국가론을 중국 역사에서 권력에 대한 일반적인 상상의 단순한 연속으로 볼 수 없다고 제안할 것이다. 유럽이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중국 근현대의 특수한 역사적 과정이 우리의 국가 개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현대 국가 건설은 형식화된 합리적 국가와 유기적이고 동원된 국가 사이에서 진동하며 규범적(즉, 합리적, 체계적, 제도적 특징)과 유기적(즉, 국가의 특성)을 형성한 적이 없습니다. 구체적인 사회 생활). 이 스윙은 현재의 일반 인간 상태 이론의 역사적 기초입니다. 그런 다음 나는 이 단계에서 국가가 어떻게 "틀을 형성"하고 있는지 조사하여 일반적인 합법성과 특정 아노미 사이의 모순을 강화합니다. 기사 말미에는 특히 당 건설과 관련된 몇 가지 대책이 제시된다.   1. 서민의 국가론이란?   사회학, 인류학 및 정치학 연구는 일반적으로 "국가"가 심오한 이중성 때문에 연구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국가는 하나의 조직이자 일련의 체계이며 일련의 실천이며, 동시에 국가는 주관적인 구성이자 상상이다. 이 주관적인 상상은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며, 즉 관찰 가능한 현실에 직접적으로 대응할 수 없습니다. 객관적인 세계에서 "국가"가 어디에 있는지 지적하고자 할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서 분명히 "국가"와 동일하지 않은 특정 공무원, 부서 또는 정책만을 언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나무와 숲의 관계와 같다.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나무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숲'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며, 반대로 '숲'이라는 개념이 없으면 나무를 알 수 없다. . . . 국가에 대한 베버의 이해는 국가를 실체적 조직(관료제)으로 보는 실증적이지만, 사람들이 이 지배 질서에 대한 주관적인 상상을 하지 않는다면 실체로서의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Abrams(1988: 58)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국가는 정치적 실천 뒤에 숨겨진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특정한 정치적 실천(…국가)을 관찰하는 방식을 형성하는 표상 자체는 처음부터 (주관적) 구성물입니다. . "   그러나 내가 강조한 국가의 '이론'은 많은 인류학 문헌에서 묘사되는 민족적 상상, 즉 국가가 문화와 상징적 체계를 통해 스스로를 구성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Geertz가 묘사한 Nagaras는 일련의 문화 및 의례 공연을 통해 정치를 통합했으며, 그는 이를 극장 국가라고 불렀습니다. Aretxaga(2003: 398)는 국가가 "권력의 실천과 표현, 풀뿌리 수준에서의 일상적인 상호 작용, 공공 문화, 애도와 축하의 담론, 관계를 통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국가를 "현상학적 사실"로 볼 것을 제안합니다. 관료주의, 기념관 장소 등 다양한 공간조직의 상호작용에서 생성된다.” 굽타(Gupta, 1995)는 인도에 대한 연구에서 반국가적으로 보이는 유비쿼터스 국가 부패에 대한 시민 담론이 실제로는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공공 문화 메커니즘이라고 믿었다. 천안문 광장, 만리장성, 한자 및 다양한 역사적 텍스트와 같은 상징은 중국 국가 건설에 특히 중요하며 모두 중국 국가가 "국가"가 되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때때로 상징과 상상을 너무 객관화하여 다루며 사람들의 긍정적인 주도성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Fuller와 Béné?(2001: 2)는 국가의 상징적 구성을 분석한 후 “국가”의 개념이 “경제”의 범주와 동일하며 고정된 Gupta and Sharma(2005: 11) 또한 국가가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가지므로 국가의 단일성은 허약한 모습이라고 지적했습니다. Mitchell(1999)은 "국가 효과"에 대해 널리 인용된 기사에서 국가와 사회 사이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상상하는 분할은 국가의 일련의 행동(예: 고도로 정규화된 관료제의 감각적 효과 및 그 행동). 그러나 우리는 국가의 통일성과 실체가 수동적인 감각적 효과라기보다는 서민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서민들은 자발적으로 국가를 필수적이고 절대적으로 만듭니다. 내가 단순한 '상상'이 아닌 서민의 '이론'을 강조하고 싶은 이유는 '국가'라는 개념이 대중이 사회생활을 상상하고, 이해하고, 논평하고, 비판하는 이론적 도구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단순한 상상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된 기호 시스템입니다. 서민의 상태론을 이해하려면 그 역동성을 감상해야 한다.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구현됩니다.   첫째, 서민의 국가론은 가치관을 판단하고 행동을 지도하는 경향이 강하다. 서민의 국가론은 국가란 무엇이며 국가가 하는 일에 대한 실증적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어떠해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대중이 국가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국가를 정의할 수 없고 국가 정책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국가에 대한 그의 관대한 논평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서민의 국가론은 생생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관찰에 앞서고 사실을 넘어선다. 국가에 대한 그의 이론에 기초한 정부 부처에 대한 농부의 접근 방식은 종종 공공 행정 학자들에 의해 제안된 것보다 더 효과적입니다. 일반 인민의 국가 이론은 의사소통 및 동원, 풍부한 의미 산출, 즉각적인 행동 전략 도출에 강력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둘째, 일반 사람의 국가 이론은 "명시적"입니다. 열린 표현과 의사 소통은 이 이론이 존재하는 기본 방식입니다. 국가-사회 관계에 대한 현재의 주류 연구에서 학자들은 종종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사회가 국가에 의해 제한되고 있으며 일반 서민의 전형적인 저항 수단은 비공식적이고 은폐되고 흩어져 있다고 가정합니다. Scott's(1990) "Weapons of the Weak" 및 "Subtext"(권력자 배후의 권력 비판), de Certeau(1984)의 "The Poetics of Living in the Silent Resistance of Subaltern" 및 Wu Fei's(2009) "일상생활" "실천"의 개념은 이러한 오리엔테이션의 대표적인 대표자입니다. Thornton은 중국에 대한 연구에서 티베트 시, 3.5 문장 및 Xiehouyu 분석에서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했다”(Thornton, 2002: 668), 따라서 “아이러니하고 모호한 은유는 억압된 국가 권력에 직면하여 [일반인]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Thornton, 2002: 661). Zhou Xueguang은 농민들이 조직화되지 않은 채 숨겨진 수단을 통해 집단적 불복종을 달성한 방법을 설명했습니다(Zhou, 1993). 인민 코뮌 기간 동안 여단, 특히 생산 팀과 개인의 은폐 전략은 커뮤니티 내에서 기본적인 정상적인 생활을 보장했지만 (Zhang Letian, 1998), Moyang 노동자와 같은 약자의 무기는 코뮌 시스템의 붕괴(Lin Yifu, 1992) . 개혁 기간 동안 Pei Minxin(1997)은 인민의 비공식적인 행동이 "기름진 민주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민주화). 나는 베이징의 이주 산업 및 상업 가구가 국가에서 탈출하여 동맹을 형성한 다음 자율적인 사회 공간으로 "도주"하기를 희망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분석했습니다(Xiang Biao, 1998). 이러한 관점을 통해 우리는 시민의 근본적인 역동성을 볼 수 있지만, 서민이 일어서야 할 필요성은 무시하면서 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힘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소농 스타일의 정치적 악당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조직하고, 조직할 필요성과 능력. Ortner(1995)는 저항 연구에서 "민족지학의 거부" 경향, 즉 권력자와 저항자를 단순 이분법으로 만들고 권력자와 권력자의 복잡성을 보지 못하는 경향을 비판했다.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민족지학적 관찰이 필요한 저항. 그러나 우리는 또한 민족지학적 세부 사항을 추구하기 때문에, 즉 서민의 행동과 생각을 지나치게 일상화하고 하찮게 취급하고 공식적인 정치 토론 및 사회 운동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무시하기 때문에 "정치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대중과 국가의 가장 큰 관심을 끌기 위해 청원을 극화하고 홍보하는 것과 같이 많은 연구가 중국 인민의 "정치적 연극"의 전통에 주목했습니다(예: Esherick and Wasserstrom [1991], Pieke [1996]). 물론 민중의 사적인 토론과 일상의 행태가 구조적 변화를 축적할 수 있지만, 무대 앞에서 그들의 논쟁과 공론화의 논리와 그 안에 담긴 요구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인류학은 근본적인 규칙을 발견하고 행동 뒤에 숨은 의미를 설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서민의 사회적 비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대중을 민족지학적(자발적) 주제에서 정치사 및 이데올로기의 (자의식적) 주제로 격상시키는 것입니다. 피에케[1996]). 물론 민중의 사적인 토론과 일상의 행태가 구조적 변화를 축적할 수 있지만, 무대 앞에서 그들의 논쟁과 공론화의 논리와 그 안에 담긴 요구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인류학은 근본적인 규칙을 발견하고 행동 뒤에 숨은 의미를 설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서민의 사회적 비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대중을 민족지학적(자발적) 주제에서 정치사 및 이데올로기의 (자의식적) 주제로 격상시키는 것입니다. 피에케[1996]). 물론 민중의 사적인 토론과 일상의 행태가 구조적 변화를 축적할 수 있지만, 무대 앞에서 그들의 논쟁과 공론화의 논리와 그 안에 담긴 요구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인류학은 근본적인 규칙을 발견하고 행동 뒤에 숨은 의미를 설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 놓인 서민의 사회적 비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대중을 민족지학적(자발적) 주제에서 정치사 및 이데올로기의 (자의식적) 주제로 격상시키는 것입니다.   셋째, 서민의 국가론은 추상화하고 일반화하는 능력이 있다. Scott(1990: 14)이 분석한 "하위 텍스트"는 항상 "특정한 사회적 상황과 행위자를 대상으로" 하며, 우리는 때때로 그 반대를 관찰합니다. Yu Jianrong(2010)이 지적한 바와 같이 "추상적 분노"는 오늘날 중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사회적 분노 사건'에서 많은 참여자들은 사건의 발단에 전혀 관심이 없고, 실제 피해자와 개념적으로만 동일시한다. Yu Jianrong은 "추상적인 분노"의 원인 중 일부는 사람들의 불만이 제때 해소되지 않아 목적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쌓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추상적인 분노는 대중의 추상적인 능력, 즉 자신의 직접적인 이해를 넘어 사회의 전반적인 이해 패턴에 대한 판단을 형성하고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와 같은 일반적인 문제를 표현하는 능력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국가론에 포함된 이러한 활동은 종종 간과된다. 최근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인민간 갈등은 위안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 그 한 예다. 이 주장은 대부분의 사회적 갈등이 대중의 특정 이익을 둘러싼 논쟁에서 비롯되므로 대중의 실제 이익을 충족시키는 것, 실제로는 인민폐로 직접 전환될 수 있는 정도의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재난을 피하기 위해 돈을 쓰고 인민폐를 가져가는 것이 지방 정부의 일반적인 전략입니다. 이 말씀은 인민대중을 당면한 이익만 챙기고 돈으로 없애버릴 수 있는 인민대중을 대하고 서민들이 원하는 것도 원칙이자 이유이자 숨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사회정치적 문제를 완전히 행정화하고 상품화하기까지 했으며, 정부와 대중의 관계를 교섭에 가까운 관계로 변모시켰다. 이것은 잠재적으로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도록 조장하는 위험한 블랙홀을 열 수 있으며, 폭동이 많을수록 더 많은 위안화를 낼 수 있습니다. 인민대중과 국가의 관계가 이토록 유익하고 도구적이면 그 원칙을 잃어버리고 무법자가 되어 결국 폭력에 의지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인민대중의 지위를 정치적, 력사적 주체로 부정하는 것은 이론상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위험합니다.   어떤 국가 개념의 이론적 색채, 즉 그것의 명시성과 일반성을 강조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국가 개념이 정치적, 법적 의미에서 개인의 "시민" 지위와 "권리"를 강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국가권력의 한계를 강조한다. , 국가-사회 분열을 강조한다. 국가에 대한 도덕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은 일반적으로 시스템 이론보다는 민속 전통으로 간주됩니다. 이것은 유럽식 협소한 국가 개념의 영향을 받은 우리의 오랜 견해입니다. 이 편협한 국가론은 서민의 국가론을 은폐하고 주변화한다. 