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ugust 19, 2024

“인간 파괴 자본주의 문제, 마르크시즘에서 길 찾아야” 류동민 교수

“인간 파괴 자본주의 문제, 마르크시즘에서 길 찾아야”

“인간 파괴 자본주의 문제, 마르크시즘에서 길 찾아야”
[짬] 20년 된 계간 ‘마르크스주의 연구’ 편집위원장 류동민 교수
기자강성만수정 2024-08-18 
8:15


류동민 교수가 인터뷰 뒤 사진을 찍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

“국내외 연구자들을 망라해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제도화한 플랫폼 구실을 하고 있다는 거죠. 마르크스주의 연구 분야에서 유명한 국외 학자들도 우리 매체에 자발적으로 논문을 투고하고 게재 논문도 인용합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앤드루 클라이먼과 닉 포츠는 우리 매체에서 한 논쟁으로 책까지 냈죠.”

올해 창간 20년인 계간 학술지 ‘마르크스주의 연구’ 편집위원장 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한국 사회에 끼친 이 매체의 가장 큰 영향을 묻자 나온 답이다. “여러 게재 글 중에 20세기 소비에트 사회주의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는 논문이나 동아시아 자본주의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한 논문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습니다.”

류 교수는 창간 편집위원장인 정성진 경상국립대 경제학부 연구석좌교수에 이어 재작년에 2대 편집위원장을 맡았다. 경상국립대 사회과학연구소장 시절 이 매체 창간을 이끈 정성진 교수는 2009년에는 대학에 마르크스주의에 특화한 협동과정 대학원 정치경제학과를 창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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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국연구재단 등재지에 오른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경상국립대 사회과학연구원 기관지다. 편집위원 17명 중 다섯이 이 대학에 적을 두고 있다. 하지만 편집 책임을 타 대학 교수에게 맡겼다. “정 교수가 잡지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중시했어요. 저를 편집위원장으로 뽑은 것은 그런 취지를 더 강화하겠다는 뜻이지요. 대학 외부인도 편집위원장이 될 수 있다고 사회과학연구원 규정까지 바꿨다고 들었어요.”

그는 고 김수행 교수 지도로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에서 ‘수리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학에서 정치경제학과 경제학설사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옥수역 근처 카페에서 류 교수를 만났다.

‘마르크스주의 연구’ 74호 표지.

편집위원장에 앞서 10년 가까이 편집위원도 했던 그는 창간 첫해부터 글을 투고해 그간 20여편 가까운 논문을 실었단다. “제가 논문 게재 순위로는 상위 1, 2위일 겁니다.”

최근 74호(2024년 여름호)가 나온 ‘마르크스주의 연구’에는 20년 동안 모두 679편의 논문이 실렸다. 영어나 번역 논문 비율은 21.5%에 이르고 사회운동 차원의 정세를 다룬 논문도 22편이다. 최근호에는 87년 이후 노동정치를 평가하고 2004년 총선 이후 계급정치 가능성을 살핀 정세 논문(권영숙 필자)이 실렸다.


정 교수는 74호에 실린 류 교수와의 대담에서 

“창간 편집위원 다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학술적 연구(Marxology)보다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의 연구(Marxist studies)에 방점을 찍었다. (중략) 
창간 당시의 마르크스주의 지향성을 더 강화하는 것이 본지의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류 교수의 응답이다.

 “잡지가 20년이 되면 대단히 많은 사람이 참여해 한가지 방향으로 간다고 보장하기가 쉽지 않아요.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큰 실천 방향은 동의하지 않으면서 연구만 하는 문헌학이나 훈고학자들도 있을 수 있죠.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 연구’는 앞으로 진보적인 사회운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지향하려고 합니다.” 그는 이어 “진보적인 정치·사회 운동이 전반적으로 쇠퇴하고 전문 연구자가 아닌 분들이 학술적 성격의 글을 쓰기 쉽지 않아 최근 정세 글 게재가 많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사회운동을 다루는 정세 논문도 의식적으로 늘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투고 논문의 질과 양을 궁금해하자 그는 “게재 논문 수가 전체적으로 줄고 있다”고 답했다. “매호 대략 10여 편 투고되고 게재율은 70~80%입니다. 투고 논문 감소는 국내 인문·사회과학 학술지 전반의 현상입니다. 우선 국내 학술지가 크게 늘었고 또 연구자들이 교수평가 때문에 국제 학술지 게재를 선호해서죠.”

정 교수는 최근 엮은 책(포스트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혁신)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연구가 역동적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학계도 그러냐고 하자 류 교수는 우리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젊은 연구자들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이는 국내 인문·사회과학 전반의 현상이죠. 인문 사회과학 쪽은 서울대 대학원도 미달한다고 하잖아요.” 실제 ‘마르크스주의 연구’ 논문 게재 필자의 평균 연령도 20년 전 47살에서 재작년 53살로 크게 늘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 연구 침체에는 국내 대학들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배타적 태도도 영향이 있다고 했다. 특히 경제학 분야가 심하단다. “현재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는 마르크스 경제학은 고사하고 포스트케인지언이나 제도경제학 등 비주류 경제학 전공 교수도 없어요. 심지어 비주류경제학을 소개할 수밖에 없는 경제학설사 전공 교수도 없어요. 한국 대학은 주류경제학의 영향력이 압도적입니다. 서구보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더 강해요.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는 현재 경상국립대와 인천대, 충남대, 목포대 등 주로 지방국립대에만 있어요.”

경제학을 동경하던 진보적인 부친의 영향으로 경제학과 입학을 결심하고
 고교 시절부터 경제학 공부를 위해 일본어를 따로 익혔다는 류 교수는 
이 시대에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자본주의가 몇백년 시장 논리에 따라 인간을 채찍질하며 경제가 성장해왔지만 자본 논리에 따라 인간적 논리가 파괴되는 문제들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어요. 성장에도 하루에 몇 달러 이하로 살아야 하는 사람은 더 늘고, 식량 생산 증대에도 절대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늘고 있어요. 개인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이런 시장 경제의 문제를 거시적이고 구조적으로 보는 게 중요한데요. 이걸 가장 잘하는 게 마르크스주의이죠. 자본주의의 여러 문제를 자본주의 전체 구조와 연계해 설명하는 게 바로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입니다.”

류동민 교수.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이 ‘구리다, 후지다’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상의 중요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답을 주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1987년생 일본의 마르크스주의 문헌학자 사이토 고헤이를 예로 들었다.

 “코로나 전후로 일본의 몇몇 젊은 마르크스주의 학자들이 기후위기 등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으로 대중적인 영향력을 얻었어요. 사이토가 대표적이죠. 그가 2020년 낸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는 수십만권 나갔고 이 책의 성공에 힘입어 도쿄대 교수로도 임용되었고 방송 출연도 활발하더군요. 영어와 독일어도 잘하고 샤프(명석)해요.”

인터뷰 끝에 계획을 묻자 그는 “한국 경제학의 역사를 정리하는 데 관심이 많다”고 답했다. “19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 마르크스주의 세례를 받으며 서구와 다르게 한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과학을 하려고 했던 분들의 기록을 정리해 남기고 싶어요. 고 

박현채, 안병직, 백낙청 선생이 대표적이죠. 

저는 이 뿌리에서 좌든 우든 한국에서 지도적 이데올로그(사상가) 역할을 하는 분들이 나왔다고 봅니다. 그 입장에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70, 80년대에 대한 반발로 나온 뉴라이트도 그렇고요. 생활형 지식인들과는 달리 한국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면서 세상을 이끌려고 하는 일종의 지사형 지식인들에 대한 지식사회학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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