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14, 2022

손민석 사사키 류지의 [한 권으로 읽는 마르크스와 자본론]

Facebook: 손민석

이런 게 MEGA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불신을 키운다. 마치 MEGA에 무언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면서 지적인 사기를 치고 있다. 정성진이 번역한 사사키 류지의 <한 권으로 읽는 마르크스와 자본론>의 한 부분이다. 이 책에 따르면 만년의 마르크스는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면서 그 나름대로의 공동체론을 제시하게 된다. 사진에 나온 부분은 그 공동체론에 대한 설명이 집약된 부분이다.

 <정치경제학비판요강>에서 공동체론을 상세하게 전개해서 전근대 사회의 공동체를 긍정적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이렇게 주장하면 마치 전근대 공동체"론"이라는 게 존재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요강>을 근거로 논파할 수 있다.
 
<요강>에서의 공동체, 공동단체는 특정한 시대에 존재하는 특정한 무언가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공동체(Gemeinwesen)에는 자본주의조차도 포함된다.

 예컨대 "(공동체의) 성원들 간에 언어 외에는 거의 공통성이 없는 '공동체(강조는 인용자주)'의 추상은 분명히 보다 후세의 역사적 제조건의 산물인 것이다."(카를 마르크스,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제형태>, 성낙선 역, 신지평, 1993, p.37)나 

"이미 우리가 화폐에 관한 장에서 보았듯이, 비록 교환가치에 근거한 생산과 이들 교환가치의 교환에 근거한 '공동체(강조는 인용자주)'가 ... 이런 생산과 이런 공동체 그리고 부의 일반적 조건으로서의 노동은 노동의 객관적 제조건으로부터의 분리를 전제로 하며, 또 이를 산출한다."(카를 마르크스, 1993: 70)에서 볼 수 있듯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동체란 언어 혹은 교환가치에 근거한 생산과 교환에 의해 묶이는 가장 "추상"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근대적/자본주의적 공동체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마치 자본주의와 대비되는 '전근대 공동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서술한 사사키 류지의 주장과 달리 <요강>에서의 마르크스의 공동체는 혈연적 관계로 묶인 아시아적 공동체에서 점차로 가치의 생산에 의해 묶이는, 언어 외에 공동체 성원들 간의 공통점이 없는 가장 추상적인 형태의 자본주의적 공동체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사의 발전 과정을 "사적 소유의 발전 과정"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란 인류사 전반을 관통하는 인간집단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러니 내가 읽고 피식할 수밖에..
 
일본 마르크스주의가 되려 70년대보다도 후퇴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책도 그렇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최근에 자꾸 말년의 마르크스가 원시공동체의 "생명력"에 감탄하게 되었다는 헛소리를 하는데, 그 끈질긴 생명력이 바로 아시아적 정체(停滯), 뒤쳐지는 것의 원인이다. 러시아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인들이 보여주는 후진성과 정체성은 원시"공동체"의 그 끈질긴 생명력이 계속해서 아시아인들을 공동체적 관계 속에 예속시켜놓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정체성에 기초해 이뤄지는 전제국가의 지배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난 것이었다. 이게 마르크스의 입장이 변한 건가? 강조점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왜들 이러는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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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Seok Heo and 26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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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민석
    에휴, 어차피 내가 말해봐야.. 누가 듣겠나.. 의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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