그리고 이 글은 서민들의 국가론을 그 면면에서 다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보통 사람들"은 엘리트의 반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좁은 국가 개념과 넓은 국가 개념은 서로 다른 사회 계층에 속하는 참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유럽 및 중국)에 기반한 두 가지 이론입니다. "나라"라는 개념은 중국에서 특히 강한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특정 정치적 위치에 관계없이 "국가"는 모든 그룹의 공통 관심사이며 거의 같은 것을 나타냅니다. 어느 정도 다른 사회 집단은 "국가"의 서사에서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아이디어를 형성합니다. 우리의 "국가" 개념은 서로 다른 그룹의 공존과 상호 투쟁의 초점인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롤즈의 개념에 거의 가깝습니다. 역사적으로나 오늘날에도 엘리트들은 일반 사람들의 국가 이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위 서민의 국가론은 실제로 우리의 실생활과 일상생활에서의 국가론이다. 여기서 핵심은 국가-사회, 관료-민간, 엘리트-대중의 구분이 아니라 실생활과 전문적인 학술 및 정책 텍스트(이하 각각 "정치용어" 및 "정치고전중국어"라 함)의 구분이다. "). 중국 학자들은 기사를 쓸 때 좁은 의미의 국가 개념을 사용하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여전히 넓은 개념을 사용합니다. 기사와 잡담 사이의 개념적 단절이 연결되지 않으면 사회 실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고사하고 사회과학 자체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학문적 연구에서 '중국어 말도 안 되는' 곤경에서 벗어나 서민의 관행 개념으로 돌아가 '국가'와 같은 범주를 재분석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하다.   2. 역사적 형성: "합리적 국가"와 "동원하는 국가"   중국 서민의 국가론은 왜 일반화되고 미분화되는가? 직관적인 대답은 "전통이 지시합니다"입니다. Jin Guantao와 Liu Qingfeng(1984)의 "대통일" 분석과 초안정 체제 가설은 198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 사상 중 하나였습니다. Chen Chunsheng(2001), Liu Zhiwei(2010), Faure(2007), Siu(1990), Watson(1985), Feuchtwang(1991) 및 기타 학자들은 인류학과 역사를 결합하여 이른바 중국의 "지역" 문화를 보여주었습니다. — 다른 장소에서 자발적이고 다른 관행 - 그 형성은 제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지역 문화는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중심 권력에 의존하여 의미를 정의하고 부여합니다. Xiao Fengxia(Siu, 1993: 20)는 역사의 국가 통합과 현대의 변화의 논리를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국가가 하나의 문화적 개념에 불과할 때, 중앙과 동일시하는 척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자신들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슬기로운 전략이다. Xiao Fengxia의 '국가 변천' 개념(Siu, 1989)은 '국가'가 중국 이데올로기의 핵심 부분이라고 지적했으며, Brownell(1995)은 서구인들이 사용한다고 믿습니다. 몸은 국가를 상상하는 반면 중국인은 국가를 청사진으로 삼아 자신의 몸을 상상하는 이른바 '국가진화' 퍼포먼스의 극치를 보여준다.   서민의 현 국가론이 '일치'라는 정치전통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단순한 '전통'으로 모든 문제를 설명할 수는 없다. 첫째, 수평적으로는 국가의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개념이 결코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요 유럽 언어(영어 상태, 프랑스어 état, 독일어 staat, 이탈리아어 stato, 스페인어 estado)에서 "상태"라는 단어는 원래 서 있는, 기존 상태, 기존 패턴 및 위치를 의미하는 라틴어 statvs에서 왔습니다. 따라서 Hertzfeld(2004)는 하나의 정치체로서의 국가가 처음부터 귀화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이슬람 문명에서는 정치체의 일반적인 비전이 더 뚜렷할 수 있습니다. 아랍어로 움마(Ummah)는 소수의 신자 그룹, 세속 국가 및 전 세계의 이슬람 공동체를 모두 나타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중국은 이 전통을 물려받았고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은지 설명할 것입니다.   둘째, 더 중요한 것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원래의 "왕조"나 "지하세계"를 단순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고대 문헌에서 "궈"는 왕자의 수도 또는 봉건 토지를 의미하고 "가"는 학자와 관리의 영지를 의미하며 오늘날 우리가 집과 가정이라고 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봉건제하에서 나라는 가족과 유사하며 둘 다 천황 아래에 있으며 제한된 지방 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천황은 국가가 아니라 세계에 해당합니다). 국가와 가족의 공동 사용은 일종의 정치적 계층 구조를 말하며, 유사한 "정의, 자기 수양, 가정 질서, 국가 통치 및 세계 평화"의 외삽, 다차원 패턴을 구현합니다. Fei Xiaotong의 "차등 질서 패턴"에 따라 계층적 정치 질서. 현대 국가는 명확한 경계를 가진 객관적인 실체이며 모든 시민으로 동등하게 구성됩니다. 국가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관점은 "애국심"이라는 새로운 단어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원래 개인 간의 자발적인 감정('부모의 사랑', '신사의 자기애')이었지만, 현대에는 특히 5·4운동 이후에 애국적인 사랑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다. , 대중적이고 초월적인 느낌이기도 하고, 동시에 특정인처럼 '사랑'받을 수 있는 현실의 대상이 된 나라이기도 하다. 애국심과 충성심은 분명히 다릅니다. 애국심은 국가 전체(상상된 역사, 영토, 민족 등 포함)를 사랑해야 하는 반면, 군주에 대한 충성은 개별 황제를 대상으로 해야 하며, 애국심은 능동적이고 능동적이며 자발적인 반면 군주에 대한 충성심은 수동적이고 복종적입니다. 군주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의 비교에서 실체국가의 상상은 근대 개인주체(즉, 자주적이고 자유로우며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의 확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에 대한 현대적 개념의 실체는 또 다른 언어적 변화에도 반영될 수 있습니다. 궁정이건 천하가 궁극이건 최상급이지만 궁정을 얻는 방법,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 등의 물건으로 주로 사용된다. 세계와 궁정은 수동적인 존재이자 획득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국가가 주어로 자주 사용되며 "how is the country"는 우리가 거의 매일 사용하는 문장 패턴입니다. 주인과 주인의 변화는 작은 일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가 주도권을 쥐고 인간처럼 자주적인 의지를 가진 실체가 된 중요한 역사적 변화가 있다. 국가는 "큰 자아"가 되며, 각각의 "작은 자아"는 국가의 운반자이자 구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나라는 그야말로 근대체제이지, 제국의 권력을 대표하고 개인 위에 있는 궁정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서민들의 국가론의 특수성은 어디에 있는가? 실체국가 상상의 발상지인 유럽에서 실체국가는 주로 국가를 가리킨다. Anderson(1986), Gellner(1983), Smith(1995) 등과 같은 사람들은 근대통합국가 건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근대 국가의 형성과 동시에 근대 민주화의 과정은 이전에 귀화한 국가를 탈자연화시켰다. 새로운 사상적 틀에서 민족은 자연적이며 대중의 자발적인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며, 정치국가는 민족의 리익을 대표하고 민족의 뜻을 집행하는 조직이자 도구이다. 국가는 인쇄산업의 발달, 토착문화(Anderson, 1986), 근대 자본주의적 생산 및 시장체제의 발전(Gellner, 1983)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반면, 정치국가는 인위적으로 구성된다. 민족이 먼저고 민족이 두 번째입니다. "자유국가의 안정을 위해 국민은 국가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오직 국가의 이익만이 국가에 필요한 국민의 희생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다"(Scruton, 1990: 75) 전형적인 현대 유럽의 정치사상이다. 이러한 이유로 '민족자결'이 유럽 정치사상에서 중요한 원칙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현대 국가 개념은 매우 다른 역사적 환경에서 탄생했습니다. 중국 문명은 역사적으로 비교적 뚜렷한 자기 정체성을 갖고 있고 중국이 송나라 시대에 근대 국가의 태생적 형태를 이루었지만, 혁명 과정에서 자의식적인 '중국'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이후 반복되었다. 여러 제국주의 세력. 침략과 원래 정치 질서의 완전한 붕괴의 경우에 등장했습니다(Fei Xiaotong [1988] 참조). 이러한 조건하에서 구원의 대상인 민족과 구원의 수단인 정치국가는 동시에 탄생하여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국가의 수립을 통해 국가, 그래서 그것은 "민족 첫째, 정치 국가 둘째"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Duara [1995] 참조). 중국의 국가는 수많은 인민들이 목숨을 바치고 많은 혁명을 이룩하여 추구한 목표이며 완전히 의식적으로 건설된 사상이며 국가 개념의 사회적, 정치적, 도덕적 측면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국가적 상상의 역사적 배경일 수 있다.   그러나 정치 국가를 통해 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중국의 독특한 경험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어느 정도 근대 국가를 건설하여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거의 통일된 적이 없는 인도와 같은 다민족 탈식민지 국가에서 국가는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일반적인 상상이 아니라 강력한 정치 체제의 구축을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다(Roy, 2007). .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의 경우는 정치 국가를 통한 국가 건설의 더 전형적인 예일 수 있습니다.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많은 제3세계 국가에서 군대의 높은 지위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예를 들어, 군대는 파키스탄과 싱가포르에서 높은 평판을 얻고 있습니다. 중국은 어린이들에게 "인민해방군을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유럽에서는 16세기 이후 공적 정치에서 군대의 역할이 점차 줄어들면서 도덕적, 이념적 분위기를 완전히 잃어버렸지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에서 군대는 국가를 통해 국가를 건설하는 열쇠이며 선진적이고 현대 민족 정신의 대표자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중국 서민들의 국가 개념의 보편성과 도덕성,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된 국가에 대한 도덕적 기대는 특히 강한 것 같다. 예를 들어 일본과 인도에서는 기본적으로 정치 시스템에 후광이 없으며 "사회"가 비공식성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민족 개념의 특수성은 현대 혁명의 반복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현대 중국의 반복된 혁명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이성국가와 동원국가의 모순이다. 이른바 '합리적 국가'는 체제 구축, 권력 균형, 안정을 중시하여 다른 목적을 수행하는 합리적인 조직 시스템을 의미하며, '동원 지향 국가'는 급진적 이념을 옹호하고 대중을 광범위하게 동원하는 국가를 말한다. , 상태는 일련의 궁극적 가치를 나타내며 상태 자체가 목표가 됩니다. 이 진자 같은 역사적 과정에서 국가 개념의 총체성은 지속적으로 강화되어 왔지만 이 총체성 내에서 일상적인 갈등을 해결하는 체계는 결코 발전된 적이 없다. 아래에서 나는 중국 현대사의 세 가지 "지구를 깨는" 시기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이러한 발전을 살펴볼 것입니다.   첫째, 1911년 혁명 이후 "합리적 국가"에서 "동원 지향적인 국가"로의 이행. 자기 계발, 백일 개혁에서 1911년 혁명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엘리트들은 입헌 군주국이든 민주 공화국이든 합리적인 국가를 건설하여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1911년 혁명 이후 합리적 국가 건설은 내부적으로는 황실복귀, 공화정 위기, 군벌 분리주의, 경제붕괴 등의 심각한 차질을 겪었고, 외부적으로는 몽골과 티베트에 문제가 있었다. 이 경우 영토보전과 주권자립에 대한 고려가 내부적으로 민주주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보다 우선한다. Wang Hui(2009)의 일반화를 사용하면 "국가주의"가 "정치주의"를 대체합니다. '정치주의'는 제도적 설계를 논하고 효용에 관심을 갖는 반면, '국가주의'는 국가 존재의 자연성을 입증해야 하는 의미와 목적지에 관한 것이다. 당시 중국청년회와 전국정책학교는 민족주의의 대표주자였다. 동시에 쑨원은 정당의 역할을 강화하고, 국민당을 재편하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첫 협력을 추진하고, 군대를 정당의 영도하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현대 국가 건설". 