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리포트>
서평 37 : 일본 신진 학자의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대담한 제언 <인신세의 '자본론'>
2020년 말께 일본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우치다 다쓰루 선생을 개인적으로 만나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때 일본의 학자 가운데 어떤 사람을 주목하면 좋을지 물어봤다. 우치다 선생은 주저 없이, 두 사람의 젊은 학자 이름을 댔다. 한 사람은 <영속패전론>과 <국체론, 국화와 성조기>의 작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시라이 사토시(1977년 생) 교토세이카대 교수이고, 또 한 사람이 사이토 코헤이(1987년 생) 오사카시립대 교수다.
시라이 교수는 몇 번 만나 얘기를 나눈 바 있지만, 사이토 교수는 오사카에 있는 대학의 교수지만 만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잘 기억해 뒀다가 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인신세의 '자본론'>(집영사신서, 2020년 9월)이라는 화제작을 쓴 신진 마르크시스트 철학자였다. 당장 책을 구해서 읽어 봤다.
책의 '들어가는 말'부터 충격적이다. "SDGs(지속가능 목표)는 '대중의 아편'이다!"라는 선동적인 문구로부터 시작한다. 칼 마르크스가 종교를 대중의 문제의식을 흐리는 아편으로 비유한 것을 차용한 문장이다. 그는 유엔이 내건 '지속가능 개발 목표'는 지구가 당면한 기후변화 위기를 구할 수 없는데도 마치 구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킨다고 본다. 그는 같은 차원에서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이 주장하는 '그린 뉴딜'도, 제레미 리프킨이 주장하는 지오엔지니어링 같은 꿈의 기술도, 경기 부양을 위해 정부가 무한히 화폐를 발행해야 한다는 현대통화이론(MMT)도 지구 위기를 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성장주의에 기반한 공산주의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기후 변화로 궤멸 직전에 있는 지구를 구하는 유일한 해법은 후기 마르크스의 생태주의에 기반한 '탈성장 코뮤니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독일 훔볼트대학에서 후기 마르크스 사상을 연구한 논문 '칼 마르크스의 생태사회주의'로, 저명한 '도이처기념상'의 최연소 수상자가 됐을 정도로 마르크스 후기 사상에 조예가 깊다. 그는 생산력 지상주의자처럼 인식됐던 마르크스의 사상은 후기 생태주의, 즉 그의 탈성장 코뮤니즘을 간과했던 데서 나온 오해라면서, 이런 오해가 150년 이상 지속돼왔다고 말한다. 후기 마르크스는 자연을 착취하는 성장지상주의로는 지구가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코뮨을 중심으로 하는 탈성장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는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가기 위해서는 1) 가치 중심에서 사용가지 중심 경제로 전환, 2) 노동시간의 단축, 3) 획일적인 분업의 폐지, 4) 생산과정의 민주화, 5) 필수 노동의 중시가 기둥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탈성장 코뮤니즘을 유일한 지구 위기 탈출책으로 제시하는 이유를, 이를 제외한 나머지 방안들은 모두 자본주의의 성장지상주의가 만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보다 시간을 연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끝나는 말'에서 좌우 양쪽에서 비판을 받을 각오를 하면서 책을 썼다고 밝혔다. 좌파로부터는 마르크스는 탈성장을 주장한 적이 없다는 비판이, 우파로부터는 소련의 실패를 반성하지 않는다는 조소가 올 것으로 예상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최신의 마르크스 연구의 성과를 기초로 기후변화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분석하는 가운데 후기 마르크스의 도달점인 탈성장 코뮤니즘이 '인신세'의 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참고로, 인신세는 인류세라고도 하는데 인류가 지층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시대라는 뜻에서 네덜란드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그뤼첸이 제안한 용어다. 이 책은 올해 10월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다다서재, 김영현 옮김)라는 이름으로 변역 출판됐다. 대학에서 마르크스의 이름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한국의 현실에서, 참신하면서도 충격적인 내용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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