현대 정당의 핵심 역할은 조직뿐만 아니라 행동 강령을 체계화하고, 이론화하고, 설득하고, 동원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에도 있습니다. Perry(1980)는 화북 농촌 지역의 전통적인 봉기와 폭동을 공산당 영도하의 농민운동과 비교하고 당의 이념이 농민들로 하여금 당면한 생존요구를 초월할 수 있게 하고 대규모의 사회혁명을 이룩하였음을 보여주었다. -규모의 대중 참여 가능 역사의 봉기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민족주의와 정당정치의 두 노선은 실제로는 많이 교차하지 않지만, 이성적인 국가에 의존하여 자신을 구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종합적이고 동원된 사상적 국가를 건설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두 번째 시기는 1949년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이후이다. 처음 17년 동안 중국은 사회주의 합리적 국가로 묘사될 수 있었습니다. 경제 건설과 생활 자원의 직접 분배를 통해 국가는 중국 인민과 국가 사이에 독특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이 관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광범위합니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 중국 동북부에서는 경기가 침체되고 노동자들이 해고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서 생활했고 많은 사람들이 주택 개혁을 통해 소유주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정치적 의식과 행동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Lee [2007] 참조). 그들은 나에게 계속 말했다: "이제 모든 것은 오직 자신에게만 의존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결국 그것은 여전히 ​​국가에 달려 있습니다!"(Xiang, 2006) 개인과 국가 사이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고 끊임없이 끊어집니다. 물론 '친밀감'이 연인 사이의 따뜻함과 달콤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라와의 친밀감은 사랑과 두려움, 신뢰와 보호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러나 합리적 국가가 가져온 정상화와 위계질서와 혁명적 이상향의 상상 사이에는 분명히 간극이 있다. 그것의 혁명적인 성격을 보장하십시오. 그리하여 인민대중의 직접동원은 정치생활의 주요내용이 되었고, 당위원회는 쫓겨나 혁명을 일으키게 되었고, '혁명위원회'는 정상적인 국가제도를 대신하게 되었다. 국가는 더 이상 대중의 물질적 복지 요구에 부응하여 합리적 건설을 통해 정당성을 유지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꿈, 희망, 공포, 의미를 제공합니다. 이 나라는 완전히 연극적이다(Zhang Letian, 1998). 이 광란의 비극은 또한 일부 대중에게 잠시 동안 그들이 완전히 나라의 주인이라고 느끼게했습니다. 이것은 국가에 대한 사람들의 도덕적 요구, 특히 지방 정부에 대한 의혹과 비판과 같은 오늘날의 사회적 행동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Pieke [1996] 참조).   세 번째 단계에서는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문화대혁명'에 패한 덩샤오핑과 천운으로 대표되는 합리적 관료집단이 혼란을 바로잡아 동원지향 국가를 재도입했다. 합리적인 건설의 궤도. 대중과 국가의 관계는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물질적 생활 수준의 향상은 둘 사이의 관계의 중심이 되었고 개발 성과는 정부 정당성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국의 고도로 이성적인 태도와 정치체제의 대대적인 개혁을 기피하고 이념적 논쟁을 기피하는 바람에 인민대중과 국가의 새로운 관계를 이론화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새로운 담론자원이 개발되지 못하고 있다. . 일반적으로 국가권력은 공고히 발전되고 있지만, 여러 사회집단과의 관계, 정부와 사회의 관계, 특히 당의 역할은 정리되지 않고 있다. 다음은 현재 상황에 대한 몇 가지 가상 설명을 제공하기 위해 "프레임워크 상태"라는 용어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프레임 국가"는 현재의 일반 인간 국가 이론의 실제 정치 경제 기반이며, 여기서 우리는 일반 인간 국가 이론 내의 모순과 균열,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미래 사회 정치.   3. 프레임워크 상태   틀에 박힌 국가란 대중과 정부가 모두 국가의 전반적인 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특정 문제에 대한 제도적 합의가 없고 국가 내의 다양한 관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국가는 고도로 통합된 틀이자 외부로부터 사회생활을 통합하는 틀이지만, 국가 내부, 사회 내부, 국가와 사회 간의 실질적인 통합이 결여되어 있다. 여기서 “틀”은 최소한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틀이 우리의 사회생활이 객관적으로 조직되는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이며, 이는 사람들이 사회 현상을 주관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쉽게 반성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실생활에서 "프레임워크 상태"의 특정 성능을 설명하기 위해 아래에 세 가지 예가 나와 있습니다. 첫째는 이른바 '중앙정부가 손님을 대접하고 지방정부가 비용을 부담한다'는 현상이다. 중앙정부가 손님을 초청하는 것은 바로 기존의 정치체제를 바꾸지 않고 대중의 구체적인 요구에 부응하여 사회의 균형과 체제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단, 손님은 할 일이 있을 때만 초대해야 하고, 매일 연회를 할 수는 없으며, 무엇보다 손님을 초대한 후 청구서를 지불할 사람은 그때 흥정을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청원 현상이다. 청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대규모의 일상적인 방법이 되었습니다. 청원은 지역 차원의 국가와 사회의 긴장을 반영한 것으로, 서민들은 이 문제를 중앙정부, 즉 국가 차원에서 편안하게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부 사건에서 중앙정부와 서민이 힘을 합쳐 지방자치단체에 대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앙정부가 손님을 초대하고 지방정부가 돈을 낸다”고 청원은 같은 현상의 양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함께 국가의 전반적인 정당성이 의심되거나 도전받지 않았지만 이러한 정당성은 무수한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관계의 축적에 의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선입견에 의해 달성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일반적인 합법성이 일상의 비규범성과 불안정성의 "주머니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 프레이밍의 세 번째 예는 최근의 "국가주의", "국가는 신성하고 국가는 주권적"이라는 믿음입니다(He Xin, 2001). 국가주의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인 허신은 국가주의가 마르크스주의보다 나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맑스주의를 국가 통치 개념으로 사용하면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가 의심될 때 국가는 전복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신이 중국인인 한 당신은 이 나라에 무조건적인 충성을 다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민족주의의 시급성을 큰소리로 강조했다. “역사는 현대에 이르러 민족의식이 중화민족의 이익을 수호하는 원칙으로 통일되거나 정치의식이 중화민족의 리익을 수호하는 원칙으로 통일되거나 그 모호함과 갈등과 형태의 붕괴 속에서 마침내 민족적 불안과 분단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 "국가주의의 장점은 국가 자체의 형태에 대한 절대적 긍정과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사회주의, 삼민주의, 사회민주주의 등의 문제는 내용이 있고 논의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는 다른데 민족주의는 국가의 유구한 역사, 문명의 발전, 인민의 근면 등을 이야기하고 이러한 내용에 의존하여 민족의 감정을 형성해야 한다. 조국이 귀여운 이유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조국 형태의 절대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애국심은 타협할 수 없다"는 것 뿐만 아니라 "애국심에는 이유가 없다"거나 애국심 자체가 초월적 이성 이 "성난 청년들"의 사고방식은 또한 일반 사람들의 국가 이론에 존재할 수 있는 몇 가지 잠재적인 전제를 지적합니다.   국가의 틀에 박힌 개념은 국가의 "포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프레임 상태는 특별하고 심지어 매우 강력한 상태 통합 형태입니다. 그것은 일련의 경제적, 행정적, 이념적 수단을 통해 형성됩니다. 먼저 1978년 이후 합리적 국가들이 추진한 경제시장화는 두 가지 정치적 효과를 가져왔다. 둘째, 국가는 시장화 과정에서 일부 특정 권한을 상실했지만 국가의 통합은 어느 정도 약화되기보다는 강화되었다. 단일 시장의 형성, 대규모 인구 이동 및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의 출시로 인해 점점 더 많은 문제를 중앙 정부에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는 시장경제의 발전과 국가통합권력의 성장은 사실 1980년대 이른바 '신권위주의'의 핵심이념이다(특히 장빙주[1989] 다른 사람). "신권위주의"는 정치권력을 통한 자유경제의 발전과 소위 "총검 아래의 상품경제"의 촉진을 강조한다. 1990년대 후반에 시행된 세금 공유 시스템과 중요한 기능 부서의 "품목" 강화는 모두 Mann(1984)이 "기반 시설의 힘"이라고 불렀던 것의 향상을 반영합니다. 통일된 시장의 발전을 촉진하면서 중앙 국가의 힘. 이것은 서민들의 일반적인 민족적 상상력의 기초이며, 차례로 중국 경제의 급속한 발전을 위한 조건도 제공한다. 최근에는 "국가"에 대한 대우의 거대한 이데올로기적 차이가 중국과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이행의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Miller & Tenev, 2007).   사상과 정책 논의의 기술적 경향은 국가 틀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국가적 역량'에 대한 논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Wang Shaoguang의 1991년 기사를 시작으로 Hu Angang의 "중국 국가 능력 보고서" 및 기타 일련의 기사에 이어 1990년대에 국가 능력은 의사 결정 및 이데올로기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국가역량이 주목받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1990년대 초반 중앙정부에 재정적 자원이 부족했고, 국가역량이라는 개념은 중앙정부가 조세분담제도를 개혁하고 권력을 중앙집권화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다. 둘째, 1989년 이후 정치적 논쟁은 용인되지 않았고 국가역량이라는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주제가 적절했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능력 개념의 핵심 내용은 국가능력과 체제의 성격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합법적인 체제와 완벽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국가적 역량 없이는 발전할 수 없습니다. 이는 덩샤오핑(Deng Xiaoping)의 검은 고양이와 흰 고양이 이론, 그리고 성, 자본가 및 성에 대한 (묻지 않음) 이론과 일치합니다. 셋째, 중국의 국가능력에 대한 주장은 Wang Shaoguang과 Hu Angang이 미국과 국제교류에서 제시한 것이다. "바다 건너편에서 온 목소리"는 이러한 주장을 더욱 눈길을 끌지만 그 뒤에 숨겨진 더 큰 추세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1989년 이후 중국 지식인은 서구 사회와 세계 구조의 복잡성을 더 잘 이해하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비교의 한계를 깨닫고 보다 구체적인 사고로 눈을 돌렸습니다. Wang Hui(2008: 137)는 1990년대 초반에 “국가역량제안은 주로 중앙국가의 능력을 말하며, 개혁 정책과 그 결과를 '권력 위임과 이윤 포기'로 지향한다. '; 그리고 1997년 이후 국가문제의 핵심은 세계화 과정에서 국가의 역할과 위상으로 돌아간다.” 국제적 패턴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함께 국가능력에 대한 논의, 새로운 형태의 민족주의, 민족주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서로의 소통이 내가 "지정학적 민족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했습니다. 이 민족주의의 출발점은 국가의 역사와 문화가 아니라 세계 지정학이며 이러한 외부 세계 패턴이 중국이 강대국으로 발전해야 하고 국가의 본질과 내부 합리성이 부차적인 문제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셋째, 공무행정의 행정화는 또한 국가의 틀을 조장한다. "행정"은 정부가 사회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공무를 처리하는 구체적인 방법, 즉 선분쟁을 피하고, 구조적 변화와 충격을 피하고, 고도로 기술적인 처리를 위해 특정 문제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정치 슬로건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4대 기본원칙 준수', '모든 것을 우선하는 안정', 심지어 '경제건설 중시'까지 방향성 강령을 전달하는 반면, '과학적 발전 이념'과 '조화로운 사회'는 특별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지만, 기존 패턴의 균형을 유지하고 모든 당사자의 이익을 조정하며 싸우는 대신 포용적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합법주의'와 '법률 숭배'도 행정화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즉, 사회적 모순이 비정치적, 기술적으로 절차적 수단을 통해 해결되기를 바란다.   여기서 특별히 언급하는 것은 당 건물의 행정화이다. 2000년 이후 "당 건설"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내 생각에 "당 건설"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가 기관, 정부와 대중, 다른 대중 조직 사이의 응집력 있는 주체로서 당의 통합을 강화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접근 방식은 당의 사회적, 대중적, 유기적 성격을 이용하여 사회를 통합하지 않고 행정적 수단을 채택한 것으로 보인다. 당이 농민회를 설립하기 위해 현장에 들어가 노동조합을 창설하기 위해 작업장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와 달리 당조직의 전면은 기본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외부에서 내부로 '덮어', '덮여' 있었다. . 개혁 전 중국의 정치가 당의 국가 흡수였다면(린샹리, 2009), 1978년부터 2000년까지의 기간은 기본적으로 진야오지(1997: 27)가 말했듯이 '정치의 행정적 흡수'였고, 2000년 이후 큰 변화 당의 관리 및 국유화가 될 수 있습니다. Yu Keping(2010)은 "법에 따라 당을 통치"를 주창했습니다. "당과 국가의 사회 경제 문제 관리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주로 명령 및 행정 수단에 의존할 수 없으며 법률 및 행정 수단에 의존해야 합니다. 당을 통치하는 방식이 명령의 방식에서 법의 방식으로 바뀌었고, 이는 당의 사회관리 능력과 직결된다.” 물론 당은 하나의 조직으로서 법을 초월할 수 없다. , 그러나 법적 수단을 통해 당의 정치적 요구를 실현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당의 목적과 기능에 어긋난다. 당은 종신회의를 열고 상하관계의 제한을 두지 않는 비판과 자기비판을 조장하는데, 이념적 논의보다 효율성만을 중시하는 위계적이고 독단적인 정부기관과 정확히 구별되는 것이다. 당의 사상적, 사회적 유기적 본성은 어떻게 법으로 표현될 수 있는가? 당이 중립 권력 조직이 되면 국가와 당이 같은 구조로 되어 국가의 전체적인 틀 통합 능력이 강화되지만 실질적인 결속력은 향상되지 않고 일상의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더 잘 감시할 수 있다. 그러나 효과적으로 용해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구조국가'의 형성은 서민의 국가론이 사실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력을 갖게 하고, '상식'의 이론이 되어 그람시가 '지배'라고 부른 것을 얻게 된다. 서민의 국가론에서 국가의 틀은 지극히 강력하여 능가할 수 없는 것이지만 결국은 외부의 틀이며,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국가의 소외와 제약을 긍정적으로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일상생활에서 느낀다. 상호 작용. 이러한 틀과 합리적 절차는 과시적이고 상대적으로 실체적 의미가 없고, 어느 정도는 유럽과 미국 사회가 직면한 '근대성의 우리'와 어느 정도 유사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중국은 근대의 맥락에서 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철학, 문학, 예술의 급진적 해체, 정치적 표현주의(이념적 문제를 생활양식과 정체성 문제로 대체)는 중국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문제는 여전히 구체적이고 기본적인 제도적 장치이지 근대성에 대한 반성이 아니다.   4. 토론: "정치적 언어"와 "언어적 정치"   서민이 전통적인 '시민'에서 현대 '시민'으로 변모하는 것이 현대 주류정치학의 핵심 화두이자 세계적으로도 피할 수 없는 추세로 여겨진다. 그러나 평범한 중국인들에게 스스로를 시민으로 생각하는지, 시민으로 생각하는지 묻는다면 “상황에 따라”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분석한 사례에서 사람들은 헌법, 민법, 형법을 인용하며 민주주의, 권리, 평등을 주장하면서 시민권을 강조하기도 하고,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나약한 지위를 강조하기도 했고, 때로는 그의 행동이 거의 '속임수'에 가까웠다. 관리의 집 근처에 경적을 설치하거나 밤새 그를 괴롭히거나 고객이 화장실에 가지 못하도록 막는 등 이러한 다양하고 변화하는 정치적 정체성은 한편으로는 일반 서민의 풍부한 정치 기술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식적이든 학문적이든 ​​정치 생활의 체계적인 표현과 일반 서민의 정치적 실천 사이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사이에 휴식. 시민권과 약자 지위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강조는 그들 자신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을 얻기 위해 현재의 제도적 담론을 대체로 충족시킨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다른 사람들의 언어로 표현해야 합니다. 우리가 앉아서 수다를 떨었을 때 그들은 스스로를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서민"의 개념은 근대 민족주의의 개념으로서 "시민", 계급 정치의 개념으로서 "인민", 법적 권리의 주체로서 "시민"으로서 명백히 "뒤쳐진" 개념이다. 오늘날 일반 대중과 국가 간의 대화에서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스스로를 '일반인'이라고 정의하면서 자신의 요구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며 모든 수준의 정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나는 그러한 '서민'의 개념과 그 이면의 국가에 대한 서민의 이론을 '정치적 언어'라고 부른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명확한 상징적 표현 체계(특히 언어)를 통해 능동적이고 의식적이며 계획된 행동입니다. 우리의 "정치적 고전 중국어"가 배우의 "정치적 언어"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치적 고전 중국어의 사상적, 사회적 가치는 제한되어야 합니다. 토의하고, 반영하고, 보다 효과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모국어를 다듬고 체계적인 토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회과학계의 기본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서민국가론과 같은 '정치적 토속어'에 주목하는 것은 실천에서 서민의 완전한 주체적 지위를 재정립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상상적, 텍스트적, 가정적이기보다 '실천'을 강조하는 것은 그 대상의 본성이 기성 이론과 이념에 기반하여 연구자들이 상상하는 대상과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정치 고전 중국어에서 "진정한" "성숙한" 주체는 적극적으로 시민 사회를 건설하고 형식적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시민이어야 하며 때로는 편지를 쓰고 때로는 무릎을 꿇는 서민은 저개발 주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천가들이 스스로 정립하고자 하는 주제가 아니다. Bai Ding은 강력한 역사적, 정치적 주제입니다. 파편화되고 파편화된다기보다 '완전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약하고 침묵하는 시를 가지고 노는 기교를 숨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고, 비판하고, 말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냥 평범한 얘기입니다. 나는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적 고전 언어에 대한 수정입니다. 정치적 고전 중국어는 정치적 토착어의 지배적 위치를 몰아내고는 그것을 뛰어넘거나(“약한 자의 기술”) 악마화(“트릭스터”, “신경병증”)합니다. 사실 고군분투하는 보통 사람들은 동정적인 피해자와 귀찮은 말썽꾸러기의 역할을 끊임없이 왔다갔다 한다(물론 동정과 두통은 모두 서민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겸손한 관찰이다).   정치용어에 귀를 기울이면 중국 사회의 기본 상황에 대해 두 가지 전제를 유추할 수 있다. 첫째,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패턴이 계속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안정성이 취약하며 특정 모순이 누적되면 씻겨 나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안정은 일반 서민의 이념적 구성이며, 그들은 이러한 일반적인 안정을 고대하고 이러한 안정을 기꺼이 유지하며 이러한 전체성과 통합(소위 "숭고" 추구)에서 사회 생활의 의미를 찾습니다. ). 동시에 이러한 통합과 총체의 개념은 전통적 정치문화의 연속이자 근대혁명의 산물이자 오늘날의 세계패턴을 반영한 것이며 당국의 의식적 행동의 기능이기 때문에 우연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안정성과 특정 아노미가 반드시 상충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 갈등이 해결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심화되거나 심지어 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화의 목적은 고위급의 관심을 끌고 국가의 도덕적 요구 사항을 강화하여 국가의 전체 무결성과 정당성을 위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 번째 가정은 구체적인 아노미는 스스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방 정부는 대중의 참여와 감독을 허용하지 않으며, 서민들은 지방 정부에 대해 경계하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긍정적인 상호 작용이 형성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대중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Sun Liping(2009)이 "사회적 붕괴"라고 부르는 것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서민의 지배적 위치에 온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들의 정치적 토착어를 완전히 수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민의 국가론은 확실히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 예를 들어, 국가의 도덕화는 중앙 정부가 대중의 특정 요구에 응답하도록 강요하지만 중앙 정부와 특정 그룹이 전략적 이익을 위해 동맹을 맺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며, 이는 국가의 불가역적이고 구조적인 악성 분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익 분배. 또한 국가의 패권 사상은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의해 악용될 수도 있다.   정치적 토착어를 분석한다는 것은 "토속적 정치", 즉 서민들의 실제적인 생각과 행동에 기초한 집단적 행동에 대한 논의를 형성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일반 중국인의 국가론은 국가와 사회를 구별하여 국가를 사회로 제한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기초가 부족할 수 있으며, 국가 내부의 "지방 사회"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탐구할 가치가 있는 것은 국가 전체, 사회 및 대중의 생활 세계 사이에 다차원적이고 다면적인 유기적 연결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우리의 주류 상상은 주로 "분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사회적 분열, 정치적 권력 분리, 공과 사적 분리, 명확한 재산 관계 그러나 Rousseau, Laclau 및 Mouffe(1986)와 같은 사람들도 민주적 협력을 강조합니다. , 융합 요소. 국가를 필요악으로 여기고 항상 의문을 제기하고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방식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권리보다는 공공질서에서 출발하여 국가에 대한 보편적인 참여를 강조하는 민주주의의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가와 서민의 삶의 관계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당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자주적 노동조합, 농민단체, 문학예술단체는 력사상 공산당의 발전과 성장의 기초가 되었는데 왜 우리는 령도밑에 자주적인 노동조합, 농민단체, 기타 단체를 창설하려고 하지 못합니까? 오늘 파티? 여기서 당의 령도는 행정적 령도가 되어서도 안 되며, 법적 의지에 반영되어서도 안 되며, 사상적, 이론적인 령도여야 한다. 이 조직들은 당의 집행기관이 되어서는 안되며 당이 끊임없이 분투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고 당이 계속 대중을 조직하고 동원하는 곳이 되어야 하며 당이 계속해서 당의 주류사상을 형성하고 조정하도록 지지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상호관계를 통해서만 정부, 당, 대중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이 이루어지고 나라의 생활이 인민의 일상적 감정과 요구와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1당 중심의 다자협력체제가 이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가는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도전이다. 중국의 정당 제도와 다양한 정치 고전에 대해 수많은 이론적·도덕적 판단이 내려졌지만, 토착 정치의 실천이 최종적인 역사적 해답을 줄 가능성이 높다.   Xiang  Biao: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사회문화인류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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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해협 3권의 미완성 시민사회: '우리의 청춘, 대만'에서 출발
발행일2021-04-07
에 개정됨2021-04-09

이 글은 해외학생권익단체 샤오즈의 두 번째 연재물 "전염병이 도래한다! 분단의 비시민권자"의 두 번째 기사이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큐레이팅 단어 및 기타 기사는 관련 저작물을 참조하십시오. 두 번째 필기체 시리즈 페이지에서 Xiaozhi의 "나는 고향이 없습니다: 유학생 권리 단체의 저항"의 다양한 앨범을 입력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중...)

머리말
유학생 권리 단체는 국적에 관계없이 대만 밖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사회적 권리를 항상 강조해 왔지만, 단체의 구성원은 홍콩, 중국 본토,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중국인 사회에 대한 현지 관찰이 많습니다. , 그리고 그들은 또한 다른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관찰했습니다.따라서 이 기사의 제목은 "양안 삼권 시민 사회"입니다.

이 메모는 10월 30일 "North Wind Society"에서 그룹이 개최한 영화 상영 및 상영 후 토크를 기반으로 하며 일부 내용이 추가되었습니다. 같은 날 푸유 감독의 다큐멘터리 "우리 청춘, 대만"(2018)을 모두가 관람했고, 호스트 라라는 게스트 샤오위를 초대해 KK와 소통했다. KK는 대만 해협과 삼국의 시민 사회에 대한 많은 개인적인 경험과 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두 번째 Lu Sheng이며 2012년에 대만에 왔습니다. "Our Youth, in Taiwan" 촬영 기간 2011년부터 2017년경까지였다. 사회운동의 발전은 KK가 알고 있는 대만의 사회운동과 궤를 같이한다. 그녀는 Lu Sheng의 비정치화에 대한 관찰, 3.18 운동 참가자로서의 경험, "제3의 중국인 상상"에 대한 비판을 발표했습니다. Fu Yu 감독은 온라인 토론에 참여하여 촬영, 편집 및 상영 전후에 많은 아이디어와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Xiaoyu는 대만 사회 운동의 고위 참가자이자 318 운동의 의사 결정 그룹에 참여한 적이 있으며 대만 사회 운동의 곤경에 대한 관찰을 공유하고 다큐멘터리에서 본 318 운동에 대한 반성을 심화했습니다. 해협의 제목과 세 곳이 직렬로 연결되어 있으니 샤오위 부분은 풀버전 부주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노트는 본토, 대만, 대만에서 유학생과 시민 사회의 정치 참여에 관심이 있는 모든 독자에게 비판과 조언을 제공하는 사후 심사의 연속 중 하나입니다.



"제3의 중국인 상상": "우리의 청춘, 대만에서" 중에서
Wu Jiemin은 "중국의 제3의 상상"에서 대만은 주권이 위협받는 나라이며, 양안을 가로지르는 자본 동맹이 형성되었다고 강조했다. , 수비에서 등을 돌리는 것이 더 낫습니다. , 지역 다문화주의. 이러한 전제하에서 그는 양안 양측이 시민적 진보세력의 연결을 모색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또한 대만이 중국과의 관계를 민족이 아닌 '중국어 사용 세계'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대만 사회를 중국이 글로벌 시민 사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믿는다. [1] 표면적으로는 '제3의 중국상상'이 통일이나 독립의 절대경로를 돌파한 것으로 보이며, 대만의 국권수호를 전제로 '중국'을 '중공'과 '중국'으로 분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료 자본" "중국 사회"의 세 가지 수준은 두 곳의 시민들이 우호 교류와 협력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중국 민족주의자들이 분리주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대만 민족주의자들이 중국(중국 인민 포함)에 완전히 반대하는 공간을 제공합니다. 물론 우지민의 논의에서 '민주주의'는 주로 주권 국가를 전제로 한 현대 민주주의 체제를 가리킨다. [2]

Wu Jiemin의 비전에서 영감을 받은 Fu Yu의 초기 촬영 프로젝트는 "제3의 중국인 상상"의 실천을 포착하고 촉진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 청년, 대만'은 대만의 민주주의 체제를 적극 수용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루성차이보이(Lusheng Cai Boyi)와 훗날 해바라기의 지도자가 된 독립청년 천웨이팅(Chen Weiting)을 특별히 선정했다. 학생운동 . Fu Yu는 그녀가 구상한 "제3의 중국인 상상"을 촬영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실행에 옮겼습니다. 3.18 운동 이전에 Chen Weiting을 중국과 홍콩으로 데려가 홍콩과 연결했습니다. 감독은 Cai Boyi의 새 책을 따랐습니다. Chen Weiting의 중국 입국 과정에서 Chen Weiting은 6월 4일 티셔츠를 입고 천안문 광장을 방문하는 금기에 도전하고자 했으며, Chen Weiting의 몇몇 장면을 동시에 촬영했습니다. 중국인 친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수다를 떠는 것, 홍콩의 부분이 비교적 명확하고 분명하다. 즉, 2013년 학문적 경향과 Chen Weiting의 연결은 영화에서 두 당사자 간의 상호 작용 수준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이 느낄 수 있다. 알고 지낸 지 오래다 식후에는 비욘드의 '넓은 바다와 하늘'을 함께 불렀다. 아마도 촬영되는 사람의 보호 및 이동 시간과 같은 요소를 기반으로 위의 클립은 특정 그룹의 사람들의 연결을 제외하고 청중에게 정치적 의제와 연결 깊이를 알리지 않았습니다. 더.

영화의 전제는 차이보이의 운동실천으로서의 비시민적 지위를 흐릿하게 하여 주류 대만인보다 대만운동에 더 적극적이고 대만인보다 대만을 더 사랑하는 차이보이의 모습만을 보여줄 뿐이다. Cai Boyi가 Lu Sheng이라는 신분 때문에 캠퍼스 선거에 참가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받았을 때 이에 대한 감독의 태도가 주저했던 것은 Cai Boyi와 Cai Boyi가 서로를 완전히 신뢰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라라가 심사 후 토론회에서 언급했듯이 Cai Boyi의 스포츠 부상은 분명히 그녀의 비 시민권자 신분 때문이었습니다. "비시민권자"는 대만 시민사회에서 볼 수 있으려면 먼저 민족주의적 의제를 따라야 합니다. 영화는 차이보이가 운동에 가담했을 때 송환의 위험에 대해 말했을 때만 외국에서 태어난 특별한 법 체계를 강조했다. 나는 "대만해협 삼권의 시민사회"의 전제가 원래 주권국가로서의 대만의 지도력과 민주화를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재료 선택에 반영되는 "비 시민"부분. 예를 들어 푸 원장은 차이보이의 해외학생운동 참여를 따랐다고 하는데 왜 보여주지 않았을까? '외국인과 외국인의 구분이 없다', '동거'라는 정치적 개념과 차이보이가 참여한 다른 운동의 요구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가? 그녀가 참여하는 다양한 운동의 다른 정치는 왜 "대만인이 모르는 지역 사회 운동"또는 Cai Boyi의 대만 통합으로 제시되는 것처럼 보입니까? 예를 들어 그녀는 대만어를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Cai Boyi는 운동에 대한 이러한 다른 정치적 사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일반적으로 "우리의 청춘, 대만"은 정치와 가족의 경험과 얽힌 개인의 미묘한 개인 여행을 운동의 장대한 서사 아래에서 펼치는 세심한 다큐멘터리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연결에 대한 생각과 '비시민'의 사각지대는 영화를 보고 난 후 의문을 갖게 되는 지점이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모든 질문에 답할 필요는 없지만, 이 영화는 우리를 그 질문으로 이끄는 입문서다.



Lusheng의 정치적 냉담의 전문화
'우리의 청춘, 대만' 마지막 부분에서 감독은 '제3의 중국인 상상'이라는 본래의 생각을 분명히 전복시켰다. 영화에 따르면 이 실패는 두 가지 측면에서 비롯된다. 첫 번째는 영화 말미에 언급되고, 푸 감독은 일방적으로 두 사람에게 너무 많은 기대와 부담을 주었다. 촬영 전부터 두 인물과의 관계.'양안의 시민사회 세 곳'에 대한 논의가 많다. 3.18운동 이후에 천웨이팅이 홍콩에 입국할 수 없다는 것이 힌트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나요?

이 문제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는 양안의 세 곳에서 시민사회의 거창한 서사를 짚고 넘어갈 수는 없지만 먼저 이 현상에서 질문을 던진다. 양안 교류에 대한 조건, 정말 두 장소를 촉진합니다.의사소통? 아마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답이 예 또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없으며 이 프로세스의 영향은 더 지켜봐야 합니다. 그러나 Cai Boyi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정신과 일부 Lu Sheng이 민족주의로 퇴각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합니까?

KK는 비정치화된 Lu Sheng의 심리적 구성을 "Our Youth, In Taiwan" 외부에 추가합니다. 한편으로 그녀는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통과하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공부에 집중하거나 대만에 놀러 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믿습니다. 반면에 중국 본토의 시대와 환경이 발전함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치'는 '블랙홀'과 같은 구조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감정이라는 더 깊은 구조 그러나 "블랙홀"이 있습니다."어두움"과 "위험함"의 인상은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정치에 대한 Lu Sheng의 소심함의 핵심 사고방식입니다. 원래 대부분의 본토유학생과 해외유학생은 대만에서 멋진 경험을 했고, 실제 생활에서 대면하거나 명백한 차별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언론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유학생에 대한 적대감이 본래의 일상에서 크게 단절됐다. 많은 Lu Sheng에게 그들은 정치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없었습니다. 이 단절을 설명하고 일관된 진술을 찾으려면 대만 독립군과 같은 중국 정부에 가장 안전하고 가장 가까운 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일상 생활 경험으로 모순없이 이러한 악의를 설명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탈정치화 경향이 사회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많은 대만인들에게서도 볼 수 있으며 Lusheng만의 현상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KK는 또한 그녀 자신도 여전히 Lu Sheng의 대만 운동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받았고 Cai Boyi만이 아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반미디어독점운동, 위안리의 반풍차, 타이포의 농지몰수는 모두 KK가 대만을 알고 있는 지점이다. 그녀는 특히 318과 많은 관계를 공유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이 운동을 생각하고 참여했다.이것은 양안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세계화와 신자유화의 흐름에 따른 문제이기도 하다.스포츠에 '반중국' 사인 장면. 가장 심오한 장면 중 하나는 3월 24일 그녀가 행정원으로 달려가는 장면입니다. 행정원 뒷문 마당에서 앞줄에 있던 한 소년이 "중국 개는 나간다"와 같은 소리를 외쳤습니다. 경찰이 현장을 정리하기 위해 경찰을 겁내지 않고 있지만, 대만인이 아닌 것으로 인식돼 쫓겨날까 하는 매우 긴장된 마음이 있다. KK는 다큐멘터리 속 반중국 뉴스를 보고 있는 차이보이를 보고 눈물이 그렁그렁할 때, KK는 자신의 감정이 불만이 아니라 지루한 감정이라고 느꼈다. 내가 왜 이런 것들을 느껴야 합니까? 그러나 이러한 소외감과 외국인의 참여는 종종 국가 정체성의 의제에서 볼 수 없습니다.

KK의 연설에서 우리는 소위 "루성(Lu Sheng)"이 대만에 오게 된 동기, 대만의 민족주의에 대한 반응, 정치 참여가 결코 획일적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여기서 우리는 Cai Boyi와 같은 예로 Lu Sheng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 Lu Sheng의 사회 운동 참여와 비정치화가 공존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적으로는 '여성'이 특화되어 있고, 정치 참여의 상상에서는 '여성'이 더욱 특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 홍콩, 대만의 패턴에서 '민주주의'가 "민족적 성격" 그들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를 전면적으로 나누기 위해 지역과 민족 그룹만을 사용합니다.



'양해삼국시민사회'에 대한 희망찬 생각: 막다른 길, 대안적 길, 곤경?
KK는 "제3의 중국인 상상"이 큰 맹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 이 상상은 중국, 홍콩, 대만 내에서 미리 정해진 순위를 다룰 수 없다. 이 상상에서 대만이 가장 높은 위치에 있고 대만이 비교적 문명화되고 민주적 대만인들은 민주주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높고 많은 본토인들이 "세뇌"되었다고 가정합니다. 이 시민운동의 기준은 대만 중심이고 홍콩과 중국 본토의 입장이 불분명하고 본토인에 대한 차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Lala는 이 양안 위치가 개념적 계층 구조일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작동하는 실제 시스템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따라서 대만인, 홍콩학생, 대만본토학생의 실제 권익은 3단계로 구분되는데 전염병 기간 중 3급 본토학생을 먼저 배제한 후 홍콩과 마카오의 2급 시민을 배제하였다. 재학생. 이에 유학생 인권단체는 국적을 불문하고 대만 정부가 정한 이러한 순위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차별적 포용'의 거버넌스는 시민과 비시민의 대립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비시민' 자체가 국가에 의해 다른 계급으로 분류되며, '국가적 또는 자본주의적 의제'에 훨씬 더 부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비시민권자". "를 나머지 인구로. [삼]

'대만해협 양안 3곳의 시민사회'가 막다른 골목에 있다는 뜻인가.

KK는 여전히 모든 사람들이 일상 생활의 미시적 수준에서 국경 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Lu Sheng이 대만에 오는 것을 해협 양쪽에 있는 세 곳의 시민 사회 사이의 연결을 촉진하기 위해 반드시 생각하지 않으며, 큰 서사에서 시작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녀는 사람이 국경을 넘어 다른 곳에 와서 원래의 생활 환경과 다른 것을 볼 때 이 새로운 만남이 이미 의미 있는 것이며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믿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대만에 대한 좋은 평가가 있든 없든 간에 최소한 진정으로 이 사회를 관찰하기 위해 눈을 뜨고 그렇게 판단하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녀에게 가장 비관적인 것은 해외에서 온 사람이건 중국 본토 사람이건 대만의 일반 대중이건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것을 보면 '역환각'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학생 교류를 낭만화할 필요가 없으며, 이러한 교류도 지리적 경계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 생활에서 다양한 경계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푸 이사는 모든 사람의 토론에 답했으며 "대만 해협과 세 곳을 가로지르는 시민 사회"의 또 다른 가능한 길은 세 곳의 상호 공감과 이해를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Chen Weiting과 함께 중국 본토와 홍콩으로 여행한 경험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당시 그들은 중국 본토에서 8일을 보냈지만 영화는 몇 개의 클립만 사용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남부 주말' 사건, 홍콩에서 반국가종교 사건, 대만에서 반언론독점운동이 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국가 기구의 힘에 맞서 공동으로 싸우고 있었다. 나중에 그녀는 "남부 주말"이 그들의 기사가 대체 된 세력을 정확히 알고 있고 대만의 반 미디어 독점 운동이 대만 미디어를 독점 할 수있는 추상적 인 "중국 수도"에 직면하고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중국 본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큰 차이가 나며 각자의 말을 한다. 이후 또 다른 언론인을 방문하기도 했다.'제3의 중국인 상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론인은 사회마다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푸 감독은 양안 시민들을 반성했다. 사회적 상상력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 수 없으며 처리해야 할 문제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푸 감독은 '제3의 중국상상'의 '양안 시민사회'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한 매체 친구의 말을 인용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로에 대한 공감과 이해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해협을 가로지르는 민족주의적 적대감이 만연한 추세에서 서로를 동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가? 어떻게 하면 첫걸음을 뗄 수 있을까요?

라라는 우리가 다른 곳을 가거나 상상할 때마다 원산지의 역사에 대한 부담감이 있고, 이러한 역사는 종종 대만해협의 양측, 중국과 홍콩 사이에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와 '식민지 종주국' 초국가적 시각이 들어와야 두 곳의 사람들이 소통하거나 연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은 대만을 상상하고 중국 민족주의는 중일 중일 전쟁에서 2차 세계 대전까지의 기억으로 강화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기간? 예를 들어 홍콩이 중국을 상상할 때 현대의 "중국의 부상"이라는 사실 외에도 식민지 종주국이 가져온 경제적 지위와 자신의 자본주의 질서의 "우월성"을 취하여 중국의 "후진성"을 상상한다. 중국의 사회주의. 실제로 사회학자 왕홍룬이 지적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의 역사를 정리할 때 민족주의는 단순히 한 나라 안에 형성된 정치공동체가 아니다. 역사적, 공시적 영역을 동시에, 국가 내의 다른 국가들 사이의 분쟁, 이들 국가의 틀은 서로 충돌할 것입니다. 그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의 "전쟁의 틀(frame of war)"을 인용하여 "민족의 틀"의 문제를 설명하고, 전쟁은 근대 민족국가의 건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많은 현대 민족국가들조차도 확립과 정당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전쟁의 역사와 기억을 동반하며, '국가의 틀'은 기본적으로 '전쟁의 틀'이 제도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4] 표면적으로는 유학생들과 대만 친구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공간이 있지만(적어도 인터넷에서는) 유학생들이 차별을 당했을 때의 상처를 솔직하게 표현하면 많은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감정협박" , 왜 서로의 지각은 소통하지 못할까? 버틀러의 이론적인 언어를 차용해 두 개의 전쟁 프레임이 충돌할 때 인생도 '비통한 것'과 '불가한 것'으로 나뉘며, 자신의 전쟁 틀에 맞는 삶만이 '비통한 것'이다. 어떤 틀을 풀려면 먼저 그 틀의 내용을 파악해야 하므로 다양한 전쟁틀(민족주의 세대의 역사)이 어떻게 집단 간의 인식과 경험의 교환을 방해하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 요인 외에도 기술과 미디어는 계속해서 경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터넷 사용 습관에 따르면 평소 페이스북(지금은 mewe)을 즐겨 사용하는 홍콩과 대만 친구와 WeChat과 Weibo를 사용하는 중국인은 기본적으로 정보를 받기 위해 "병렬 시공간"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루셩이 베이징 정부에 루셩의 대만 여행을 취소하라고 항의했지만, 페이스북에서 대만 정부를 겨냥한 해외 유학생들을 비난하는 대만 사람들은 이를 모를 수도 있다. 성층권 문제의 편리함(또는 게으름)과 인터넷 토론으로 인해 일부 경직된 표현이 반복적으로 유포되어 많은 사람들이 중국인을 직접 "작은 분홍색"으로 간주합니다. 반면에 지상파 집단은 온기를 위해 뭉치는 현상도 있다. 많은 경우에 양측 간의 교류는 논쟁의 큰 발발입니다.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논쟁과 토론이 자극을 받았고, 다른 한편으로 어떤 사람들은 상처를 받고 자신의 성층권으로 후퇴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국가적, 지리적 경계는 점차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며, 그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 구성요소는 검토되지 않습니다. 나는 일부 국가가 강력한 정치, 경제, 군사력을 가지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국경의 다중성을 무시하고 내/외부 관계를 문제화하지 않고 "강자 대 약자"의 틀만 사용됩니다. "지구"는 종종 외부와 내부를 구별할 수 없는 서로 다른 힘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권력 관계의 많은 세부 사항을 놓치게 됩니다. 전쟁의 틀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국경의 구체화 문제는 지역을 초월하여 공동 구축되는 문제이므로 대만해협의 양측과 3개 지역이 공동으로 반성을 해야 한다.



"대만-홍콩 커뮤니티": 국적과 당 정치에 국한됩니까?
'오늘의 홍콩, 내일의 대만'은 '대만해협 삼곳의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잃은 것 같은 시기에 '중국 패권'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상상하는 최신 커뮤니티다. 대만과 홍콩의 다양한 교류와 달리 해바라기 운동과 우산 운동 이후 두 곳은 지역적 정체성의 현상이다.

행사 당일 라라는 현재 대만과 홍콩의 연결에 대한 숨은 고민은 민족주의와 마인드의 상호 사용이라고 말했다. 민주진보당은 '홍콩'을 이용해 '민족적 예속감'을 조성하고, 홍콩인들은 차이잉원의 표를 대가로 기꺼이 이용된다. 유학생들이 DPP를 비판하면 '진정한 홍콩인'이 DPP의 입장이나 도움에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에 곧바로 '가짜 홍콩인'이라는 질문을 받는다. 라라의 관점을 확장해 민족주의를 초월한 '대만-홍콩 공동체'에서 '대만'과 '홍콩'을 기대한다. 토론과 행동의 여건이 더 많은 분야를 의미할 뿐 특정 민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룹; 다음 단계는 서로를 보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두 장소의 "중국 요인"은 다른 맥락과 정치 경제적 상황을 가지고 있습니까? 국가적 문제 외에 계급, 성별, 생태 등 다양한 문제는 어떻습니까?

2020년 초 대만 총선 당시 타이페이에서 열린 민진당 캠페인 회의에서 누군가가 "시대의 혁명, 홍콩을 회복하다"라는 배너를 흔들고 있는 것을 보았고, 페이스북에서 많은 홍콩 친구들도 보았습니다. DPP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Xiaoying의 소식을 공유하는 것은 대만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부러움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DPP가 홍콩의 운동을 표를 끌어 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대학 학생회(University Student Union)는 홍콩 난민에 대한 연설의 한 예입니다. 대만 측에서는 대만 총선을 앞두고 린종홍(Lin Zhonghong)과 천즈로우(Chen Zhirou)가 실시한 사회적 의도 조사에 따르면 68%가 개헌 반대 운동을 지지했으며, 운동에 대한 태도는 투표 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 운동을 강력히 지지한 사람은 87%가 차이잉원을 지지했고, 60%가 차이잉원을 지지했습니다. [5] 즉, '대만-홍콩 커뮤니티'는 상당 부분 홍콩 시위대와 민진당을 잇는 고리라고 할 수 있다. 총선 직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전염병 예방 모범생'인 대만은 여전히 ​​많은 홍콩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축소 측면에서 대만 정부의 '민주주의', '반중국', '관세 폐쇄'는 모두 전염병 예방 성공의 핵심 포인트로 간주된다.주권과 헌법 문제, 홍콩은 관세 폐쇄를 실행할 수 없다. 그 자체로 전염병의 발발로 이어졌습니다. [6]

대만과 홍콩의 관계는 여전히 긴밀해 보이지만 전염병은 지난 2년 동안 언론 담론과 선거 프로젝트로 구축한 '대만-홍콩 커뮤니티'가 무너지는 듯 보인다. 적어도 대만과 홍콩의 수준이 다른 교류에서는 특정한 홍콩 민주화 문제만 부각된다. 홍콩에서 태어나 대만 국적을 가진 한 부모가 남편과 함께 대만으로 이주했고 여기에 차와 집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입국이 금지되어 홍콩에 먼저 아들과 동행하기로 했고, 정부 부처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각종 세금 납부를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7] 물론 나는 DPP 정부가 홍콩 사람들의 개인 안전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중요한 문제가 은폐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홍콩인들이 대만에 와서 정착, 일, 학업을 하게 되면서 이러한 이민에는 더 깊은 뿌리와 이민 장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 그리고 홍콩의 다른 거리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망명 정신이 항상 '홍콩'을 바라보며 지역 정치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것인가? 대만과 홍콩에 대한 조치와 탠덤이 동시에 가능합니까? "Taiwan-Hong Kong Community"는 당연히 복수형이 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문제와 다양한 형태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메모

[1] Wu Jiemin (2012) The Third Chinese Imagination, New Taipei: Left Bank Culture, pp. 27-63.

[2] Wu Jiemin (2012) The Third Chinese Imagination, New Taipei: Left Bank Culture, pp. 74-75.

[3]  "차별적 포용"은 Yến Lê Espiritu의 미국 내 다양한 ​​인종 거버넌스 논의에서 유래했습니다. Yến Lê Espiritu, Lisa Lowe 및 Lisa Yoneyama 2017. "태평양 횡단 얽힘",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를 위한 인화점 , Cathy Schlund-Vials 편집 Fordham University Press.

[4] Wang Honglun(2014) "동아시아의 전쟁의 틀과 국가 문제: 일본, 중국, 대만에 대한 조사", Wang Honglun 편집, "전쟁과 사회", 타이페이: Lian Jing, pp. 159-225.

[5] 임종홍, 진즈로우(2020), "차이잉원 817만 표, 민족적 예속감, 청년, 엘리트 얼마나 도왔나", "단미디어" 참조, 2020년 1월 15일, https //theinitium .com/article/20200115-opinion-hk-china-age-taiwanelection/

[6] 예를 들어, 홍콩의 스타 Du Wenze(역시 영향력 있는 정치적 견해를 가진 팬이기도 함)는 대만의 성공적인 전염병 예방이 민주주의 정치 체제 덕분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Du Wenze 찬사: 대만의 전염병 퇴치 성공은 올바른 투표 덕분입니다! 》, The Liberty Times, 2020년 2월 23일, https://ent.ltn.com.tw/news/breaknews/3077549

[7] 원문은 '유학생권익위원회' 페이스북 팬페이지, https://www.facebook.com/tismovement/photos/a.1805129959775384/2828475457440824/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사이드 노트의 전체 버전은 다음을 참조하세요.
"Our Youth, In Taiwan" 풀버전은 https://reurl.cc/KxRgV9를 방문하세요.

이 글은 해외학생권익단체 샤오즈의 두 번째 시리즈 "전염병이 다가온다! 국경 아래 비시민권자"(2.2)의 두 번째 기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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